050. 세팅 완료!
“게임 피를 니가 다 낸다고? 웬일로?”
락카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내가 게임피를 다 냈다고 하자 동규가 놀랐다.
평소라면 당연스레 의사인 동규가 게임피를 다 내고, 나중에 카트비는 나나 정진이가 내었다.
캐디분들에게 드리는 건 버디 잡은 사람이 내는 게 거의 친구들 간의 국룰이었다.
물론, 버디가 없는 날에는 동규가 캐디비도 내긴 했다.
한마디로 집이 잘살고 의사인 동규가 물주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써야 할 때가 온 거였다.
“정진이 녀석이 서프라이즈로 해서 너에게 알려주자고 비밀로 했는데, 이놈이 고시 공부하러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그냥 알려주마.”
“비밀? 뭐, 로또라도 걸린 거냐?”
“음. 뭐 로또에 걸린 거라고 봐야 되려나. 음. 그게 아니고, 내가 하던 라면 회사를 백억 대 가격으로 팔았다.”
“뭐? 백억 대? 이게 어디서 구라야?”
“야이씨 내가 이야기하면 뭐든 구라 아니지? 하고 물어보냐.”
“야, 백억이잖냐. 당연히 물어보는 거지.”
“진짜야. 정진이 이놈이 같이 있을 때 해야 하는데, 혼자 이야기하려니깐 진짜 구라같긴 하네.”
동규에게 정진이와 선배 변호사 대동해서 회사를 팔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와! 멋지네! 그럼, 동래 CC에 회원권 하나 사라. 나도 너 덕에 좀 이용해 보자. 요즘 한 1억 2천쯤 하나?”
“오케이. 그 정도는 이제 사줄 수 있지.”
“헐. 진짜인가 보네. 몰카가 아니었네.”
“차도 베엠베 x6으로 바꿨어.”
“허얼! 진짜인가 보네. 와! 와 니가 진짜 위너다. 이제 난 가난한 의사 선생님이네. 앞으로 밥은 니가 다 사라. 비싼 거 먹을 거다.”
“그러지 뭐. 이때까지 너한테 얻어먹고 한 것만 해도 엄청나니깐.”
“캬! 그걸 알아주니깐 뭔가 밥 먹이고 옷 사입히고 한 보람이 느껴지네.”
“웃기고 있네. 니가 언제 옷 사줬는데.”
“내가 CK 팬티 3장 사서 한 장씩 줬잖아.”
“그건 속옷이잖아!”
“그게 그거지. 속옷도 옷이다이. 아 저기 종민이 왔다.”
이야기만 들었던 동규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제약 영업을 한다는 이종민이 도착했다.
키가 185 정도로 컸고, 스포츠머리를 한 쾌남 스타일이었다.
결혼해서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있다고 했는데, 빨리 결혼한 축에 들었다.
어색한 첫인사를 하고, 동규가 이제 같이 라운딩 돌 친구라고 소개를 했다.
“이 친구가 100억대 자산가인데, 얘가 이번에 새로 회사를 차리게 되었거든. 그래서 행동대장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행동대장?”
갑자기 행동대장이라는 말에 종민이가 눈을 치켜떴다.
“말이 행동대장이라는 거고, 앞에서 제대로 영업해줄 영업 실장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너 영업 잘한다고 내가 추천했다.”
“무슨 영업인데?”
“임 대표 무슨 영업이야? 하하하. 나도 제대로 이야기를 못 들어서. 영업이라고만 알고 있었네.”
동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소개를 했다고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났다.
“관공서 영업인데. 자세한 건 설명이 필요해서리.”
“그럼, 일단 한 라운드 돌아보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콜! 무브무브!”
***
딱!
“나이-샷!”
“와 종민이 좀 치네.”
우리 법서이 세 명은 100타 언저리를 치며 운빨 좀 좋은 날에는 90타 후반까지도 치긴 했다.
오늘도 그 비슷한 100타 언저리가 나올 것 같았는데, 종민이는 척 보기에도 스윙폼이 깔끔한 것이 ‘보기(90타)’ 정도의 실력은 될 거 같았다.
오늘도, 종민이가 접대 골프를 쳐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눈치에서 합격!
“캬! 역시 그늘집에서 마시는 사맥이 최고네.”
“그런데, 이거 마실 때마다 생각하는데, 일일이 맥주랑 사이다 섞어 먹을 바에는 애초에 사이다 맥주 합쳐서 제품을 만들면 안 되나? 그럼 편할 거 같은데.”
“그러게. 저알코올이나 무알코올 맥주로 해서 사이다 타서 제품 내놓으면 그늘집에서 잘 팔릴낀데.”
라운딩을 돌면서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는 공식처럼 어느새 세 명 다 반말을 했다.
“나도 그 생각했다니깐. 영업할 때 박카스나 커피 말고 사맥 캔을 안주머니에서 꺼내서 딱 건네면 뭔가 다를 것 같은데. 그런 음료수는 안 나오네.”
직장인이라면 주말에 골프를 치면서 그늘집에서 시원하게 마셨던 사이다 + 맥주를 평일 회사에서 마신다면 그 맛이 특별한 맛일 터였다.
주말을 떠올리게 하는 음료수! 라는 타이틀이라면 꽤 판매도 괜찮을 것 같았다.
라면처럼 음료 쪽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캐디분의 말 한마디에 바사삭 부스러졌다.
“그게 맥쿨 아닙니까? 맥쿨! 맥주에 탄산음료 섞은 거.”
“아! 그렇네!”
그러고 보니 이미 사맥이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늘집에서 맥쿨을 마시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알코올 도수가 없다 보니 안 먹히는 건가?”
“그것보단 맥쿨은 좀 향이나 그런 게 하드해서 그런 거 아닌가? 사맥은 목 넘김이 쉬운 라거 스타일이고, 맥쿨은 굳이 따지자면 에일(Ale)맥주라고 봐야지. 우리나라에서는 에일맥주가 라거에 비해 인기가 없으니깐 여기서도 안 먹히는 거겠지.”
심도 있게 맥주 종류까지 늘어놓으며 그늘집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게 좋은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운대 음료!’
탄산에다가 이온 음료를 섞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음료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카페인을 섞는다면 레브 불이나 몬스터 같은 카페인 에너지 음료도 가능할 것 같았다.
사이다와 맥주를 합쳐서 사맥 혹은 맥사 음료로 해서 전국 골프장에 납품이 가능할 것 같았고, 해운대 음료처럼 지역 향토 음료로서도 판매가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문제는 이 음료도 라면처럼 소규모로 시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였다.
아님, 아예 에너지 음료와 섞어 먹는 예거밤 같은 술을 출시한다면 이것도 나름 해운대 밤바다에서 팔릴 것 같았다.
“오 이거 뭔가 떠오르네! 상품이 떠오른다.”
“꼴값하네. 언제부터 사업했다고.”
“니가 먼저 임 대표라고 내 불렀다이. 지가 먼저 바람 넣어 놓코는.”
“글네. 내가 먼저 말실수했네. 임 백수라고 불렀어야 했는데. 내가 큰 실수했네.”
그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고는 식사를 위해 복어국을 먹으러 갔고, 본격적인 나만의 면접을 시작했다.
“그런데, 제약 영업 10년 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자리를 충분히 잡았을 것 같은데. 아닌가?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긴 있나?”
“제약 영업 열라 힘들어. 10년이라고 해도 이게 10년 동안 그대로 유지가 안 되게 되어있어. 새로 생기는 병원을 내가 영업해서 개척하더라도 바로 다음 해에 리베이트 더 준다고 하면 바로 변경해 버려.”
“돈질에 장사 없긴 하지.”
“진짜 성심성의껏 2~3년 동안 관리하고 인간적으로 대해도 다른 영업사원이 엄청 로비하면 그냥 하루아침에 떨어져 나가버려.”
“뭔가 유지가 안 되는 영업이구나.”
“그래. 더구나. 동규도 알겠지만, 의사가 갑오브갑이야. 뭐든 그냥 죽는 시늉을 해야 하다 보니 이쪽 영업을 그만두고 싶어지지. 보통 3~4년이면 다 도망가.”
복어국을 먹으며 종민이 이야길 들어보니 10년 영업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휘발성 영업에 지쳐있는 것 같았다.
정식 면접과 무슨 영업을 해야 하는지는 서로 시간 협의해서 따로 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소형차인 종민이의 차가 먼저 나와서 먼저 보냈고, 차가 나오길 기다리며 동규에게 물었다.
“종민이 믿을 만하냐? 영업직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모난 것은 없어 보이는데. 그것도 잘 단련 받은 거겠지?”
“그렇겠지. 근데, 내가 고등학교부터 15년 넘게 본 동창이야. 애가 사람 뒤통수치고 할 사람은 아니야.”
‘야, 그건 모르는 거야. 그 상황이 되어봐야 그게 나오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친구의 친구를 까는 말인 것 같아 마음속으로만 했다.
“종민이 지금 얼마 받고 다니는지는 아냐?”
“세전 4천에 성과금 별도일 건데. 전에 골프 치면서 이야기해보니깐 말이 성과금이지 제대로 받기 힘들다고 하더라고. 매년 실적 라인을 올려서 그걸 달성하기가 이제는 거의 힘들대.”
“아마도 병원개척이 아니면 안 되게끔 올려버리나 보네. 오케이 모레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볼게.”
***
“일단 연봉 5천에 성과급을 더 주는 걸로 계약을 합시다. 그리고 제일 궁금해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면접을 보게 되니, 공적인 자리라는 생각에 서로 말을 높였다.
“이 실장님이 맡을 일은 관공서 영업일입니다.”
뒤에 놔두었던 해운대 라면을 꺼내어 보여줬고, 해운대 구청에 36만 개를 납품하며 구청장과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역 향토 라면을 생산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향토 라면을 그 지자체에 파는 겁니다. 그 영업을 이 실장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아, 저도 이 해운대 라면을 먹어 본 적이 있는 거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일단, 이 관공서 영업은 제약영업과는 완전히 다를 겁니다. 한번 계약이 되면 1년 내내 납품이 되고 특별한 경쟁자도 없을 겁니다. 이미 지역 라면 관련 상표권을 우리가 다 등록을 했거든요.”
임건호의 이야기를 들은 이종민은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등학교 동창인 동규가 영업 일자릴 소개해 주겠다고 했을 때 무슨 영업인지 말해주지 않아 의심을 했었다.
속칭 네트워크 다단계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상품을 관공서에 영업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놓았다.
더구나, 자신도 마트에서 몇 번 보았던 라면을 이 회사에서 생산해서 납품했다는 것이 신뢰를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업의 꽃이라는 기술영업이나 브랜드 영업 중에서 굳이 따지자면 브랜드 영업에 속하는 영업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럼 언제부터 출근을 해야 합니까?”
“지금 하는 일을 인수인계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있어야 할 테니. 두 달 후 내년 1월부터 합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10년 가까이 일했으니 한 달 정도는 리플레쉬 해야 하는 시간도 있어야지 않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1월부터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종민 실장이 합류하자 그제야 명함을 다 같이 팠다.
이종민 실장과 김민욱 대리, 김이서 계장으로 해서 명함을 팠고, 나도 직급에 실장으로 해서 명함을 만들었다.
이후 이서와 민욱이와 함께 거의 매일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시중에 파는 모든 라면을 다 사서 먹어봤고, 짜장과 비빔면도 매일 먹으며 맛과 냄새, 조리법에 대해서 다들 전문가가 될 수 있게 공부를 했다.
물론, 골프장에서 떠올렸던 해운대 음료, 해운대 에너지, 해운대 한잔, 해운대 밤바다 같은 음료수 상표를 변리사를 통해 등록시켰고, 음료 생산과 술 제조유통에 대한 것도 따로 공부를 했다.
그렇게 12월 중순이 되어 산청의 공장이 지어졌고, 공장설비를 테스트해보기 위한 샘플 생산을 하기로 했다.
“이 짜장 건(乾) 스프는 원래 연구소에서 가져온 레시피인데, 우리 최 쉐프는 별로라고 하더라고.”
새 공장의 라면 연구소에 우리 직원은 물론이고 도협이와 다른 쉐프들도 모였는데, 다들 입맛이 다른 만큼 짜장 스프 하나에도 의견이 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맛은 비슷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고급 짜장면은 춘장 팩이 들어가 있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