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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1화 (11/203)

011. 다 각도로. (1)

이인후 부소장의 말에 아차 싶었는데, 보증금, 월세가 있어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었다.

KNM타워 같은 경우에는 방송국에서 구내식당 위탁 계약을 했기에 그 공간의 사용료가 입점 계약에 다 포함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면제가 되었을 터였다.

한마디로 건물 사용 업체와 계약을 해서 들어가는 위탁 계약의 경우에는 보증금이나 월세가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학교나 관공서는 물론이고 일반 기업체 위탁 급식의 경우에도 직원들에 대한 복지의 일환이었기에 기업체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물론, 별도의 이면 계약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이런 비즈니스 빌딩은 KNM 방송국처럼 공간을 제공하며 계약해줄 회사 자체가 없었다.

굳이 있다면 관리사무소와 계약을 맺어서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관리사무소 소장은 실권이라곤 없었고 돈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빌딩의 실제 주인은 업체들에게 임대를 하는 운영위원회의 전주들이었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임대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구내식당 공간을 제공해 줄 이유가 없었다.

몇억에 달하는 보증금과 몇백의 월세가 있어야 한다면 과연 회사에서 그렇게 지원을 해 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면, 이래서 우리 거산랜드나 CT그룹에서 비즈니스 빌딩에 진출을 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일의 진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허문도 팀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문도 팀장에게 ‘보증금이나 월세 어떻게 할 거야?’라고 까였을 터였다.

“기타 관리비도 들어갈 거고 실제로는 거의 월 300만 원이라고 봐야겠네요. 이 부분은 조정이 가능할까요?”

“6개월 이상 비어 있으니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크게 조정해 주지는 않을 겁니다.”

“흠. 우선 충족 인원 부분부터 파악해야 하니, 직원들이 각 업체에 설문조사를 할 수 있게 처리 좀 부탁드립니다.”

관리사무소에는 이런 조건을 회사에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물러났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와선 보증금과 월세를 내어 가면서 위탁 운영하는 급식 계약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위탁 계약 조건 자체가 비공개인 경우가 많았기에 파악이 힘들었지만, 3과의 권영일 과장에게 기본 계약 가이드라인을 받았고, 3과가 관리하는 일반 기업체의 위탁 계약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3과에서 관리하는 다섯 곳의 계약서는 일반적인 계약이었다.

기업체 내부 공간에 대해서는 위탁 계약 자체에 들어가 있어 임대료 자체가 없었다.

“권영일 과장님 우리가 월세를 내고 입점해서 식당을 운영하는 케이스는 아예 없는 겁니까?”

“으음. 있긴 있습니다. 헌데, 그렇게 되면 우리 소관이 아니라 외식 사업부 쪽이라고 봐야죠. 단체 급식을 담당하는 우리 하고는 좀 달라지게 됩니다.”

보증금과 월세를 내게 되면 마트의 푸드코트라던지, 대형 백화점 매장 내 입점하는 식당과 같아지기에 외식 사업부의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권영일의 말을 듣고 보니 막힌 것만 같았던 일의 돌파구가 보였다.

전례가 없다면 그 전례를 만드는 게 힘든 것이지 이미 같은 케이스로 다른 사업부에서 사업이 굴러가고 있다면 비즈니스 빌딩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매장을 임차해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나 매장을 임차해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나 뭐가 다를까 싶었다.

뭐, 영업 1과와 영업 2과가 영재 교육원을 두고 다툰 것처럼 외식 사업부와 우리 식품 사업부가 다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면 되었다.

그리고, 여러 계약서를 보고 검토하다 보니 기가 막힌 꼼수도 생각이 났기에 무조건 진행하기로 했다.

***

목요일 오후 KNM 라디오방송에서 의학 상담을 한다는 동규의 일정 때문에 목요일 저녁에 우리 집으로 동규와 정진이가 왔다.

다행히 어머니가 컨디션이 좋으셨는지 둘을 알아보셨고, 이모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둘에게 중매서주겠다며 난리를 쳤다.

“의사니깐 개업하려면 처가가 부자여야 하잖아. 내 아는 집이 건물도 있고 한데, 의사 사위를 원하는 집이 있어. 어때? 생각은 있어? 그리고 그 집 아가씨가 22살이야.”

“아이고, 이모님 22살 아가씨를 소개해 준다는 건 고마운데, 제가 아직 생각이 없어서요.”

“아 생각이야, 아가씨를 만나보고 나서 해도 되지. 아가씨를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날 수도 있잖아.”

“하하하. 그건 그렇죠. 일단 제가 오늘도 라디오 나오고 해서 시간이 없어서요. 시간이 나면 건호 통해서 이모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동규는 늘 어르신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능구렁이처럼 잘 넘어갔다.

“이모. 동규 집 엄청 부자예요. 개업의하는 거보다 신경 쓸 거 작다고 봉급쟁이 의사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놈 여자 많아요.”

“에헤이 바람둥이였네. 그러면 빨리 정착하기 위해서라도 참한 아가씨를 어서 만나야겠네. 꼭! 연락해!”

이모는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전화하라는 제스처를 동규에게 보냈다.

“정신 없지?”

“뭘 매일 듣는 건데 뭐. 병원에 오시는 어르신들이 어떻게 아셨는지 내가 미혼인 걸 알고는 매일 와서 아가씨 소개하신다고 하거든.”

“그런데 알고 보면 손녀딸이고 그런 거 아냐?”

“정답! 그런데, 정진이 정장 입고 삐까번쩍한 옷 입은 거 적응 안 된다. 진짜.”

“말도 마라 요즘은 아버지 로렉스 시계까지 빌려서 차고 다닌다. 있어 보이기 힘들어.”

정진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국제식품에서 사 온 안심과 꽃등심을 구워 먹었다.

술도 어느 정도 오르자, 건호는 두 사람에게 부탁할 게 있다고 말을 꺼냈다.

“너희 명의 좀 빌려주라.”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명의를 빌려 달라니?”

“은행 대출이나 보증서 달라는 게 아니야. 내가 법인회사를 만드는데, 너희 둘이랑 내 동생을 법인 주주로 올리려고. 51% 넘는 과점 주주는 없으니깐 책임도 안 질 거고, 대표도 내 동생이 하게 될 거라 법인 대표로서의 의무도 없을 거야.”

동규는 이런 부분을 잘 모르기에 정진이를 보았다.

“저 말 맞아? 법인에 이름을 빌려줘도 뭐 책임지고 하는 게 없는 거야?”

“뭐, 범법 행위나 체납 등의 일이 생겨도 일반 주주의 경우에는 책임지지 않는 게 맞아. 51% 이상의 지분을 가진 과점 주주가 책임을 지게 되어 있어. 4대 보험의 체납 등의 일이 생겨도 대표이사가 책임지니 그냥 이름만 올리는 것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맞아. 헌데, 뭘 한다고 갑자기 법인을 세운다고 하는 건데?”

“내 직장생활을 좀 더 길게 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야. 법인도 그냥 부동산 임대 법인이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도 하려는 거냐?”

정진이는 법대 출신에 사시를 준비하면서 판례 같은 걸 많이 봤는지 부정적인 사건에 대한 것부터 나왔다.

“아니, 그런 거창한 부동산 일이 아니야. 법인은 부동산 임대업이지만, 실제로는 식당 일이나 마찬가지야.”

“식당? 밥장사? 밥장사에 무슨 법인이 필요해?”

“정진이한테 이야기했었지만, 더 스타 빌딩 안에 구내식당을 만들려고.”

해운대의 큰 빌딩 안에 구내식당을 만드는데, 법인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둘 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사업자를 내고 하면 되는 건데, 왜 법인이 필요한지 몰랐다.

“그게, KNM 타워처럼 구내식당을 만들려면 KNM 방송국에서 외부 업체에게 위탁을 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 식당 공간까지 무상으로 해서 제공을 해. 그게 일반적이야. 헌데, 여러 업체가 입주하는 비즈니스 빌딩에는 그렇게 위탁을 의뢰할만한 큰 기업이 없어.”

“그렇겠네.”

“그럼, 그 비즈니스 빌딩에 구내식당을 입점시키기 위해 법인을 만들자는 거야?”

“맞아. 부동산 임대 법인으로 비즈니스 빌딩의 공간을 임차하고, 그 임차한 공간을 다시 우리 회사에 재임대 해 준다는 거야. 정확하게는 구내식당 운영을 위탁하는 거지.”

“흠. 그렇게 하면 수익이 나긴 나는 거야? 해운대는 임대료나 보증금이 꽤 될 텐데.”

“수익이 나게 운영하는 건 거산랜드 식품 사업부가 하는 거지. 우리가 만든 법인은 그저 월세보다 더 많은 수익을 받는 게 전부야. 말 그대로 부동산 임대 수입일 뿐이야.”

“흠. 법적으로 걸리는 건 없는 거 같은데.”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이 정진이에게서 나오자 동규도 명의를 빌려 달라는 것에 대한 의심을 어느 정도 덜어냈다.

“그럼, 나보고 그 보증금을 내라는 거냐?”

“아니, 내가 말했잖아. 명의만 빌려 달라고, 보증금은 내가 다 있어. 주식에서 좀 번 게 있거든.”

“오오! 서울깍쟁이 다됐네. 임대 사업에 필요한 임대 보증금도 이미 다 만들어 두고. 그럼, 진짜 명의만 빌려주면 되는 거야?”

“그래. 이렇게 공간이 마련되기만 하면 개척 영업을 성공한 거라서 내 실적도 되고, 좀 더 오래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이 법인 만드는 거도 플랜 B야.”

“캬! 샐러리맨은 윽시로 열심히 사네. 플랜 B도 만들고. 의사로서 나태하게 진료 본 나를 긴장시키네.”

“나도 부산 와서 처음으로 추진하는 일이거든 그래서 엄청 신경을 쓰는 거야. 일단 회사에서 보증금과 월세까지 다 부담해서 구내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면 법인도 없는 일이 될 거야.”

“보증금, 월세 문제로 통과가 안 되면 꺼내서 보여줄 수 있는 히든카드라는 거군.”

“맞아. 그러니 둘 다 명의 좀 빌려주라. 돈 많은 의사 선생님과 시민 단체활동하는 법조계 인사가 운영하는 부동산 법인이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 않냐? 알짜 부동산을 들고 있는 거 같은 그런 회사 느낌.”

“웃기고 있네. 일단 돈 넣고 하는 거 아니라면 명의야 빌려줄 수 있어. 더구나 정진이가 있으니 법적으로도 안전할 거 같고. 그런데 수익은 나긴 나냐?”

“뭐, 법인에서 수익이 안 나더라도 건호가 회사에 더 붙어 있을 수 있다면 그게 다 수익이긴 하겠네. 그럼, 내가 법인 정관이나 감사 부분은 처리해 줄게.”

“오케이! 일단, 애들 써서 리서치부터 해야 해 데이터를 좀 더 모아서 계산해 봐야 알 것 같거든.”

“이야, 직장생활 재미있겠네.”

“아니거든. 아, 아니다. 의사보다는 재미있긴 하겠다.”

“그래. 난 매일 아픈 환자만 보다 보니깐 기가 빨리는 거 같아. 진짜 22살 만나 봐야 되나.”

“난 그 반대다. 어린 애들 상대하다 보니깐 애들 때문에 속에서 화가 올라 와서리.”

“일장 일단 다 있네. 그래도 돈 많이 받는 의사가 최고다!”

“웃기고 있네. 잔 비웠다. 빨리 채워라.”

***

다음 날 더 스타 빌딩에서 출퇴근 인원 카운팅과 입주 업체마다 들려 설문조사를 할 수 있다는 운영위원회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래서 정진이가 알바할 4명을 데리고 왔는데, 남자애들 세 명과 여자애 한 명이었다.

4명 모두 고등학생으로 보였는데, 문제는 옷차림이었다.

남자애들이 추리닝을 입고 온 것이었다.

나이키나 아이다스의 스포츠 웨어식의 추리닝이 아니라, 그 단체복 같은 추리닝을 입고 있다 보니 깔끔한 맛이 없었다.

출퇴근 시 카운터를 들고 카운팅 하는 것은 괜찮아도 입주 업체에 들러 설문지를 건네주며 설문조사를 받기에는 무리가 있는 옷차림이었다.

더구나 애들이 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였기에 제대로 책임감이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자 그럼, 너희가 하는 일을 알려줄게. 이 조끼를 입고, ID 목걸이를 차고, 카운팅을 하는 거야. 빌딩 정문에 2명 후문에 2명이 서서 카운팅 하면 돼. 나오는 사람 신경 쓰지 말고,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만 이 카운터기를 눌러주면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네. 그런데, 지하 주차장은요?”

설명을 하고 배치시키려는데, 가는 눈의 여자애가 빠진 부분이 있다고 이야길 했다.

“지하철이랑 버스로 출근해서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몰고 와서 주차장으로 바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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