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Welcome to the 부싼! (2)
“임 과장님 커피 드시겠습니까?”
영업 3과 막내사원인 김민욱이었다.
“네, 고마워요. 아니다. 탕비실로 같이 갑시다. 회사 구경도 좀 하게.”
“야야야, 뒈바악! 오늘 아침에 독사가 엘베를 탔는데, 거기서 누가 독사에게 개겼다고 하더라고, 사직서 품고 있던 떠라이라고 하던데 누구야 도대체? 어느 부서야?”
“진짜 독사에게 개겼다고? 헐. 어느 용자임?”
“퇴사자 누구임?”
보통 탕비실이라고 하면 공용으로 사용하는 장소였고, 남녀평등도 나름대로 진행이 된 장소였지만, 그래도 탕비실의 터줏대감들은 각 부서 수다쟁이 언니들이었다.
김민욱도 탕비실 밖에까지 들려오는 여직원들의 수다 소리에 독사에게 개겼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아, 독사가 누구냐면요. 김독수 전무님이라고 있으시거든요. 이름도 그렇지만, 눈빛이 뱀처럼 날카로우신 분이시다 보니 별명이 독사입니다.”
“응. 알아. 그 사직서 품고 개겼던 떠라이가 나인 것 같거든.”
“네? 임 과, 과장님이 개겼, 아니 그게 그러니깐.”
“개긴 거 맞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라고 했는데, 안 내렸거든. 눈치 보여서 탕비실에는 못 들어갈 것 같으니까 민욱 씨가 내 커피까지 좀 내려와요.”
“네네.”
탕비실 밖에서 여직원들의 이야길 듣고 보니 오늘은 직원들의 공짜 안주가 되어 신나게 씹어 돌려질 것 같았다.
김민욱은 김독수 전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라고 했음에도 개기면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는 임건호 과장 말에 놀랐다.
그리고, 왠지 진짜 또라이 아니면 미친 것이었기에 부산으로 전출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탕비실에 들어가서는 여직원들에게 눈과 입으로 밖에 누가 있다는 신호를 주며 커피를 내렸다.
김민욱과 커피를 들고는 화장실과 당직실 복사실 서류 저장고 등을 둘러봤다.
“아직도 서류를 이렇게 보관하나 보네. 서울은 다 디지털화했는데.”
“네. 부산도 서류 보관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한 명뿐이라서요. 아 그리고, 주차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 앞에 평원 주차장에 명함 보여주면 30% 할인되거든요. 월주차도 받아주고요.”
“차는 없어. 서울에서는 지하철로 다 이동을 했거든. 차 필요할 때는 회사 차로 움직였고.”
“아참, 영업이 아니셨다고 했지요. 그러면 회사 차를 타셔야 하는데, 이게 각 과마다 1대씩 배정인데, 저희 과 차는 권영일 과장이 타고 다니는지라...”
“한 대 사지 뭐. 서울이랑 조건이 다르면 차를 굴려야지. 자차 굴리면 뭐 혜택은 없어?”
“아 유류대는 한 달에 50만 원까지, 주차비는 5만 원까지 지원이 되는데, 대신에 차량 운행 부 쓰셔야 합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안내를 받고 자리에 오니 전입에 따른 서류를 총무/인사과에 제출해야 한다며 여직원이 필요서류를 적어왔다.
할 일도 없었기에 동사무소와 은행에 들러 서류를 떼왔고, 같은 층에 있는 총무/인사과에 갔다.
“응? 부양가족 서류가 맞는가요? 1명이 빠진 거 같은데요. 이러면 상여금이 달라지는데요.”
“네. 이혼을 해서 이제 부양 안 해도 될 것 같거든요.”
“아아, 죄송합니다.”
말을 하는 여직원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탕비실에서 뒈에박을 외치던 그 여직원 같았다.
이거 왠지 돌싱이 되어 부산으로 전입해 왔다는 것까지 회사 내에 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사실 저희 3과가 내 논 자식입니다. 영업2과에 대리로 있다가 올 2월에 과장을 달았는데, 기업체 위탁 급식 영업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게 된 권영일 과장은 부산 지사 내 이야기를 솔솔하게 이야기해줬다.
“부산 지사가 좀 웃깁니다. 김독수 전무님은 이미 보셨다고 하셨지요?”
“이미 봤지. 왜 독사인지 알겠더라고.”
“하하하. 그렇죠. 김독수 전무님이랑 지사장인 박성수 사장님하고 사이가 안 좋다 보니 요즘 눈빛이 더 날카로우시더라고요.”
“뭐 회장단 쪽에 줄 싸움이야?”
“줄 싸움보다는 이게 자존심이 걸려있는 일이라서요.”
권영일에게 이야길 들어보니 4년 전에는 독사라 불리는 김독수가 지사장이었다고 했다.
그런 김독수가 관공서 쪽의 영업을 위해서 부산시 부시장 출신의 박성수를 영입했는데, 이게 잘못된 만남이었다.
박성수가 부산시 부시장 출신이다 보니 관공서 쪽 일을 다 끌어왔고, 가장 중요한 초중고 학교의 급식까지 다 가지고 오자 본사에서는 김독수 대신 박성수를 지사장으로 올려버렸다.
김독수가 일 잘하는 사람 보는 눈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 일을 잘해서 자신이 밀려나 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뭐, 사실 본사의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다.
돈 많이 벌어오는 사람이 최고 아니던가.
이런 비하인드를 듣고 보니 김독수 전무의 눈빛에 독기가 서릴만 했다.
***
“인사가 이렇게 처리가 되었지만, 사실 영업 4과를 만들어 주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어. 실적이 있고 매출이 나오는 게 있어야 되는데, 그게 뭐 단기간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임 과장이 이해를 좀 해.”
“네. 알고 있습니다.”
“후배 아래에 있다는 게 기분 나쁘고 한 거 다 알고 있어, 실적만 만들면 바로 4과 만들자고 내가 매달릴 테니까 그때까지는 참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잠자리 안경을 쓴 이수길 차장은 당분간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영업3과에서 있어야 한다고 나를 달래주었다.
하지만, 달램을 받는 건호는 진짜 아무렇지 않았다.
“우선 자네가 고대 식품 자원경제학과 출신이라고 했지? 그럼, 이쪽 계통에 동창이나 선배들 많을 테니깐 우선 그쪽부터 영업을 해봐.”
“네 그렇지 않아도 동문들 영업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 학연 영업이 빠르지. 일단 오늘은 영업기획서 올리고, 어떻게 할지부터 짜봐.”
***
이튿날 출근을 하는데, 열린 엘리베이터가 보였음에도 직원들이 타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그 독사라는 김독수 전무라는 생각에 잽싸게 움직여 엘리베이터에 뛰어 들어갔다.
어제 막내 사원인 김민욱부터 과장, 차장 등등에게 워낙에 독사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왠지 친근한 감정이 생겨 몸을 날려 엘리베이터에 탄 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본사에서 와서 정신이 없는 거야?”
김독수 전무는 가만히 있는데, 비서가 난리가 났다.
그냥 고개만 꾸벅 숙였다.
“야. 너 내가 만만하게 보여?”
“아닙니다. 저도 전무님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임원이 탔다고 직원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건 잘못된 악습 같아서 그렇습니다.”
“뭐? 이 새끼 너 PC충이야? 올바름만 따지는 그런 거야? 서울에서 PC충이라고 부산으로 보낸 거야?”
“정치적 올바름 같은 사회운동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같이 못 타는 건 잘못된 악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야. 그런 소릴 내 앞에서 하려면 목에 힘부터 넣고 와. 내가 너 자르려고 해도 실적이 좋아서 못 자를 만큼 실적으로 목에 힘부터 넣어 오라고. 그런 거 없이 올바름만 떠들어 대고 입만 나불거리는 것들은 질색이야.”
김독수는 내 옆구리와 배를 손가락으로 밀어댔다.
“올바름이고 악·폐습이고 간에 내 앞에서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실적 가져오고 나서 이야기해. 안 그럼 내일부터 알아서 피해. 알았어?”
“그럼, 실적 가져오면 엘리베이터 같이 타기로 하시는 겁니까?”
“뭐 이 새끼가!”
김독수의 오른손이 뺨이라도 때릴 것처럼 올라갔지만, 다시 손을 내렸다.
“실적 가지고 와서 그렇게 이야기해 새끼야. 꺼져.”
[띵! 7층입니다.]
이번에도 내려서는 배꼽 인사를 정중하게 해줬다.
***
“야 서울서 온 임건호 과장이 그 사직서 빌런이라며?”
“사직서 빌런?”
“아 왜 있잖아 독사랑 같이 엘베 탔다던.”
“아! 그게 서울서 온 임 과장님이었어? 대박!”
“그리고 돌싱이래. 돌싱. 이혼하고 부산 왔다고 하더라고. 애도 없대.”
“그래? 34살에 돌싱이면 이거 더 좋은 거 아니야?”
장난기 많은 여직원이 더 좋은 거 아니냐며 입술을 혀로 핥아 대자 다들 기겁을 했다.
“야이 미친 또 발정기야?”
“너 이상한 거 좀 보지 말라니까.”
“야야야 뒈에박! 오늘도 출근하는데 독사가 탄 엘리베이터에 뛰어들었대.”
“와아! 이거 뭔가 독사에게 두들겨 맞아서 합의금 받아내려는 그런 거 아냐?”
“진짜 이거 자해공갈단 급인데. 엘베에 뛰어들다니. 미쳤네!”
거산 체조를 마치고 커피 한잔 내려 마시려는데, 나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다 보니 탕비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여직원들의 관심을 많이 받아서 걱정이네.
김독수 전무에게 찔려서 아팠던 옆구리와 배도 생각이 나자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생활이야 겁 없는 미친놈처럼 할 수 있었지만, 김독수의 말처럼 실적이 문제였다.
학교와 관공서,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형 급식장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고 찾아보았으나 건설 현장의 함바집 말곤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함바집을 한번 뚫어 보려고 해도 함바는 건설 쪽과 엮여 있다 보니 정상적인 루트로는 답이 안 나오는 곳이었다.
고민한다고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었기에 외근부를 쓰곤 밖으로 나왔다.
우선 영업을 하기 위해서든 어머니를 태우고 다니기 위해서든 차가 있어야 했기에 차부터 사기로 했다.
새 차를 사도 되었지만, 괜히 서울에서 내려온 임 과장이 비싼 새 차를 타고 다닌다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안전과 연관된 문제이기도 했기에 회사 근처 카센터부터 갔다.
카센터 사장님은 50대의 아저씨였는데, 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벗겨진 머리카락에서 엔지니어의 연륜이 느껴졌다.
“저기 사장님. 중고차를 사러 가야 하는데, 10만 원 드릴 테니까 같이 가서 차 좀 봐 주시면 안 됩니까?”
“요기 비워두고 다녀올라카믄 50만 원은 줘야지.”
건호는 10만 원을 불러보고 안 된다고 하면 20만 원을 줄 생각을 했는데, 초장부터 50만 원이라고 불러버리자 바가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시급 50만 원이 어느 집 아들내미 이름도 아니고. 눈탱이 맞는다는 생각에 돌아 나오려 했다.
“거기 아이씨 50만 원이 비싼 게 아이다. 중고차라도 아무리 싸게 사도 500만 원은 넘는다이가. 근데, 그 차가 고장이 나면 바로 50이 깨진다고. 두세 번 고장 나서 일이백 쓸 바에는 50만 원이 싸게 생각될낀데.”
50만 원이 비싸지 않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사장님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시네에. 50만 원에 같이 가입시더.”
돈을 꺼내서 그냥 드렸다.
카센터 사장님의 차를 타고 연산동 중고차 매매단지로 넘어갔다.
딱 봐도 정비소 사장으로 보이는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왔으니 어중이떠중이 경매상은 아예 근처도 오지 않았다.
“근데 찾는 차가 따로 있는교?”
“원래 세단을 살려고 했는데, 사장님 SUV를 타보니 SUV가 땡기네요. 영업용 겸 마실 용입니다. 아 가격은 천만 원에서 2천만 원까지인데, 2천 넘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실탄에 여유는 있으니깐. 그러며는...저거 사이소. 저거. 저게 딱이다.”
“어떤 거요?”
“스퍼츠 유틸리티 에스유브이의 강자. 스퍼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