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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9화 (19/203)

019. 모난 놈이 정 맞는다.

돈을 좀 편하게 쓸 요량으로 장학 재단을 알아보았는데, 장학 재단도 그 자본금을 어떻게 충당하는지가 재단 설립에 가장 중요했다.

최소 4~5억의 출연금이 있어야 했는데, 이 출연금도 출처를 증명해야 했고, 고정적인 수익금이 난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즉, 내가 돈을 태우고 꼼수로 만든 임대 법인의 수익이 있으면 설립은 가능했다.

문제는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그 자금의 출처를 명확하게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로또에 당첨된 것 모르게 돈을 쓸 수 있고, 이리저리 벌어들인 돈을 돈세탁하기 위해 장학 재단을 설립하려고 했는데, 그 설립에는 명확한 증명이 필요한 것이었다.

설립하는 거기서부터 진입장벽이 있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꼼수를 쓰면 될 것도 같은데, 그렇게 되면 또 법을 잘 아는 정진이를 끼워야 했다.

가족이나 지인들 모르게 돈을 가져다 쓰기 위해 만드는 건데 거기에도 지인이 끼게 되니 답이 없었다.

햐. 자금출처 모르게 큰돈 쓰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평상시 나라의 조세 제도가 성긴 그물이라 다 빠져나간다고 욕을 했는데, 막상 주변 지인이나 사람들 모르게 돈을 쓰려고 하니 그 자금출처가 다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결국, 쌓아 둔 돈에서 목돈을 꺼내 쓸 때 그 돈 어디서 났냐는 추궁에 그럴듯한 핑계를 댈 방법이 잘 없었다.

정진이에게만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지만, 수십 년 우정도 돈 때문에 깨어지고 원수가 되었다는 사연은 흔한 사연이었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돈 때문에 사달이 나는데, 친구는 오죽할까.

그저 지금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로또 당첨 사실의 비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결국, 목돈을 쓰고도 출처 의심을 가장 안 받는 좋은 방법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건호가 자금출처를 의심받지 않을 꼼수를 궁리하는 동안 건호의 이름이 거론되는 곳이 있었다.

“인천 송도에서 오픈한 3곳의 구내식당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일자리도 돌아가고 있고?”

“네. 애초에 그 지역 구청의 사회복지사와 면담 후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것으로 전환을 했습니다. 가산점 작업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좋군.”

김독수 전무는 정상적인 보고와 더불어 뒤로 받는 보고도 핸드폰으로 받았다.

인천 송도의 구내식당과 빌딩 사이에 끼워둔 임대 법인에서도 수익이 입금되었다는 보고였다.

‘그놈이 그냥 PC만 따지는 또라이 녀석인 줄 알았는데, 능력은 있구만. 뒷주머니 차는 요령도 잘 알고 있고. 키워 줄 만해.’

“김비서. 영업직 한정으로 성과달성 승진제도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승진 조건 한번 확인해 봐.”

“허문도 팀장을 임원으로 올리실 겁니까?”

“아니, 문도는 아직이야 아직도 물러.”

“그러면...”

“이 BM을 처음 기획한 임건호 과장을 승진시켜줘야겠어. 조건이 맞는지 한번 알아보고 차장 달게 해줘.”

“네. 확인하고 처리하겠습니다.”

김독수 전무의 비서가 인사과에 들러 임건호 과장의 성과달성 승진제도를 알아보고 갔다는 사실은 자연스레 외식 사업부의 수장인 이재영 상무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이놈이 그 비즈니스 빌딩 구내식당 기획한 놈이야?”

“네. 최초 입안자였고, 성과달성 승진제도에 따르면 차장 승진 조건을 만족합니다.”

“근데, 이놈 우리 학교 놈이잖아. 왜 줄은 다른 데 가서 서 있는 건데? 이놈 본사에서 열외였어?”

“아닙니다. 동문 모임에서도 상무님하고 다 만나고 했습니다.”

“근데 왜 독사한테 가 있느냐고?”

인사과의 권영두 과장은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건호가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 이야기를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 정치 아예 신경을 안 쓰고 내려갔는데, 독사가 얼떨결에 잡은 거네. 운 좋은 놈. 그러면, 이놈 다시 본사로 데리고 올 방법은?”

“응원단 후배이기도 하니 제가 한번 만나보고 하겠습니다. 헌데, 어머니 병 때문에 내려간 것이라 본사로 발령낸다고 해도 올라올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카드이긴 한데, 우린 쓸 수 없는 카드라는 거네. 계륵이구만 이거.”

이재영 상무는 이 건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 건은 이렇게 가자. 우선은 말이지...”

***

“네 권 선배님 전화 받았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갑작스레 걸려온 인사과 권영두 과장의 전화에 건호는 기쁘게 받았다.

어찌 보면 권영두 과장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건호의 사정을 봐줘서 본래 TO가 아님에도 부산에 꽂아 주었고, 덕분에 이삿날 아침에 로또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보내준 비싼 술은 진짜 구경만 잘하고 있다. 언제 서울 올라오냐 그때 깔려고 아끼고 있다.”

“하하하. 올라가야 하는데, 일이 많네요. 다음에도 또 보내드릴 테니까 한 병 까십시오. 그거 얼마 한다고요.”

“짜식이. 부산 가더니 배포가 커졌네. 배포가 커질 만큼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깐 내가 오늘 전화를 한 거야.”

“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래. 인사과에서 좋은 일 있다고 전화하면 그게 무슨 일이겠냐?”

권영두 선배의 말에 승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인사철이 아니었다.

뜬금없이 가을에 승진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에이. 가을에 무슨 승진입니까? 술이 드시고 싶으시면 그냥 이야길 하시지, 승진 턱 말고도 그냥 한턱내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냐 인마. 진짜야. 영업담당자에게만 적용되는 성과달성 승진제도가 있는데, 그 건 성과만 달성하면 시기 상관없이 승진시켜 주는 거야. 너 승진시켜 달라고 김독수 전무 측에서 문의가 들어 왔었어.”

“에? 그게 진짭니까?”

“그래. 내가 왜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냐. 너 진짜 차장 승진될 거야. 아차, 이제는 임 차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네. 네가 나보다 더 빨리 차장이 되다니.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우울한 소식이었네.”

“아이고 선배님 또 왜 그러십니까.”

“여튼 임 차장님 축하합니다. 동기 중에서 가장 빠른 승진이야. 이미 조건 되는 거 다 확인했고, 서류도 올렸으니깐 다음 주에 통보 갈 거다.”

차장으로 승진한다는 말을 인사과 선배에게 직접 듣게 되자 기쁘긴 했다.

동기 중에서는 가장 빠른 승진이라는 말에 왠지 어깨에 뽕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금세 이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장으로 승진이 되면 지금 맡고 있는 4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4과의 보고를 받긴 하겠지만, 직접 관리하는 것과 보고를 받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특히나, 월세를 빼먹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3과와 4과가 합쳐질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차장 승진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 중이던 권영두 선배에겐 기쁘다고 이야길 했지만, 걱정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김독수 전무는 임건호의 승진 건을 보고 받곤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차장으로 승진은 하되 다른 부서인 판매 관리부로 발령을 낸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멀쩡히 사업부에 있는 애를 빼앗기게 생겼으니 바로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전무님. 어쩔 수가 없는...”

“뭐가 어쩔 수 없어? 부산으로 와서 6개월 만에 성과를 냈고 지금 인천과 경기도에서 신규 매출을 만들어 내는 BM을 기획한 놈인데, 이놈을 왜 판매관리로 보내냐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지금 자리에서 승진을 시켜줘야 더 큰 성과를 내는 거잖아. 안 그래?”

“네. 전무님의 말이 맞습니다. 헌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있다고 사내 의견이 들어왔습니다.”

“사내 의견? 무슨 사내 의견? 언제는 승진에 사내 의견 듣고 승진시켰어?”

“그렇지는 않은데, 이게 영업부에 한정된 승진제도이지 않습니까? 성과를 냈는데도 승진을 시켜주지 않으면 영업직의 특징상 이직을 해버리는 문제 때문에 생긴 포상승진 제도이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임건호 과장이 능력이 좋고, 차장으로 올려준다면 전무님 말처럼 영업 성과를 더 끌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한데, 그 영업한 영업처 들고 이직을 해버리는 것도 저희는 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타 부서로 발령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어디서 이직한다는 첩보라도 들었다는 거야 뭐야? 근거 가지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전무님 화만 내시지 마시고, 저희 입장도 생각해 주십시오. 개척 영업이란 게 그 특징상 사람 대 사람으로 영업이 시작되고, 그 사람과의 접점을 계속 유지되는 것이 기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담당자가 이직하거나 독립을 하게 되면 그 거래처도 그 영업맨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희 인사부는 그런 리스크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독수는 인사부장인 이재오의 말을 듣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화를 낼 꺼리가 애매했다.

인사부에서는 자기들의 인사원칙에 근거하여 이렇게 발령을 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기업에서는 이런 영업맨의 거래처 핸들링을 최소화하기 위해 1년이 지나면 담당자를 교체하거나 타 부서 발령을 내서 거래처를 개인이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가장 보편적인 예는 한 달에 한 번씩 영업맨들이 받은 명함을 복사해서 데이터베이스화시키는 것이었다.

거래처와의 연락처 독점을 막기 위한 기업의 최소한의 방법이었다.

인사팀에서도 그런 영업맨의 거래처 핸들링을 방지하고자 승진을 시키고 다른 부서로 발령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런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케이스를 김독수 전무는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왜 이제까지 거의 적용되지 않던 인사 발령 논리가 임건호에게 적용되었는지 생각하니 이것도 누군가의 입김이 닿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들었다는 그 사내 의견이 이재영 상무의 의견이야?”

“크흠. 제가 그렇게까지 다 알려 드리면 또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전무님.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재영이 이 개새끼가 이렇게 태클을 걸어?”

수화기를 통해 쏟아지는 욕을 이재오 부장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재영 상무와 만나 이야길 했을 때 이 정도 욕을 들을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장도 알다시피 솔직히 이제까지 영업부에서 승승장구하던 친구들이 다 어떻게 되었어? 알잖아. 다 독립하는 거.”

“그렇지요.”

“성과가 좋고, 개인이 핸들링할 게 많다면 그만큼 독립하거나 이직에 대한 유혹이 많을 수밖에 없어. 돈 싫어하는 놈 있어? 독립하면 더 많이 버는데 봉급쟁이 할 거야? 차장 달아주고 영업 잘한다고 띄어주면 결국 자기 영업권 들고 독립한다고. 그게 영업인 거 알잖아.”

“맞습니다. 그래서 인사부에서 만든 것이 영업직 한정 승진제도 아니겠습니까. 기 살려주고 해서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고 만든 제도이지요.”

“그러니깐 기는 확실히 살려주자고 동기 중에서 가장 빠른 승진을 시켜주고, 영업 쪽에서 빼서 다른 쪽으로 보내자고. 그게 회사로서는 좋지 않겠어?”

“네. 상무님. 그게 회사로서는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재오 인사부장은 자신이 김독수 전무에게 욕을 듣는 것이 개인 파벌의 힘을 빼고 회사에 힘을 실어주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임건호에 대한 인사공고가 인트라 넷에 공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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