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이것이 야구다 02
“탬파베이 수비 집중력이 좋군요.”
“포스트 시즌의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오늘 경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승리에 대한 갈망이 피로를 억제하고 있는 건가?”
유리 감독은 오늘 경기를 잡아내면 6, 7차전은 의외로 쉽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탬파베이는 포스트 시즌 모든 경기를 끝까지 치렀다. 피로감이 없다고 한다면 그 말은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모습에서 피로는 보이지 않는다. 승리라는 마약이 모든 것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패하면…… 둑이 무너지듯 지금까지 참아왔던 피로감이 온몸에 쏟아질 것이다.’
그는 김민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250이닝은 오래전에 넘겼다. 게다가 3일 휴식 후 등판, 정신력이 뛰어난 투수라고 해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탬파베이가 선취점을 내면 계속해서 힘을 내 던질 것이고, 먼저 선취점을 주면 조금씩 무너질 것이다. 오늘 경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취점이다.’
가능하다면 이번 공격에서 점수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벌써 2사.
상황은 쉽지 않아 보였다.
“홈런 한 방. 너무 큰 욕심인가?”
탁!
배트에 맞은 공이 3루 라인 밖에 떨어졌다.
유리 감독은 주먹을 살짝 쥐었다.
‘관중석이 아니라 파울 라인 근처에 공이 떨어진다는 것은 킴의 구위가 떨어졌다는 증거다.’
이반 감독 역시 파울 타구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킴의 구속은 어때?”
“평소보다 조금 낮습니다.”
이반 감독은 바이슨 수석 코치의 대답에 낮게 신음했다.
“으음…….”
‘마지막에 꼭 이러는군. 이번 시리즈는 끝까지 가면 좋지 않은데 말이야.’
월드시리즈만큼은 길게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김민을 당겨 등판시켰다.
한데 상황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아직 1회 초, 내 생각이 지나친 것이었으면 좋겠군.’
따악!
터커가 때린 타구가 2루수 옆을 스쳤다.
“안타! 안타입니다!”
“2사 후에 안타가 나오는군요.”
김민은 안타를 맞은 뒤 모자를 벗었다.
‘컨트롤이 평소보다 나빠. 반 개 정도 더 안으로 들어갔다면 칼튼이 잡을 수 있었을 거야.’
경기 전까지는 보통 컨디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타자를 상대하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항상 컨디션이 좋을 수 없어.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에도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선발 투수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김민은 맞춰 잡는 투구를 선호했다.
그러나 맞춰 잡는 투구는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실점할 가능성이 컸다.
‘실책과 장타, 이 두 가지를 내가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민은 자신의 컨디션에 따른 평균자책점 변화를 통계로 작성한 적이 있었다.
시즌 30경기를 나왔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컨디션이 좋을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평균자책점이 0.41정도 더 좋았다.
김민의 평균자책점이 0점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컨디션이 좋을 때는 거의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리 김민이라고 해도 완봉으로 막는 것이 힘들었다.
‘1점은 준다고 생각해야겠군.’
그는 탬파베이 타선을 믿었다.
‘7이닝 1실점, 이 정도면 이길 수 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에서 떨어졌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파울 라인 근처에 떨어졌다.
“라이언이 스플리터를 당기는군요.”
“공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군.”
4번 타자 라이언의 집중력은 상당히 좋았다.
‘킴의 컨디션은 1회가 가장 좋지 않다. 1회를 넘기면 공략이 거의 불가능하다.’
첫 타석이 마지막이자 가장 좋은 기회.
메츠 타자들은 첫 타석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탁!
두 번째 공도 파울.
하지만 이번 공은 폴대 옆에 떨어지는 좋은 타구였다.
“타구가 아슬아슬하게 타구가 폴대를 벗어납니다!”
“3m 정도만 안으로 들어갔더라면 투런 홈런이 되었을 겁니다.”
김민은 주심에게 직접 공을 받았다. 그리곤 두 손으로 공을 비비면서 생각했다.
‘적극적이면서 집중력이 좋다. 이런 상대는 언제든 까다롭다.’
라이언이 처음으로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2사, 여유는 있다.’
김민은 체인지업을 가운데서 떨어뜨렸다.
라이언의 배트는 앞으로 나오다가 결정적인 순간 멈췄다.
“포수가 미트로 1루심의 판정을 요구합니다.”
1루심은 두 손을 옆으로 길게 폈다.
“세이프, 돌지 않았습니다! 이번 공은 볼입니다.”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배트를 세웠다.
‘어설픈 체인지업은 통하지 않아. 그걸 던져 보라고.’
김민은 길게 심호흡을 한 뒤 강하게 공을 쥐었다.
‘카운트 1-2, 여기서 승부를 내는 게 좋겠어.’
그는 1루 주자를 확인하곤 슬라이드 스텝을 빠르게 가져갔다.
슈욱!
빠른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라이언은 그 공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야.’
배트가 공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백네트 뒤에 꽂혔다.
퍽!
라이언은 타격 직후 손에 통증을 느꼈다.
‘이건 뭐지? 마치 돌덩이를 때린 느낌이다.’
지금의 집중력이라면 라이징 패스트볼을 앞으로 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95마일(153km)의 라이징 패스트볼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한 공이었다.
‘무거운 공이란 이런 공을 말하는 건가?’
라이언은 미간을 좁혔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배트를 세우는 라이언을 보며 말했다.
“또 파울이군요.”
“타이밍은 맞았어. 어긋난 건 배팅 포인트야.”
라이언이 손에 통증을 느낀 것도 사실은 배팅 포인트가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탈락한 미네소타의 거포 시몬스가 TV를 보며 말했다.
“라이언, 킴의 라이징 패스트볼은 그렇게 쉽게 때릴 수 있는 공이 아니야. 조금 더 집중하라고.”
그는 라이징 패스트볼을 공략하기 위해 타격 자세까지 바꾸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김민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김민은 카운트를 확인한 뒤 미간을 좁혔다.
‘정말 어렵게 가는군.’
라이징 패스트볼까지 동원했지만, 라이언을 잡아내는데 실패했다.
‘라이언은 이렇게까지 어려운 타자가 아니었는데. 오늘은 정말 힘들군.’
그는 공을 넘겨받곤 미간을 좁혔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다. 전력으로 매듭을 짓는다.’
김민은 결정을 내렸다.
정교한 컨트롤은 힘들다.
그러니 아슬아슬한 공은 포기한다.
포수 미트를 보고 강하게 공을 뿌렸다.
‘그대로 들어가라!’
슈욱!
빠른 공이 다시 한번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라이언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같은 코스!’
그는 지금까지 같은 코스에 같은 구종이 날아온 것을 놓친 적이 없었다.
물론 이것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공에 한해서였다.
‘그대로 당긴다!’
라이언은 공을 강하게 당겨서 좌측 펜스를 넘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배트는 어떠한 것도 만날 수 없었다.
배트가 허공을 친 순간 공이 미트에 꽂혔다.
파앙!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앞서 던진 라이징 패스트볼보다 빠른 96마일(154km).
주심이 오른손을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라이언은 배터 박스에서 물러서지 않은 채 눈을 크게 떴다.
‘뭐지? 방금 그 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뻗었다.’
김민이 그에게 던진 공은 업 라이징 패스트볼.
그러나 이 공도 평소와는 달랐다.
위로 떠오르기보다는 앞으로 길게 뻗으면서 타자의 배트를 피해 냈다.
“킴! 라이언을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2사 1루의 위기를 벗어납니다.”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킴은 역시 무적입니다. 탬파베이 팬들은 편히 경기를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로버트는 라이언의 삼진 장면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1회 초 득점 작전은 실패했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오늘 경기는 이제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미트를 든 채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1회 말.
탬파베이 공격.
첫 타자는 항상 그렇듯 브라이튼이었다.
“오늘도 브라이튼이 선두 타자로 나왔습니다.”
“전 이 친구를 보면, 항상 다른 팀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 줄지 궁금합니다.”
“브라이튼도 벌써 3년 차죠?”
“그렇습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연봉에 대한 압박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팀은 아마도 트레이드를…….”
중계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포타가 사인 교환을 끝냈다.
“초구 와인드업!”
캐스터의 말과 동시에 강속구가 그의 손끝을 떠났다.
슉!
다소 높은 쪽의 패스트볼.
브라이튼은 강하게 공을 당기려 했다.
하나 공은 배트를 스치곤 로버트의 미트에 들어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의 구속은 98마일(158km).
김민의 업 라이징 패스트볼보다 2마일(3.2km)이나 더 빨랐다.
“포타! 오늘도 좋습니다!”
“브라이튼의 배트가 따라가지 못하는군요. 훌륭한 패스트볼입니다.”
로버트는 공을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공이다. 오늘 포타의 패스트볼은 믿어도 좋겠어.’
그는 바깥쪽 코스에 패스트볼을 하나 더 요구했다.
슉!
이번 공도 빨랐다.
브라이튼은 어떻게든 컨택하려 했지만, 다시 한번 배트가 허공을 쳤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브라이튼의 헛스윙에 미간을 좁혔다.
“브라이튼이 속도에 밀리고 있습니다.”
“98마일 패스트볼이 아닌가? 저런 공이라면 밀려도 이상하지 않아.”
이반 감독은 인내심을 가지고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경기다. 처음부터 잘 풀리는 수는 없다.’
브라이튼은 두 번째 공을 때려내곤 얼굴을 찌푸렸다.
‘빠른 것도 빠른 것이지만, 무브먼트가 있어. 그래서 헛스윙이 나온 거야.’
타자들이 흔히 말하는 지저분한 공.
포타의 오늘 공이 그랬다.
로버트는 지저분한 공일수록 큰 위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탬파베이의 야구 귀신들을 상대로는 이런 공이 딱 좋아.’
그는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슉!
빠른 공이 다시 한번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하지만 이번 공은 패스트볼이 아니었다.
브라이튼의 배트가 앞으로 나온 순간 공이 크게 휘어져 나갔다.
“헛스윙 삼진입니다! 포타!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패스트볼 이후 같은 코스에 슬라이더, 훌륭한 볼 배합이군요. 브라이튼이 꼼짝 못 하고 당했습니다.”
브라이튼은 바닥에 침을 뱉은 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느낌이 좋지 않아.’
다음 타자는 천재 산체스.
그는 데뷔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았다.
“산체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포타,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산체스를 깔끔하게 잡아내지 못하면 베이스에 주자를 둔 채 윌리엄을 상대해야만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했다.
- 탬파베이 타선은 산체스부터다.
로버트는 자신 있게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포타의 패스트볼 컨디션은 최고다. 슬라이더도 나쁘지 않지만, 패스트볼만큼은 믿을 수 있다.’
슉!
초구가 바깥쪽 코너를 향했다.
탁!
산체스의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더그아웃 앞에 떨어졌다.
“파울!”
산체스는 과연 브라이튼과 달랐다.
“98마일(158km)을 앞으로 보내긴 하는군요.”
“산체스라면 100마일(161km)도 쳐 낼 수 있을걸?”
김민도 같은 생각이었다.
‘구속만으로는 산체스를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 포타의 공, 구속만이 전부가 아닌 것 같아.’
그는 배터 박스에 서지 않았지만, 포타의 공이 뭔가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탁!
두 번째 공도 파울.
이번에는 라인 근처에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파울이었다.
“포타, 투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여기서는 브레이킹볼이나 체인지업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오프 스피드 피치.
록튼은 체인지업이 들어온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로버트의 다음 볼 배합은 패스트볼이었다.
파앙!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산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배터 박스를 벗어났다.
자신의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포타! 산체스마저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하기 위해 괴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포타는 다음 타자인 윌리엄마저 2루 땅볼로 잡아내 삼자범퇴로 1회 말 수비를 끝냈다.
“포타가 좋군요.”
캄진 수석 코치의 표정은 밝았다.
“겨우 1회야.”
“오늘 포타는 잘할 겁니다.”
그의 예상대로 포타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반면 김민의 컨디션은 기대 이하였다.
2회와 3회.
김민은 연속으로 주자를 내보내며 위기를 맞았다.
물론 그때마다 노련한 피칭과 수비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지난 경기까지 보여 줬던 압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반 분위기는 메츠가 가져갔습니다.”
“킴이 힘들어 보이는군.”
“3일 휴식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이반 감독이 무리하게 김민을 등판시켰다고 생각했다.
“오늘 경기를 진다고 해도 6차전에 킴이 등판할 수 있다면, 탬파베이가 훨씬 유리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하지만 이반 감독은 무리해서 킴을 5차전에 등판시켰어.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
누군가 기자들의 물음에 대답했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기 때문일 거야.”
기자들 뒤에는 팔짱을 낀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호이스트!”
그는 뉴욕 양키스의 전력분석팀장이었지만, 챔피언십 시리즈가 끝난 직후 해임되었다.
“사람은 말이야. 단순한 이유로 객관적인 사실을 망각하곤 하지. 이반 감독은 이번 시즌이 킴의 혹사 시즌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아.”
이반 감독은 김민이 무리했다는 사실을 잊은 게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민을 5차전 선발로 등판시킨 것이었다.
‘11월 초의 셰어 스타디움. 그곳의 쌀쌀한 날씨는 플로리다에 익숙해진 킴의 몸에 어떤 상처를 남길지 모른다.’
그는 세어 스타디움이라는 예측하지 못할 장소보다 김민이 최고의 성적을 거둔 트로피카나 필드가 더 낫다고 판단했다.
“칼튼의 삼진 아웃! 경기는 메츠의 4회 초 공격으로 넘어갑니다!”
4회 초.
선두 타자는 3번 타자 터커.
김민은 앞선 타석에서 안타를 맞은 적이 있었다.
‘터커는 기본적으로 적극적인 타자다.’
제구가 잘 되는 날이라면 스트라이크존에서 반 개 정도 빠지는 공으로 유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로케이션과 오프 스피드 피치가 있었다.
슉!
초구는 높은 코스로 날아가는 패스트볼.
파앙!
“스트라이크!”
터커는 공을 하나 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93마일(150km)이라. 지친 모양이군.’
하이 패스트볼이 94마일(151km) 이하로 떨어진 것은 오늘 경기 처음이었다.
터커는 충분히 김민의 공을 쳐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리 감독의 생각도 같았다.
“킴이 지쳤군.”
“1회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한 타순 돌았으니, 맞아 나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터커가 배트를 세우자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
터커의 배트가 이내 멈췄다.
‘이건 칠 수 없어.’
눈에 보인데도 칠 수 없는 공.
그것은 바로 이퓨즈였다.
팡!
주심의 오른손이 바로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킴은 킴이군요. 이럴 때도 흔들리지 않고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았습니다.”
“타고난 강심장이야. 그 코스에 그런 공을 넣다니.”
터커는 배트를 내린 뒤, 미간을 좁혔다.
‘대단한 공은 아니야. 생각하지 못해서 쳐 내지 못했을 뿐. 다음에 들어오면 그대로 때린다.’
배트를 세우자 다음 공이 날아왔다.
이번 공은 이퓨즈와 정반대의 공이었다.
‘높은 코스의 빠른 공!’
터커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지만, 공은 배트를 지나쳐 미트에 꽂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터커는 삼진을 당한 뒤 구속을 확인했다.
‘92마일(148km)이라고? 믿을 수가 없군. 방금 공은 95마일(153km)보다 훨씬 빠르게 보였는데.’
로버트가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터커가 삼진을 당한 건 이퓨즈를 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야.”
혼즈가 물었다.
“이퓨즈가 강하게 잔상을 남긴 건가?”
“이퓨즈는 극도로 느린 공이야. 이걸 치기 위해서는 패스트볼과 완전히 다른 타이밍을 잡아야 해. 하지만 터커는 욕심을 부렸어. 패스트볼과 이퓨즈, 그 중간쯤에 타이밍을 맞춘 것 같아.”
메츠의 다음 타자는 4번 라이언.
로버트는 라이언이 하나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1회 초, 킴은 라이언을 상대로 전력투구를 펼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을 거야.’
그는 김민의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판단했다.
슉!
초구는 바깥쪽을 벗어나는 패스트볼이었다.
“초구가 볼이 됩니다.”
라이언은 구속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92마일(148km)이라. 1회와 확실히 다른 공이다. 정말로 지친 모양이군.’
두 번째 공은 안쪽에서 떨어지는 커브.
라이언은 이 공에 헛스윙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운트 1-1.
로버트가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빠른 공, 느린 공, 이번에는 다시 빠른 공이다.”
커터가 들어올지 패스트볼이 들어올지는 몰랐다.
하지만 로버트는 구종과 상관없이 빠른 공이 들어온다고 예상했다.
휙!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이 큰 호를 그렸다.
‘이퓨즈!’
로버트는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볼 배합에 혀를 찼다.
‘허! 혹시 그런 건가? 킴은 오늘 자신의 공 중 이퓨즈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 건가?’
그랬다면 납득할 수 있었다.
라이언의 배트는 이퓨즈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 정도 속도라면 타이밍을 늦춰 때릴 수 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은 포물선을 그렸다.
“큽니다! 타구가 멀리 날아갑니다!”
이반 감독은 산체스가 추격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넘어가는 공은 아니다.’
김민의 생각도 같았다.
‘산체스가 스타트를 끊었다는 것은 낙하지점을 읽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라이언은 이퓨즈를 넘길 수 있는 타자가 아니다.’
예상대로 공은 산체스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산체스, 멋진 수비입니다!”
“상당한 거리를 달려와 타구를 잡아내는군요. 다음 시즌이라면 골드글러브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민은 산체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다음 승부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