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노장의 관록 04
“스코어는 이제 3-1입니다!”
“탬파베이 화력이 5회 폭발하는군요. 탬파베이는 역시 화력의 팀입니다.”
단 한 명의 타자를 잡지 못해 3실점.
바르도에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닝이었다.
사무엘이 타임을 걸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사무엘, 지금 홈런 마음에 두지 마.”
“…….”
“이것도 월드시리즈에 한 부분이야. 솔직히 말해 난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월드시리즈 마운드에서 선발 투수로 설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일부의 투수뿐이니까.”
사무엘은 자신의 위로가 전혀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뭐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르도가 흔들리면 오늘 경기는 끝이다.’
사무엘은 불이 붙은 탬파베이 타선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정신 차린 바르도 뿐이라고 생각했다.
‘탬파베이 타선의 집중력이 살아났다. 어설픈 불펜으로는 막을 수 없다.’
바르도가 말했다.
“사무엘의 리드는 좋았어. 홈런을 맞은 건 내 공이 나빴기 때문이야.”
그는 오늘 사무엘에게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바르도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했다.
사무엘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 말은 틀렸어. 네 공은 나쁘지 않았어.”
“그럼…….”
“산체스가 잘 친 거야. 녀석은 괴물이라고.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1순위, 어쩌면 다음 시즌에는 MVP를 두고 다툴지도 모르지.”
바르도가 말했다.
“천재라, 우리하곤 다른 인종이군.”
“그래, 녀석은 천재라 불리는 인종이야. 그러니까 누가 잘못했는지는 생각하지 말자. 우린 다음 승부에 집중하는 게 좋아.”
툭. 툭.
사무엘은 바르도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홈플레이트로 돌아왔다.
두 사람의 다음 상대는 또 다른 천재 윌리엄이었다.
사무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타선이군. 그래도 바르도 난 널 믿는다. 오늘 네 공은 정말 좋았어.’
그는 사인을 낸 뒤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도망치지 말고 던지라고.’
슉!
98마일(158km)의 빠른 공.
윌리엄은 그 공을 노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딱!
타구는 순식간에 내야를 벗어났다.
“타구가 외야로 날아갑니다!”
하지만 윌리엄의 타구는 그 기세가 오래가지 못했다.
“발사 각도가 너무 높았습니다. 이래서는 펜스를 넘지 못하겠는데요?”
“중견수 혼즈가 공을 처리합니다!”
중견수 플라이.
윌리엄은 배팅 포인트가 맞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더그아웃에 들어가자마자 산체스를 찾았다.
“산체스, 어떻게 친 거야?”
“홈런 말입니까?”
“그래, 난 못 치겠던데?”
산체스가 대답했다.
“킴의 공이라고 생각하고 때렸습니다.”
윌리엄이 그 말에 멈칫했다.
“킴의 공이라고?”
“시즌이 끝나면 다시 한번 승부할 겁니다. 제 목표는 여전히 킴이니까요.”
윌리엄은 산체스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킴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공략하고자 한다면 이 정도 무브먼트는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산체스, 무서운 녀석이야. 성장을 멈출 생각이 없어.’
그는 글러브를 들고 외야로 뛰어나갔다.
사무엘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뒤, 장비를 벗었다.
그 순간 코치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5이닝 3실점이군.”
“기대보다는 좋지만, 성공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나쁘지 않은 정도입니다.”
“후반은 불펜 싸움인가?”
“조금 버겁겠지만, 어쩔 수 없죠.”
산체스의 홈런이 아니었다면, 바르도는 이번 이닝도 무실점으로 막아 냈을 것이다.
사무엘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야구다. 공 하나에 승패, 아니 시즌 결과가 달라진다.’
그는 슬쩍 바르도를 살폈다.
바르도는 라커룸으로 향하는 대신 벤치에서 땀을 닦고 있었다.
‘아이싱을 받지 않고 있어. 다음 이닝도 마운드에 오른다는 말이군.’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그는 다음 이닝 바르도가 마운드에 오를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6회 초.
메츠 공격.
볼넷으로 출루한 선두 타자가 도루와 희생타로 1사 3루 상황을 만들었다.
“메츠, 위기 뒤 기회입니다.”
“여기서 1점이라도 따라가야 합니다.”
록튼은 타자와 어렵게 승부하기보다는 아웃 카운트와 1점을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1점으로 리드가 바뀌진 않는다. 무리하게 코너로 공을 요구했다가는 실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렉터의 구위는 경기 초반보다 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투가 나오면 십중팔구는 담장을 넘어갔다.
‘동점 홈런만큼은 피하고 싶다.’
슉!
낮게 깔리는 공.
배트가 공을 그대로 퍼 올렸다.
딱!
“우익수 쪽으로 날아가는 공!”
“이 정도면 3루 주자가 충분히 홈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지 못한 채 윌리엄에게 잡혔다.
그러나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기에는 충분한 타구였다.
“홈에서 세이프! 스코어 3-2, 메츠! 1점 차로 추격합니다.”
“오늘 경기 정말 모르겠습니다. 역전 홈런 뒤에 바로 추격하는 점수가 나옵니다!”
2사 주자 없는 상황.
타자는 연속해서 파울 타구를 때려내며 버텼다.
렉터는 타임을 걸고 소매로 땀을 닦았다.
‘겨우 6회…… 이닝을 끝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그는 심호흡을 한 뒤 안쪽으로 승부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3루수 스나이더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스나이더의 호수비가 렉터를 살립니다!”
6이닝 2실점 6피안타.
이반 감독의 눈에 길게 한숨을 내쉬는 렉터가 들어왔다.
“어떻게든 버텼군.”
블렛소 투수 코치가 그 말을 받았다.
“다음 이닝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스페이츠로 가지.”
“라우리가 아니라 스페이츠입니까?”
“라우리는 아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위기가 또 찾아올 것 같으니까.”
좌타자가 많은 메츠였다.
‘좌완 불펜은 승부처에서 내는 것이 좋다.’
이반 감독은 노련하게 경기를 지휘했다.
6회 말.
바르도가 다시 한번 마운드에 섰다.
그러나 그는 6회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채 1사 1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케니히를 앞에 두고 투수를 바꾸는군요.”
이반 감독의 시선은 새로 올라오는 투수에게 꽂혀 있었다.
“케니히를 의식했다기보다는 투구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교체를 한 것 같군.”
“레예스입니다. 1차전 때는 우리 타선을 제법 잘 막았죠.”
“이번에는 힘들 거야.”
유리 감독은 마운드에서 내려온 바르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이스 피칭.”
바르도는 감독과 주먹을 마주하곤 벤치로 물러났다.
‘5와 1/3이닝 3실점, 결국 이건 가?’
최선을 다해 던졌지만, 오늘도 패전을 피하기 힘들 것 같았다.
“넌 최선을 다해서 던졌어.”
고개를 돌리니, 로버트가 보였다.
“로버트.”
“진심이야. 네가 아니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야.”
“오늘도 지고 있어.”
“너 때문에 지는 게 아니야.”
바르도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등판하는 경기는 모조리 졌다고.”
“오늘 경기를 제외한 다른 경기는 네가 아니라 내 탓이야.”
바르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로버트?”
“그냥 그렇게 알고만 있어. 이번 시즌은 아마 너와 배터리를 이룰 일이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 주겠어.”
로버트는 오늘 사무엘의 리드와 운영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탬파베이의 2루타가 터져 나왔다.
“이 타구는 큽니다!”
산체스가 때렸던 것과 같은 타구.
레예스의 구위로는 탬파베이 상위 타선을 막아 내기 힘들어 보였다.
1루에 있던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바르도의 자책점은 4점으로 늘어났다.
“탬파베이! 강합니다!”
“이래서는 메츠가 따라가지 못하겠군요.”
탬파베이의 공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적시타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5-2까지 벌어졌다.
“메츠, 투수를 다시 한번 교체합니다.”
레예스는 아웃 카운트 하나만을 잡고 하버와 교체 되었다.
하버는 풀카운트 접전 끝에 칼튼을 잡아내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탬파베이, 이번 이닝 2점을 뽑으면서 리드를 벌립니다.”
“메츠 불펜진이 탬파베이 타선의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는군요. 유리 감독으로서는 아쉬움이 크겠습니다.”
캄진 수석 코치가 말했다.
“제구가 어느 정도 되는 투수라면 로버트 쪽이 나은 것 같습니다.”
유리 감독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건 그냥 탬파베이가 잘 때린 거야. 사무엘의 리드는 나쁘지 않았어.”
그는 포수를 로버트로 교체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탬파베이는 확실히 강하다.’
이제 그의 목표는 어떻게든 1승을 올려 뉴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뉴욕으로 돌아간다면, 대등한 상태에 승부를 겨룰 수 있었다.
7회와 8회.
양 팀 공격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범타가 잇달아 나옵니다.”
“라우리도 좋군요. 메츠 타선을 간단히 막아 냅니다.”
탬파베이는 필승조로, 메츠는 추격조로 상대 타선을 막아 냈다.
그리고 9회 초.
메츠가 1사 1, 2루의 찬스를 잡았다.
“메츠, 마지막 순간 동점 기회를 잡았습니다! 홈런 한 방이면 바로 동점입니다!”
“탬파베이가 그랬던 것처럼 메츠도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긴장 되는 순간이군요.”
배터 박스에 들어선 것은 5번 타자 엔드류.
유리 감독은 입안이 바싹 말랐다.
“여기서 엔드류가 하나 해 주면 좋겠는데.”
홈런이라면 단숨에 동점.
하지만 상대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꽉 찬 공 또는 볼에 가까운 패스트볼이 들어오겠지.’
현실적으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결과는 1, 2루 사이를 꿰뚫는 안타.
‘안타 하나면 점수 차이를 5-3으로 줄이면서 찬스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그는 6번 혼즈 타석에서 대타를 낼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수비를 생각한다면 대타를 내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순간 엔드류의 배트가 움직였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유격수 브라이튼에게 향했다.
“아…….”
유리 감독은 탄식했고, TV 앞에 앉은 메츠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끝났어. 끝났다고.”
“엔드류가 경기를 망쳤어!”
“빌어먹을! 경기가 이렇게 된 건 레예스 때문이야!”
6-4-3의 병살타.
탬파베이 내야 수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탬파베이! 4차전도 승리로 장식합니다! 이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단 1승만이 남았습니다!”
“탬파베이, 강합니다! 마지막 9회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누가 이 팀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요?”
유리 감독은 최선을 다했지만 힘이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바르도는 기대 이상의 피칭을 해 주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다. 그는 노장의 관록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탬파베이를 넘지 못했다.’
탬파베이는 그들이 만난 최강의 적이었다.
‘내일은 어떻게든 이겨서 뉴욕으로 돌아간다.’
1차전에 승리하고 내리 4연패는 치욕에 가까웠다.
‘우리도 챔피언십 시리즈를 이기고 올라온 팀이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
라커룸을 빠져나가는 그에게 구단 스텝이 달려왔다.
“감독님!”
유리 감독이 걸음을 멈추곤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탬파베이가 5차전 선발을 발표했습니다.”
로테이션에 따른다면 내일 선발은 클락이었다.
유리 감독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자네 얼굴을 보니, 클락이 아닌 모양이군.”
“킴입니다.”
클락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민이 상대라면 이건 이야기가 달랐다.
유리 감독은 생각했다.
뉴욕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킴인가?”
“3일 휴식 후 등판인 것 같습니다.”
유리 감독은 이반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무리를 하더라도 내일 시리즈를 끝낼 생각이군.’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없는 겁니까?”
“내일 아침 이야기하지.”
“알겠습니다.”
유리 감독은 버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내일 선발이 킴이라고?”
호텔 로비에 모인 메츠 선수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3일 쉬고 나오는 건가?”
“플로리다에서 끝장을 보려는 모양이군.”
“제길…… 오늘 경기를 잡았어야 했는데.”
“킴이 상대라면 어렵겠는걸?”
엔드류는 마지막 땅볼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내가 안타를 때렸어야 해.”
로버트가 선수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걱정할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가 우승하려면 남은 경기에 모두 이겨야 해. 킴이 내일 나오든 아니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
그는 오늘 사무엘에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메츠 선수들의 지지는 여전했다.
터커가 말했다.
“로버트, 오늘은 네가 나오지 못해서 패한…….”
로버트가 오른손을 들었다.
“오늘 경기는 내가 나오지 못해서 패한 것이 아니야. 오늘은 우리 집중력이 좋지 못했어.”
그는 오늘 경기에 이길 기회가 3번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살릴 수는 없었겠지만, 평소라면 한 번 정도는 살릴 수 있었을 거야.”
엔드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버트 말이 맞아. 오늘 경기는 상당히 안 풀렸어. 그에 비해 스코어 차이는 많이 나지 않았지. 난 내일 경기가 크게 두렵지 않아.”
메츠 선수들은 김민이 등판해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로버트는 그들의 자신감에 기름을 조금 더 얹었다.
“2차전으로 알겠지만, 킴은 정말 뛰어난 투수야. 하지만 완벽한 투수는 아니지.”
라이언이 물었다.
“킴에게 약점이 있나?”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어떤 약점이지?”
“체력이야.”
체력은 김민이 데뷔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약점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를 체력 고갈로 쓰러뜨린 팀은 없었다.
“킴이 120개를 던지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하지만 100개는 던질걸?”
“내일은 100개도 무리야.”
“흠.”
“3일 쉬고 등판이거든. 그리고 킴은 내일 초반부터 전력으로 던질 거야.”
“선취점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가?”
“맞아. 최종전은 선취점이 중요하거든.”
라이언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럼 내일 킴의 한계 투구수는 90개 정도인가?”
“아마 그렇겠지.”
로버트의 전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경기 초반에는 최대한 커트하면서 버틴다.
그리고 불펜이 나오면 집중력을 가지고 공략한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전략.
중견수 혼즈가 말했다.
“탬파베이 불펜을 집중 공략한다고 해도 대량 득점은 힘들걸? 내 생각에는 오늘 낸 점수 정도가 한계일 거야.”
오늘 메츠가 낸 점수는 2점.
혼즈는 그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로버트는 혼즈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2점이라. 1점으로 막으면 우리가 이기겠군.”
엔드류가 물었다.
“로버트, 정말로 자신 있는 거야?”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경기에서 많은 걸 배웠어. 내일은 완봉이 가능할지도 몰라.”
“포타가 완봉으로 막아 준다면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메츠 선수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맞아, 내일은 완봉으로 이기자고.”
“킴을 잡고, 뉴욕으로 돌아가서 6, 7차전 승리, 그림 같은 역전 우승이군.”
로버트는 속으로 자신을 다잡았다.
‘1승 3패에서 역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쉽지는 않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는 캄진 수석 코치와 대화한 뒤 내일 선발 출전을 확정했다.
* * *
김민은 블렛소 투수 코치로부터 선발 등판을 전달받곤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이 플로리다에서 시리즈를 끝내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셰어 스타디움은 변수가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돌아서려는 김민을 블렛소 투수 코치가 잡았다.
“킴, 괜찮겠어?”
김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3일 쉬고 등판…… 포스트 시즌에는 흔한 일이죠.”
“감독님께 80개로 투구수를 제한하겠다고 했어.”
김민이 미간을 좁혔다.
“블렛소, 2연승으로 필승조에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3연투, 시즌 중에는 힘든 일이지만, 포스트 시즌 마지막 경기라면…….”
“무리하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블렛소 투수 코치도 사실은 불펜의 3연투가 부담스러웠다.
‘킴이 완봉으로 끝내주면 좋지만…… 250이닝 이상을 던지고, 3일 휴식. 킴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은 적다고 봐야 한다.’
그가 살짝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부르스로 1+1을 해 보는 건 어떨까?”
부르스는 탬파베이 불펜 투수 중에 가장 길게 던질 수 있는 투수였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건 좀 위험하군요.”
“점수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 때는 그렇겠지. 하지만 초반에 타선이 터진다면 해 볼 만해.”
김민이 얼굴의 주름을 풀며 말했다.
“초반에 타선이 터지면, 제가 어떻게든 7회 초까지 막아 보겠습니다.”
김민이 7이닝, 부르스가 2이닝.
또는 불펜 투수들이 원포인트로 나와서 짧게 끊어 던진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나쁘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조언을 구하려는 듯 물었다.
“킴, 그런데 타선이 터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상대 투수는 메츠 에이스이자 1차전 승리 투수 포타였다.
그를 상대로 초반 대량 득점은 쉽지 않았다.
김민이 말했다.
“타선이 터지지 않는다면 터질 때까지 던지겠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놀라 말했다.
그가 원하던 답은 이것이 아니었다.
“킴, 무리야.”
“블렛소, 시즌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습니다.”
김민은 그렇게 말을 한 뒤 몸을 돌렸다. 그리곤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도록 하죠. 오늘은 푹 자고 싶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내일 걱정은 내일. 그래 걱정을 앞당겨서 할 필요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