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34화 (34/203)

034. 넌 혼자 사니? (1)

“허문도 팀장님! 드디어 라면이 나왔습니다.”

상자 가득 봉지면과 컵라면을 넣어서는 식품사업팀으로 올라왔다.

“이제 우리 거산도 라면을 만듭니다! 자 다들 받아 가세요!”

허문도 팀장에게는 라면을 상자째 주었지만, 그 밑으로 직원들에게는 봉지면 5개 패키지와 소컵, 대컵 컵라면을 하나씩 돌렸다.

“그럼 이게 급식 식당에도 들어가게 되는 겁니까?”

“네. 2과에서 운영하는 학교 급식실에서 일단 가장 많이 소비될 겁니다.”

“아, 그럼 우리 2과에 라면 더 줘야줘.”

“하하하. 그렇네요. 내일 또 들고 오겠습니다. 대신에 오늘은 상품부에서 새로 나온 오다리 더 드리겠습니다.”

“이야, 그런데, 이름 진짜 잘 지었네요. 부산 사람들에게는 지역 라면 같은 느낌이 들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유명 관광지에서 파는 라면이라는 느낌을 주니깐 기억에 확실히 남는 이름입니다.”

“더구나, 쉐프 콜라보 제품이기도 하니깐 뭔가 일반적인 라면과도 차별성도 있네요.”

대체로 식품 사업팀의 사람들은 라면의 이름이나 쉐프 콜라보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이었다.

김독수 전무는 부재중이라 비서실에 라면을 맡겼고, 부산지사의 부장급 이상들에겐 이창모 부장이 일일이 찾아가서 신제품이 나왔다고 샘플을 주며 홍보 인사를 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거산에서 라면이 나온다고 재미있게 보았고, 애사심을 자랑하고 싶은 이는 앞으로 이것만 사 먹겠다고 립서비스를 해주었다.

***

“이게 상품 판매 관리부에서 나온 라면이라고? 어떻게?”

김독수 전무는 거산의 로고가 박혀있는 라면을 보고 허문도 팀장에게 되물었다.

“네에? 그게 무슨?”

“그러니깐, 예산도 없는 애들이 무슨 재주로 이 라면을 생산했는지를 물어보는 거야. 이거 생산에 한두 푼 들어가는 거 아니야. 이걸 무슨 돈으로 했다는 건 몰라?”

“아아, 라면 봉지에 보시면 호텔 요리사 사진이 있는데, 그 요리사가 임건호 차장의 매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매제를 스타 쉐프로 만들어 주고자 온 집안에서 돈을 모아서 했다고 합니다.”

“그럼, 예산 없이 OEM 생산처럼 만들어서 납품을 받은 거네. 햐, 임 차장 집안 나름 잘사는가 보네. 이게 돈이 꽤 들어갈 텐데. 아!? 아니네. 이거 임건호 이 새끼가 머리 쓴 거네.”

“네?”

“이 라면이 우리가 운영하는 구내식당 쪽에 다 들어간다고 했지? 우리 사업부에서 1년에 소요되는 라면 숫자 알아?”

“이창모 부장에게 듣기로는 1년에 자사 내에서 소비되는 물량이 50만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50만 개? 생산은 몇 개 했는데? 단가는? 우리 이득은?”

“그게, 봉지면, 소컵면, 대컵면 해서 각각 100만 개씩 생산했다고 했습니다.”

“이야, 이거 통 크게 노네. 단가가 아무리 못해도 개당 300원씩은 할거고, 9억 이상 들었겠는데.”

“네. 이 부장 말로는 12억이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마진 10% 잡고, 저쪽 마진도 10% 잡고, 200만 개 정도 팔린다고 하면 최종적으로는 4~5억 정도 들어간 거라고 보면 되겠네. 뭐, 5억 정도면 투자로 질러 볼 만하지.”

김독수는 사람의 이름을 알리고 몸값을 올리는데, 5억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유명세만 있다면, 그 돈이야 1~2년이면 회수할 테니깐.

“그리고 우리 수익은 본래 납품받던 공두기 라면을 대체하며 생기는 이득이 있습니다. 30만 개 기준으로 1500만 원 정도 예산 절감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거 보고 가면 안 돼. 일단은 OEM 납품받는 형식으로 라면을 시작했지만, 이 계약 끝나면 그대로 우리가 들고 와야 해.”

“라면을 말입니까?”

“그래. 내년 예산부터 내가 배정되게 해 준다고 하고, 이창모 부장에게 제대로 준비를 시켜. 의류 쪽이 메인인 후계파에 비해서 우리 쪽 외파가 매출이나 거래 규모가 작다고. 그걸 크게 하려면 이런 소매 식품군을 키워야 해.”

“전무님, 그럼 인사이동에서 임건호 차장을 부르기로 했는데, 그대로 박아 둡니까?”

“그래. 그대로 둬. 이 라면 건을 진행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을 거 아냐. 그거 써먹어야지. 이 해운대 라면이 반응이 좋든 안 좋든 이쪽으로 계속 추진하라고 해. 소매 식품군을 키우라고 말이야.”

“네. 그러면 자사 몰에 이 식품군을 넣는 것을 추진해 달라고 한번 찔러 넣어 볼까요?”

“후계파 애들이 넣어 주겠어? 의류 쇼핑몰에 무슨 라면이냐고 하겠지. 지금 온라인 종합 몰에 입점하는 형태는 그대로 두고, 식품군을 올릴 수 있는 자체 몰을 우리도 준비해 보자고.”

김독수는 오늘 본사 임원회의에서 오프라인 비중을 줄이고 점점 온라인 비중을 늘려가기로 한 의류 군의 전략 변화를 보고 왔었다.

외파의 주 사업인 구내식당이나 식음료 부분 사업은 그런 온라인 쪽으로의 변신이 힘들어 어찌할지 고민을 했었다.

헌데, 갑자기 튀어나온 라면 덕분에 그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B2B 형태의 대형 구내식당 운영 외에 이런 공산품 화 된 식품군으로 온라인 비중을 늘릴 수 있다면 온라인의 규모를 키워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재영이 그놈이 묫자리라고 임 차장을 상품 관리부로 보낸 게 잘된 거네.”

심복 라인을 잘라서 묫자리로 보낸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좋은 아이템을 만들 수 있게 보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재영 상무의 훼방이 오히려 호수(好手)가 되어 돌아왔다.

***

“자 이쪽 보시면서 국자를 들어주세요! 조오습니다~!”

찰칵, 찰칵!

보통 조리실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잠시간의 휴식 시간이 조리원들에게 주어지는데, 그런 휴식 시간에 조리실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최도협이었는데, 이틀 연속으로 부산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최도협과 기자들을 보며, 같은 조리실의 직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좋겠다’는 반응과, ‘쟤가 왜?’ 하는 반응.

신문에도 나오고 자기 이름을 건 라면을 출시하게 되어서 좋겠다는 반응은 대부분의 조리실 직원들이었고, 쟤가 왜? 하는 반응은 보이는 이들은 주로 최도협의 선배들이었다.

“여자 잘 만났나 보네. 저거 처가에서 다 해 준 거라고 하더라고.”

“에? 그래요? 라면 저렇게 생산하려면 몇억씩 들 건데.”

“근데, 사귀는 여자친구가 우리 호텔 스카이라운지 직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호텔리어인데 돈 많은 집안인가 보지.”

“부럽네. 나도 얼굴이 잘생겼어야 했는데. 그러면 나도 내 얼굴 들어간 삼각김밥 출시했을 건데.”

“니 얼굴 들어가면 바로 폐기 아니냐?”

“그러는 너는 오징어 삼각김밥이거든.”

각 파트 요리사들끼리 서로 외모를 디스하며 구시렁거렸다.

그런 인터뷰 모습을 보던 뉴클라우드 호텔의 하인수 지배인은 요리사치고 잘생긴 최도협을 보고 이벤트를 떠올렸다.

“성수기인 여름에 모객을 위한 행사나 이벤트를 뭘 할지 고민했는데, 저 친구로 가죠. 호텔 요리사가 끓여주는 라면 이벤트로 합시다. 라면 이름도 해운대 라면이라고 하니 딱 어울리겠네요.”

실제 고급호텔에서 라면이 팔릴까 싶었지만, 의외로 최고급 호텔인 신라 호텔에서는 아침 조식 메뉴로 짬뽕라면이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물론, 이름만 짬뽕라면이지 실제로는 일품요리였기에 그 가격도 3만 원대로 절대 저렴한 메뉴가 아니었다.

“그럼 저 친구를 아예 메인으로 해서 이벤트를 진행합니까?”

“네. 제대로 팔릴 수 있는 친구라면 호텔 메인으로 키워야죠.”

4성급 호텔이라고 하지만, 객실에서 해운대 백사장을 바로 볼 수 없기에 3.5성급이라고 불리는 뉴클라우드 호텔이었다.

객실 뷰에서 장점을 가져오기 힘들다면 이런 식음료에서 장점을 가져와야 다른 호텔과의 비교우위에서 떨어지지 않을 터였다.

***

“야아! 오버로드 5시로 보내 라니깐! 띠바야, 다템한테 다 썰리고 있다고! 아놔! 빡치게 하네!”

“지금 거기서 질럿을 뽑으면 어짜는데, 와 미치겠네.”

“3시! 3시! 드랍쉽 간다! 스컬지 뭐하노?”

한타 싸움보다 더 치열한 빠른 무한 헌터 4:4 스타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고, 친구들끼리 술 한잔하고 PC방에 온 사람일수록 더 열기를 불태우며 스타를 했다.

“gg쳤다. 예쓰!”

“와 진짜 경민이 싸이오닉 스톰 직여줬다. 시즈 탱크 다 녹아 버리는데 속이 다 시원하더라.”

“내가 원래 끝빨 좀 날리지. 출출한데, 우리 뭐 하나 먹고 하자.”

오랜만에 고향인 부산에 와서 친구들과 PC방에 온 최경민은 서울에서 아는 사람들과 스타를 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편 먹고 하는 스타가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겼을 때의 쾌감도 왠지 친구들과 하는 게 더 큰 것 같았다.

“난 웰치스에 컵나발 하나 때릴련다.”

“나도 컵라면.”

“음료는? 난 맥콜!”

카운터 옆 냉장고에서 음료를 고르고, 라면을 고르는데, 푸른 파도의 포말이 치는 것 같은 라면 뚜껑이 보였다.

“해운대 라면?”

“아, 새로 나온 거예요.”

“맛있어요?”

“먹을만해요. 따로 콩나물도 들어가 있고, 술 먹고 속풀이에 좋아요.”

오랜만에 부산에 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해운대에 있는 PC방에 있어서 그런지 괜히 해운대 라면이 땡겼다.

“그럼, 저거로 4개 주세요.”

***

“야, 해운대 라면이 있길래 그거 시켰어. 너네 먹어봤냐?”

“해운대라면? 처음 들어보는데, 어디 듣보회사에서 나온 건가?”

다들 처음 들어보는 라면 이름이라고 했는데, 알바가 뜨거운 물을 받아온 컵라면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거산 거면 듣보에서 나온 건 아니네.”

“거산랜드? 거긴 옷 만들고 하는 곳 아닌가?”

“대기업이니깐 오만 거 다 만들겠지. 호텔 쉐프가 라면 만들었단다.”

친구들과 음료를 마시며 이야길 하다 보니 라면이 익었고, 젓가락을 들었다.

“캬! 국물 맛 괜춘하네. 내 입에는 딱이다!”

“야야 원래 PC방 서 게임하다가 먹는 라면에 젤존 맛이거든.”

“니 입맛은 대기업 입맛 아니었어? 대기업에서 나온 건 다 맞더만.”

“술 먹고 게임하고 라면 먹으면 그게 야스지.”

후루룩~ 후룩~

“캬! 얼큰하게 좋네. 콩나물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개운하다. 이거 서울 갈 때 몇 개 사가야 되겠다.”

“야 다 먹었으면 무한헌터초보4321로 방 만든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방에 최경민과 세 명의 친구들이 들어갔고, 다시 4:4 스타를 하기 시작했다.

***

“야, 며칠 더 있다가 올라가지. 삼일은 넘 짧지 않냐?”

“그래, 이제 올라가면 언제 오냐? 영화 촬영은 다 끝났다며?”

“나도 언제 휴가 줄지 모르겠다. 영화 촬영은 다 끝났는데, 영화 홍보 때문에 무슨 예능에도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캬 배우는 바쁘네.”

“그래도, 오랜만에 너네랑 스타하고 밤새워 노니깐 재밌었다. 다음에 또 올게.”

“야, 이거 가져가. 네가 맛있다길래 편의점 뒤져서 사 왔다.”

배우 최경민은 친구가 사 온 컵라면을 받아들었다.

“그래. 부산 생각날 때마다 이거 먹을게. 그럼 내 간데이~.”

***

“그러니깐 이 예능이 기존의 예능과는 좀 달라요. 스태프나 대본 같은 거 일절 없이 그냥 경민 씨가 생활하는 걸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PD님. 그냥 집에서 온종일 뒹굴고 하는 게 방송이 될 수 있는가요?”

최경민도 배우다 보니 해외에서 관찰 예능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해외의 관찰 예능은 바닷가에서 남녀가 모여 몸매를 자랑하고 서로 아찔한 연애를 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주였지, 이렇게 집에 혼자 있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정적인 방송이 되어서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사람들이 배우나 모델이 나와서 혼자 있는걸 재미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어요. 여기서 경민 씨가 보여줘야 하는 매력은 부산에서 홀로 올라온 20대 청년이 어떻게 살고 있고, 배우라고 하더라도 특별할 것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아, 인간미를 보여달라는 뜻이죠?”

“맞습니다. 그게 우리 ‘넌 혼자 사니?’ 프로그램이 원하는 겁니다. 너무 잘나 보이고 하는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진짜 생활을 보여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