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낚시 성공?
“김심현 부장님? 일전에 통화했던 햇살 식품의 문성철입니다.”
문성철의 전화를 받은 거산 법무팀의 김심현 부장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인수를 위한 실사를 위해 문성철 대표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무조건 기다려 달라고만 이야기하며 실사는 물론이고 연락도 피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먼저 전화를 줬으니 뭔가 일이 있는 듯싶었다.
“네 대표님. 2개월 만이네요.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전에 이야기한 그 실사 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위해 다음 중으로 시간이 나시는지요?”
“아, 그 일이라면 없는 시간이라도 내어야지요. 그럼, 어디 보자 저희가 일정이 다음 주 금요일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금요일요?”
김심현은 화요일에 걸려온 전화였기에 다음 주 월요일도 되었으나, 일부러 금요일로 이야기를 했다.
“음. 금요일 오전 중으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금요일 오전에 뵙겠습니다.”
***
김심현은 공장 인수를 위한 실사 준비를 하며, 이재영 상무에게 보고를 했고, 미리 세 명의 팀원들과 하루 전날 칠곡으로 내려가 1박 후 금요일 오전에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그동안 제 의도와는 달리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습니다.”
이미 칠곡에 한번 와 봤던 직원의 말처럼 문성철 대표는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멋쟁이 신사였다.
“아니, 대표님 회사인데, 다른 사람의 지시라도 받았습니까?”
“하하하. 그게 다 알면서 그럽니까? 임건호 차장이 워낙에 연락하지 말고 기다리게 하라고 해서 말입니다. 이제는 김독수 전무님께 서류를 올렸으니 공장 실사를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드렸던 겁니다.”
문성철은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그렇게 시간을 끌었다며 미안해했고,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공장을 실사팀에게 안내해 주었다.
김심현 부장은 임건호가 김독수 전무에게 서류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외파 쪽도 같이 뭔가가 굴러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전 시간 3시간 동안 연구소와 라인을 실사했고, 방금 만들어진 라면을 끓여 먹으며 점심을 같이 먹었다.
회계장부와 인사서류를 빼고는 대부분의 서류를 다 보여주었다.
“회계 부분은 가계약이 되면 그때 오픈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요. 오늘 실사 부분은 저희도 상부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감사했습니다.”
김심현 부장을 태운 차가 햇살 식품의 정문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햇살 식품의 직원들이 삼삼오오 뭔가를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뭔가 느낌이 싸한 김심현은 공장의 맞은편에 차를 대게 해서 햇살 식품의 직원들이 뭘 하는지를 관찰했다.
“저거 행사할 때 까는 레드카펫 아닙니까?”
운전석에 있는 이형준 과장은 레드카펫이 회사 정문까지 펼쳐지고, 간이 무대와 포토월 같은 게 세워지자, 공장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 건가 싶었다.
“이 과장. 일반 공장에서 저런 레드카펫이나 무대, 포토월을 가지고 있겠어?”
“아마도 없겠죠? 우리 거산도 없으니. 그런데, 누가 오는 걸까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누가 오는지 보고 가자고.”
마치 잠복하는 형사들처럼 차에서 1시간여를 기다리자 중형 세단이 도착했는데, 잘 차려입은 문성철 대표가 뛰어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척 보기에도 샐러리맨 같아 보이는 세 명이 내렸는데, 문성철 대표와 잘 아는지 서로 악수하고 안아보며 어깨를 펴고 레드카펫을 걸었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었고 다들 밝게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일할 금요일 오후 시간에 샐러리맨 세 명이 왔다? 레드카펫에 포토월에서 사진까지 찍었다?”
“공적 업무상 방문이겠지요.”
“그렇겠지. 번호판으로 조회를 해서 딱 누구인지 나오면 좋은데. 저것들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 없어?”
“우리도 다시 들어가 보죠.”
막무가내로 다시 들어가 보자는 이 과장의 말에 머리를 굴렸다.
“박민상 과장이 수첩을 놔두고 온 것 같다고, 정문 쪽 사람들을 한번 떠봐. 그때 내가 저 사람들 타오고 차에서 연락처를 한번 확인해 볼 테니까.”
김심현 부장의 작전이 그럴듯했기에 다시 차를 몰아 햇살 식품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어엇? 어떻게 다시 오신 건가요?”
레드카펫과 간이 무대를 치우고 있던 직원들이 당황할 때 수첩을 두고 온 것 같다고 박민상 과장이 내려서 직원들을 앞세워 건물로 들어갔다.
이형준 과장과 김심현 부장은 차를 주차하며 그들이 타고 온 차의 연락처를 확보했다.
“엇? 공두기?”
운전석 연락처에 명함은 없었지만, 차의 유리창에는 회사 출입증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바로, 라면 업계 2위인 공두기 회사의 캐릭터 스티커였다.
***
“써글, 문성철이가 우리에게 연락한 게 우릴 털어내기 위한 거였어.”
김심현 부장은 햇살 식품이 거산뿐만 아니라, 공두기에게도 매각을 타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공두기와 조건 맞추기 전에 거산을 털어내기 위해 우릴 부른 걸까요?”
“그렇다고 봐야지. 임건호가 김독수에게 서류 올렸다는 거도 공두기에서 뭔가 언질이 있었으니 최종 조건을 보낸 거겠지.”
“그럼, 우리 조건이 맞지 않으면 공두기가 낚아채는 겁니까? 이거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상무님께 보고하고 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가능성을 보고하는 거까지야. 그 차량에 있던 번호로 박 과장이 한번 전화 넣어서 직급이랑 누구인지 확인해봐.”
칠곡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실사팀은 온갖 가능성을 다 검토했고, 그 내용을 이재영 상무에게 보고했다.
“공두기가 인수전에 붙었다고?”
실사팀이 칠곡에 간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 실사 내용 대신 공두기가 햇살 식품 인수에 붙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거 확실한 거야?”
“네. 그쪽 사람들이 타고 온 차를 확인했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뻥카 쳤을 가능성은?”
“방문 날짜를 저희가 잡았었습니다. 그 날짜에 맞춰서 공두기 쪽 과장 이상급을 불러서 뻥카를 치기는 힘들 겁니다. 그리고, 김독수 전무에게 가치평가서를 냈다고 들었습니다.”
“제길.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네. 이 새끼들이 삼 개월 가량 시간 끈 게 공두기 쪽에 오퍼 넣고, 비교했던 거네. 양아치 새끼들.”
이재영 상무는 짜증이 났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거산이었다.
내부자를 통해 받은 계약서를 검토하다 김독수 전무에게 연락을 넣었고, 만날 약속을 잡았다.
***
“공두기가 붙었다고요?”
김독수 전무는 이재영 상무의 이야길 듣고 의아했다.
“판매 관리 계약이 내년까지였을 텐데.”
“이게 그 계약서인 건 아시지요?”
이재영 상무는 내부 서류를 다 들고 있었기에 그 서류를 김전무에게 건네줬다.
“계약서에는 중간에 계약을 파기해도 서로 경제적으로 책임을 지는 부분이 없습니다.”
“써글.”
계약서에는 일방적인 계약 파기에 대한 손해배상 부분이 아예 없었다.
“이걸 노리고 계약서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런 부분을 뺐는지는 몰라도 공두기가 인수하게 되면 중간에 바로 로고 바꿔 달수 있다는 겁니다. 임건호 차장이 가치평가서를 올렸다고 하던데 얼마 달라고 했습니까?”
“상표권과 공장 턴 키로 700억. 350억씩 나누기로 했다고 하더군.”
“100억을 올렸네요. 참네. 100억이 뉘 집 아들 이름도 아니고.”
김독수 전무는 물론이고 이재영 상무도 자신이 생각하고 협의 보려는 가격보다 훨씬 더 올라가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김독수 전무는 가치평가서라고 임건호가 준 매출 상황 및 내년 판매 예측 서류를 이재영 상무에게 주었다.
“1년에 4천만 개 판매라. 전체 라면 시장의 1%네요. 그리고, 생산 여력만 받쳐 준다면 1억 개 판매도 가능하다라.”
평가서의 수치대로 된다면 1년에 찍는 매출이 350억이었다.
생산까지 다 하기에 순이익은 100억에서 150억 내외.
700억을 주고 인수하기에 비싼 금액은 아니었다.
더구나, 제대로 라면 시장에 진입하는 수업비용으로 친다면, 오히려 저렴한 축에 들지도 몰랐다.
“1년 이상의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추진 방향을 바꾸시겠습니까?”
“그쪽 파벌에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아끼는 것이 좋겠지. 괜히 더 줄이려다 닭 쫓던 개가 되는 거보다는 좋을 테지.”
700억이란 금액에 대한 것은 두 사람이 동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 날리기보다는 빠른 인수를 통한 시간 절약으로 가야 했다.
다만, 이 공장과 라면 제품에 대한 핸들링을 어느 파벌이 가져가는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햇살 식품 공장 실사 자료입니다. 경북 칠곡에 있고, 식품 생산 공장이니 그쪽에서 공장 가져가시지요.”
겉으로 보기 좋은 상표권과 앞으로의 운영을 후계자파에서 가져가겠다는 소리였다.
김독수 전무도 가치평가서를 봤었을 때 가장 큰 수익을 얻는 곳이 햇살 식품 공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라면 제품에 대한 권리를 후계자 파에 주고, 멋은 없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산 공장을 가지는 것이 이득이긴 했다.
다만, 앞으로의 생산 일정이나 그런 부분은 후계자 파벌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발주를 하고 생산 일정을 정해주는 ‘갑’의 위치와 같은 지시를 후계자파가 내리면 공장을 맡은 외파에서는 ‘을’처럼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산 공장에서 몽니를 부린다고 해도 관계의 높낮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었다.
김독수 전무는 잠시 고민했지만, 실리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죠. 앞으로 생산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두 사람, 아니 두 파벌이 처음으로 한 개의 업종에서 일을 같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진짜였네. 진짜였어. 허허 참.”
내 차를 타고 같이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정진이는 몇 번이나 ‘진짜였네. 진짜였어. 허허 참’을 되뇌었다.
며칠 전 김독수 전무에게 연락을 받고는 바로 정진이에게 라면의 상표권을 넘기기로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 얼마에 넘겼는데? 내가 아는 애들도 다 해운대 라면을 다 알더라.”
“350억에.”
“그래? 뭐어엇!?”
350억이란 소리를 듣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길 하다 350억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고는 비명을 지르듯이 소릴 질렀다.
“인수건 검토할 변호사 대동해서 다음 주에 본사로 올라오라고 하더라. 네가 같이 가자.”
“햐 이 새끼가 구라도 이제는 억대로 치네. 3억 5천이나 35억이지? 아니지. 35억만해도 엄청난 거지.”
“아냐 인마, 진짜야.”
“그러면, 내가 어떻게 못 해. 이건 제대로 된 진짜 변호사 대동해야 해.”
“학과 선배 중에 너랑 친한 변호사 좀 불러줘라. 아마도, 일주일 정도는 서로 시루기해야 할 거야.”
“알았어. 돈 좀 작게 받을 선배로 알아보마. 근데, 넌 어떻게 되는 거냐?”
“그렇지 않아도 그거 때문에 걱정이다. 사표를 써야 할지. 아니면 얼굴에 철판 깔고 계속 다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계약하고 나서 생각해. 괜히 도장 안 찍었는데, 먼저 사표 쓰고 하지 말고.”
“그래야겠지?”
사실 이미 확정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막판에 파투 날 확률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사표를 쓰지 않고, 정진이와 서울로 가고 있었다.
“이야, 근데 진짜 350억이네. 허허 참.”
“허허 참 고마해라고. 몇 번째냐.”
“허허 참. 내 친구가 350억 부자가 되다니. 허허 참.”
“변호사 비용 1억 줄 테니깐 닥쳐.”
“저놈이 349억 부자라. 허허 참.”
“아직 도장 안 찍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