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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21화 (21/203)

021. 열정 부장과 직원들.

“내가 말이야 신입사원 때 버터 바른 오징어를 처음 만들었었다고. 그때는 공장이 진역 옆에 수정동에 있었다고. 그땐 내가 공장배치도도 직접 그리고 했거든.”

이창모 부장은 신이 나서 자신이 신입사원일 때 어떻게 버터 바른 오징어를 만들고 유통을 하고 했는지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장 사무실의 직원들은 이런 일이 흔한 건지 알아서 마실 물과 주전부리를 가져다주었는데, 바로 앞에서 듣는 나는 곤혹이었다.

“내가 그 CT그룹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왔던 사람이야. 물론, 어림없다고 거부를 했었지. 난 내가 만든 상품이랑 공장을 지키고 싶었거든. 그런 포부가 있었다는 말이야.”

열정적으로 이야길 하는 이창모 부장은 옛날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직장인이었다.

자신의 삶과 회사의 삶을 동일시하는 뼈속까지 봉급쟁이인 직장인이었다.

물론, 자신의 삶에서 회사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되겠지만, 이때의 직장인들은 이런 삶이 당연한 삶이었고, 모범적인 직장인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상품 판매 관리부가 회사 내에서 묫자리 부서가 되어 버렸다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아예 우리 부서로 오지도 않고, 좌천되거나 진짜 퇴사 직전에 밀려서 오는 사람들만이 오게 되었다고!”

이창모 부장은 술도 안 먹었는데, 술에 취한 것처럼 큰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부서는 직원 짬처리 부서가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다.

“아유 부장님. 그러다 혈압 올라오십니다. 이거 드시고 천천히 이야기하세요.”

과장 김진곤이라는 명찰을 단 중년의 남자가 홍삼 음료수를 까주자 그걸 또 낼름 마셨다.

“휴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 그래, 짬처리 부서가 되고 말았다고. 그래서 내가 이걸 바꿔 보려고 했는데, 안되더란 말이야. 어떻게든 좋은 사람들이 오게 만들기 위해 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열변을 토하다 다시 진중해진 이창모 부장은 비밀이라는 듯이 목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신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그렇지 않아도, 버터 바른 오징어나 육미 육포 이후로는 일반 사람들이 아는 것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게 문제야. 나온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버터 바른 오징어 말고는 매출이 나오는 게 없다는 말. 자네도 이미 들을 만큼 듣고 왔구만?”

“네. 다른 팀장님이나 차장님들이 그렇게 이야길 하시더군요.”

“그런데 이게 회사의 문제이기도 해. 새로운 먹거리 상품을 만들려고 해도 맡길 직원이 없어. 내가 신입사원일 때는 말이야, 수산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조직을 만든다고 했을 때 직원들을 다 수산 대학교나 해양 대학교 출신이었어. 헌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출신이 하나도 없어. 물론, 수산대가 합쳐져서 없어진 것도 있지만, 하다못해 축산업이나 농업 전공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다고.”

이창모 부장의 이야길 들어보니 이건 아마도, 회사가 커지면서 공채 제도를 도입하면서 생긴 문제 같았다.

회사가 작을 때는 그 부문에 맞는 전공자 위주로 상시 채용으로 사람을 뽑았지만, 회사가 그룹이 되며 공채 시스템을 가지게 되자, 스펙이 좋은 사람들만 뽑게 된 것이었다.

물론, 공채 규모를 정할 때 사업체별로 필요 TO에 따른 인원을 신청하고 거기에 맞게 사람을 뽑아 달라고 하지만, 작은 사업부의 TO에 딱 맞는 인력을 알맞게 구해주지는 않았다.

관련 임원이나 부장이 힘이 있다면 강력하게 그런 전공의 사람을 뽑아 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어필이 불가능하고 서류만으로 TO 신청을 하는 거라면 미미한 매출답게 무시될 터였다.

“농수산물에서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기본을 가진 사람이 없어. 1년 정도를 가르치면 다른 부서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퇴사를 해버리니 뭐를 할 수가 있어야지.”

열변을 토하던 이창모 부장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런데, 전공자인 자네야 온 거야. 식품경제학과! 전공자가 왔다는 것만 해도 좋은데, 사내에 평판도 좋고, 능력이 좋아서 성과 승진한 차장이 왔으니 내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은근히 이야길 듣지 않고 있던 공장 사무실 사람들도 성과 승진한 인재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네는 잡다한 업무 같은 거 하지 마. 아예 내가 잡다한 일 할 여직원까지 붙여 줄 테니깐. 자네가 할 일은 버터 바른 오징어처럼 히트 상품을 하나 만들어 주는 거야. 우리 부서가 다시 날아오를 수 있게 자네가 히트 상품을 하나 만들어 주면 되는 거야.”

이창모 부장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떠서 기대한다는 눈빛을 보내었는데, 이게 참으로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바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다.

공장 사무실 직원들도 뭔가 기대한다는 눈빛을 보내는데, 햐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부장님 저는 경제 쪽으로 더 전공을 많이 해서요.”

“그래도 식품 쪽으로 1, 2학년 때 식품 자원학이나, 농식품 유통론 같은 전공 수업은 듣고 했을 거 아니야. 전공자면 다르다고. 거기다 향토 고대 출신이잖아. 이건 믿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전공 수업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럼 된 거지. 난 자네만 믿는다니깐.”

뭔가 5개월쯤 쉬다가 다시 불려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괜히 용빼는 재주라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

“자 이쪽은 김승재 대리. 이쪽은 이신애 사원. 둘 다 임 차장 직속이니깐 자잘한 건 신애 씨에게 다 시키고 힘쓰는 건 김 대리에게 시키면 될 거야.”

힘쓰는 일을 시키라고 했던 김승재 대리는 이제 32살이라고 했는데, 머리가 듬성듬성 빠진 것이 괜히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김승재 대리 옆에 선 이신애는 키가 170cm는 되는 거 같았는데, 단화를 신었음에도 김승재 대리보다 키가 컸고, 얼굴도 은근히 길어 말상이었다.

“김해 쪽으로 매장을 한번 돌아볼까 하는데, 이신애 씨도 매장 돌아봤어요?”

“저는 사무라서 매장 외근 나가본 적이 없는데요.”

“나도 처음이니 세 명이 같이 돌아봅시다.”

“네에...”

이신애는 밖으로 돌아야 한다는 소리에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뭔가 의욕이 없어 보였다.

부서에 배정된 차는 경차였기에 내 차로 이동을 하는데, 김승재가 내비게이션을 로치 마트로 찍었다.

“김해에서는 코스트코가 가장 크지 않나? 거기부터 가지.”

“그게, 작년까지는 저희가 납품을 했는데, 가격 문제로 올해부터 납품을 안 하고 있습니다.”

“응? 아까 부서 근황 보고서에는 납품된다고 되어 있던데.”

“그게 작년 근황 보고서라 아직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다는 김승재의 말에 맥이 풀렸다.

지금이 연초인 1, 2월이면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다는 말을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월이었다.

연도가 바뀌다 못해 3달 후에는 내년이 되는 4/4분기였다.

그런데, 근황 보고서가 작년 거라고 하니 어이가 없어서 맥이 풀렸다.

일단은 참았다.

로치 마트 김해점에 차를 대고 올라가는데,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김승재를 막았다.

“사무실에 가서 이야길 하더라도 우리 상품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알아야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매장부터 한번 보고 가죠.”

“아. 네네.”

김승재를 앞세우고 가는데, 느낌이 싸했다.

먼저 주류코너로 가서 인근을 두리번거렸고, 우리 제품이 없자, 스낵 코너로 가서는 우리 제품을 찾았다.

자기가 관리하는 상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었다.

화를 내려다가 얼마나 더 어리버리 까는지 두고 볼 요량으로 아무 말 없이 따라다녔다.

“어, 이상하다 분명 전에는 주류코너 옆에 안주 상품 있는 곳에 있었는데...”

무안한지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데,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려다 참았다.

“그 ‘전’이 언젭니까?”

“그게 한 삼 개월, 아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그땐 분명히 저기에 있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내 눈치를 보는데, 분명 석 달은 넘은 거 같았다.

“일단 우리 제품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아봅시다. 주류코너, 스낵 코너에 없으면 어디에 있겠어요? 김승재 씨 대답해 보세요.”

“그게...저...계산대 입구에 있는 프로모션 존에 있을 것도 같은데요.”

자신 없어 하는 모습에 또 속아 주는 척하며 움직였다.

마트 계산대 진입 코너에는 행사 상품들이나 껌, 사탕, 젤리, 건전지 같은 소포장 제품들이 놓이게 되는데, 특별 할인 행사나 묶음 상품의 경우에는 기간별로 프로모션에 따라 진열이 되곤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우리 거산랜드의 제품은 없었다.

김승재는 여기에도 없자 당황했다.

‘아니, 시바 관리사무실로 안 가고 매장으로 온 게 우리 상품이 없는 거 알고 고의로 이러는 거 아냐.’

신입사원 때 사수에게 전달받은 이후 5년 넘게 혼자서 관리를 했지, 이렇게 사무실 사람들과 매장에 나온 적이 없다 보니 괜히 임 차장이 자신에게 멕이기 위해서 이러는 것 같았다.

“앗 저기 있어요!”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이신애가 우리 제품들을 찾았는데, 건어물 코너에 있었다.

버터 바른 오징어와 다른 안주류들이 걸려있었다.

“하하하. 저기에 있었네요. 건어물인데 왜 여기 생각을 못 했을까요.”

건어물 코너에서도 한쪽 모서리에 있었는데, 먼저 보았던 주류 판매대 옆과 비교가 해봤다.

주류 판매대의 안주 모음은 POP UP 형태로 시선이 제대로 끌리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건어물 코너에는 편의점에서나 팔 것 같은 종이에 스탬플러로 박혀 있었다.

물론, 고객이 구매해간 자국이 없었다.

“김승재 씨는 우리 제품이 언제부터 주류코너에서 여기로 옮겨졌는지 파악해서 보고하세요. 다음 마트 가 봅시다.”

“마트 사무실은 안 들르시구요?”

“지금 여기 꼬라지 보고도 사무실에 들를 생각이 납니까? 그리고 들러서 뭘 이야기 하려구요? 뭐 특별히 이야기할 거라도 있어요?”

“그게 특별히 할 건 없긴 하지만...”

“다음 마트 갑시다.”

그렇게 다른 매장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는데, 손을 돌려서 문자를 보내려는 김승재를 말렸다.

“지금 거기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뭐 하려고요. 매장에 가서 우리 상품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보려는 겁니다. 문자 보내지 마세요.”

“아. 예예.”

처음의 서글서글한 내 표정이 굳었고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김승재도 쫄았는지 말이 없었고, 뒷자리의 이신애도 불안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로치 마트에서도 우리 제품은 주류코너 옆이나 계산대의 프로모션 존이 아닌 건어물 한쪽에 불량식품처럼 걸려있었다.

“차, 차장님도 나중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버터 바른 오징어는 대형 마트보다는 편의점같이 캔 맥주가 많이 팔리는 곳에서 주로 매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편의점 매출이 당연히 더 많겠지요. 매장 개수가 많으니깐요. 그런데, 매출이 작다고 아예 신경도 안 쓰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까?”

“그...그건 아닙니다.”

“우리 소관인 김해 말고 다른 지역도 마트 관리가 이렇습니까?”

“아, 그게 저도 다른 마트는 안 가봐서.”

“김승재 씨 집이 어디지요?”

“연산동입니다.”

“그럼 연산동 지 마트 한번 가 봅시다. 집 근처 마트는 자주 갈 거 아니에요. 거기는 우리 제품이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압니까?”

“그게, 죄송합니다.”

“하하 참. 부장님은 열정이 흘러넘쳐서 문제인데, 직원들은 아르바이트보다도 못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김승재를 보다 보니 한숨만이 나왔다.

“이신애 씨는 집이 어딥니까? 집 근처 마트 자주 가죠?”

“전 집 알려주기 싫은데요. 공과 사는 구분했으면 좋겠는데요.”

아, 씨바.

4과로 당장 돌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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