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38화 (38/203)

038. 내부자. (1)

“이거 소비자들에게 반응이 꽤 좋은 거야?”

“네. 인터넷도 그렇고, 방송에 소개될 만큼 꽤 핫합니다.”

“총 판매 개수나 매출은 어떤데?”

“그게 좀 이상합니다. 판매 개수가 본사 유통망을 통한 것은 200만 개가 넘었습니다. 헌데...”

“헌데?”

“매출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매출 확인이 안 된다고? 그럼, 판매 개수 역산해서 알아보면 되잖아?”

“그게 원가 계산도 안 되어 있습니다. 분명 외파에서 뭔가를 막아두고 숨기고 있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원가를 숨긴다고? 그러고 보니, 상품 판매관리부에서 이걸 내놓은 거지? 흐음.”

그제야, 이재영 상무는 김독수 전무가 매출도 형편없고 비전 없어 보이던 이창모 부장을 자기 파벌로 데리고 간 것이 떠올렸다.

“이거 당했네. 놈이 기획했는지, 아니면 이창모가 기획했던 것을 미리 알아채고 끌어들였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독사에게 당했어.”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모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모아. 이 라면이 잘 되면 거산의 주력 사업의 순서가 달라질 수도 있는 건이야.”

그제야 현영인 부장도 심각성을 깨달았다.

단순히 외파에서 뭔가 실수한 것을 잡아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실수의 단계가 아닌듯했다.

의류를 주력으로 하는 거산그룹의 사업 방향 자체를 뒤흔들어 버릴 수 있는 외파의 비밀 병기를 잡아챈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외파에 사람 하나 심어. 라면을 만들어서 티비에 나오고 난 이후로나 알게 되면 이게 무슨 꼴이야. 미리 작업하기 전에 외파 놈들의 의도를 알아야지.”

“네. 정보를 모으고 외파에 사람을 심는 데 힘쓰겠습니다.”

현영인 부장은 이재영 상무의 방을 나오며 예전 함께 했던 술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비즈니스 빌딩 내부 문건을 우리 쪽으로 보내주었던 이가 아직도 거기서 근무 중인지 확인했다.

“식품 사업팀 영업 3과 과장이라고 했었지...”

***

“야야 상품 판매관리부 사람들 다 야근하는데.”

“헐. 늘 칼퇴하더니 웬일?”

“한 달은 되었을걸. 그 해운대 라면이 대박이 나서 이제는 일이 많아졌다고 하던데.”

“와 진짜 한 달 사이에 그렇게 바뀌는 게 신기하다.”

계단으로 퇴근하는 여직원들의 말처럼 늘 퇴근 시간이 되면 칼퇴근을 하던 상품 판매관리부의 불이 매일 밤늦게까지 켜져 있었다.

덕분에 묫자리라고 불리던 놀림 가득한 부서의 평판도 어느 정도는 사라지게 되었다.

“전국 유통 체인으로 납품되며 4주 동안 총 320만 개가 출하되었습니다.”

아직, 7월이 되어 바닷가에서 본격적으로 팔리지도 않았는데, 이미 추가 생산분까지도 다 출고가 된 것이었다.

햇살 식품도 쉬는 날 없이 계속 생산을 하고 있었기에 창고에 쌓일 틈 없이 출고되고 있었다.

진짜 천만 개 이상 판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미친.

장사가 잘되길 빌었지만, 이렇게 잘 나가게 될 줄은 진짜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덕분에 당첨금이 들어있던 통장의 잔고도 간당간당해졌다.

계속 추가 생산이 되며 20여억 원을 햇살 식품에 다 넣을 수밖에 없었다.

판매된 라면의 수익금이 들어오는 데는 한 달 가량 걸렸기에 첫 주에 판매된 것이 수금되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이런 간당간당한 즐거움을 건호가 느끼는 반면 아쉬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창모 부장이었다.

분명 320만 개를 출하시켰으니 그 유통관리비로 개당 30원이 거산의 몫으로 떨어질 터였다.

9600만 원.

단 4주, 한 달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이 정도였기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직접 이 라면을 만들고, 판매를 했다면 거래 금액이 아닌 매출로 잡을 수 있는 상품이었을 터였다.

그저 유통관리비만을 얻고 있었으니 그게 너무 아쉬웠다.

물론, 그렇게 거산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이렇게 잘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저 한 달의 수익이 좋은 만큼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2년간의 계약 이후도 걱정이 되었다.

처음 납품받아 판매할 때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2년 후 지명도를 가진 해운대 라면이 거산을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운대 라면이라는 상표권이 문제인데, 이걸 어떻게 푼다.’

아쉬운 즐거움을 느끼면서 이창모 부장은 걱정도 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니깐 권 과장 말로는 이게 불법성이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지요?”

이재영 상무의 명을 받고 부산에 내려온 현영인 부장은 남포동 일식집 작은 방에서 영업 3과 권영일 과장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이야기를 들을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네. 임건호 차장의 매제가 라면 포장지에 들어가 있는 그 요리사입니다. 그 매제가 차린 회사에서 라면을 납품받아 유통관리비만 받고 팔아주고 있는 구조입니다.”

“흠. 친인척을 동원해서 회사에 납품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부당 이익을 챙겼으면 비리라고 볼 수 있지요.”

현영인 부장은 이게 전형적인 친인척 납품 비리라고 생각했다.

납품의 대가로 뭉칫돈이 오고 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걸 경찰에 신고하거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회사의 비리이기는 하지만, 이게 밖에 알려지면, 결국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영인 부장은 후계자 파벌인 이재영 상무를 따르며 외파와 척(隻)을 지고는 있었지만, 거산이란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계열의 사업을 내부자 비리 거래가 있다는 이유로 외부에 알려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이 건으로 외파를 몰아세울 수 있고, 후계자파가 득세하게 만들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우리 권영일 과장님은 입사했을 때, 의류 관련 부서에서 일하길 희망하셨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의류 쪽에서 일하시는 걸 희망하십니까?”

권영일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부장님. 저는 거산 랜드하면 의류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인에서 일해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거산하면 섬유 사업이지요. 하지만, 상무님이 바로 식품 사업부의 사람을 본사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 그렇지요.”

“해서, 상무님은 외파 내에서 조직을 만들어 주시길 원하십니다.”

“조, 조직을요?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까?”

“네. 그래야 훗날 이런 건을 모아서 김독수 전무를 몰아낼 때 외파 안에서도 문제가 많았다고 이야길 할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처럼 치명적인 건수를 잡아냈으니 그 시간도 머지않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영업 3과 전체가 이재영 상무님께 충성을 하도록 만들겠습니다.”

“하하하 권 과장님의 말을 들으니 든든합니다. 한잔 받으시지요. 그리고, 해운대 라면의 단가나 매출 관련 서류를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건 저도 어떻게 구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부장들끼리 하는 말을 주워들으니 라면 매출을 잡지 못하고, 거래 대금으로 처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상은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매출이 아니라 거래 대금이라고요?”

현영인 부장은 여기서 또 뭔가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네. 분명 매출로 잡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서류가 필요하겠군요.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런 서류는 판매관리부의 계약직 여직원들을 구워삶으시면 될 겁니다. 다들 재계약을 해 주겠다고 하면 서류는 물론이고 치마를 벗으라고 해도 벗을 겁니다.”

“하하하. 권 과장님의 조언을 받아들이죠.”

***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한 건가요? 퇴근 후에 본사에서 감찰이 왔다고 부르는 건 정말 기분 나쁘네요.”

이신애는 가뜩이나 근래 일이 많아 힘들었는데, 본사 감찰부에서 보자고 하니 기분도 나빴고, 살짝 겁도 났다.

하지만, 두 달 후면 계약이 끝이 나는 판이니 애써 겁먹은 표정을 지웠다.

“하하하. 워라벨을 중시하시는 분인데, 그걸 지켜드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현영인 부장의 모습에 이신애는 마음의 경계를 약간이나마 풀었다.

“그런데, 오늘 이신애 씨를 불러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거산과의 근로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던데, 혹시 재계약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재계약요?”

이신애는 생각지도 않은 재계약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부산 지사의 계약직 직원들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재계약되거나 했던 케이스가 없는 걸로 압니다.”

“네. 그렇지요. 부산 지사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서울 본사에서는 계약직 직원과 재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고, 정직원 전환도 꽤 있습니다.”

“그럼...”

이신애는 ‘그럼, 본사로 올려주겠다는 말인가요?’ 하는 말을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연애도 했고, 결혼을 위해 선을 보며 깨달은 게 있었다.

공짜 저녁 식사는 없다는 것.

자신에게 재계약이나 정직원의 조건을 걸며 본사로 끌어 올려주겠다고 하는 말을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줘야 할 터였다.

“저에게 뭘 원하시는 건가요? 어떤 것을 해줘야 재계약이나 정직원이 될 수 있는 건가요?”

“몇 마디 말로 거기까지 생각하시니 확실히 그냥 계약종료 후에 퇴사시키기에는 아까운 인재이십니다.”

이신애는 자신은 일을 하기 싫을 뿐 머리는 나쁘지 않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런, 자신을 알아준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상품 판매관리부에서 임건호 차장 직속으로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임건호 차장의 비리를 찾아야 하는 건가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길 하죠. 해운대 라면 때문입니다. 이 건에 대해서 판매 금액이 매출로 잡히지 않고, 거래 금액으로 해서 상계되듯이 사라지고, 우리 거산에서는 유통관리비만 받는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네 맞아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신애 씨가 좀 알아봐 줬으면 합니다. 물론, 서류가 있어야 합니다. 타부서에서는 다 비밀로 해뒀는지 단가도 제대로 알기 어렵더군요.”

현영인 부장의 말을 듣고, 이신애는 고민을 했다.

왜 매출이 아니라 거래 금액으로 회계처리가 되는지 알고 있었고, 단가나 마진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회식에서 이창모 부장이 파벌을 갈아타며 예산이 배정되었고, 후계자파에서 외파로 갈아탔다고 했기에 사내 정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마도, 현영인이란 이 사람은 그 후계자 파일 것 같았다.

이신애는 값을 따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몸값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제가 그걸 다 알아봐 드리면 제가 확실히 정직원이 될 수 있나요? 그걸 확답 주시면 제가 서류 사본, 계약서 등등해서 다 챙겨오고 하겠습니다.”

“물론, 본사로 불러 올려드리겠습니다.”

“말로만 한다면 뭘 못하겠어요? 제가 서류를 드리는 만큼 저에게도 서류로 확답을 주세요. 그러면 바로 드릴게요.”

현영인 부장은 어떻게든 말로 구슬려서 서류만 받아 내면 끝내려고 했는데, 이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이재영 상무의 권한으로 이신애의 본사 발령과 정직원 채용을 서류로 보장해주고 원하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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