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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37화 (37/203)

037. 여파.

바쁘게 일주일을 보낸 이창모 부장은 거실 소파에 누워 여유로운 토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 이 라면 아빠 회사에서 나온 거 맞지?”

올해 대학교 신입생이 된 둘째 딸은 싱크대 부엌에서 뭔가를 잔뜩 꺼내더니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다.

“인터넷에 보니깐 이게 술 마신 다음 날 속풀이에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 맞는데, 넌 왜 그걸 가방에 쑤셔 넣고 있냐?”

“동아리 MT 가는데, 참치랑 해서 끓여 먹으려고.”

“아니, 그럼 모은 MT 비로 사야지. 왜 집에 걸 들고 가냐고. 우리도 먹어야지.”

“아 또, 쪼잔하게 이런다. 아빠는 공짜로 들고 왔잖아.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라면값도 없으면 엠티를 가지 말아야지!”

“아 몰라.”

“근데, MT는 어디로 가는데? 엄마한텐 이야기했어? 스키 동아리 애들끼리 가는 거 맞아? 숙소는?”

“엄마한테 이야기했거든. 그리고, 송정 가는 거야. 가까우니깐 걱정 말고. 나 간다.”

후다닥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딸내미를 보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이 부장은 부엌을 살폈다.

라면과 참치, 스팸은 물론이고 외국 나갈 때마다 한 병씩 사 모았던 양주도 두 병이나 없어진 상태이었다.

“아니, 이게 들고 가더라도 조니워커를 들고 가야지 비싼 발렌타인을 왜 들고 가냐고오!!”

이창모 부장은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무자식 상팔자’라는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

“아 머리야. 아 속아...”

이혜지는 친구들과 몰래 들고 온 양주를 맥주에 말아 먹다, 술이 떨어지자 소주를 다시 말아 먹었었다.

섞어 먹어서 그런지 머리도 아프고 속도 쓰리듯이 아팠다.

물론, 몸도 물 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다.

“야야. 누가 라면 좀 끓여봐. 속 뒤집힐 것 같아.”

“못 움직일 것 같아. 죽을 거 같아.”

“어제 혜지가 컵라면도 8개 가져왔지? 정수기 물로 조지자.”

놀러 온 8명 모두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겨우겨우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받았고, 라면 국물을 몇 모금 마시자 다들 살아나기 시작했다.

“와 이 국물 좀 치네. 살 것 같다. 꼬인 것 같았던 속이 다 풀린다.”

“나도. 이걸 먹으니 정신이 돌아오는 거 같아. 어제 너무 많이 마셨어.”

송정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에 여대생들이 주르륵 앉아서는 뜨거운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속풀이가 제대로 되는지 몸이 풀리면서 살 것 같았다.

“송정 바닷가를 보면서 해운대 라면 먹는 게 웃기다. 어떻게 이걸 사 왔어? 송정 라면은 없디?”

“송정이나 해운대나 거기서 거기인데 뭐.”

“하긴 같은 바다지 뭐.”

“이거 바닷가에서 아침에 먹기에 괜찮네.”

속풀이를 하고 있는 이창모 부장의 딸인 이혜지와 친구들뿐만 아니라, 부산 바닷가에 놀러 온 다른 이들도 숙취에 힘들어하는 몸을 해운대 라면으로 살리고 있었다.

라면 이름에서 느껴지는 바닷가의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라면을 선택했고, 그 이름 덕분인지 더 맛이 있는 것 같았다.

“마 부싼에 왔으면 부산에서 생산되는 해운대 라면 묵어야재.”

“그래, 돈 없어서 해운대 숙소 못 잡고 광안리 숙소 잡았으니깐 라면이라도 해운대 묵자.”

해운대에서 놀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송정이나 광안리에서 놀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해운대 라면을 집어 들었는데, 그 이름에서 부산 특유의 향토 라면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광안리에 오면 등킨 도나츠를 사 먹고 바이킹을 좀 타다가, 민락 회센타에서 회를 사선 수변공원에서 노는 것이 부산에서 노는 기본 공식이었다.

그 기본 공식에 아침 해장라면은 ‘해운대 라면’이라는 추가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오늘이 금요일이니깐 ‘넌 혼자 사니?’ 방송하는 거 맞지? 혹시 이번 주도 나올까? 라면이랑 최경민 배우가 실시간 검색어 올랐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까?”

“오빠. 내가 이제까지 방송을 보니깐 2주 분량을 한꺼번에 찍더라고. 그래서, 저번 주에 언급되었던 건 오늘 안 나올 거야. 나오더라도 다음 주일 거야.”

“그럼 3주 차 녹화일이 되어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했던 이야기를 한다는 거네. 그 주연했다는 영화도 오늘 개봉이고?”

“응 맞아. 근데, 보통 화제가 되고, 시청자 반응이 좋으면 4주까지도 나오는데, 반응이 좀 안 좋고 하면 2주 만에 끝나기도 해.”

“실검 오르고 했으니깐, 바로 이번 주에 끝나지는 않겠지?”

사실, 이주 연속 혹은 격주로 해서 우리 라면을 먹어주고 긍정적 반응을 해주길 바란다면 그건 양아치 심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와 아무런 계약도 없는데, 그냥 방송에서 한번 먹어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어떻게든 돈 들이지 않고, 방송에 한 번 더 언급이 되었으면 하는 게 내 심정이었다.

그래서 양아치 짓을 좀 하기로 했다.

최경민 배우의 소속사인 빛남 기획으로 전화를 넣어, 최경민을 담당하는 매니지먼트 책임자를 찾았다.

몇 번의 통화를 거쳐 이재학 실장이라는 사람과 통화가 되었다.

“아, 거산이시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라면을 회사로 보내주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저희가 정말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보내드리고, 더해서 최경민 배우님과의 광고도 한번 생각하고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광고요? 아하하 그렇다면 경민이에게 몇 번 더 먹으라고 해야겠네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도 영광입니다. 해서, 출연료라던지 CF 단가 부분을 알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예산을 잡고 위에 올려야 하는데, 최 배우님의 광고단가를 아예 몰라서요. 그 자료를 좀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유, 보내드려야지요. 광고단가 문의는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그러면 이메일 주소를...”

사실 말은 CF를 검토해 본다고 했지만, 광고를 진행할 예산이나 계획은 있지도 않았다.

그저 양아치처럼 말로만 운을 띄어 보는 것이었다.

매니지먼트 책임자인 이재학 실장은 거산에서 CF 단가를 알아보는 컨텍이 있었다고 최경민에게 말을 할 것이었고, 라면을 보내줬다거나 CF 쪽으로 이야기가 있었다고 ‘넌 혼자 사니?’ 방송에서 언급만 해주면 전화를 건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프로모션 단가에 대한 PPT 파일을 받았는데, 식품 쪽 1년 전속계약이 2억이었다.

영화의 주연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개봉도 안 한 신인배우가 1년 전속에 2억이라고 하니, 왜 사람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동생의 말처럼 이날 방송에서는 몰아 찍은 탓인지 우리 라면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

“임 차장님. 편의점 라면 판매 수치 나왔습니다.”

김승재가 2주 동안의 각 구별 편의점 판매 자료를 가져왔는데, 엑셀에서 지원해주는 도표 그래프만 봐도 광안리가 있는 수영구와 해운대구에서 판매되는 수량이 많았다.

“아직 여름 바캉스 시즌이 아닌데도 대학교 신입생들 OT나 MT로 송정, 광안리에 오는 게 많다 보니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많이 팔리는 거 같습니다.”

“마트에서도 감소세는 없지?”

“네 ‘넌 혼자 사니?’ 방송 이후 나흘 동안 판매된 것과 비교하면 줄어든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꾸준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판매량이면...”

“이미 한번 먹어본 사람이 다시 또 산다는 거겠지?”

“네. 방송을 통해 알게 되어 먹어보았고, 맛이 괜찮으니 다시 재구매를 해서 꾸준히 판매되는 거 같습니다.”

안정적인 판매가 되었다는 건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이었고, 소비자의 선택에서도 다른 라면을 젖히고 선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벼락부자가 되었듯이 인기가 떨어지면서 벼락 거지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런 고민이 사라졌다.

***

“아니, 저번에 스타 하다가 라면 먹었었잖아요? 그게 엄청 화제가 된 거 알고 있어요?”

‘넌 혼자 사니?’ 방송의 원년 멤버이자 진행자인 김한동은 최경민이 퉁퉁 불은 라면을 먹으며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했던 것이 화제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저도 실시간 검색어에 제 이름이랑 라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거 보고 엄청 신기했었습니다.”

“미국의 블라즈드 게임회사에서도 연락이 왔고, 라면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다면서요?”

“아, 게임회사도 연락이 왔었어요? 그건 몰랐네요.”

“그건 영어로 이야기해서 못 알아듣고 전화를 끊었대요.”

시답잖은 김한동의 농담에도 출연진들은 환하게 웃어줬다.

“게임회사는 잘 모르겠는데, 라면 회사에서는 라면도 보내주시고, 진짜 연락이 왔었습니다.”

“오! 거기서 연락만 오면 안 되죠. 뭔가 있었어요? 이거?”

김한동이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말아 쥐며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하하하. 네. 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확답을 받은 건 아니고요. 긍정적으로 협의 중입니다.”

“긍정적이면 다 된 거네. 이야, 이거 인생 첫 CF 아니에요?”

“와! CF 하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라면 먹을걸. 저도 그 해운라면 먹을 수 있어요! 거산 회장님! 제 연락처는 002-1255-4989 입니다!”

라면 CF를 검토 중이라는 말에 모든 출연진들이 나서서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난장판 비슷하게 되었는데, 그런 모습을 거실에서 보고 있던 건호도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돈 안 들이고 다시 공중파로 라면의 존재를 알린 것이었다.

일부러 네인버 지식인에 최경민이 무슨 라면을 먹었나요? 같은 낚시성 질문 글도 올렸고, 진짜 사 먹고 후기를 남긴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저도 입맛에 맞아요! 굿굿!’ 하는 댓글도 달았다.

“오빠, 진짜 최경민이랑 CF 검토 중이야?”

“응 일단, 검토 중인데, 단가가 문제야. 1년 전속에 2억 달라고 하더라.”

동생은 물론이고, 이창모 부장도 전화를 해서는 CF 하느냐고 물어왔는데, 우선은 내가 양아치 짓 했다는 것을 밝힐 수 없어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만 이야기를 했다.

시일을 끌면서 검토 중이라고만 하다 보면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마진이 박한 식품업계에서 라면 광고를 위해 비싼 몸값의 스타를 쓰는 경우는 예전 90년대가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국민 배우라고 불리는 강모자 씨나 안창기 씨 같은 가족적 이미지로 라면을 먹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쁜 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이미지 광고를 했었다.

하지만,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대체 식품으로 라면이 다시 자리매김했기에 몸값 비싼 배우를 광고에 쓰지 않았다.

무명 배우와 같은 이미지 모델들을 주로 고용해서 운동하다 먹고,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는 간편 편의성에 주안점을 둔 광고만 하고 있었다.

그런 추세의 라면 광고 시장에서 이제 막 발을 들인 업체에서 신인 배우를 몇억씩 써가며 티비 CF 광고를 할 이유가 없었다.

‘넌 혼자 사니?’라는 방송과의 인연은 딱 여기까지였다.

***

[거산랜드에서 라면 말고 의류 CF에 우리 오빠 좀 써주세요!]

[최경민 배우의 이미지는 라면보다는 의류, 정장 CF에 맞습니다. 라면 대신 의류 CF에 출연시켜 주세요.]

[제 남자 친구에게 사 입힐 수 있게 남성복 브랜드 ‘빠세라니’에 최경민 배우를 써주세요.]

거산랜드의 의류 쇼핑몰에는 스타일을 공유하거나 자랑하기 위해 구매자든 아니든 누구든지 글을 올릴 수 있는 스타일공유 게시판이 있었다.

헌데, 갑자기 어제부터 그 게시판에 배우 최경민을 광고에 써달라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이래?”

“그게, 방송에서 이 배우가 라면을 맛있게 먹었는데, 거산 식품 쪽에서 CF를 주기로 했답니다.”

“근데 왜 여기서 지랄들이야?”

“라면을 먹는 CF의 이미지보다는 이태리 명품 빠세나리의 멋진 옷을 입은 배우의 모습을 원한다고 하는 거죠.”

“그게 무슨 개소리야. 돈 주는 데 아무거나 해야지. 그런데, 우리 거산에 라면이 나왔어?”

“네. 저번 달에 해운대 라면이라고 나왔던데요.”

“그래?”

거산 랜드의 온라인 쇼핑몰 책임자인 현영인 부장은 자신도 모르는 자회사 라면이 있다는 소리에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이재영 상무에게 보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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