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노장의 관록 03
헤르만이 배터 박스를 보며 말했다.
“탬파베이는 하위 타순이 강한 팀 중 하나지.”
버딩거가 그의 말을 받았다.
“칼튼이 9번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아니, 세 선수 모두 쉽지 않은 선수들이기 때문이야.”
“예? 세 선수 모두 말입니까?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상대할 때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나?”
버딩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렵다니요? 어디가 말입니까?”
“그래? 난 어려웠는데 자네는 아닌 모양이군.”
헤르만은 생각했다.
‘스나이더는 상대하기 쉬운 타자의 전형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매 시즌 0.250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어. 이것은 그가 적어도 네 타석에서 하나 정도는 안타를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는 전력분석팀의 자료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스나이더는 첫 번째 타석에서 약하고, 세 번째와 네 번째 타석에서 상당히 강하다.’
상대 투수가 익숙해질수록 강한 타자 그가 바로 스나이더였다.
‘후반에 맞는 안타 하나는 초반보다 아프다. 그래서 스나이더를 쉽게 볼 수 없는 거야.’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파울 라인에 떨어졌다.
“스나이더가 타구를 앞으로 보냈군.”
버딩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바르도는 70개 정도부터 구속이 떨어지거든요.”
“구속은 아직 97마일(156km)이야. 그리고 투구수도 59개에 불과하고.”
“머릿속으로 투구수를 세고 있었습니까?”
헤르만이 스톱워치를 들며 말했다.
“투수 코치 체험 중이야.”
스나이더는 배트를 세우면서 미간을 좁혔다.
‘패스트볼을 노리고 싶지만, 무브먼트가 장난이 아니잖아.’
그는 파울이 된 타구가 완벽한 타이밍에 맞았다고 생각했다.
‘무브먼트가 너무 심해 패스트볼은 거른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패스트볼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그는 그 지시를 무시하고 커브를 정조준했다.
휙!
두 번째 공은 커브였다.
‘왔군!’
스나이더는 노리고 있는 공을 강하게 퍼 올렸다.
따악!
“공이 높이 솟아오릅니다!”
“멀리 가는군요. 펜스를 넘길 수 있을까요?”
바르도는 고개를 돌렸고, 사무엘은 미간을 좁혔다.
‘큭, 커브를 노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정직하게 갔나?’
타구는 컸다.
그러나 공에 파워가 완벽히 실리지 않았다.
‘넘어가라!’
스나이더가 속으로 크게 외쳤지만, 결국 타구는 워닝 트랙 앞에서 잡히고 말았다.
“스나이더! 큰 타구를 때렸지만, 펜스를 넘기는 데 실패합니다.”
“탬파베이로서는 아까운 타구군요. 하지만 오랜만에 잘 맞은 타구가 나왔습니다.”
이반 감독은 박수를 쳤고, 코스타 타격 코치는 미간을 좁혔다.
“커브를 공략당했습니다. 사무엘이 볼 배합을 바꿀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이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좋지.”
“커브가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질 겁니다.”
“우린 패스트볼을 공략하고 있지 않나? 커브는 상관없을 텐데?”
코스타 타격 코치가 대답했다.
“주자가 나가 있을 때, 포인트를 바꿔 커브를 공략하고 싶었습니다.”
“자네는 내 지시를 그냥 흘려들었군.”
“패스트볼을 공략하는 척하면서 승부처에 커브를 공략하는 게 감독님의 전략 아니었습니까?”
이반 감독은 코스타 타격 코치와 생각이 달랐다.
“아니, 난 패스트볼을 진심으로 노리고 있었어.”
“감독님…….”
“아까도 말했을 텐데? 바르도는 패스트볼을 공략당하면 숨을 곳이 없게 된다고.”
이반 감독이 배터 박스에 서 있는 록튼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오늘도 저 친구가 하나 해 주면 좋겠는데.”
9번에 위치한 칼튼이 과거 리드오프를 맡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록튼은 탬파베이 타자 9명 중 가장 기량이 떨어졌다.
몇몇 메이저리그 팬들은 그가 7번 스나이더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록튼이 해 주면 저도 좋습니다. 하지만 97마일 이상 패스트볼을 상대로 잘 될지는…….”
“랜디 존슨의 공도 쳐 냈던 록튼이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런 이상적인 장면이 포스트 시즌에 몇 번씩 나올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균이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이반 감독이 말했다.
“1년에 한 달 정도는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코스타 타격 코치는 말끝을 흐렸다.
“그것은 좀…….”
“10월에는 아니다란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군.”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파울!”
록튼은 미간을 좁혔다.
‘타이밍이 제대로 맞았는데도 타구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어. 녀석의 패스트볼은 랜디 존슨 이상인가?’
사무엘은 스나이더에게 커브가 공략당한 뒤,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커브와 패스트볼의 쓰임새를 바꾼다.’
패스트볼로 카운트, 커브로 유인.
그러나 바뀐 볼 배합은 록튼에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록튼, 커브를 거릅니다.”
떨어지는 커브에 록튼의 배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지?’
사무엘은 미간을 좁혔다.
‘커브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본 건가? 흠…… 포지션이 포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
캄진 수석 코치는 볼 배합이 바뀐 것을 깨닫곤 고개를 유리 감독에게 돌렸다.
“사무엘이 스나이더의 타구에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유리 감독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받았다.
“사무엘이 겁을 먹은 건 아닌 것 같고, 경기 흐름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것 같군.”
“경기 흐름이 바뀌었단 말입니까?”
“탬파베이가 더 적극적으로 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거야. 물론 그 생각이 옳은지는 더 지켜봐야겠지.”
탁!
두 번째 패스트볼도 백네트 뒤로 넘어갔다.
“다시 파울입니다!”
사무엘은 삼진 타이밍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하나 떨어뜨리면, 록튼은 배트를 낼 수밖에 없다.’
록튼을 삼진으로 잡고 칼튼을 잡아 이닝을 끝낸다.
이것이 사무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록튼의 배트는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록튼! 또 커브를 골랐습니다! 카운트 2-2입니다!”
“이쯤 되면 커브를 그냥 버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사무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커브를 처음부터 칠 생각이 없었어.’
그는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곤 다시 한번 커브를 요구했다.
이번에는 스트라이크존으로.
휙!
느린 커브가 스트라이크존으로 날아왔다.
한가운데로 향하는 커브.
록튼의 두 눈이 커졌다.
‘이건 무조건 스트라이크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
미트에 공이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쳐 내야 해!’
록튼의 배트가 커브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공이 떨어진 지점은 3루 더그아웃.
클락은 바운드 된 공을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된 거야? 윌리엄이 해내지 못한 걸 록튼이 해냈어.”
부르스가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저건 좋은 게 아니야.”
“좋은 게 아니라고?”
“윌리엄처럼 패스트볼에 완벽히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배트가 나온 거야.”
클락이 김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킴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록튼이 여유를 가지고 잘 대처했다고 볼 수도 있어.”
“여유?”
“패스트볼에 너무 집중하면 커브를 칠 수 없으니까. 조금 뒤로 물러섰다고 보면 될 거야.”
그러자 부르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킴, 그건 아니야. 킴은 록튼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줄 때가 있어. 저건 그냥 록튼이 집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야. 저 상태에서 패스트볼이 들어오면 배트가 늦고 말 거야.”
그의 말대로 록튼의 배트는 패스트볼에 늦고 말았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백네트 뒤로 흘렀다.
“파울!”
클락이 말했다.
“그래도 잘 버티는데?”
“버티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 1루에 나가야지.”
김민이 바르도를 주시하며 말했다.
“나갈 수도 있어.”
팡!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나면서 카운트는 풀 카운트가 되었다.
“카운트 3-2 풀 카운트입니다! 록튼과 긴 승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르도, 하위 타선을 상대로 상당히 힘들어 보이는군요.”
로버트는 록튼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바깥쪽에 패스트볼 그리고 안쪽 높은 코스에 패스트볼. 이 패턴이면 록튼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바르도의 패스트볼 제구는 포수의 요구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
몸 쪽 높은 코스를 요구했지만, 실제로 들어온 공은 타자의 머리를 향하는 공이었다.
록튼은 깜짝 놀라 뒤로 쓰러졌고, 공은 간신히 포수 미트에 들어왔다.
“베이스 온 볼스! 록튼, 1루에 출루합니다.”
오랜 승부 끝에 볼넷.
바르도에게는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리 감독이 존슨 투수 코치에게 말했다.
“마운드에 올라가 봐.”
“예?”
볼넷으로 주자를 한 명 내보냈을 뿐이었다.
존슨 투수 코치는 마운드에 올라갈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리 감독이 말을 덧붙였다.
“사무엘이 흔들리고 있어. 가서 중심을 잡아 줘.”
“사무엘이 말입니까?”
“그래.”
존슨 투수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고 황급히 마운드로 달려갔다.
그를 본 바르도가 짧게 말했다.
“코치.”
존슨 투수 코치가 입으로 손을 가린 채 말했다.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그는 시선을 사무엘에게 돌렸다.
“사무엘, 조금 전 볼 배합은 좋지 않았어.”
사무엘이 변명하듯 말했다.
“록튼은 안쪽 높은 코스에 약점이 있는 타자입니다. 그것을 노렸는데 공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쪽에 약점이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어. 하지만 오늘 바르도는 그 코스에 공을 넣는 게 힘들어. 사무엘, 알고 있잖아. 오늘 패스트볼 제구가 어떤지?”
투수 코치의 지적에 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승부가 너무 길어져서…….”
“쉽게 가려고 하지 마. 오늘 경기는 바르도가 끝까지 책임지는 게 아니라고.”
바르도의 눈빛이 떨렸다.
“그럼 이번 이닝을 끝으로 강판입니까?”
존슨 투수 코치는 자신이 실언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선발 투수의 투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말을 하고 말았군.’
그가 바르도에게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6이닝은 무조건 던지게 할 거야.”
바르도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6이닝이군요.”
“더 던지고 싶나?”
바르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이 최고 컨디션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컨디션에 6이닝이라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5이닝도 소화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포스트 시즌이 두려운 투수는 되고 싶지 않다.’
사무엘이 그의 마음을 읽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바르도, 걱정하지 마. 내가 있어. 내가 널 7이닝 이상 던지게 해 주겠어.”
바르도는 사무엘을 믿었다.
“사무엘, 부탁해.”
존슨 투수 코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겁먹지 말고, 칼튼을 깔끔하게 처리해. 그리고 브라이튼에게는 안타를 맞더라도 볼넷은 주지 말고.”
“알겠습니다.”
존슨 투수 코치는 말을 마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타자는 9번 타자 칼튼.
유리 감독은 그의 타석이 고비라고 생각했다.
“칼튼을 잡아내면, 브라이튼에서 끊을 수 있다.”
“반대로 칼튼을 잡아내지 못하면 산체스를 상대해야 하죠.”
캄진 수석 코치도 이번 이닝 승부처는 칼튼 타석이라고 보았다.
탁!
첫 타구는 파울이었다.
바르도의 패스트볼은 여전히 힘이 넘쳤다.
“98마일(158km). 슬라이드 스텝으로 던지는데 구속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
“그래도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구속이 아니라 무브먼트야.”
깔끔하게 날아오는 빠른 공은 구속이 아무리 빨라도 타자들의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다.
“볼, 두 번째 공은 볼입니다!”
카운트 1-1.
칼튼은 미간을 좁혔다.
‘패스트볼은 여전히 힘이 있어. 노려야 하는 건 커브인가? 하지만 이전 타석에서 커브는 유인구였어.’
빠른 공 2개.
그는 유인구가 날아온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하운드 주루 코치도 칼튼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가 1루 주자 록튼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음 공은 커브야.”
“빠른 공이 2개 들어왔으니까. 아마 그렇겠죠.”
“뛰어 볼래?”
주루 코치의 제안에 록튼이 눈을 크게 떴다.
“제가 도루를 말입니까?”
“왜? 겁나나?”
록튼이 미간을 좁혔다.
“죽을 겁니다.”
록튼의 발은 농담이라도 빠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뛰어.”
“코치.”
“괜찮아. 상대는 사무엘이야.”
“사무엘이 어떻다는 거죠?”
“어깨가 나갔어.”
어깨가 나가지 않았다면 사무엘은 주전 포수 또는 세컨 포수로 손색이 없는 사내였다.
하지만 어깨 부상 덕분에 그는 저니맨이 되고 말았다.
록튼은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운드 주루 코치는 그와 선수 생활을 같이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신호하면 뛰어.”
코치의 신호를 받고 뛰면 스스로 판단해서 뛸 때보다 스타트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잘될까?’
그는 미간을 좁히면서 조금씩 리드를 넓혔다.
이때까지도 사무엘은 상대의 도루 의도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칼튼과의 대결에 집중했다.
- 바깥쪽 커브.
스트라이크존 안쪽으로.
사무엘은 유인구가 아니라 카운트를 잡는 공으로 커브를 선택했다.
스나이더에게 큰 타구를 맞기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바르도가 투구를 위해 발을 든 순간 하운드 투수 코치가 목소리를 높였다.
“뛰어!”
록튼은 바로 스타트를 끊었다.
‘하아! 목소리로 지시하면 어떻게 합니까? 투수가 알아들었을 겁니다.’
바르도는 공을 던지기 직전 하운드 주루 코치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커브 그립을 잡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커브를 넣는 일뿐이었다.
팡!
사무엘은 공을 잡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주자를 잡아야 해!’
하지만 그는 2루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자신의 어깨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송구가 빠진다면, 주자는 3루까지 들어간다.’
촤악!
록튼이 슬라이딩으로 2루 베이스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유리 감독은 록튼의 도루를 본 뒤 고개를 캄진 수석 코치에게 돌렸다.
“로버트가 나갈 때가 된 것 같군.”
“감독님, 도루 하나에 사무엘을 교체하실 겁니까?”
“상대에게 약점을 잡혔어.”
“사무엘의 어깨가 약하다고 해도 3루 도루는 못할 겁니다. 주자는 록튼입니다.”
유리 감독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3루 도루가 없다면 조금 더 사무엘을 가져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는 생각을 정리한 뒤 캄진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좋아. 이번 이닝까지는 사무엘에게 맡기지.”
빠른 주자가 나가기 전까지는 사무엘을 쓴다.
이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탬파베이!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냅니다.”
“록튼, 사무엘의 약한 어깨를 노려 도루를 성공시켰습니다.”
김민은 아직 좋아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루는 성공했지만 카운트는 나빠졌어.’
카운트는 1-2로 칼튼에게 불리했다.
2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결국 안타였다.
안타를 때리지 못한다면 2루 도루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불리한 카운트에서 칼튼은 상당히 약한 편이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원 바운드로 2루수 글러브에 들어갔다.
“2루수 라이언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록튼은 발이 느렸기 때문에 3루로 가지 못한 채 2루에 묶이고 말았다.
“2사 2루입니다.”
다음 타자는 브라이튼.
유리 감독이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좋았어! 어려운 아웃 카운트를 잡았어.”
캄진 수석 코치도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했다.
“브라이튼을 잡아내고 다음 이닝을 맞는 게 베스트입니다.”
6회부터는 불펜을 총동원할 수 있었다.
‘탬파베이 중심 타선을 물량전으로 막아 낸다. 오늘 경기를 잡을 수 있다.’
오늘 경기를 잡아내면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유리 감독의 큰 그림은 단 하나의 플레이로 무너지고 말았다.
툭.
배트에 맞은 공이 3루 쪽으로 굴러갔다.
“기습 번트!”
2사 2루.
기습 번트.
누군가는 큰 의미가 없는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기습 번트라고? 성공해도 2사 1, 3루잖아. 여기서는 안타가 아니면 큰 의미가 없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었다.’
사무엘도 같은 생각이었다.
‘기습 번트? 성공해도 득점은 없다!’
하지만 브라이튼의 생각은 달랐다.
‘베이스에 주자는 많을수록 좋은 거라고. 그리고 주자를 2루가 아니라 3루에 보낼 수 있다면 아주 의미 없는 건 아니야.’
3루 라인을 따라 공이 흘러갔다.
3루수 터커는 브라이튼의 발이 빨라 1루 승부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나가라.’
“터커, 공을 잡지 않고 기다립니다!”
타구가 라인을 벗어난다면 파울이 되면서 기습 번트가 무의로 돌아갔다.
하지만 타구는 파울 라인을 벗어나지 않은 채 3루 베이스에 닿았다.
“내야 안타입니다!‘
2사 주자 1, 3루.
다음 타자는 산체스였다.
“어떻게 할까요?”
질문을 던진 이는 캄진 수석 코치가 아니라 존슨 투수 코치였다.
투수를 교체하자는 뜻.
유리 감독은 미간을 좁혔다.
“여기서 투수를 바꿀 수는 없어.”
1점을 지키기 위해 잘 던지고 있는 선발 투수를 내릴 수 없다.
“승부처입니다.”
“계속 승부처야. 6이닝 2실점 정도로 타협하지.”
앞으로 2점을 더 주더라도 바르도를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산체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바르도와 사무엘 배터리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요?”
“산체스만 생각하면 거르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다음 타자가 윌리엄입니다.”
“거를 수가 없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정면 승부.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사무엘은 생각했다.
‘크게 심호흡하고 깊게 던진다. 우리에게 남은 건 이것뿐이야.’
그는 빠르게 사인을 낸 뒤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우익수 플라이, 그 정도만 부탁한다.’
바르도는 고개를 끄덕인 뒤 패스트볼을 안쪽으로 뿌렸다.
‘깊이 들어가라!’
다음 순간 아름다운 스윙이 공을 멀리 날려 버렸다.
“큽니다!”
산체스는 타구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배트를 내던졌다. 그리곤 1루를 향해 묵묵히 뛰었다.
그는 결과를 의심하지 않았다.
“계속 날아갑니다!”
탁……
공이 떨어진 곳은 놀랍게도 돔구장 벽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초대형 홈런이었다.
“산체스! 초대형 홈런입니다!”
유리 감독은 모자를 벗은 뒤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여기까지군.”
6이닝 2실점이라던 그의 마지노선을 산체스가 타구 하나로 깨뜨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