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인수인계. (1)
민욱이에게도 이직을 확답받자 기본적인 팀은 구성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전에 확인해 볼 것이 있어 정진이에게 들렸다.
“야, 너 목소리는 왜 그래? 감기 걸렸어?”
“수술 받았다. 수술 받고 나니 목소리가 변했어.”
“무슨 수술? 아! 코골이 수술 받은 거야? 비 수술 무슨 치료가 있다고 하던데, 수술할 정도였으면 엄청 심하긴 했나 보네. 진짜 서울에서 같은 방에 자기 힘들었어.”
“잠을 잘 때 입천장이 폐쇄되면서 코를 골고, 수면 무호흡이 왔을 거란다. 그래서 깊은 잠을 자지 못했을 거라고 알려주더라. 그래서 그거 열어주는 수술을 했어.”
“그럼 이제 코는 안 고는 거냐?”
“그래. 잠도 이제 진짜 개 꿀잠을 자는 것 같아. 이때까지 내가 잤던 건 그냥 대충 살기 위해 잔 거였어. 인생 손해 봤다. 진짜.”
“그럼, 지금은 자고 나면 개운하냐?”
“개운한 정도가 아냐. 난 스트레스 때문에 깊은 잠을 못 자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깊은 잠을 못 잤던 거야. 덕분에 진짜 잠을 자고 나니깐 욕심이 생기더라.”
“무슨 욕심?”
“이제 마지막으로 사시 한 번만 더 보겠다는 욕심.”
“사법고시 다시 하겠다고?”
“그래. 의사가 이거 때문에 잠을 푹 못 잤을 거라고 집중력이나 그런 게 수면 부족 때문이었을 거라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깐 고시 공부할 때 이상하게 피곤하고 해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했는데, 이거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해 보려고.”
“그럴 수 있겠네.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수험 준비가 힘들었겠지.”
“그리고, 사시도 이제 없어진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덤벼 봐야겠다.”
“그럼 협회 쪽 일은 그만두는 거야?”
“그래야지.”
“그럼 김이서 인적 사항 좀 보자 네가 그만두면 못 보잖아.”
“김이서 인적 사항? 왜?”
“내가 새로 회사 만들면서 비서로 데리고 가려고. 애가 일을 야무딱지게 잘하더라고. 근데 과거가 있는 애다 보니깐, 부모님은 제대로 계시고 한지 그런 게 궁금해서.”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잠시만.”
정진이는 컴퓨터로 파일을 찾아서 출력해 줬는데, 일단 양친은 모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다만, 부모님이 10여 년 전에 이혼 후 외할머니 밑에서 삼 형제가 살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소년원에 간 미성년자 약취는 가정형편 비슷한 애들 모아서 앵벌이를 해서 잡힌 거야.”
“앵벌이? 지하철 계단이나 지하철에서 코팅 종이 나눠주고 구걸하는 그거?”
“그래. 어린 애들 앵벌시켜서 한 건데, 가출한 애들 패밀리 비슷하게 만들어서 돈을 모으고 하다가 잡힌 거야.”
“뭐 그럼, 먹고살 만한 돈만 제대로 주면 되는 애네. 사실 범법자이고 해서 나중에 내 돈 노리고 작업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사실 좀 했거든.”
“니 영화 많이 봤네. 진짜 인생 막장으로 사는 애들은 협회에서 지원은 하긴 하지만, 취업 자리까지 봐주진 않아. 진짜 갱생이 될만한 애들만 너나 다른 회사에 취업을 부탁하는 거야. 아예 갱생 안 될 거 같은 애들은 안 보냈어.”
“그럼 오케이! 그리고 이거는 사시 칠 때까지 쓰라고 주는 거다. 미래의 변호사 수임비야.”
핸드폰으로 정진이의 계좌로 천만 원을 넣어줬다.
“야 수임료 받은 거 아직 그대로 다 있어.”
“알지만, 미래의 수임비야. 우리 회사 전담 법무 변호사 해야지.”
“새끼 싸게 먹으려고 미리 주는 거네. 알았으. 받아주지. 기대해라. 개 꿀잠 자고 나니깐 컨디션이 다르다.
진짜.”
“그래 기대해본다.”
나름 좋은 일이 생긴 정진이를 보곤 광안대교를 타고 다시 사하구의 동규에게도 갔다.
김민욱과 김이서로 팀은 대충 맞추어졌지만, 이제 2년 차 사원인 김민욱이 혼자서 일을 찾아내고 해주기에는 그 한계가 있었다.
노련하게 영업에서 제대로 치고 나갈 줄 사람이 필요했다.
대리급인 김승재가 왔으면 딱 맞았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예전에 동규가 명함을 줬던 제약 영업한다는 이종민이란 사람이었다.
동규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였으니 동규에게 그 평을 듣고 싶었다.
“종민이가 관공서 영업을 할 수 있는 애냐고?”
“그래. 새로 회사를 차리는데, 주로 하는 업무가 관공서 납품이 될 거거든.”
“뭐, 깔끔하게 입고 다니고, 어휘도 나름 괜찮은 친구야. 관공서도 괜찮을 거야.”
“그럼, 그 친구랑 자리 한번 마련해줘라. 한번 만나보고 이야기해 보게.”
“오케이 골프나 한번 치러 가지 뭐. 그건 그렇고, 라면 판 돈이 얼마기에 연봉 5천 이상 되는 애를 스카우트하려고 하냐?”
“쪼끔 된다. 일단 그 친구가 같이 일하게 되면 그때 자세하게 이야기해 줄게.”
“알았어. 정진이는 고시 공부 다시 한다고 하고, 너는 회사 차린다고 하고. 뭔가 한자리에 앉아 있는 건 나밖에 없는 거 같냐?”
“네가 균형 잡고 있어 줘야 되는 거지. 우리들의 등대가 되어다오. 길 잃고 헤맬 때 빛 보고 찾아오게. 그래서 의사샘에게 비싼 밥이라도 얻어먹지.”
“웃기고 있네. 일단 라운딩 잡으면 그땐 네가 피랑 다 내라.”
“콜! 그럼 간다!”
***
“에잇! 진짜 더러워서 비싼 차 사야겠다.”
노태 호텔의 뷔페가 아주 마음에 들이었기에 어머니는 물론이고, 이모, 외삼촌 내외해서 단체 룸을 예약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호텔에 왔는데, 역시나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로비에 어머니와 동생 내외를 내려주고 지하에 주차를 하는데, 스포티지를 민욱이에게 주기로 한 만큼 외제차를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해운대 라면을 팔고, 돈을 많이 번 만큼 어느 정도는 친인척들에게 돈을 좀 벌었다는 것을 알리고, 축하를 받고 해야 서로가 편할 터였다.
로또에 당첨된 것은 뭔가 공돈이 생긴 것 같아 사람들도 그 돈을 쉽게 생각하지만, 사업을 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면, 같은 돈이라도 대단하다고 해주는 것이 사람의 심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겸사겸사해서 친인척들에게 매제를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었다.
[스타 셰프 최도협 축하 파티!] 라고 쓰인 현수막 양쪽에는 최도협의 얼굴도 나와 있었다.
“아유, 텔레비전에서 본 거보다 훨씬 더 낫다야!”
“그러게. 휠 칠하게 잘 생겼네.”
건희가 도협이를 데리고, 이모 내외와 외삼촌 내외를 소개했고, 사촌 동생들도 다 참석을 해서는 도협이와 사진찍기 바빴다.
“이야, 돈 잘 버는 건호 덕분에 비싼 호텔 뷔페도 다 와보네. 일반 뷔페랑 확실히 다르네.”
“자연농원 고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 주는 스테이크가 더 부드럽다이.”
“아빠 초밥도 달라요! 진짜 참치를 해체해서 줘요! 건호 오빠 잘 먹을게요!”
이제 갓 20살이 된 사촌 동생들도 있었기에 시끌벅적 한 것이 확실히 잔칫날 같았다.
“그래도, 방송처럼 부엌 재료로 요리를 직접 해주는 게 더 맛있을끼라. 다음에는 우리 집에 초대해서 함 해달라카자.”
큰외삼촌은 도협이가 나오는 방송의 애청자인지 셰프들이 무슨 요리를 했는지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건희야 그럼, 식은 언제 올리는데?”
“지금 일이 너무 바빠서 내년 초에 하려고요.”
“하기사,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요리사들은 어디를 틀어도 다 나오긴 하드라.”
“그럼 그때는 해운대 호텔에서 하는 거제?”
“네. 그때는 제가 일하고 있는 호텔이라 요리쇼를 해드리겠습니다!”
“오! 그거 때문에 빨리 결혼하자고 내가 닦달해야겠다. 아하하하.”
확실히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거 보다, 조리된 음식을 먹고,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기에 뷔페가 편했다.
나도 맛있는 것만 골라 먹고 있는데, 동생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웬 여자를 소개해 줬다.
“오빠. 우리 회사 실장님이야. 도협 씨 스케줄 관리도 해주실 분. 정은애 실장님.”
“아, 잘 부탁드립니다.”
정은애 실장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뿔테 안경을 쓴 오피스 우먼의 느낌이었는데, 일자로 자른 뱅헤어가 예사롭지 않았다.
“배우들 많이 관리하던 웡스터 엔터에서 계셨던 분을 모셔왔어.”
“아, 미녀 배우들이 많다는 거기 출신이세요?”
“네. 저도 독립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뉴비치 엔터에서 함께 하자고 해서 합류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 실장과 이야기를 했는데, 건희에게 왜 이름이 ‘뉴비치 엔터’ 냐고 물었다.
“새 해변 엔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 미친년 엔터 같잖냐.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어.”
“그걸 노린 거야. 이름부터 딱 눈에 띄어야지.”
“어휴 모르겠다. 일단 뉴비치로 알아두마.”
시간이 한밤중이 되자 가족 모임도 끝이 났는데, 내년 건희와 도협이의 결혼식 때나 다시 다 모일 수 있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다, 막내 이모의 주도로 12월에 제주도로 놀러 가는 계획을 잡았고, 그 이야기를 하자며 다들 집에 안 가고 호텔 방을 잡아서 밤새도록 이야길 하고 놀았다.
물론, 나와 스타 요리사가 된 최도협이 대부분의 돈을 찬조했다.
***
“자 주기로 한 차 열쇠.”
스포티지는 전체적인 정비를 한 번 받아서 김민욱에게 넘겨줬다.
“이건 네 이름으로 보험 들라고 주는 거. 회사가 설립되면 회사 보험으로 전환을 할 건데, 그전에는 개인 명의로 타야 하니깐 이걸로 종합보험 들고 타고 다녀.”
“감사합니다.”
“나도 이 차 타고 일이 잘 풀렸으니깐, 너도 모든 일이 잘될 거다.”
김민욱은 단순하게 중고차를 받아서 기쁜 것보다, 잘 된 사람이 타던 차를 받았다는 그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서울팀에 인수인계를 해주기 위해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는데, 부산에서 좀 있었다고 차 없이 서울을 다니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다.
“임 차장님. 본사에는 우리 회사가 해운대 라면을 인수했다는 것과 새로운 팀이 꾸려진다는 것만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 라면을 판 사람이 차장님인 건 모릅니다.”
김승재 대리는 며칠 전에 서울로 왔다고, 벌써 주워들은 게 많은 것 같았다.
“저랑 김한철 차장님 그리고, 1팀의 부장이 될 박정민 차장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편하지. 그런데 팀이 2개로 나눠지는 거야?”
“네. 1팀은 외식 사업부에서 온 박정민 부장이 맡고, 2팀은 김한철 부장님이 맡는다고 합니다. 1팀은 마케팅, 홍보 같은 일을 맡고, 우리 2팀은 생산 유통 쪽을 맡는다고 합니다.”
“나름의 업무분장을 하면서 아예 분리를 해버렸구나.”
서울에 올라왔다고, 박정민 차장과 김한철 차장에게 인사를 했다.
같은 직급이라도 선배들이었기에 깍듯하게 인사했다.
김한철 차장에게 박정민 차장 이야기를 들으니, 브랜드 마케팅 쪽으로 프리미엄 샤브샤브 프랜차이즈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이라고 했다.
외식 사업부에서 이 라면 사업팀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알 것 같은 인선이었다.
“사실, 이 라면회사 판매자가 임건호 차장이라는 소리를 상무님께 듣고 충격이 컸습니다. 어떻게 이런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리고 방송국 끈도 정말 궁금합니다. 그것도 좀 인수인계를 해줬으면 합니다.”
“아, 방송국 끈요?”
박정민 차장은 ‘넌 혼자 사니?’에 해운대 라면이 나간 것이 인맥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보고 있었다.
“더구나, 매제도 종편 유명 프로그램에 꽂아 넣었으니 진짜 브랜딩 쪽이나 방송 쪽 전공한 사람들보다 더 인맥이 좋은 거 같습니다. 학교 쪽 학연인가요?”
박정민 차장이 뭔가 제대로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제에게 이득을 줄 꼼수가 하나 생각났다.
“제가 가진 게 아니라, 동생과 같이 일을 하는 실장님이 발이 넓으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실장님이 매제 초상권 문제로 한번 만났으면 하더라고요.”
“아, 맞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제 최도협 셰프 CF건으로 만나야 하는데, 한번 날을 잡아야겠습니다.”
“그럼,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했는데, 금요일 날 바로 보자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