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95화 (295/296)

295화 이것이 야구다 05

구속으로 투수를 평가할 수는 없다.

메이저리그 4번 타자인 라이언이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구속을 언급한 것은 구속이 투수의 체력과 컨디션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 체력이 떨어진 투수를 어째서 공략하지 못하는 것인가?

로버트는 생각했다.

‘킴의 체력은 분명 떨어졌다. 하지만 공의 위력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다.’

공을 던지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면……

그랬다면 지금처럼 공이 낮게 제구될 리가 없었다.

“8번 타자 스윙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스윙스는 오늘도 성적이 썩 좋지 않군요. 제 생각에 메츠는 이쯤에서 대타를 한 번 사용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셔널 리그에는 지명 타자 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메츠에는 전문 지명타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유리 감독이 혀를 차며 말했다.

“스윙스가 가장 좋은 대타 자원인데 누굴 대타로 쓰라는 건가?”

남아 있는 대타 자원은 내야 백업인 크라우드와 외야 백업인 폰드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타격 능력은 스윙스에 미치지 못했다.

이반 감독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미네소타의 도저 정도 되는 대타 자원만 있었더라도 스윙스가 나오진 않았겠지.”

“도저가 지금 나왔다고 해도 킴을 당해 낼 수는 없겠죠.”

탁!

배트에 맞은 공이 옆으로 휘면서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스윙스, 초구부터 파울이군요!”

“떨어지는 투심을 쫓아갔지만, 배팅 포인트가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8회 김민은 투심 패스트볼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앞서 레너드에게 던진 승부구도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스윙스는 배트를 바닥에 세우곤 미간을 좁혔다.

‘어설픈 투심에 두 번 당하진 않는다.’

김민이 던진 투심은 무브먼트가 그리 크지 않았다.

스윙스는 미리 알고 있다면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민은 같은 구종을 두 번 던질 생각이 없었다.

스윙스가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두 번째 공을 던졌다.

휙!

공이 큰 호를 그렸다.

스윙스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을 보자마자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제길!’

두 번째 공은 이퓨즈.

오늘 김민의 공 중 가장 좋았던 공이었다.

이대로 두면 십중팔구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올 것이다.

‘밀어낸다.’

스윙스는 이퓨즈를 1, 2루 사이로 밀고자 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 자리에 떠올랐다.

스윙스가 의도한 것과는 차이가 컸다.

“록튼이 마스크를 쓴 채로 공을 기다립니다.”

“스윙스, 이렇게 아웃된다면 너무 허무하군요.”

로버트는 대기 타석에서 미간을 좁혔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면 그냥 보내는 게 답이다. 이번에는 스윙스의 욕심이 지나쳤어.’

카운트는 0-1로 좋지 않았지만, 그냥 보낸다고 해서 삼진을 당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스윙스는 타격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팡!

록튼의 미트에 공이 들어왔다.

“킴, 또 하나의 아웃 카운트를 잡습니다. 이번 이닝 남은 타자는 한 명입니다.”

“7과 2/3 이닝 무실점이군요. 유리 감독으로서는 답답하겠는데요?”

5차전 패배는 시리즈 종료를 의미했다.

메츠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오늘 경기에 이겨야만 했다.

캄진 수석 코치가 말했다.

“킴으로 8회를 마무리한 뒤 9회에는 볼튼을 내겠다는 뜻 같습니다.”

볼튼은 초특급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안정감이 뛰어난 클로저였다.

그가 월드시리즈 마지막 이닝에서 블론을 저지를 확률은 높지 않았다.

유리 감독이 턱을 쓰다듬었다.

“자네는 야구를 잘 안다고 생각하나?”

이 물음에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코치는 많지 않았다.

“아직 배워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캄진, 그 리베라도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블론을 저지르고 말았어. 야구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그건 그렇습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양 팀 코칭 스텝이 동의하는 사실이었다.

“메츠의 마지막 타자가 배터 박스에 들어섭니다.”

“로버트, 수비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타격은 살짝 부족합니다.”

로버트는 심호흡을 하고 배트를 세웠다.

‘내가 노리는 것은 딱 하나다.’

그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노렸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직 하나.

그는 그 하나에 히팅 포인트와 타이밍을 맞췄다.

슉!

초구는 바깥쪽 커브.

그가 원하는 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로버트는 이 공을 그냥 지나쳤다.

팡!

“스트라이크!”

로버트는 미트에 들어온 공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제구다. 체력은 떨어졌지만, 컨디션은 경기 초반보다 올라온 게 분명하다.’

김민은 7회부터 공이 제법 잘 들어간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그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힘이 빠졌기 때문일까? 경기 초반보다 제구가 잘 되고 있다.’

두 번째 공은 안쪽을 찌르는 패스트볼.

팡!

로버트는 이 공에 배트를 냈지만, 헛스윙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1마일(146km).

로버트는 헛스윙 직후, 타임을 걸고 배터 박스에서 벗어났다.

‘커브와 패스트볼이 순서대로 들어왔다. 그다음은 다시 느린 공인가?’

오프 스피드 피치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노리는 공을 바꿔야 하는 것인가?’

로버트가 노리고 들어간 공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김민은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까지 그 공을 던지지 않았다.

‘체인지업이나 이퓨즈 같은 공이 날아올 타이밍이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상황을 고려해 노리는 공을 바꿀 것인지 아니면 처음 노렸던 공을 그대로 가져갈 것인지.

“로버트?”

주심의 물음.

“들어갑니다.”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아무래도 바꾸는 게 좋겠어.’

그는 노리는 공을 체인지업과 이퓨즈로 바꾸었다.

두 구종은 사실 배팅 타이밍이 달랐다.

그럼에도 그가 하나로 묶은 것은 두 공 모두 타이밍을 뒤쪽에 놓고 치는 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진루한다.’

김민은 로버트가 배터 박스 밖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자가 배터 박스를 벗어날 때는 딱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신에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투수의 리듬을 끊고자 하는 것. 조금 전 로버트의 행동은 내 리듬을 끊기 보다는 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는 로버트가 노리는 공을 바꾸거나 변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사실 상관은 없다.’

김민이 선택한 공은 로버트의 노림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공이었다.

‘이 공을 칠 수 있다면…… 실버 슬러거를 노릴 수 있을 테니까.’

슉!

빠른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았다.

로버트는 그 공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하이 패스트볼이라고?’

멈칫하는 사이 공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금 배트를 내면 늦는다. 그리고…… 이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갈 가능성은 적다.’

그는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하이 패스트볼이 아닌, 체력이 떨어져 제구가 어긋난 공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떠오른다. 이 공은 볼이다.’

배트에서 힘을 뺀 순간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룩킹 삼진.

로버트는 납득할 수 없었다.

고개를 바로 주심에게 돌렸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단 말입니까?”

주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코스를 통과했어.”

“정말입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로버트는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생각이 틀렸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 구속을 확인했다.

“93마일(150km)이라고?”

이번 이닝 들어온 공 중 가장 빠른 공.

어쩌면 그가 보았던 떠오르는 무브먼트는 라이징 패스트볼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김민은 당황하는 로버트를 뒤로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 공 라이징 패스트볼이었지?”

록튼의 물음.

김민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업 라이징 패스트볼.”

“그게?”

“그래.”

지금까지 업 라이징 패스트볼은 95마일(153km) 이상의 구속을 유지했다.

하지만 김민이 던진 마지막 공은 93마일(150km)에 불과했다.

‘정말 체력이 떨어졌구나.’

김민이 파울 라인쯤을 통과했을 때였다.

탬파베이 팬들이 모두 일어나 그를 연호했다.

“킴! 킴! 킴!”

에이스의 마지막 투구란 것을 관중들이 직감한 것이었다.

“킴! 킴! 킴!”

김민은 더그아웃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곤 모자를 벗어 환호에 답했다.

그 모습을 본 존슨 투수 코치가 이마를 찌푸렸다.

“완봉승을 거둔 투수처럼 행동하는군요.”

“킴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어. 8이닝 무실점이 아닌가?”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5차전.

‘김민은 단 3일을 쉬고 등판했다. 이것이 호투가 아니라면 무엇이 호투란 말인가?’

유리 감독은 같은 이유로 포타도 호투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타선이 조금만 더 힘을 냈다면, 포타가 월드시리즈 MVP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구에 만약이란 없었다.

뉴욕 메츠 타선은 오늘 지친 김민을 상대로 단 한 점도 뽑지 못하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민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동료들이 주먹을 내밀었다.

“최고였어.”

“킴, 에이스다운 투구야.”

“수고했어.”

“난 오늘 킴의 피칭이 이번 시즌 최고의 투구라고 생각해.”

긴 대화부터 짧은 한마디까지.

김민은 선수들과 주먹으로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블렛소 투수 코치와 마주했다.

“더 던지겠나?”

김민이 대답했다.

“아뇨.”

짧은 한마디.

그것이면 충분했다.

블렛소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네.”

클럽 하우스로 들어가는 김민.

이반 감독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경기에 패하게 되면, 난 날 용서하지 못할 걸세.”

바이슨 수석 코치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 경기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8회 말.

탬파베이 공격이 시작되었다.

“탬파베이 선두 타자는 윌리엄입니다.”

3, 4, 5번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타순.

이반 감독은 1점 정도는 더 뽑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포타와 로버트 배터리는 완벽한 호흡으로 탬파베이 중심 타선을 분쇄했다.

“포타! 다시 한번 98마일(158km)입니다!”

“마지막 이닝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남은 힘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타는 4번 타자 아울과 5번 타자 라이트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자신의 이번 시즌 마지막 피칭을 마무리했다.

8이닝 1실점.

그는 메이저리그 최강 타선으로 꼽히는 탬파베이를 상대로 당당하게 던졌다.

투구를 마친 직후, 포타가 로버트에게 다가갔다.

“로버트, 오늘 경기를 잊지 못할 거야.”

“포타,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그는 9회 초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포타가 물었다.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기적을 기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끔 우리 곁을 찾아오기 때문이야.”

뉴욕 메츠 선수들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가진 채 9회 초 공격에 들어갔다.

“메츠의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됩니다.”

“메츠의 공격에 앞서 탬파베이가 투수를 교체했습니다.”

탬파베이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마무리 볼튼이었다.

“볼튼,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이긴 하지만 메츠 타선이 나쁘지 않습니다.”

뉴욕 메츠 공격은 1번 타자 브론송부터 시작했다.

“브론송, 믿는다.”

“어떻게든 살아나가!”

로버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브론송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무조건 초구야. 초구를 노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마운드에 있는 볼튼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록튼은 로버트의 한마디를 듣곤 미간을 좁혔다.

‘심리전이군.’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

로버트의 한마디는 이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볼튼의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초구를 노리는 건가?’

볼튼은 김민과 달리 구종이 다양하지 않았다.

강력한 패스트볼과 타자의 배트를 돌려세우는 스플리터.

이 두 가지가 대표 구종이었다.

간간히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섞어서 던지긴 했지만, 비율이 높지 않았다.

‘노린다면 아마도 패스트볼이겠지?’

볼튼이 미간을 좁힌 순간 록튼이 사인을 냈다.

- 안쪽 패스트볼, 스트라이크존으로.

볼튼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리한 요구야. 맞으면 홈런이라고.’

초구를 노리고 있는 상대에게 안쪽 스트라이크라니, 볼튼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록튼은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대로군. 볼튼이 흔들리고 있어.’

로버트의 한마디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 바깥쪽 코너에 패스트볼.

볼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쪽 코너는 맞아도 홈런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

록튼이 초구를 안쪽으로 요구한 것은 브론송의 파워가 볼튼의 구위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볼튼은 로버트의 한마디 때문에 맞춰 잡는 것을 포기했다.

‘바깥쪽 코너, 킴처럼 정확히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볼튼의 제구로는 조금 어려운 코스다.’

슈욱!

98마일(158km) 강속구가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파앙!

미트에 공이 들어왔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코너가 아닌 그 아래 공이 들어온 것이었다.

“브론송이 초구를 골라냅니다.”

볼튼은 브론송의 배트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큭…… 속은 건가?’

그의 얼굴에 그늘이 진 순간 록튼이 바로 타임을 걸었다.

‘킴이라면 여기서 타임을 걸었을 거야.’

그는 마운드로 올라간 뒤 미트로 입을 가렸다.

“볼튼, 킴의 경기야.”

“알고 있어.”

“내 볼 배합을 믿어.”

볼튼이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위험해. 그 코스에는 넣을 수 없다고.”

록튼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킴이 알려 준 볼 배합이라면?”

“킴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잖아. 킴이 아무 대비도 없이 마운드를 내려갔을 것 같아?”

록튼은 볼튼을 컨트롤하기 위해 김민을 언급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볼튼이 다른 눈으로 록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티처가 알려 준 볼 배합이라면 위험해도 상관없다.’

볼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그대로 던지겠어.”

“오케이.”

록튼이 홈플레이트로 돌아간 뒤, 볼튼의 공이 달라졌다.

파앙!

“스트라이크!”

타자를 움찔하게 만드는 깊은 패스트볼.

로버트는 미간을 좁혔다.

‘흔들림이 사라졌다.’

탁!

브론손이 배트를 가져간 공은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2루수 칼튼! 원 바운드로 타구를 캐치! 그대로 1루에 송구합니다!”

2루수 땅볼 아웃.

경기 종료까지 이제 남은 아웃 카운트는 둘.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더들리입니다!”

“더들리가 출루해야 4번 라이언까지 타선이 이어집니다.”

볼튼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공을 던졌다.

파앙!

“볼튼, 다시 한번 안쪽으로 깊게 찌릅니다!”

‘티처가 알려준 볼 배합이라면…… 반드시 이긴다.’

파앙!

두 번째 스트라이크.

더들리는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배트를 짧게 잡았다.

하지만 93마일(150km) 스플리터에 배트가 끌려 나오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으로 투 아웃.

볼튼은 로진백을 만졌고, 유리 감독은 주먹을 꾹 쥐었다.

‘정말로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남은 타자는 이제 딱 한 명.

“3번 터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시리즈, 터커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로버트는 두 손을 모았다.

‘제발…… 홈런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출루만 해 다오.’

터커의 출루.

라이언의 적시타.

이것이 로버트가 그린 그림이었다.

탁!

초구는 1루 관중석으로 들어가는 파울.

두 번째 공은 볼.

세 번째 공은 다시 1루 라인에 떨어지는 파울.

“카운트 1-2입니다!”

“승부구를 던질 타이밍입니다.”

볼튼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후흡…….”

잠시 뒤 록튼의 사인이 나왔다.

- 하이 패스트볼.

김민은 하이 패스트볼로 타자들을 손쉽게 요리했지만, 하이 패스트볼은 제구가 쉬운 공이 아니었다.

스트라이크존에 살짝 걸치거나 그보다 조금 높아야 타자들의 헛스윙이 나왔다.

그보다 높으면 배트가 나오지 않았고, 그보다 낮으면 장타를 맞을 확률이 높았다.

‘높은 코스. 이쪽이 나을 거야.’

두 손을 모은 볼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의 투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승리를 지킨다!’

슈욱!

빠른 공이 홈플레이트 위를 통과하는 순간 터커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한마디와 함께 탬파베이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이겼어! 이겼다고!”

“탬파베이 만세!”

“우리가 이겼어!”

모두가 기뻐하는 자리에 김민은 없었다.

그는 클럽 하우스에서 아이싱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김민이 함성 소리를 듣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긴 모양이군요.”

트레이너가 그의 말을 받았다.

“킴, 나가서 MVP를 받아야지.”

“산체스가 MVP일지도 모릅니다.”

트레이너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킴이 MVP야.”

“단정하긴 이릅니다. 탬파베이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2승을 챙긴 건 자네가 유일해.”

팀의 4승 중 2승을 책임진 남자.

동료들은 그가 이번 시리즈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알고 있었다.

“킴이 없었으면 우승은커녕 월드시리즈에 올라오지도 못했을 거야.”

“맞아, 킴은 그냥 미친 투수라고. 작은 게임 큰 게임 가리지 않고 다 잘하잖아.”

“킴이 1800년대에 태어났다면 사이영과 함께 모든 기록을 양분했을 거야.”

잠시 뒤,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고, 뒤이어 월드시리즈 MVP 또한 발표 되었다.

“이번 2004 월드시리즈 MVP는…… 백투백입니다! 킴! 축하하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한마디와 함께 김민이 손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트로피를 받은 다음 마이크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 시즌 최고의 선수들과 최고의 경기를 함께 했습니다. 2년 연속 MVP를 받은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하지만 오늘 전 작년보다 기쁘지 않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작년보다 기쁘지 않다니, 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야.”

“설마 은퇴 같은 소리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킴, 제발…… 제발…….”

동료들이 가슴을 졸이는 사이 김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기쁘지 않은 것은…….”

잠시 뜸을 들인 김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최고의 선수들에게 역대급 보너스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와우! 탬파베이 레이스! 축하한다! 최고의 월드시리즈 보너스가 있을 거야!”

구단주로서의 한마디.

탬파베이 선수들과 팬들은 환호성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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