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매제 될 거지?
요리사라면 당연히 배도 좀 나오고, 살도 좀 올라서 후덕해야 제대로 된 요리사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매제 후보 1순위는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얼굴도 말쑥한 것이 뭔가 요리사 같지 않고 기생오라비의 느낌이 있었다.
“오빠는 지금 웬일인데?”
“웬일이긴 일 잘하고 있나 보러 온 거지.”
말을 하면서 눈치를 주니 녀석이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건희와 만나고 있는 최도협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동생하고 만난다고 고생 많을 거 같네요. 임건호라고 해요.”
악수를 하며 명함을 줬는데, 매제 후보는 명함이 없는지 엉성하게 명함을 받아 들었다.
음. 사회 생활하며 명함을 주고받을 일은 확실히 없었던 것 같군.
비즈니스 매너에서 일단 마이너스.
하지만, 조리사로서의 관록을 보여주는 것처럼 굵은 팔뚝과 손끝에 잔잔한 상처는 꽤 있었다.
“오빠 빨리 가!”
“야, 나 이제 와서 커피 한잔하려고 하는 거거든. 그리고, 우리 도협 동생하고 이야기도 좀 하고 싶고. 우리 남자들끼리 이야기 좀 할까?”
남자끼리 이야길 한다는 말에 건희의 눈이 쌍심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또 말리지는 않았다.
“흡연은 하고?”
“담배는 3년 전에 끊었습니다. 담배 냄새가 손에 남아 음식에 묻는다고 해서요.”
“합격!”
“네?”
“일단 합격! 나도 안 피거든. 한 가족이 되면 내가 윗사람이니 말 편하게 해도 되겠지?”
괜히 손윗사람을 만나서 굳은 거 같았기에 아예 어깨동무를 해서 라운지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앉았다.
“단도직입으로 물을게. 우리 건희랑 결혼할 생각은 있지?”
바로 풀악셀로 훅 들어오는 질문에 최도협은 난감해했다. 하지만, 2년 넘게 건희와 사귀며 고민했던 문제였기에 대답은 바로 나왔다.
“네. 결혼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형편이...”
“사채나 보증, 도박, 알콜 중독 그런 건 없지? 이거 중요해.”
“네. 술은 좀 먹지만, 다른 건 없습니다.”
“그럼 빚은?”
아무리 여자친구의 오빠라지만, 초면에 바로 빚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에 최도협은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자신에게 여동생이 있고 부모님 노릇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자, 이런 무례한 질문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되었다.
“학자금 대출이 아직 좀 남았고, 지금 전세로 살다 보니 전세 대출이 있습니다.”
대학교를 나오고 30살에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는 경우라면 이 정도 대출은 어찌 보면 당연한 부채였다.
“부모님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데?”
“부모님은 경주에서 농사하시고, 형이 있습니다.”
“그럼 되었네. 날 잡자.”
“네에?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전셋집이라고는 하지만, 방 두 칸짜리 주택 2층이라...”
도협은 결혼을 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빌라 전셋집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빌라 전셋집을 얻을 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지금 건희가 사는 집에서 살면 되지. 남자가 꼭 집을 해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지금 건희가 사는 집에 가봤지?”
지금 건희가 살고 있는 부산 본가는 양정에 있는 엘리베이터 없는 34평 빌라였다.
어머니가 아프시고 서울에서 같이 사시는 동안 본가는 건희가 혼자 살았고, 은연중 남자친구와 같이 동거 비스름하게 살았다는 것도 건호는 알고 있었다.
“건희도 돈 모으고 있고, 자네도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더 좋은 집 가면 되는 거지. 괜히 없는데, 빚내서 집 사고 할 필요 없어. 지금 건희 사는 빌라를 새로 인테리어해서 신혼집 하면 되는 거지. 그러니 따로 더 준비할 건 없어.”
“음...형님이 이렇게 나서주시니 고마운데...혹시 어머님의 병세가 많이 안 좋아지신 겁니까? 그래서 서두르는 건가요?”
다른 거 다 필요 없다고 날부터 잡자는 말에 도협은 어머니의 병세가 많이 안 좋아지신 건가 싶었다.
“뭐, 그런 것도 없잖아 있지. 빨리 시집을 보내야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도협은 건호가 더 준비 안 해도 되니 결혼식 날 잡자는 말을 듣곤, 마음속 부담감을 어느 정도는 덜었다.
사실 경주에서 배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은 부산에서 어떻게든 아가씨를 만나 빨리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난리였다.
32살인 형이 경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여자친구가 없었고, 시골 특성상 장가를 가지 못한 남자가 많다 보니 여자가 있을 때 빨리 가야 한다고 집에 갈 때마다 부모님이 귀 아프게 이야길 했다.
하지만, 땅을 빌려 농사짓는 부모님이 도와주실 형편이 안되었고, 모아둔 돈은커녕 대출이 있다 보니 건희에게 결혼하자고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헌데,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결혼식 날짜를 잡자고 형님이 이야길 해 주시니 마음이 가벼워져 날아갈 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본가에 가서 부모님께 여쭤보고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런데 위에 형은 장가 갔고?”
“경주에 있는데, 아직입니다.”
“흐음. 장남이 먼저 가야 차남이 갈 수 있는 그런 엄한 가풍은 아니지?”
“네. 먼저 갈 수 있으면 가라고 하셔서 괜찮을 겁니다.”
“다행이네. 그럼, 근무 시간인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다음에는 따로 밖에서 만나자고. 그때 더 물어보고 할게. 우리 자주 연락하고 하자고.”
“네. 형님.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렇게 최도협은 인사를 하고 근무지로 돌아갔는데, 건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도협씨한테 뭐 물어봤어?”
“뭐 물어보긴. 니 성격 안 좋은 거 다 아냐고 물어봤지. 그러니깐, 다 감수하고 희생하겠다고 하더라. 그 말에 내가 눈물이 다 났다. 너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거 보니 보살이네 보살이야.”
“뭐래? 내 성격이 뭐 어때서?”
“됐고, 일단 크림 라떼로 애프터눈 티 세트 좀 가져와 봐. 당 보충 좀 하게.”
다과 세트를 가져온 동생이 맞은편에 앉았는데, 내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진짜 뭐 물어봤어?”
“그냥 날 잡자고 했다. 지금 네가 사는 옛날 집 인테리어만 해서 거기서 신혼집 차리고 차차 돈 모아서 좋은 집 사면 되니깐 집 걱정 말고, 결혼 날 잡자고. 그렇게 해도 괜찮지?”
“그렇게 해도 되긴 되는데,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처가살이하는 느낌이 생길 것 같은데.”
“야 내게도 그렇게 해줬다면 진짜 엎드려 절하고 처가살이했을 거다. 집 사는 데 돈 없어서 대출받으려고 은행 가서 눈치 보고 하는 게 더 자존심 상해. 오히려, 집 없이 결혼해도 괜찮다고 하는 너에게 고마워할 거다.”
“확실히 남자는 여자랑 다르네.”
“됐고, 도협이 집에서 허락하고 날 잡자고 하면 올해 안으로 결혼할 준비해. 예식장 잡고 하는데 돈 부족하면 이야기하고.”
건희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도협이 자존심 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건희 말을 듣고는 도협이에게 얼마를 좀 찔러 넣어 줘야 할 것 같았다.
결혼 준비를 하게 되면 돈 문제로 싸울 일이 많을 건데, 대출만 있다면 무조건 100% 싸우거나 주눅 들어서 결혼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돈을 찔러주면서 ‘건희 몰래 주는 거다.’ 하고 주면, 우리에게 알아서 잘할 터였다.
“아차! 도협이한테 중요한 거 안 물어본 게 있네.”
“뭐?”
“무슨 요리 잘하는지를 안 물어봤다. 전문이 뭐야? 어디서 요리 배웠데? 유학파야?”
“경주에 있는 대학교 호텔 외식 전공해서 일본에서 요리학교 나왔어. 그래서 돈이 없어.”
“그 학비 비싸고 유명한 츠지인가 쯔지인가 거기 나온 거야?”
“어 오사카 쯔지 요리학교. 거기서 1년 코스로 나왔는데도 몇천만 원이 들었데.”
“돈을 못 모을 만하네. 그래도 경력 쌓이면 나중에 많이 벌 수 있지?”
“그것도 어렵데. 한국에서는 프랑스나 이태리 쪽 학교를 더 쳐주는 것도 있고, 특급호텔 수 쉐프 되기도 어렵데. 사람이 많다고.”
“그럼, 나중에 가게 차리는 게 최종 테크인가.”
“나중에 나이 들면 학원에 출강하던지 가게 차리던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거기도 쉽지가 않네. 그래서 주 전공이 뭐야?”
“지금은 이태리 음식 쪽 담당하고 있어.”
“파스타는 기똥차게 만들겠네. 다음에 집에 불러서 한번 해달라고 해야겠다. 평일에 쉬니깐 그때만 되겠지?”
“아마도. 근데 오빤 이렇게 와서 농땡이 쳐도 되는 거야?”
“나 나름 회사 에이스라니까. 여유 있게 릴렉스해도 되거든. 가서 일 봐. 나도 사색 좀 즐겨 보자.”
“사색은 무슨. 웃기네.”
짧게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만, 매제 입후보 1순위인 최도협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특히 요리 때문에 담배를 끊었다는 깡다구라면 훗날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잘 헤쳐 나갈 것 같았다.
동생에게 받은 도협의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매제’로 등록했다.
그러곤, 스카이라운지에 온 본래 이유를 되살려 어떤 상품을 만들어 팔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해도 예산이 문제였다.
공장설비에 들어가는 2억이 없어서 진행 중인 상품이 멈출 수준이었으니,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진행이 가능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년에 어떻게든 신상품 개발에 들어가는 예산을 따와야 뭐든 되는 것이었다.
“영희 엄마는 이거 좀 가져가.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나온 건데, 이거 맛이 괜찮아.”
“명군라면? 이건 어디에서 나오는 라면이야? 용심? 공두기? 엇? 담웨이? 어머, 담웨이에서 이제는 라면도 나오는 거야? 별의별 게 다 있네.”
“그럼, 예전엔 서비스 상품으로 치약을 많이 줬는데, 이제는 이렇게 라면을 만들어서 주더라고. 한번 가져가서 먹어봐.”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들의 이야길 듣고 보니 네트워크 마케팅으로 유명한 담웨이에서 라면도 나오는 것 같았다.
“이거 어쩌지. 나도 라면을 가져왔는데.”
다른 아주머니도 부산스레 종이가방에서 라면 봉지를 꺼내었는데, ‘참면라면’이라고 쓰인 라면이었다.
“어머나, 람토미에서도 라면이 나와? 담웨이와 람토미 둘 다 대단한 회사인데, 라면도 같이 출시를 하네.”
“그럼, 우리 바꿔 먹어볼까?”
아줌마들은 서로 다니고 있는 네트워크 회사의 상품들을 주고받으며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서로 자기 사무실로 나오라고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물론, 옆에서 그걸 보고 있는 나로서는 아주 재미있었다.
네트워크 마케팅하는 업체에서 사람들을 꼬시기 위해 치약이나 마스크 팩을 공짜로 주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건 알고 있었는데, 라면을 만들어 주는 건 처음 보는 거였다.
아! 잠시만, 담웨이나 람토미가 아무리 큰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라고 해도 라면 공장을 가지고 있진 않을 건데...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옆 테이블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저 라면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떤 라면요?”
담웨이에 다니시는 아주머니와 람토미에 다니는 아주머니가 서로 눈치를 보며 자사 제품을 내놓았다.
두 분의 네트워크 자존심 싸움에 끼어든 것이었다.
“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