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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5화 (15/203)

015. 고래 싸움.

“네. 그쪽에서 한 명을 채용 좀 해달라고 해서 말입니다.”

정진이가 애들이 제대로 자활할 수 있게 아이들을 고용 좀 해달라고 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 같이 일을 해본 김이서 의 능력이 탐이 나기도 했다.

미성년자 약취유인?

정확하게 그게 무슨 범죄인지는 몰라도, 한 달간 일을 해본 결과 같이 카운팅을 하는 고1 남자애들 세 명을 잘 컨트롤 했고, 호텔 경영과 애들이 투입되어서 방문 리서치를 할 때도 설문 데이터를 받아 정리해서 내게 보내주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호텔 경영과의 언니, 오빠들에게 밀리지 않고 기싸움하며 출퇴근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을 봤을 때는 확실히 산전수전을 겪은 독종 같은 느낌도 있었다.

이 구내식당 일도, 실제 매장에서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하는 사람은 외주 하청 인력이 하는 것이었고, 그런 인력 관리에 이서의 이런 독종 같은 기질이 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외주인력 관리를 잘하는 이서를 데려오고 싶은 것이었다.

“아직 도장도 제대로 찍은 것도 아닌데, 벌써 사람 꽂아 달라는 게 좀 지랄 같네.”

허문도 팀장은 구의원, 시의원 같은 쩌리 의원들부터, 위탁받은 기업체 임원의 친인척이라고 고용 좀 해달라는 일까지 비일비재하다고 계속 오냐오냐하면 안 된다고 강조를 했다.

“이 바닥 일이라는 게,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야. 그리고, 한국인은 누군가가 잘되면 친인척을 그 주위에 꽂아 주는 것이 친 혈족 간의 미덕이라고 생각해. 이거 정말 없어져야 되는 문화야.”

문제가 많아서 없어져야 하는 문화라고는 하지만, 그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도 지인 추천에 의한 입사는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추천으로 입사를 했기에 추천해준 사람의 체면 때문이라도 이직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서구권에서는 지인 추천 채용 케이스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뭐, 이력서에 종교나 인종을 확인할 수 없게 증명사진도 못 붙이게 하는 것이 그 동네의 채용방식이다 보니 그 반작용으로 늘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처음은 어쩔 수 없이 들어주더라도, 임 과장이 그쪽 관리 잘해야 할 거야. 버릇없는 손자가 할아버지 상투 잡는 거야.”

“네. 이번에 꽂아 주면서 다음은 절대 없다고 확답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인사과에 내가 이야기해 둘 테니까 그 꽂아야 되는 사람 이력서 따로 인사과에 가져다줘.”

“네 감사합니다.”

“준비하는 동안 일단 더 스타 빌딩 임차 서류까지 빨리 진행하고 바로 설비공사 들어갈 수 있게 일정표 만들어서 주중 회의에 올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더 스타 빌딩과의 계약이 끝났고, 내일부터 설비공사가 들어가기로 했기에 본사 설비지원팀 과장과 일정 협의도 원활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일주일 전부터 빌딩 출입구에 현수막을 달아주고, 주차장 내벽에 홍보물과 외부 베너를 설치할 수 있는 협조도 얻어왔다.

일이 잘 풀리다 보니 기분 좋게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분위가 뭔가 싸했다.

“민욱 씨 무슨 일 있었어?”

“네. 이쪽으로.”

김민욱이 눈치를 보며 커피를 가져오더니 사무실 창가 끝으로 움직여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리가 났습니다. 외식 사업부에서 아주 난리를 쳤습니다.”

“외식 사업부에서?”

“네. 이재영 상무가 김독수 전무를 중역 회의에서 대 놓고 깎아내리고, 자기들 영역 침범하지 말라고 새로 만드는 전국 영업팀은 있으면 안 된다고 난리를 쳤답니다.”

“헐.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절차상으로 다른 부동산 업체가 끼어서 공간을 임차해서 재임대주는 것인데 그게 왜 외식 사업부의 일이냐고 김독수 전무님도 들고 일어났답니다.”

“결론은 안 났고? 설마 일이 자빠지고 한 건 아니지?”

“허 팀장님 말로는 서울 본사에서도 과장님의 분석 자료를 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진행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답니다. 다만, 이 건을 어느 부서에서 맡아야 하는지 하는 걸로 임원들끼리도 말이 많습니다.”

“바로 들어가기만 하면 수익이 나오니 서로 자기 파벌 밑에 두려고 하는 거겠지.”

중역회의에서 난리가 났다지만, 일단, 일이 자빠지지 않고, 추진된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이게 외식 사업부 소관이라고 그쪽으로 넘어가 버리면, 내 자리까지도 없어질 수 있었다.

“임 과장님! 팀장님이 전무님 방으로 어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

김독수 전무의 방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게 싸움에 져서 쭈그리고 있는 그런 눅눅한 분위기가 아니라 독사가 독니를 드러내고 공격하기 전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그런 살벌한 느낌의 가라앉음이었다.

“본사에서 상품 기획팀에 있었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이미 이력에 다 나와 있는 것을 물어보는 이유는 뻔했다.

확인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서지?

“이 기획서 외부로 돌린 적 있어? 그 임대 법인 쪽이나 본사 상품 기획팀이나.”

“전혀 없습니다. 임대 법인 쪽은 물론이고, 본사 쪽은 부산에 내려온 이후 아예 연락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거 봐봐.”

김독수 전무가 밀어주는 서류를 보니 내가 올린 기획서의 내용과 사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리고, 서류의 뒷부분에는 외식 사업부가 이 사업을 맡아야 하는 이유가 잔뜩 쓰여 있었다.

“우리 데이터가 그쪽 팀으로 넘어간 거야. 유출이 되었다고 봐야지. 내 라인에 이런 개 좃 같은 쥐새끼가 있다는 거야.”

독사라는 별명답게 김독수 전무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이 기획서를 외부로 유출한 게 아닌가 의심하는 거였다.

문서를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 내가 리서치한 자료가 나와 있었는데, 도표나 그래프는 다른 양식이었다.

하지만, 직접 리서치를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호텔 경영과 애들과 카운팅 하는 아이들의 사진은 그대로였다.

확실히 유출된 것이 맞았다.

“전무님. 이거 보십시오. KNM의 직원 숫자가 제가 올린 초기 기획서 버전입니다.”

김독수 전무에게 지적 받아 이수길 차장과 허문도 팀장이 수치를 수정했었는데, 외식 사업부의 기획서에는 KNM 방송국의 정규직 숫자로 표기가 되어있었다.

그제야 사진도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 파일 데이터로 출력을 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도표나 그래프는 직접 만들 수 있겠지만, 아이들 사진은 내가 만든 이미지를 그대로 쓴 것이었고, 다른 점이 보였다.

“여기 사진들을 보십시오. 수치표나 그래프는 기획서를 보고 만들 수 있지만, 사진은 그러지 못하니 그대로 쓴 거 같습니다. 여기 이 부분 보시면 열화현상이라고 하는 깍두기 사각형 모양으로 사진 이미지가 뭉개진 게 있습니다.”

김독수 전무는 내가 올린 오리지널 기획서를 들고 와 비교를 했다.

리서치 중인 호델 경영 학과 학생을 찍은 사진의 선명도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제가 오리지널 기획서를 3부를 출력해서 한 부는 제가 가지고, 나머지 2부는 팀장님과 차장님께 드렸었습니다. 그 3부 중 하나를 컬러 복사해간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들어서 두 명에게만 보여주었고, 그 이후 수정 작업을 한 기획서는 전국 특판팀 팀장에게만 보여주었을 터였다.

수치가 수정된 기획서였다면 특판팀을 의심해 볼 수 있겠지만, 오리지널의 잘못된 수치가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니 이 기획서가 식품 사업부 내에서 유출된 것이라는 뜻이었다.

“뿌락치가 있네. 뿌락치가. 만든 사람은 절대 서류를 돌린 적이 없다고 하고. 기획서는 복사가 되어 그쪽으로 넘어갔네.”

프락치를 된 발음으로 중얼거리던 김전무는 허문도 팀장을 쳐다봤다.

“외식 사업부의 뿌락치가 누구일까?”

“죄, 죄송합니다. 내부 단속을 새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속? 단속한다고 되면, 뿌락치가 왜 있겠어? 그냥 사무실에 CCTV 달고, 개인 금고 니 돈으로 사서 설치해. 서류우! 데이터 관리이! 똑바로 하란 말이야아!”

처음에는 조용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말끝으로 갈수록 김독수가 악을 쓰며 소릴 질러댔다.

“시정하겠습니다.”

허문도 팀장은 얼굴이 벌게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이수길이한테 수치 수정한 기획서 들고 오라고 하고, 둘 다 꺼져.”

***

“기획서를 보고 책상 위에 두는 게 아니었는데.”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오는데, 허문도 팀장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아닙니다. 팀장님. 도둑 한 놈을 열 사람이 못 막는 겁니다. 제 책상이나 이 차장 책상에서 누가 복사해 간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 믿을 수 없는 팀원을 둔 내 탓이지.”

자책하며 자리로 돌아가는 허문도 팀장을 보니 도대체 어떤 개새끼가 유출을 했는지 때려죽이고 싶었다.

우선 막내인 김민욱이 내 밑으로 온 이후 기획서 파일을 주긴 했었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게 되니 알아두라고 준 것이었다.

하지만, 김민욱은 아닐 것 같았다.

아무리 개념 없는 1년 차 신입사원이라도 부서 내부의 문서를 타 부서에 줄 생각은 못 할 터였다.

그 외에는 3과의 권영일 과장과 장민호 대리가 의심이 되었지만, 증거도 없었고, 탐정 짓을 해서 밝혀낼 자신도 없었다.

다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복사해 간 것이라면 앞으로도 이런 훼방을 또 하려고 할 터였다.

신뢰하지 못하는 아군은 적군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 뭘 하든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내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

인사과로 움직여 계약직 직원을 빨리 처리해 달라고 졸라대었다.

***

“진짜 옷 사주는 거예요?”

“그래 정진이 아저씨랑 같이 약속했잖아.”

“오예!”

남자아이들은 유원지처럼 잘 꾸며진 아울렛에서 옷을 사 입는다고 좋아했는데, 고등학생인데도 저리 좋아할까 싶었다.

“저 과장님. 어제 인사팀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감사합니다. 저 진짜 열심히 잘할게요.”

“이서 네가 일을 잘하니깐 내가 추천한 거야. 나름 컴퓨터 활용이랑 자격증도 있었고. 회사에서도 지금처럼만 인력 관리해주고 하면 충분할 거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도 어서 옷 골라. 조언하자면 셔츠나 브라우스로 사. 여자는 유니폼을 입고 근무해서 치마나 바지, 재킷은 지급되거든.”

“회사에서 옷을 주는 거예요?”

“그래. 입기 싫어도 입어야 될 거다. 우리 회사는 아재들 회사라 여직원에게는 유니폼을 입히거든.”

요즘은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곳이 은행 같은 금융권 밖에 안 남았고,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회사는 경직된 직장문화를 가진 곳으로 인식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서는 유니폼을 입는다는 말에 좋아하며 회색 계열의 유니폼에는 흰색 브라우스라며 즐겁게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애들 참 웃기지? 학교 다닐 때는 교복 말고 사복 입는 걸 좋아하는데, 사고 쳐서 교복을 못 입게 되면 애들은 그렇게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애들을 부러워해. 그 부러움이 질투심이 되어 애들 돈 뺏고 하는 거고.”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겠지. 우리도 그랬잖냐. 군대 간다고 머리 짧게 깎으면 긴 머리 부러웠던 거.”

“하여튼 이서 꽂아줘서 고맙다. 한번 어긋난 애들은 다시 제 길로 돌아오기 힘든데, 이제 회사 유니폼 입고 그러면 다시 사회조직에 소속되었다는 생각에 어긋나지는 않을 거야.”

“그래야지. 아 참 다음 달부터는 월세로 500씩 우리 법인 계좌로 들어올 거야. 일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다섯 곳 월세로 3천만 원 넘는 돈이 매달 들어올 거고.”

“절반은 각 빌딩 월세를 내고 나머지는 어떻게 해 줄까? 법인에서는 대표이사라도 마음대로 돈 못 빼는 거 알지?”

“그래. 인건비랑 상여금으로 어떻게든 나눠 받아야지. 그리고 안되는 건 지금처럼 법인카드로 녹이던지 해야지.”

애들 옷도 법인카드로 사는 거라고 카드를 꺼내 흔들어 줬다.

“그런데, 너 로또라도 걸린 거냐?”

“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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