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왕조의 서막 04
월드시리즈 3차전 탬파베이 승리.
뉴욕 신문 가판대 근처에는 얼굴을 찡그린 메츠 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쳇, 메츠가 다음 경기를 잡으면 원점이야.”
“그건 그렇지만…… 다음 경기 선발이 좀 그래.”
월드시리즈 4차전 뉴욕 메츠의 선발은 레온 바르도.
메츠 팬들이 그의 등판을 걱정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 포스트 시즌에서 올린 승리가 하나도 없다.
바르도가 나온 경기에서 메츠는 전패를 기록했다.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
모두 패배였다.
그럼에도 메츠가 월드시리즈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1선발 포타가 전승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포타와 로버트의 궁합은 환상적이었다.
몇몇 전문가들은 포타를 10월에 던지기 위해 태어난 투수라 부르기도 했다.
로버트가 바닥에 흩어진 자료들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3차전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의 방안은 증권거래소를 방불케 했다.
웅웅거리고 있는 노트북,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자료들.
딸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것은 오늘 선발인 바르도였다.
이번 포스트 시즌 그의 별명은 패전 담당 바르도였다.
“로버트, 아직 출근 준비도 안한 건가?”
로버트가 금발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려고 했어.”
“화내지 말라고, 감독님의 전언이야. 오늘 경기는 벤치에서 시작한다 라고 전해 달래.”
로버트가 바르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내가 벤치라고?”
“그래.”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로버트는 메츠의 심장이었다.
월드시리즈에서 그를 뺀다는 것은 상대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버트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바르도, 장난하지 마.”
“장난 아니야. 감독님께서 직접 내게 지시한 사항이야.”
바르도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로버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월드시리즈에서 1승 2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날 뺀다고? 그럼 누가 마스크를 쓰는 건데?’
그가 자세를 바꾸며 바르도에게 물었다.
“오늘 선발 포수는?”
“사무엘.”
이번에는 자신이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랐다.
“뭐?”
로버트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사무엘은 팀의 3번째 포수로 이번 시리즈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힘겨웠던 선수였다.
그런 선수에게 월드시리즈 4차전 홈플레이트를 맡기려고 하는 것이다.
바르도가 어깨를 으쓱했다.
“뭘 그렇게 놀라? 감독은 화력전으로 가려 하는 거 아니야? 사무엘이 우리 팀 포수 중에는 가장 잘 치잖아.”
로버트는 생각했다.
‘유리 감독은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타선을 강화하려고 수비가 가장 떨어지는 사무엘을 마운드에 올리다니.’
그는 유리 감독의 도박수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리 감독은 로또를 긁은 것이 아니었다.
* * *
월드시리즈 4차전.
탬파베이 팬들이 트로피카나 필드에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오늘 이기면 3승 1패, 시리즈가 뉴욕이 아닌 플로리다에서 끝나겠군.”
“오늘 이기면 내일 킴이 등판한다는 소문이야.”
“킴이?”
“그래, 킴이 나오면 게임 끝이지. 4승 1패. 탬파베이 우승이라고.”
“탬파베이의 더블(2연패)인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탬파베이가 더블이라니.”
만년 꼴찌 팀 탬파베이 레이스.
이제는 그 어느 팀 팬도 그들을 꼴찌라 부르지 못했다.
한편 뉴욕 메츠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연속 우승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메츠 선수들은 경기 준비 대신 코칭 스텝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로버트를 뺀다고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발 로스터에 오타가 난 것 아닙니까? 로버트가 빠지고 사무엘이라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캄진 수석 코치는 오타나 실수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뭡니까?”
“코칭 스텝이 고의로 로버트를 뺐단 말입니까?”
“로버트의 이번 시리즈 타율 때문에 녀석을 뺀 건 아니겠죠? 그랬다면, 당신들은 정말 야구를 모르는…….”
알렉산더 타격 코치가 라커룸 안으로 들어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가 보육원인가! 아기 울음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의 우렁찬 외침에 선수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상대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었다.
알렉산더 타격 코치의 우렁찬 외침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5번 타자 엔드류가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알렉산더, 이 로스터를 그냥 따르란 말은 아니겠죠?”
2m 거구인 알렉산더가 어깨를 펴며 말했다.
“왜 따르지 못한단 말인가?”
“제대로 된 로스터가 아니지 않습니까?”
엔드류의 항의에 알렉산더가 미간을 좁혔다.
“멍청한 녀석! 감독님과 우린 메츠의 승리를 위해 움직일 뿐이다. 어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단 말이냐?”
엔드류는 물러서지 않았다.
“로버트가 로스터에서 빠져 있습니다. 제대로 된 로스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로버트는 승리를 위해서 뺀 것이다.”
“승리를 위해서라고요?”
“그렇다!”
다음 순간 팀의 4번 타자 라이언이 앞으로 나왔다.
“알렉산더,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 없다면 전 오늘 경기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항명.
뉴욕 메츠 라커룸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알렉산더가 라이언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는 팀보다 로버트의 출전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팀이 승리할 수 있다면 전 로버트의 벤치행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겁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가 있다면 우린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납득하기 힘든 것이라면 우린 이 경기를 보이콧 할 겁니다.”
선수단의 보이콧.
월드시리즈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알렉산더 타격 코치는 윽박지르는 것으로 사태를 진화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단 말이군.”
“여기 모인 모두를 납득시켜야 할 겁니다.”
알렉산더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시작했다.
“좋아 말해 주지. 로버트가 오늘 경기에서 빠진 이유를…….”
그의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선수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코칭 스텝은 아무 생각 없이 로버트를 선발 로스터에서 뺀 것이 아니었다.
* * *
1회 초.
마운드에 오른 것은 렉터였다.
김민은 렉터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록튼, 천천히 가라고.”
1회를 잘 풀면 5회까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1회를 잘 풀지 못하면?
3이닝 강판을 각오해야 했다.
‘상대는 월드시리즈 진출 팀이야. 빈틈을 보이면 바로 찌르고 들어올 거야. 록튼, 최대한 낮게 리드해.’
팡!
초구는 바깥쪽 코너를 벗어나는 볼.
‘유인구였나?’
유인구였다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에 넣고자 던진 공이라면, 컨디션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탁!
두 번째 던진 공에 타자가 반응했다.
“높이 떠오르는 공 산체스가 달려갑니다.”
타구는 애매한 위치에 떨어졌지만, 산체스의 수비는 견고했다.
“산체스가 공을 잡아냅니다!”
“거의 15m 이상을 달려왔습니다. 산체스, 정말 빠릅니다!”
렉터는 산체스의 도움을 받아 1번 타자 브론송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나이스 피칭!”
“잘하고 있어!”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렉터는 평소보다 심하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리듬이 좋지 않아. 공이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않고 있어.’
록튼은 볼이라도 상관없으니, 최대한 낮게 던져 달라고 주문했다.
‘렉터, 투수는 컨디션이 나쁠 때도 마운드를 지켜야 해.’
2번 타자 더들리가 초구를 공략했다.
딱!
결과는 유격수 땅볼.
“브라이튼이 타구를 처리합니다.”
“깔끔한 수비군요. 트로피카나 필드의 인조 잔디가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민은 괜찮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컨디션은 좋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록튼의 리드와 수비수들의 움직임이 그것을 보완해 주고 있다. 렉터, 5이닝만 버텨다오.’
다음 순간 터커의 2루타가 나왔다.
“터커, 초구를 공략해서 좌측 펜스를 강타합니다!”
“배팅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솔직히 발사 각도가 조금만 높았더라도 펜스를 넘어갔을 겁니다.”
록튼은 미간을 좁혔다.
‘유인구를 요구했는데 스트라이크존에 몰렸어. 패스트볼 컨트롤이 예상 이상으로 좋지 않아.’
렉터의 컨디션은 후하게 점수를 줘도 평소의 80% 정도.
10개 중 2, 3개 정도는 실투를 각오해야 했다.
‘렉터는 구위가 뛰어나지 않은 투수다. 많은 실투는 곧 실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록튼은 배터 박스의 타자를 확인했다.
“다음 타자는 4번 라이언입니다.”
라이언은 라커룸에서 알렉산더 코치와 정면으로 맞선 사내였다.
그의 두 눈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록튼은 그에게 위험한 느낌을 받았다.
‘거를까?’
2사 2루.
1루가 비어 있기 때문에 4번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록튼은 볼넷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직 1회다. 처음부터 상대 4번 타자를 거르면 경기 흐름이 넘어간다.’
초구는 안쪽 패스트볼.
렉터는 그의 요구에 따라 패스트볼을 안쪽으로 던졌다.
하나 공은 안쪽 코너가 아니라 한가운데 낮은 코스로 날아왔다.
‘제구가 또 흔들렸어!’
딱!
록튼의 눈동자가 떨린 순간 공이 외야로 빠져나갔다.
“라이언의 적시타입니다!”
2루에 있던 터커가 홈으로 들어왔다.
“메츠, 선취득점입니다.”
“라이언, 오늘도 시작이 좋군요.”
유리 감독이 알렉산더 타격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렉산더, 라커룸에서 상담이 잘 된 모양이군.”
알렉산더 타격 코치가 미간을 좁혔다.
“다들 기가 센 녀석들입니다.”
“메이저리그 클린업 아닌가? 기가 센 게 당연해.”
유리 감독은 선수들과 코칭 스텝의 충돌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다음 타자는 5번 엔드류입니다.”
“엔드류, 이번 시리즈 성적이 썩 좋지 못합니다.”
엔드류가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여 줬던 것에 반만 보여 줬다면, 시리즈 스코어는 정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엔드류는 이번에도 좋지 못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2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칼튼, 그대로 1루에 송구! 아웃입니다!”
렉터는 라이언에게 적시타를 맞았지만, 엔드류를 잡아내 실점을 최소화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그를 보며 말했다.
“렉터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반 감독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너무 쉬었나 보군.”
‘차라리 클락을 올렸으면 어땠을까? 아니야. 그건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휴식이 부족한 클락이 적시타를 내줬다면, 렉터를 올리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후회했을 것이다.’
오늘 렉터는 탬파베이 선발 투수 중 가장 긴 휴식을 취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긴 휴식이 독이 된 것일까?
그의 피칭은 위태로워 보였다.
“블렛소, 오늘은 불펜을 조금 더 빨리 가동해야겠어.”
“4회부터 말입니까?”
“3회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이반 감독은 물량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1회 말.
탬파베이 공격.
메츠 선발 투수는 바르도.
“바르도는 구위가 좋은 투수입니다.”
“구속이 빠른 건가요?”
“구속도 빠르고 공의 무브먼트도 좋습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포타보다 빠른 99마일(159km)입니다. 게다가 낮게 떨어지는 커브도 일품이죠.”
그에게 포타와 같은 제구력이 있었다면, 포타를 넘어 메츠의 에이스로 우뚝 섰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도의 제구력은 포타와 큰 차이가 났다.
“정말로 사무엘이 포타를 살릴 수 있을까요?”
질문을 던진 이는 알렉산더 타격 코치였다.
“캄진의 분석이 맞다면 그렇겠지.”
대답을 한 사람은 유리 감독.
로버트의 벤치행을 계획한 이는 캄진 수석 코치였다.
킴진 수석 코치는 바르도가 포스트 시즌에서 연전연패한 이유를 로버트에서 찾았다.
그는 로버트와 바르도의 궁합이 최악이라고 주장했다.
유리 감독이 마운드에 선 바르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포수와 투수의 궁합은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캄진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어.”
탬파베이 첫 타자는 브라이튼.
그는 배트를 짧게 잡았다.
알렉산더 타격 코치가 브라이튼의 타격 자세를 살핀 뒤 말했다.
“바르도의 공이 빠르다는 걸 아는군요.”
“인터리그도 아니고, 월드시리즈 아닌가? 서로의 약점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거야.”
슉!
초구는 높게 솟아오르는 공.
브라이튼은 배트를 뒤로 뺐고,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났다.
팡!
코스타 타격 코치는 초구를 보곤 손을 내저었다.
“너무 높군요.”
이반 감독도 그렇게 생각했다.
“제구가 나쁘군. 데이터 그대로야.”
바르도의 볼넷과 삼진 비율은 메츠 선발 투수 중 최악이었다.
그는 볼넷을 주저하지 않는 버딩거보다도 많은 볼넷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르도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의 구위가 그것을 커버하고 남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었다.
파앙!
패스트볼이 한가운데를 때렸다.
하지만 브라이튼의 배트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9마일(159km).
“빠, 빠릅니다! 시작과 함께 99마일을 찍었습니다!”
“바르도의 구위는 대단하죠. 긁히는 날에는 노히트 노런도 가능할 겁니다.”
퍼펙트가 아니라 노히트 노런을 언급한 것은 바르도의 볼넷이 워낙 많기 때문이었다.
“빠르군요.”
“긁힌다면 속수무책이겠군. 하지만 오늘 긁히는 것 같지는 않아.”
브라이튼이면 모를까?
한가운데 빠른 공은 산체스와 윌리엄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반 감독은 두 타자 중 한 명이 해결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왕이면 윌리엄이 해 줬으면 좋겠군.’
3번 타자가 중심을 잡아준다면 아울과 라이트도 한결 편해졌다.
휙!
세 번째 공이 포수 미트에 날아와 앉았다.
팡!
“스트라이크!”
김민은 바르도의 세 번째 공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타이밍을 완전히 꿰뚫었어. 저 포수 나쁘지 않군.”
빠른 공 2개 그리고 커브.
괜찮은 오프 스피드 피치였다.
브라이튼은 타이밍이 어긋나 배트를 내지 못했다.
‘쳇…… 오프 스피드 피치인가? 패스트볼 제구는 엉망이지만, 피칭의 기본은 알고 있다는 뜻이군.’
그는 배트를 더 짧게 잡았다.
‘어차피 다음 공은 패스트볼이다.’
승부구는 한가운데 패스트볼.
브라이튼은 타이밍을 끝까지 당겼다.
‘온다!’
사인 교환을 마친 투수가 공을 손에서 놓았다.
다음 순간 브라이튼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브라이튼은 미간을 좁혔다.
‘느린 커브라고? 장난이 아니야!’
강력한 패스트볼이 주 무기인 바르도.
그러나 사무엘이 선택한 결정구는 커브였다.
“커브, 커브가 들어왔습니다!”
“브라이튼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았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배트가 공보다 일찍 나왔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사무엘이 새로운 패턴을 도입했다고 생각했다.
“음…… 빠른 공 2개, 느린 공 2개인가?”
하지만 사무엘의 볼 배합은 패턴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바르도의 공 중에는 커브가 가장 좋다.’
커브가 좋으면 커브를, 패스트볼이 좋으면 패스트볼을 요구한다.
사무엘의 볼 배합은 타자가 아닌 투수에 맞춰져 있었다.
이것이 캄진 수석 코치가 로버트를 빼고 그를 넣은 이유였다.
“로버트는 상대를 완벽하게 분석한 뒤, 철저한 계획에 따라 경기를 운영한다. 하지만 바르도의 제구는 그의 계획과 운영을 받쳐 주지 못한다. 로버트가 안쪽에 미트를 가져가도 그곳에 들어오는 공은 2개 중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그 때문에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포스트 시즌 전패의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했다.
“반면 사무엘은 다르다. 어깨가 좋지 않아 상대의 도루를 저지하기 힘들지만, 투수 중심의 리드를 가져간다. 제구력이 뛰어난 포타나 헤르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바르도는 다르다. 바르도는 사무엘이 마스크를 썼을 때 가장 오래 마운드에서 살아남았다.”
타자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그 약점을 파고드는 로버트.
투수의 컨디션에 따라 볼 배합을 바꾸는 사무엘.
두 포수는 지향점이 완전히 달랐다.
캄진 수석 코치는 바르도에게만큼은 사무엘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파앙!
“빠른 공이 다시 한번 미트를 때립니다.”
“98마일(158km). 좋습니다. 오늘 바르도의 컨디션은 최고입니다.”
사무엘은 패스트볼을 요구할 때, 많은 사인을 내지 않았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딱 2가지였다.
- 높은 코스, 그리고 낮은 코스
스트라이크존의 유무는 따지지 않았다.
‘바르도의 패스트볼 제구는 좋지 않아. 스트라이크존에 넣어 달라고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될 거야.’
그는 스트라이크는 커브로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패스트볼은 타자를 윽박지를 때만 쓰면 된다.’
팡!
“스트라이크!”
패스트볼과 커브 조합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탁!
산체스가 때린 공이 좌익수 정면으로 향했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산체스의 타이밍이 조금 늦었습니다.”
“커브를 의식했기 때문에 패스트볼 타이밍이 늦어진 것 같군.”
이반 감독은 오프 스피드 피치가 산체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저 포수 생각보다 리드가 좋아. 유리 감독이 오늘 선발로 쓴 이유가 있었어.’
다음 타자는 윌리엄.
그는 길게 보지 않고 초구를 공략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2, 3루 사이를 빠져나갔다.
“윌리엄! 제대로 타구를 공략했습니다.”
“탬파베이는 윌리엄이죠. 정말 훌륭한 타자입니다.”
로버트는 그라운드를 보며 생각했다.
‘이번 타구는 시프트를 펼쳤다면 잡을 수 있었어.’
하지만 사무엘은 시프트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뜻에 따라 시프트를 펼친 적이 없었다.
로버트를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은 수비 코치의 사인을 받을 때를 제외하면 시프트 사인을 쓸 수 없었다.
캄진 수석 코치는 이 제한을 해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오늘 시프트, 사무엘에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무엘에게 시프트까지?”
“많이는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윌리엄이나 아울 같은 강타자들에게 주로 사용하겠죠.”
유리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을 허락했다.
“그렇게 하게.”
캄진 수석 코치는 다음 타자가 타격을 준비하는 동안 사무엘에게 다가갔다.
“사무엘, 시프트도 써 봐.”
“네?”
“감독님께서 하락하셨어. 우리 눈치 보지 말라고.”
시프트 리미트 해제.
사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월드시리즈 4차전.
탬파베이는 예상하지 못한 암초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