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노장의 관록 01
2사 1루.
타석에는 4번 타자 아울.
탬파베이로서는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김민은 동점을 만드는 과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패스트볼을 공략해서 펜스 직격 2루타? 바르도의 패스트볼 구위와 아울의 첫 타석 습관을 생각하면 이건 어렵다.’
아울은 첫 타석에서 풀 스윙 대신 레벨 스윙에 집중했다.
이는 아울의 타율을 소폭 상승시켜 줬지만, 커브와 같은 브레이킹볼 공략할 때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풀 스윙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때린다고 해도 1루 주자를 3루에 보내는 정도. 결국 아울보다는 라이트가 해 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의 시선이 대기 타석에 선 라이트에게 옮겨 갔다.
‘라이트라면 거친 공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울의 타석이었다.
아울은 첫 타석에서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는 그의 첫 타석 스윙이 레벨 스윙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패스트볼 제구는 어설프고, 커브 제구는 좋다. 하지만 더 위력적인 것은 패스트볼. 패스트볼을 제압하면 바르도는 마운드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는 배트를 세우면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패스트볼은 전력을 다해서 공략, 커브는 커트.’
아울이 이렇게 두 가지로 목표를 나눠 잡은 것은 패스트볼과 커브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었다.
산체스 같은 천재 타자도 두 가지 공을 동시에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빠르다. 하지만…….’
아울은 배트를 멈췄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지 않는다.’
상대의 제구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보고 있었다.
파앙!
97마일(156km) 패스트볼이 코너에 꽂혔다.
아울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공이었다.
“스트라이크!”
사무엘은 미트에서 공을 빼며 생각했다.
‘정확히 제구된 공이다. 바르도가 던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 이건 우연이다.’
그의 생각대로 바르도의 이번 공은 우연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이 우연은 누군가에게 큰 위협이었다.
아울은 미트에 꽂힌 공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바르도가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꽂아 넣을 수 있다면,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보는 게 의미가 없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상황이 좋지 않게 변했군.’
슉!
두 번째 공도 패스트볼.
아울은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공이 너무 낮아서 커트조차 불가능했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7마일(156km).
“아울, 낮은 공을 공략했지만, 너무 낮았습니다.”
“존으로 들어오는 공은 보내고, 존에서 빠지는 공을 공략했군요. 아울,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게 아니었다.
이것은 전략의 실패와 우연한 성공이 부른 결과물이었다.
클락은 아울의 헛스윙보다는 바르도의 패스트볼 스피드에 주목했다.
“무시무시하군. 던지면 다 97마일 이상이야.”
랜디 존슨만큼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바르도의 패스트볼은 아울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부르스가 클락의 말을 받았다.
“제대로 된 공은 아니지만 정말 빠르군.”
김민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제대로 된 공이 뭘까?”
그러자 클락이 대답했다.
“코너에 정확히 제구된 공이지.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너무 빠졌어.”
“그래도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했다면 된 것 아닐까?”
“그건 너무 결과론 아니야?”
김민이 대답했다.
“아니야. 상대 포수는 배트가 나올 걸 알고 공을 주문한 거야.”
그의 예상대로 사무엘은 아울의 배트가 나올 것을 알고 낮은 공을 주문했다.
물론 공이 얼마나 낮게 들어올지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바랐던 것은 헛스윙이 아니라 2루수 쪽으로 흘러가는 땅볼이었다.
“아울이 투 스트라이크에 몰렸습니다.”
이반 감독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을 받았다.
“0-2이라. 이번 공격은 힘들겠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아울의 룩킹 삼진.
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공은 커브였다.
“바르도! 좋습니다! 아울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1회를 무실점으로 마칩니다!”
“커브의 제구가 훌륭합니다. 포수가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바르도가 힘을 내고 있습니다.”
로버트는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시프트도 쓰지 않고 아울을 잡아냈다. 그것도 어설픈 제구를 가진 패스트볼과 커브로.’
그가 아는 아울은 이런 어설픈 공이 당할 타자가 아니었다.
미스터 기본기라는 별명답게 약점이 없는 타자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아울의 약점을 간파했다는 듯 그를 룩킹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아울에게 스나이더가 물었다.
“마지막 커브 말이야. 왜 배트가 안 나간 거야? 볼이라고 생각한 건가?”
아울이 미트를 챙기며 대답했다.
“치려고 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더라.”
“몸이 움직이지 않다니?”
윌리엄이 한발 늦게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패스트볼 때문이지.”
“패스트볼 때문이라니?”
“97마일(156km) 이상 빠른 공에 맞춰 놓은 몸이 그보다 훨씬 느린 77마일(124km) 커브에서 작동을 멈춘 거야.”
스나이더가 고개를 갸웃했다.
“난 좀 이해가 안 가는데?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췄는데 왜 느린 공에 배트가 나가지 못하는 거야? 누구 설명해 줄 사람 있어?”
윌리엄이 글러브를 들며 말했다.
“스나이더,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수비에 집중해. 바로 우리 수비 시작이야.”
김민은 마운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몸이 틀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의 몸은 패스트볼과 커브를 다른 것이 아니라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패스트볼은 옳고 커브는 그르다.’
김민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프 스피드 피치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2회 초
뉴욕 메츠 공격.
메츠 타자들은 렉터의 느린 공을 가볍게 맞혔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2루수 정면으로 가는 타구! 그러나 칼튼이 그 자리에서 처리합니다.”
“위치 선정이 좋군요.”
첫 두 개의 타구는 수비벽에 막혔다.
하지만 3번째 타구는 시프트를 뚫었다.
“사무엘의 타구가 2루수 키를 넘깁니다!”
“사무엘, 월드시리즈 첫 출전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약입니다.”
로버트는 타석에서 활약하는 사무엘을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어째서…… 어째서 월드시리즈같이 큰 무대에 나보다 더 사무엘이 어울리는 것이냐!’
그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사무엘은 팀의 세 번째 포수였다.
경기 시작 직전까지 동료들은 사무엘의 선발 출전을 반대했다.
동료들이 항명하는 동안 로버트는 자리를 떠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상황은 모두 종료된 다음이었다.
‘누가 동료들을 잠재운 걸까?’
캄진 수석 코치가 그에게 다가왔다.
“로버트, 사무엘이 어떤 선수인지 알고 있나?”
‘캄진 수석 코치? 이 사람인가?’
로버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팀의 세 번째 포수라고 대답하기에는 너무 알맹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팀의 세 번째 포수, 이런 게 아니야. 뭔가 적당한 말이…….’
그는 결국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
로버트가 대답하지 않자 캄진 수석 코치가 말했다.
“사무엘은 전형적인 저니맨이지.”
저니맨.
한 팀에 정착하지 못한 채 여러 팀을 전전하는 선수.
사무엘은 캄진 수석 코치의 말대로 대표적인 저니맨이었다.
그는 이번 시즌도 두 번이나 팀을 옮겼다.
사무엘이 뉴욕 메츠에 합류한 것은 7월 올스타 브레이크 때였다.
저니맨이라는 말에 로버트의 입이 비로써 열렸다.
“쓸 만한 배트, 1, 2이닝은 막아 줄 수 있는 수비력, 그래서 많은 팀들이 그를 벤치 포수로 영입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캄진 수석 코치가 로버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팀이 사무엘에게 기대하는 것도 딱 그 정도였지. 월드시리즈 로스터에 사무엘이 든 것도…….”
“지명타자 룰이 있는 아메리칸 리그와 대결에서 대타로 사용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캄진 수석 코치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네 배트가 좋았다면 사무엘은 로스터에 들지 못했을 거야.”
로버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타격이 나쁘다는 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오프 시즌 동안 어떻게든 바꿔 볼 예정입니다.”
“로버트, 타격까지 좋았다면 자네는 우리 팀에 오지 못했을 거야.”
아마추어 시절 그는 팀의 4번을 쳤다.
하지만 어떤 스카우트도 그의 타격 능력을 B+ 이상으로 평가하는 이가 없었다.
대부분의 스카우트는 그에게 B 또는 C+를 줬다.
타격으로는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며 D-를 준 스카우트도 있었다.
그래서 로버트는 뉴욕 메츠에 올 수 있었다.
“사무엘의 타격을 배우라는 겁니까?”
“타격이 필요했다면 사무엘을 지명타자 자리에 넣었을 거야.”
“그럼…….”
“그를 보고 배우게. 노장의 관록을. 난 오늘 사무엘을 포수로서 중용한 거야.”
로버트가 멈칫했다.
‘그를 보고 배우라고? 대체 뭘? 그리고…… 사무엘을 선발로 출전시킨 것은 캄진 수석 코치의 생각이었나?’
그가 미간을 좁히자 캄진 수석 코치가 말했다.
“자네와 사무엘의 차이를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군.”
로버트가 말끝을 살짝 올렸다.
“복잡함과 단조로움입니까?”
캄진 수석 코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군. 로버트, 자네와 사무엘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면 영영 홈플레이트를 되찾지 못할 걸세.”
- 홈플레이트를 되찾지 못한다.
이것은 로버트에게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대로 내 월드시리즈가 끝난다는 말인가? 말도 안 돼. 내가 이대로 끝난다고? 메츠의 심장인 내가?’
그가 눈을 크게 뜬 순간이었다.
높이 뜬 공이 윌리엄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렉터, 8번 사무엘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실점 없이 2회를 마무리합니다.”
“위태위태하지만 버티는 피칭. 이것이 바로 렉터입니다. 지난 양키스전 때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맞으면서 버텼죠.”
렉터는 3회도 실점 없이 막아 냈다.
엉성한 구위와 나쁜 제구는 그대로였지만, 록튼의 리드와 수비진의 시프트가 빛을 발했다.
“탬파베이가 잘 버티는군요.”
“단단한 팀이야. 투수의 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동료들이 그것을 커버하고 있어.”
“얼마나 연습을 했을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의 연습……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야.”
유리 감독은 연습보다는 실전에서 손발을 맞춘 게 더 크다고 생각했다.
‘탬파베이에는 경험 많은 수비수들이 많다. 중견수 산체스를 제외하면 모두 지난 월드시리즈를 경험한 선수들이다.’
그는 특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록튼을 주시했다.
‘록튼은 벤치의 사인 없이도 경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유리 감독은 록튼을 A급 포수라고 평가했다.
“탬파베이의 3회 말 공격이 시작됩니다.”
“이번 이닝 탬파베이는 하위 타순부터 시작합니다.”
바르도는 렉터보다 더 잘 던졌다.
그의 강력한 패스트볼은 탬파베이 하위 타선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하위 타선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낸 바르도.
그는 브라이튼을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3회 말을 마쳤다.
“탬파베이, 3회 말도 삼자범퇴로 마감합니다.”
“다음 이닝 산체스에게 기대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존슨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는 바르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르도가 오늘 일을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리 감독이 그 말을 받았다.
“존슨, 오늘 일을 내는 건 바르도가 아니라 사무엘이야.”
그는 사무엘이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경험이 많은 포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잘해 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유리 감독은 사무엘의 투입을 무기가 아닌 자극 정도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홈플레이트에 들어선 사무엘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내야를 지휘했다.
‘이래서야 누가 그라운드의 야전 사령관인지 모르겠군. 로버트, 분발해 주지 않으면 곤란해.’
4회 말이 시작되기 직전.
이반 감독이 코스타 타격 코치를 불렀다.
“코스타.”
“감독님, 부르셨습니까?”
“오늘 경기 사무엘의 볼 배합은 단순해.”
1번부터 시작해 다시 1번.
탬파베이는 한 타순이 돌았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자신이 본 것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렸다.
“패스트볼로 유인, 커브로 승부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니, 코스타, 다시 생각해 보게. 패스트볼은 단순한 유인구가 아니야.”
코스타 타격 코치가 말끝을 흐렸다.
“그럼…….”
“패스트볼은 상대의 타이밍을 흐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
코스타 타격 코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프 스피드 피치 중심이란 말씀입니까?”
“맞아. 그러니까 우린 커브를 버리고…….”
“그럼 커브를 버리는 게 아니라 노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은 5번 타자 라이트였다.
그는 지명타자였기 때문에 수비 때도 벤치를 계속 지킬 수 있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라이트, 저 커브를 노리고 있다가는 패스트볼에 당하고 말아.”
“예?”
“사무엘은 노련한 친구야. 자신의 볼 배합이 읽힐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아.”
“커브를 노리기 시작하면 볼 배합을 바꿀 것이란 말입니까?”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꾸겠지. 낮게 떨어지는 커브로. 그리고 우린 혼란에 빠질 거야.”
라이트는 순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스미스가 말했다.
“감독님은 지금 볼 배합을 그대로 두고 패스트볼을 공략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
“그럼 커브는?”
“커브가 스트라이크존과 그 아래를 넘나들면 꽤 어려워진다고.”
- 상대의 볼 배합을 그대로 둔다.
이것은 라이트의 상식을 벗어난 전략이었다.
라이트는 생각했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니, 일단은 이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4회 말.
선두 타자 산체스.
그는 앞선 타석에서 타이밍이 늦었다.
‘이번 타석에서는 분명 타이밍이 더 날카로울 테지.’
사무엘은 볼 배합을 바꾸고 싶은 유혹에 직면했다.
‘게다가 한 타순 돌았다. 탬파베이 첫 타석과 같은 볼 배합으로 상대하면 당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바르도는 구종이 다양한 투수가 아니야. 이 이상 복잡하게 볼 배합을 가져갈 수는 없고. 게다가…… 바르도의 슬라이더 제구는 패스트볼 이상으로 나쁘다.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베스트다.’
볼 배합을 바꾸기에는 바르도의 구종이 아쉬웠다.
‘할 수 없지.’
사무엘은 초구로 커브를 요구했다.
휙!
투수의 손을 떠난 커브가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바깥쪽 커브?’
산체스는 이 공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흘려보낸 공이 스트라이크.
시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산체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린 공이 아니다.’
그의 배트는 패스트볼을 정조준했다.
슉!
두 번째 공은 그가 노렸던 패스트볼.
하지만 이번에도 산체스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났다.
산체스의 좋은 눈은 패스트볼이 멀리 벗어난다고 알려 주었다.
카운트 1-1.
산체스는 깊게 심호흡했다.
“후우…….”
사무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커브와 패스트볼, 모두를 흘려보냈다. 노리고 있는 공은 어떤 것이지? 혹시 구종이 아니라 코스를 노리고 있는 건가?’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쉽게 사인을 낼 수 없었다.
‘하나 정도 빼 볼까? 아니야. 선두 타자를 상대로 볼을 낭비하는 건 좋지 않아. 투구수가 늘어나면 바르도의 투구 리듬이 어그러질 수 있어.’
타자보다는 투수.
사무엘의 볼 배합은 로버트와 포커스가 달랐다.
그는 바깥쪽으로 빼기보다는 안으로 찔러 넣는 쪽을 선택했다.
‘패스트볼이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면 피할 수밖에 없을 테지.’
이번 공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커브를 넣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하나 깊이 넣고, 바깥쪽으로 승부다.’
슉!
빠른 공이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안쪽? 깊지 않다!’
산체스의 배트가 돌아갔다.
딱!
“잘 맞은 타구!”
“이건 큽니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산체스의 타구는 정말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지 못한 채 상단을 맞고 그라운드로 되돌아왔다.
툭…… 투툭…….
중견수가 급히 공을 향해 달렸다.
“산체스! 펜스 직격 2루타입니다!”
“정말 아쉬운 타구군요.”
타구를 확인한 사무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살았다.”
이번 공은 실투였다.
‘홈런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공.’
하지만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지 않았다.
캄진 수석 코치가 사무엘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사무엘, 실투에 신경 쓰지 마. 바르도의 실투는 세금과 같은 것이니까.”
사무엘은 마스크를 다시 쓰면서 생각했다.
‘세금은 지나갔다. 이다음은 반드시 이득을 본다.’
다음 타자는 앞선 타석에서 안타를 때린 3번 타자 윌리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