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오다리. (1)
오다리를 먹으면서 ‘왜 우리 제품에는 오다리가 없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진짜 우리 회사의 오다리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제품화된 오다리 제품은 확실히 없었다.
몸통을 가공하고 난 다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기름에 둥둥 뜨며 구워진 호떡을 들고 공장에 가서, 직원들에게 호떡을 먹이며 오징어 손질 과정부터 찬찬히 훑어봤다.
자갈치에서 들여온 오징어를 세척하고 나서 아주머니들이 배를 따서 내장을 뺏고, 이후 다리를 뜯어서 옆으로 모으고 있었다.
손질된 몸통은 다시 작업장으로 갔지만, 따로 뜯은 오징어 다리는 냉장실로 들어갔다.
“김진곤 과장님. 여기 오징어 다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냉장고로 들어간 다리와는 달리 오징어 몸통은 건조기를 통하며 껍질이 벗겨지고, 버터가 발라져 분쇄과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 오징어 다리는 저희가 가공하지 않습니다. 거래처로 판매가 됩니다.”
“재판매를 하는 건가요? 흠. 오징어 다리도 저렇게 몸통처럼 버터 발라서 같이 넣으면 안 되는 건가요?”
“자아,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김진곤 과장의 손짓에 공정이 돌아가는 앞으로 가자 고소한 버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여기 보시면, 버터가 발려지고, 몸통을 쉽게 뜯어 먹기 좋게 가로로 분쇄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열(熱)로를 따라 움직이면 자연스레 버터가 몸통에 스며들며 맛이 버무려집니다. 이후 열 프레스기로 한 번 찍어 주면 완제품이 됩니다.”
자동화로 슉슉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멋지기도 했고, 꼬소한 냄새에 침이 나올 정도였다.
“몸통은 배를 따고 옆으로 벌리게 되면 납작한 평면이 됩니다. 하지만, 다리는 몸통처럼 손질을 한다고 해도 평면이 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저 분쇄는 가로 분쇄가 되는데, 다리를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다 조각조각 부서지겠네요. 상품화가 안 되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오다리는 오다리를 전문으로 하는 해마 실업으로 재판매를 합니다.”
“그 해마 실업에서 남포동에 파는 오다리를 공급하는 거군요.”
“해마 실업이 남포동에 바로 납품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 해마 실업에 한번 가 볼 수 있습니까? 오징어 다리를 어떻게 가공하는지 궁금해서요.”
“네. 거래처니깐 한번 연락해서 방문해도 되는지 물어보겠습니다.”
김진곤 과장이 통화를 몇 번 하더니 내게 해마 실업의 부장 박일홍의 명함을 건네었다.
“지금 방문해도 된다고 합니다.”
명함의 주소를 보니 감천항 인근이었다.
김진곤 과장에게 우리 오다리가 얼마에 재판매가 되고 있고, 해마 실업과의 거래 규모를 물었다.
“해마 실업이 저희 외에도 다른 업체에서도 오징어 다리를 다 받아 올 겁니다. 부산에서는 가장 큰 오징어 가공 업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의외로 해마 실업의 규모가 컸다.
그리고 감천항 공장에 가니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다.
남포동에서 팔고 있는 오다리를 납품하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아휴 김진곤 과장에게 이야길 들었습니다. 박일홍입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온 거산의 임건호입니다.”
오는 길에 사 온 봉봉 음료수 한 상자를 건네었다.
“아휴 뭘 또 이런걸...”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는데, 박일홍은 괜히 내 눈치를 봤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봉봉 음료수까지 들고 공장에 왔으니 괜히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게 궁금해서 오신 겁니까?”
“그게 우리 쪽 제품을 만드는데, 다리만 떼서 냉장실에 넣어 놓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헌데, 바로 여기서 남포동 오다리를 공급한다는 것을 알았네요. 궁금했던 게 다 풀렸습니다.”
“하하하. 그럼 다행입니다. 몇 년 전부터 남포동 구루마에서 열 프레스로 찍어서 파는 게 유행이라 물량이 모자랄 판입니다. 지금은 가공되어서 나가는 물량까지 줄이고 껍질만 벗겨서 남포동이나 오프라인 가게들로 나가는 물량 위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박일홍 부장이 회사를 보여주었는데, 부산 경남의 여러 업체에서 오다리를 다 들고 오는 가장 큰 업체였음에도 작업장 환경이 영세했다.
오징어 몸통과 달리 다리는 평평하지 않아 껍질을 벗기기 힘들었는데, 그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약품이 든 통에 집어넣었다 빼는 것부터 일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식품 첨가물이라면 모르겠는데, 아예 약품 물에 넣어서 껍질을 불리는 방식의 작업이라 저게 정상적일까 하는 걱정부터 되었다.
껍질을 벗기고 물에 12시간 불려 통통하게 물이 오른 오징어 다리는 그대로 납품을 위해 포장되어 나갔다.
물을 먹고 통통하게 보이게 하려고 넣어두는 물통에도 약품을 쓴 것 같았는데, 알 수는 없었다.
“저렇게 남포동으로 나가는 거 외에는 이렇게 포장되어 전국의 PC방과 학교 매점으로 납품이 되게 됩니다.”
박 부장이 자랑하듯이 포장 라인을 보여주었는데, 이 오다리들은 약품에도 넣지 않고, 물에 불리지도 않은 마른 오다리였다.
“이건 생김새가...”
“아, 이 오징어 다리는 베트남에서 수입이 된 겁니다. 수입 유통상 어쩔 수 없이 말려서 오는 거죠. 그래서 이건 양념만 한 번 더 발라서 바로 포장해서 나갑니다.”
“본래는 이게 주력이셨겠네요.”
“그렇죠. 2000년부터 PC방 덕분에 밥 먹고 살았죠. 지금은 남포동 오다리 때문에 먹고 살고 있고요. 헌데, 올해 오징어가 안 잡혀서 베트남산 수입을 더 늘려야 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물량 수급이 문제군요. 공장 잘 봤습니다. 제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오늘도 남포동에서 사 먹었었거든요.”
“하하하. 그럼 한 봉다리 챙겨 드리겠습니다.”
박일홍 부장은 투명한 비닐에 2kg 이상 되는 흰색의 오다리를 챙겨줬다.
차를 운전해서 남포동으로 가선 PC방에 들어갔다.
오후였음에도 PC방 좌석의 절반 정도가 채워져 있었고, 담배 냄새도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군데군데 공기 청정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담배 냄새를 다 어찌하지는 못했다.
비회원 카드를 받아서 로그인하곤 과자와 컵라면이 쌓여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과자 사이로 해마 실업 공장에서 보았던 오다리가 보였다.
“저 오다리 2개 주세요.”
“네. 비회원이시라 선불입니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드릴게요.”
나름 예쁘게 생긴 여자 알바의 말에 그냥 봉지로 주면 안 되나 생각을 했지만, 일단 자리로 돌아갔다.
오다리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건지 그 굽는 냄새가 슬금슬금 몰려오기 시작했다.
담배 냄새에 풀가동 중이던 공기청정기들도 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킁킁킁. 아놔! 누가 오다리 주문했는가 보네.”
“그러게. 냄새 직이네.”
“담배 냄새를 다 이겨버리는 오징어 냄새. 침 나오네. 하나 묵어야겠다”
“저기요! 저도 오다리 하나 주세요.”
“저도요!”
“맥주는 안 팔아요?”
“야, 맥주는 PC방서 불법이야. 대신 맥콜은 있더라.”
순식간에 4명이 더 추가 주문을 했는데, 단 10분 만에 6개가 판매된 것이었다.
오다리를 주문했을 때 바로 오다리를 주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냄새로 다른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시키는 전략인 것이었다.
“헐.”
여자 아르바이트가 접시에 담아서 오다리를 가져다줬는데, 그 비주얼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다리를 포장 비닐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준 것이었다.
열에 쪼그라든 비닐은 오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데, 형태가 변형되며 비닐 포장에서 나왔을 환경 호르몬이 오다리에 첨가되었을 것 같았다.
해마 실업의 특성상 포장 비닐에 친환경 제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안 죽는다는 생각에 뜯어 먹어보니 열로 딱딱하게 굳어 버린 다리 끄트머리의 실감이 나름 진미였다.
아까 사람들 말처럼 맥주는 PC방서 못 먹으니 맥콜과 먹었는데, 오징어 특유의 육질 감에 양념 맛까지 있었기에 PC방에서 주전부리로 먹기에 딱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징어 몸통처럼 가공을 못하더라도 오징어 다리를 다르게 가공해 PC방에 납품한다면 매출이 꽤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거래처인 해마 실업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굶어 죽을 판인데, 다른 업체의 물건들까지 다 받아와서 장사하는 곳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먼저, 우리가 살아야 했다.
PC방에 버터 바른 오징어와 오다리는 물론, 다른 주전부리류도 유통을 하면 매출 증대가 될 것 같았다.
전국에 1만 개 이상이 있다고 하니, 새로운 판로였다.
물론, 유통 관리를 위해서는 인력이 들어가야 했지만, PC방과 학교 매점 전문 유통사와 연계를 하면 마진은 작더라도 편할 터였다.
뭔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사무실에 들어오니, 이창모 부장은 계속 새로고침을 눌러보며 구내식당에서 팔리는 정산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부장님. 내일부터는 좀 나가십시오.”
***
이창모 부장을 강제로 퇴근시키고 건호도 퇴근하려고 계단으로 가는데, 위에서 이서가 내려오고 있었다.
“김이서 씨도 퇴근?”
“아! 차장님! 네 퇴근하는 길이에요.”
“금요일인데, 친구랑 약속 있는 거 아냐?”
“아니요. 집에 가는데요.”
“진짜?”
“네. 진짜 약속 없어요.”
“오케이 그럼, 약속 없다니깐 알바 하나만 해 주면 안 될까?”
“알바요? 무슨 알바인가요?”
황당해하는 이서를 회사 로비에 있는 테이블에 앉히고는 서류를 보여줬다.
“자 이거야. PC방 네다섯 군데 가서 이걸 좀 조사해줘.”
“음. PC방에도 저런 주전부리 진열대를 놓으시려고 시장조사하시는 거에요?”
“여윽시! 내가 야! 하면 넌 바로 예! 로 알아듣네. 센스 좋아. 이거 일요일까지 될까?”
“음. 네 일요일 저녁까지 드릴게요.”
“땡큐 고마워. 내가 줄 게 뭐가 있더라. 그래, 이거로 알바비 쌤쌤이다.”
건호는 동규에게 받은 1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이서에게 건네었다.
동규가 영업 온 제약회사에서 받은 건데, 자기는 쓸 일 없다고 내게 준거였다.
“이거로 된 거다 오케이?”
“차장님. 이런 거 안 주셔도 그냥 해드릴 수 있어요.”
“공짜로 일시키면 안 되지. 그럼 부탁해.”
이서는 멀어져 가는 건호를 보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
임건호의 건의로 월요일 주간회의에 공장 대표로 김진곤 과장이 참석을 했다.
“제가 돌아다니며, 여러 가질 관찰하다 보니 일 처리가 너무 루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보였습니다. 특히나, 의욕적이지 않은 판매 루트 개척이 가장 문제였습니다. 이 자료를 봐주십시오.”
부장과 차장, 과장, 대리까지 받아든 서류에는 부산시 15개 구 20개의 PC방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PC방에서 현재 팔리고 있는 오징어 몸통 제품은 6종, 다리 제품은 4종이 있었습니다. 몸통 제품의 경우에는 뚜렷하게 점유율을 가져가는 제품이 없었습니다.”
건호는 몸통 오징어 6종과 다리 제품 4종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해마 실업에서 나오는 ‘해수 오다리’를 손에 들었다.
“다리 제품의 경우에는 우리 거래처인 해마 실업이 7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다리 제품은 압도적이네. 근데, 이걸 언제 다 준비한 거야?”
이창모 부장은 도표화된 데이터를 보고 놀랐는데, 사실 건호도 이서에게 데이터를 받았을 때 놀랐었다.
실제 PC방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정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놀라야 하는 부분은 이런 디테일한 조사 자료가 아니라, PC방 납품 시장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는 거래처를 우리가 그냥 키워주고 있었다는 겁니다.”
“저기, 차장님. 그럼 이 해마 실업을 잡자는 말입니까?”
공장에서 불러올린 김진곤 과장은 괜히 금요일날 임건호 차장을 해마 실업에 소개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잡아야지요. 우리 회사는 대기업입니다. 아무리 우리 부서가 매출이 작고 힘이 없다고 해도 대기업입니다. 우리는 대기업의 탐욕을 너무 보여주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는 대기업답게 양아치 짓 좀 했으면 합니다.”
*
[작가의 말]
실제 2008년까지만 해도 오징어 1마리에 1400원대 가격으로 수입할 필요가 없는 수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어획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며 지금은 비쌀 때는 1마리에 1만 원까지도 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시중의 가공 오징어는 대부분이 수입산입니다.
칠레 앞바다에서 나는 홈볼트, 대왕오징어를 들여와서 작은 한 마리 오징어처럼 모양을 가공해서 제품화시키고 있습니다.
즉 안주용으로 파는 네모 반듯한 모양의 버터구이 오징어는 1마리가 아닌, 칠레산 오징어의 조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