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26화 (26/203)

026. 오다리. (2)

“대기업의 양아치 짓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창모 부장은 양아치 짓을 해야 한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물론, 사회에 도움 안 되는 그런 양아치들이 하는 짓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다들 은행에서 카드 만들어 달라는 전화를 많이 받아 보셨을 겁니다.”

건호의 말에 회의 탁자에 앉은 이들은 다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 만들면 얼마를 주겠다는 사람부터 만들고 안 쓰셔도 된다는 사람까지. 심지어는 카드 받으면 바로 잘라 버려도 된다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자기 회사 상품을 이렇게 취급하는 게 진짜 말도 안 되는 양아치 짓인데, 이걸 은행에서는 용인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우리 상품을 그렇게 팔아야 한다는 건가?”

“예를 든 것입니다. 예를. 은행에서 이런 영업을 용인해 주는 이유는 이 카드 발급 개수가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많이 발급하면 승진이 된다고 하더군요. 신뢰와 신용의 상징인 은행도 이런 양아치 짓을 하며 자사 상품을 팔아먹고 있습니다. 헌데, 우리는 은행보다 신용도 없고, 신뢰도 없는데, 너무 얌전하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건호는 미리 준비했던 남포동 오다리를 꺼내었다.

“우리가 다리를 떼서 파는 오다리는 해마 실업을 거쳐서 전량 남포동 가판대로 가고 있습니다. 껍질만 벗기고 양념을 발라주기만 해도 2배 가격이 됩니다. 이런 이득을 우리가 챙길 수 있는데도 우린 너무 좋은 거래만 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호구입니까?”

그제야 사람들은 건호가 이야기하는 대기업의 탐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공격적인 수익 창출도 없고, 공격적인 판로 개척도 없으며, 치열한 원가 절감을 하겠다는 노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공무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부서에서는 다들 우리 부서를 묫자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불리는 게 쪽팔리지 않습니까?”

묫자리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뭐, 계약직이나 임시직인 경우라면 태업을 하더라도 이해는 해줄 수 있습니다.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 자리니깐요. 하지만, 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아니잖습니까. 대기업의 탐욕이 가득한 양아치 짓이라도 해서 묫자리 탈출 좀 했으면 합니다.”

“그럼 해마 실업에 판매하는 물량을 직가공해서 남포동에 판매하면 되겠습니까?”

공장에서 온 김진곤 과장이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가 되면 우리는 해마 실업과 척지게 될 겁니다. 그냥 척지는 게 아니라 아예 원수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기업인데, 남포동 길거리 구루마에 직접 납품하는 건 좀 그렇지요. 대기업 가오도 좀 챙겨야지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세련되게 대기업 양아치처럼 하자는 겁니다.”

건호는 해마 실업이 PC방에 납품하는 ‘해수 오다리’ 제품을 들었다.

“이 제품에 사용된 오다리는 베트남산입니다. 우리가 가공하는 오다리와는 다르지요. 해마 실업에게 통보하십시오. PC방 나가는 이 제품 우리도 똑같은 거 수입해서 만들어 팔겠다고요. 베트남 거래처 알려 달라고 하십시오.”

“거래처까지는 좀 그래도 me too 제품 팔겠다는 건 그쪽에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이 PC방 제품에 우리 국내산 오다리를 쓴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해마 실업에 가는 물량을 서서히 줄여서 거래를 끊을 것이고, PC방 용 버터구이 오다리를 우리가 판매하게 된다면요.”

“그렇게 되면 반발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네. 세련되게 서서히 끊고 가면 됩니다. 거기가 우리에게 올인하는 회사도 아니고, 우리는 그쪽 판매 제품 카피해서 팔면서 거래 끊으면 되는 겁니다. 더구나 타이밍이 맞는 건지 올해 오징어 어획량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어획량이 줄었으니 그걸 핑계로 거래량을 줄여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분명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방법이었다.

“김진곤 과장님은 해마 실업에 나가는 물량을 서서히 줄여주시고. 사무실 분들은 그 국내산 오다리로 상품을 만들고, 베트남산 오다리를 수입해서 PC방에 납품할 수 있는 신상품을 만들어 주십시오.”

거래처의 제품 카피와 그쪽의 점유율을 가져오겠다는 건 욕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욕은 듣겠지만, 돈이 됩니다. PC방 매출 자료에서 보듯이 팔리는 개수로만 보면 편의점 1개보다 PC방 1개에서 팔리는 오다리가 더 많습니다.”

돈 앞에 장사 없는 법이었다.

거래처의 상품을 뺏어 오는 일이었지만, 우리부터 살아야 했다.

공무원이 아닌 한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나는 일이었고, 남의 매출을 뺏어야 우리의 매출이 늘어나는 법이었다.

이미, 예산이나 매출 증대를 위해 줄서기까지 한 이창모 부장은 임건호의 말을 안 따를 이유가 없었다.

“김 과장 공장설비 수정해서 버터 발린 다리 만드는데 한 달이면 되겠어?”

“네. 분쇄 공정을 빼면...”

거래처와 거래를 끊고, 같은 상품을 만들어 팔자는 말에 의견이 모이자 바로 신상품과 베트남 오징어 수입 건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오다리 신상품으로 일이 능동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자 건호는 한숨 놓았다.

계약직이나 공무원들처럼 마음이 완전히 순응해 버리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들 일에 대한 열정은 남아 있었다.

제대로 일을 하는 것 같은 부서 사람들을 보니 기분은 좋았지만, 문제는 PC방에 판매되는 상품은 저가 위주라는 것이었다.

단가를 높이고 해마 실업이나 다른 업체들 것보다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져가야 했다.

특히, 오다리를 포장하고 있는 비닐이 문제였다.

PC방 판매 전략상 냄새를 위해 전자레인지에 봉지째 돌리는데, 그때의 환경 호르몬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민감한 고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환경 호르몬 관련해서 무해한 포장지 재질은 내가 알아보기로 했다.

***

“기존 판매되고 있던 안주류 제품을 PC방에 다 넣어서 유통하는 건 어떨까?”

이한철 차장은 자신이 관리하는 마른안주 전체를 PC방 유통채널에 다 집어넣고 싶었다.

“그게, PC방에서는 맥주를 못 마시게 합니다. 제가 어제 가서 한번 살펴봤는데, 밖에서 사 온 맥주도 못 마시게 했습니다.”

김승재 대리는 직접 확인했다며 이야길 했다.

“응? 전에 가니깐 PC방에서 담배도 피던데, 술은 안 되는 거야? 뭔가 이상하네.”

“그게,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하면 술을 팔 수가 있는데, 그게 PC 앞으로 술을 들고 가면 위법이 된다고 합니다. 벌금도 꽤 크고요. 별도의 테이블 공간에서만 술을 마실 수 있다 보니 일반 PC방에서는 술을 아예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벌금이 큰가 보군.”

“네. 그리고 일제 직수입 과자류는 이미 다른 업체에서 납품되고 있었습니다.”

“PC방 전문납품 업체에 뭔가 베네핏을 주고 우리 제품을 납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곤란하네.”

부산은 물론, 영남에 있는 PC방에도 납품하는 업체와 컨택하며 활기차게 직원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단가가 안 맞다.

어떻게든 판매 채널을 늘리기 위해 납품을 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가격을 제시해 왔다.

우리가 직접 PC방 유통업체를 차리지 않는 이상은 관리하는 인건비나 겨우 생길 정도였다.

“PC방에서 판매 중인 오징어류는 다 수입입니다. 단가에서 국내산으로는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베트남 수입 오다리를 유통하는 것이 전부일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변했다는 건 좋았지만, 안주류 위주의 주전부리로는 답이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왜 다들 힘 빠져 있어. 새로운 판매 채널 하나 추가했고, 직 생산이 아니지만, 신제품도 만들어 냈잖아. 다들 이런 거에 우울해하지 마!”

이창모 부장은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나서서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며 칭찬을 해줬다.

“또 신제품 ‘못생긴 오다리’도 나오게 되잖아. 우린 할 수 있는 건 나름대로 다 한 거야.”

기존의 설비 그대로 분쇄된 오다리 가공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버터 바른 오징어에 그대로 다리를 추가하기보다는 ‘못생긴 오다리’로 오다리 신상품을 출시하는 것이었다.

우선은 돈 안 들이고 새 제품을 출시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고, 마진이 적더라도 판매 채널을 늘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런 신제품을 출시했다는 것으로 어떻게든 예산을 받아 오겠다는 이창모 부장이었다.

***

“다리를 팔지 않고, 직가공해서 출시하니 공장의 월 매출이 3% 올랐습니다.”

이젠 매주 주간회의에 참석하게 된 김진곤 과장이 자랑스레 이야길 했다.

“구내식당에 진열해서 팔고 있는 제품들의 매출도 4% 증가했습니다. 공단의 기업체 위탁 식당에서 주전부리류 판매가 호조입니다.”

직가공해서 3%의 매출과 구내식당 판매 채널의 추가로 4%의 매출 증가.

뭔가 애매한 수치였다.

사실 5% 미만은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변화라도 봐도 되는 수치이긴 했다.

하지만, 상품 판매 관리부에는 달콤한 성과와 목표가 필요했다.

“4% 매출 증가가 아주 좋은 겁니다. 부산 지역 39곳의 구내식당에서 판매된 것으로 4% 매출이 증가했다면 전국에서 우리 회사가 운영 중인 150곳의 구내식당이 추가되면 10% 이상의 매출 증가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겁니다.”

칭찬이 필요했다. 칭찬이.

“단순 수치상으로 증가 폭 따져 보면 10%에서 15%까지도 매출이 오를 수 있는 겁니다.”

매출 증대가 보이니 만들어둔 잡지꽂이를 전국 구내식당 150곳에 다 보내기 시작했다.

인력회사를 써서 대형 트럭으로 전국을 돌며 잡지꽂이를 설치하게 했는데, 이게 좀 아쉬웠다.

직원이 직접 가서 약(?)도 좀 치고 판매를 부탁하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저기 프랜차이즈 식당도 있는 외식 사업부의 매장도 한번 고려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적극적인 모드로 변한 김승재였다.

김승재의 말에 이창모 부장은 예전 같았으면 될 것 같다고 이야길 했을 터지만, 지금은 파를 갈아탔기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안 될 수도 있겠지만, 한번 찔러보지.”

하지만, 역시 파벌이 달라졌기에 이재영 상무의 외식 사업부는 매장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진열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건호는 이런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과 별개로 부서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우선은 오징어 수급이 불안정해졌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 초까지는 연간 평균 22만 톤 규모로 오징어가 잡혔지만, 2005년에는 18만 톤. 올해는 15만 톤이 잡혔다고 했다.

어획량이 많을 때에 비하면 25%나 줄어든 어획량이었다.

자연스레 오징어 가격도 20% 가량 올랐고, ‘우리 간단하게 오징어 안주로 맥주 한잔할까?’ 하는 말은 옛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부서 사람들도 이 상황을 알기에 수입 가격 변화가 거의 없는 대구 살을 베이스로 하는 안주를 만들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오다리 건에서 건호는 안주류에 대한 한계를 인식했다.

술을 먹을 때 필요한 상품 말고, 늘 필요한 상품이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먹는 상품이 있어야지 특정 조건에서 팔리는 상품은 2순위였다.

뭔가 색다른 환경에서 고민을 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동생이 일하는 호텔로 갔다.

오후 3시였음에도 스카이라운지에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 앉아서 차와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응? 임건희 씨 어디 갔어요?”

“아, 임 매니저님 오빠분이시죠? 잠시 밑에 가셨는데...”

늘 있던 동생이 자리를 비우고 없었는데, 다른 직원은 내 눈치를 보며 동생이 어디 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아, 저기 오시네요.”

온다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동생이 조리복을 입은 남자와 다정하게 이야길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 그래. 매제 후보 1순위가 요리사였지.

요리사다. -> 요리 잘한다. -> 먹거리를 잘 만든다. -> 팔 수 있는 식품이 나온다.

하는 기적의 4단 논법이 이루어졌다.

“우리 매제! 처음 보는데, 인사나 하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