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에필로그
“2008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구글 필드에서 시작됩니다!”
연속 우승으로부터 4년.
탬파베이 레이스는 드디어 새로운 구장을 손에 넣었다.
최신식 돔구장인 구글 필드는 트로피카나 필드의 단점을 개선해 경기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기자단은 구글 필드에 10점 만점에 9.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구글이 이렇게 클 줄은 4년 전에는 미처 몰랐어. 탬파베이는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건가?”
“탬파베이 사장단과 구단주는 뛰어나니까.”
“그나저나 이번에는 조금 아쉽겠어.”
“FA 이야기인가?”
“왕조의 주역들이 팀을 많이 떠났어. 다들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
“한 팀에서 그렇게 많은 올스타를 보유할 수는 없다고, 페이롤이 버티지 못해.”
기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홈팀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자기 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는 킴이 처음일 거야.”
“대단하지. 벌써 4번째 올스타전 선발이야.”
김민은 2003년과 2004년 그리고 2006년에 이어 이번 2008년에 올스타전 아메리칸 리그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데뷔 이후 사이영상만 4번. 7시즌 중 4번이라 괴물이야.”
“트리플 크라운은 어떻고? 벌써 2번이나 했어.”
“그러고 보면 2005년이 아쉽지.”
2005년 김민은 팔꿈치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접었다.
시즌 승수는 단 2승.
그것은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대가였다.
“그래도 2006년부터 부활했잖아. 그해에 사이영상도 탔고.”
“커리어를 보면 아직 나쁘지 않아. 역대 최고를 논할 수 있다고.”
연습 투구가 끝나자 캐스터가 포수를 소개했다.
“킴과 배터리를 이룰 포수는 피어리입니다!”
“피어리는 3년째 올스타전 주전 포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전성기에 접어든 피어리는 공수가 완벽했다.
“공격은 포사다 이상, 수비도 록튼보다 낫지.”
“FA로 풀리면 2억 달러(2,480억 원)부터 시작할 테지.”
“누가 데려갈까?”
“양키스 아니야? 대형 선수 전문이잖아.”
타자가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코너를 정확히 찔렀다.
팡!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올스타전에서도 여전하군.”
“구글 필드에서 열리는 첫 번째 올스타전이잖아. 꼭 이기고 싶을걸?”
“이기고 싶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야. 올스타전 선발 투수는 2이닝뿐이라고.”
더그아웃에 모인 선수들이 김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윌리엄, 넌 킴을 상대로 꽤 쳤지?”
윌리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0.250에 1홈런 3타점, 이게 꽤 친 건가?”
그는 탬파베이에서 김민과 함께 3번의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4번의 올스타, 3번의 실버슬러거, 1번의 MVP를 수상했다.
윌리엄은 2년 전 양키스와 1억8천만 달러(2,234억 원)짜리 계약을 맺으며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옆에 있던 산체스가 윌리엄의 말을 받았다.
“다른 타자들은 그것도 못 하지 않습니까?”
산체스는 이번 시즌 연봉이 1천2백만 달러(1,488억 원)에 달했다.
그는 2004년 이후, 3번의 실버 슬러거와 2번의 골드글러브, 한 번의 타격왕을 수상했다.
그에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리그 MVP였다.
산체스는 2006년과 2007년 연속으로 리그 MVP 투표 3위에 머물렀다.
“산체스는 다음 시즌 FA지?”
“그렇죠.”
“어디로 갈 거야?”
“탬퍼링 위반입니다.”
시몬스가 어깨를 펴며 말했다.
“우리끼리 무슨 탬퍼링이 있어. 그건 킴이 말할 때나 해당되는 거야.”
김민은 아직도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주였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농담이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산체스가 말했다.
“가능하다면 킴과 싸울 수 있는 동부지구로 가고 싶습니다.”
브라이튼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탬파베이를 떠날 생각만 하는군. 산체스, 이렇게 좋은 구장이 있는데도 떠날 거야?”
산체스가 대답하려는 순간 윌리엄이 브라이튼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이튼, 네가 가장 먼저 떠났잖아.”
“난 돈이 필요했으니까.”
브라이튼은 양키스와 5년 1억 달러(1,240억 원)의 계약을 맺고 팀을 바꾸었다.
“양키스로 둘 갔으니, 이제 보스턴으로 2명 가면 되겠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건 보스턴의 올스타 2루수 코버였다.
윌리엄이 산체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보스턴에서 러브콜인데 어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스턴도 좋은 팀이니까요.”
보스턴은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기나긴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이후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주전 타자 대부분이 약물 스캔들에 휩쓸렸기 때문이었다.
2006년 이후 라파엘, 그란델, 토미, 헬리오가 팀을 떠났다.
약물 스캔들은 양키스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제레미가 팀을 떠났고, 에이로드는 1년간 자격 정지를 당했다.
윌리엄과 브라이튼이 양키스와 초대형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삼자범퇴인데요?”
“벌써?”
고개를 돌리니, 김민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올스타전 MVP는 틀렸군.”
“그러게 말이야. 삼진을 많이 잡아야 MVP가 될 텐데 다 땅볼로 돌려세웠잖아.”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김민이 과거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여기서 뭐 해?”
“뭐 하긴, 옛날이야기나 하고 있었지.”
“잘 좀 하라고, 올스타전 선발로 나선 친구가 스나이더 하나라니.”
산체스와 윌리엄, 두 천재는 올스타로 뽑히긴 했지만, 선발 출전에 실패했다.
윌리엄이 두 손을 머리 뒤로 향하며 말했다.
“그러게 스나이더에게도 밀릴 줄은 몰랐어.”
스나이더는 2006년부터 빛을 발했는데 2007년 47개로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오르면서 날개를 활짝 폈다.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힘을 내자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이 아니냐며 의심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스나이더는 3번의 약물 검사를 모두 통과했으며, 뛰어난 선구안과 기술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도 홈런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팀을 떠나지 않았으면 저 친구에게 밀렸을 거야.”
윌리엄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스나이더는 현재 산체스와 함께 클린업을 맡고 있었다.
“탬파베이 친구들, 너무 몰려 있는 것 아니야?”
웃으면서 말을 건넨 이는 양키스의 주전 유격수 데릭 지터였다.
그는 이번 올스타전도 선발 출장했다.
“좀 봐달라고, 지터 때문에 포지션까지 이동했으니까.”
지터에게 말을 건 선수는 브라이튼이었다.
그는 유격수에서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해 뛰고 있었다.
“오, 그건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유격수는 내 자리인걸.”
뒤쪽에 앉아 있던 시몬스가 말했다.
“지터, 1번이잖아. 헬멧 챙겨서 나가라고!”
시몬스는 여전히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시즌 소속 팀과 7년 연장 계약을 채결했다.
“알겠어. 나간다고.”
지터와 호세 그리고 스나이더가 차례로 배터 박스에 섰다.
하지만 그들은 키가 작은 장발 투수에게 모두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저 친구 누구야?”
윌리엄의 물음에 산체스가 대답했다.
“저 장발 말입니까?”
“그래, 저 장발.”
“자이언츠 신인입니다. 란스 탐이라고…….”
“신인이 저렇게 던져? 배리 본즈까지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배리 본즈는 약물 스캔들 때 가장 먼저 퇴장한 타자였다.
“공격 끝났으니 수비야. 다들 글러브 챙겨.”
시몬스의 한마디에 지터가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도 지명타자야?”
“내 포지션이 그런 걸 어떻게 해?”
지터가 어깨를 으쓱하곤 그라운드로 향했다.
2회 초.
김민은 다시 한번 완벽한 제구로 삼자범퇴를 만들어 냈다.
“이야, 2이닝 동안 9개밖에 안 던졌어. 메이저리그 신기록 아니야?”
“올스타전으로 따지면 신기록 맞을걸?”
“하지만 삼진이 하나도 없잖아. 저런 식이면 MVP는 받을 수 없다고.”
투구를 마친 김민은 더그아웃이 아닌 불펜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투수 올스타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 킴!”
“마무리로 한 번 더 뛰려고?”
김민이 대답했다.
“아니, 놓고 온 물건이 있어서.”
“그래?”
김민과 말을 주고받은 선수는 클락과 바르가스였다.
클락은 김민과 함께 줄곧 탬파베이에서 뛰고 있었고, 바르가스는 2년 전 보스턴으로 팀을 옮겼다.
“볼튼이 없군.”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이야.”
볼튼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혔다.
그는 지난 시즌 FA자격을 취득했지만, 탬파베이와 저렴한 계약을 맺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김민은 계약 직전 그에게 다른 팀으로 이적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볼튼은 김민과 함께 뛰고 싶다며 탬파베이와 계약을 강행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전반기에만 30세이브를 올려 올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탁.
불펜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온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킴.”
“설리반.”
설리반은 이번 시즌 김민과 다승왕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다음 투수는 설리반 아니었어?”
“아뇨, 산타나입니다.”
“산타나? 이번 시즌 별로잖아.”
“부상 복귀 시즌이니까요. 그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을 겁니다.”
산타나는 김민이 알고 있던 과거와 달리 미네소타를 떠나지 않은 채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았다.
“킴,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이싱은 안 하는 거야?”
거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얼굴 좋은 중년인이 눈에 들어왔다.
“부르스, 그 배는 뭐야?”
김민을 부른 이는 부르스였다.
그는 2005년 은퇴 이후 지도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렇게 되더군. 킴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김민은 부르스의 배를 툭 치곤 손을 흔들었다.
“부르스 감독님, 포스트 시즌 때 만나면 살살해 주십시오.”
부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킴, 그쪽이야말로 살살 던지라고. 우리 애들 배트가 무디단 말이야.”
두 사람은 정확히 3달 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격돌했다.
2012년.
세계 굴지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김민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스포츠 스타.’
자산은 45억 달러(약 5조 원).
메이저리그 구단주이자 선수.
그리고 거대 공룡 아마존의 대주주.
하지만 김민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이런 돈에 관련된 수식어가 아니었다.
‘탬파베이 선수들의 아버지.’
이것이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수식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