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84화 (284/296)

284화 왕조의 서막 02

탬파베이의 동점.

관중들의 함성은 트로피카나 필드를 맴돌았다.

“록튼! 록튼! 록튼!”

로버트는 마운드로 돌아가는 헤르만에게 짧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헤르만은 고개를 흔들었다.

“엔드류의 글러브를 스쳐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타구였어. 로버트 잘못은 아니야.”

안타 하나로 무너질 신뢰가 아니었다.

신뢰의 두터움이 로버트를 더 힘들게 했다.

‘헤르만은 날 믿고 있다. 하지만 난 그 믿음에 답하지 못했다.’

그는 가슴을 살짝 손으로 잡았다.

‘다음 경기에서 잘하면 된다 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단 한 번의 등판으로 끝날 수도 있는 시리즈다. 이것이 바로 월드시리즈의 무게인가?’

로버트는 고개를 그라운드로 돌렸다.

무사 주자 1, 3루.

다음 타자는 칼튼.

‘무조건 막는다. 아니 막지 못하면 오늘 경기는 되돌릴 수 없다.’

헤르만은 팀의 2선발이었다.

그가 무너지면 에이스 포타가 한 경기를 더 잡는다고 해도 4승 2패로 시리즈가 끝날 가능성이 컸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스코어는 1-1 동점일 뿐이야.’

같은 시각.

김민도 로버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방심하면 곤란해. 스코어는 아직 1-1 동점이야.’

어설픈 타구에 배트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최대한 공을 골라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배터 박스에 선 칼튼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무사 주자 1, 3루 더블 플레이가 나와도 3루 주자는 들어온다. 그리고 록튼처럼 가볍게 1, 2루 사이로 밀면…… 손쉽게 적시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유리한 위치에서 투수를 상대할 수 있다.

이것은 칼튼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코스타 타격 코치도 타자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보았다.

“잘하면 빅 이닝이군요.”

“브라이튼과 칼튼은 빠른 발을 가지고 있지. 웬만한 타구가 아니면 더블 플레이는 나오지 않아.”

내야 땅볼이 연속해서 나와도 탬파베이 공격은 끝나지 않는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빅 이닝을 의심하지 않았다.

팡!

초구는 볼.

“다시 볼입니다! 헤르만, 흔들리고 있습니다.”

“록튼의 적시타가 치명타였던 것 같습니다. 칼튼을 내보면 상위 타선을 상대로 무사 만루 상황이 펼쳐집니다.”

1번 타자 브라이튼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 타자부터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떻게든 아웃 카운트를 늘려야 한다.’

팡!

두 번째 공은 코너를 깊이 찌르는 패스트볼.

망설이던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칼튼은 배트를 내리곤 바닥을 두드렸다.

‘코너로 하나 꽂았단 말이지.’

패스트볼 제구는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뜻.

‘다음 공은 아마도 커브나 슬라이더겠지.’

무사 1, 3루 상황에서 투수에게 가장 좋은 것은 삼진이었다.

칼튼은 헤르만과 로버트가 삼진을 노린다고 확신했다.

‘브레이킹볼만 조심하면 된다.’

호흡을 조절한 뒤 배트를 세웠다.

슉!

빠른 공.

구종은 물론 코스도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커트한다.’

안쪽 공을 향해 배트가 움직였다.

탁!

“칼튼 때렸습니다! 타구가 유격수 쪽으로 향합니다.”

칼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커트를 한다는 것이…… 최악의 결과군.’

그가 1루로 뛰기 시작한 순간, 3루 주자도 스타트를 끊었다.

“유격수!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를 무시하고 2루에 송구합니다!”

“타구 속도 때문에 홈은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유격수에게 콜을 한 것은 포수인 로버트였다.

그는 과감하게 3루 주자를 포기하고 2루를 노렸다.

2루 송구.

그리고 다시 1루.

이것은 흔히 말하는 6(유격수)-4(2루수)-3(1루수)의 병살 플레이.

하지만 타자 주자는 빠른 발로 유명한 칼튼이었다.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나도 타자는 1루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반드시 잡아서 아웃 카운트 2개를 가져온다.’

로버트는 브라이튼, 아니 산체스 앞에 주자를 놓고 싶지 않았다.

팡!

1루수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1루심의 오른손이 위로 올라갔다.

“아웃!”

로버트가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스코어는 2-1로 역전되었지만, 불은 껐다고 할 수 있었다.

이반 감독은 아쉬움에 길게 탄식했다.

“하아…… 그것참…… 쉽지 않군.”

“무사 1, 3루가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군요.”

“무사 만루에서 무득점이 나오기도 하는 게 야구야.”

이반 감독이 혀를 차면서 시선을 브라이튼에게 돌렸다.

“브라이튼이 출루하면 이번 타구는 정말 아쉽게 느껴질 겁니다.”

“그래도 출루하는 쪽이 더 낫네.”

브라이튼 다음 타자는 산체스였다.

아쉬움을 삼키자고 산체스 앞에 주자를 지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김민은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록튼과 하이 파이브를 나눴다.

“로버트의 심장을 저격하는 안타였어.”

“휴……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

“자신 없는 공을 친 건가?”

“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2-0에서 뒤로 물러날 수는 없잖아. 여긴 월드시리즈라고.”

김민은 생각했다.

‘2003 월드시리즈가 록튼의 배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마운드로 돌렸다.

‘헤르만, 부족한 경험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헤르만은 월드시리즈 첫 번째 등판이었다.

팡!

초구는 바깥쪽 코너를 노리는 스트라이크.

“헤르만이 정확히 공을 꽂아 넣었습니다.”

“1점을 더 실점했지만, 더블 플레이가 나왔기 때문일까요? 이제 안정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탁!

빗맞은 공이 1루 더그아웃 쪽에 떠올랐다.

“이건 커트군요. 로버트가 파울 타구를 추격합니다!”

“잡기 힘든 타구입니다.”

1루 더그아웃에 위치한 탬파베이 선수들은 이 파울 타구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높이가 너무 낮아.”

“무리해서 잡으려고 하면 펜스와 충돌할걸?”

“그러게.”

그러나 로버트는 속도를 높였고, 펜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저기! 이게 무슨 짓이야!”

스나이더가 비명을 내지른 순간 로버트가 펜스 철망과 충돌했다.

퍽……

“로버트!”

놀란 탬파베이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러나 로버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트에서 공을 꺼냈다.

“로버트! 파울 타구를 잡아냈습니다.”

“탬파베이 3회 말 공격에서 두 점을 낸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뉴욕 메츠 선수들은 로버트의 허슬 플레이에 크게 고무되었다.

“좋았어!”

“파인 플레이!”

“로버트, 네가 해낼 줄 알았어!”

역전으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한 번에 살아났다.

유리 감독은 로버트의 클래스를 보여 주는 플레이라고 생각했다.

“클래스가 높다는 것은 홈런이나 삼진을 많이 보여 주는 게 아니야. 작은 플레이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하이 클래스다.”

클락이 김민에게 말했다.

“역전은 했지만 달아나지는 못했다. 이거군.”

“어쨌든 흐름은 가져왔어.”

“이닝 마무리가 좋지 않았지만.”

“설리반이 버텨 준다면 우린 지지 않아.”

김민은 생각했다.

‘앞으로 2이닝…… 그 정도는 버텨 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불펜 싸움. 스코어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오늘 경기의 핵심은 불펜이다.’

4회와 5회.

설리반은 강력한 패스트볼을 앞세워 메츠 타선을 막아 냈다.

“잘한다!”

“나이스 피칭!”

헤르만도 설리반 못지않았다.

그는 안정적인 제구를 바탕으로 탬파베이 타자들을 범타로 돌려세웠다.

“이쪽도 좋군.”

“3회 위기를 넘긴 것이 약이 된 것 같습니다.”

“흠, 약이라…….”

설리반과 헤르만 두 투수는 5이닝 1실점과 5이닝 2실점으로 자신의 몫을 해냈다.

“한 이닝만 더 막으면 퀄리티 스타트입니다.”

“자네는 아직도 그런 기록을 신경 쓰나?”

“선발 투수 중에는 신경 쓰는 사람이 많죠.”

유리 감독이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선발 투수는 팀의 승리를 지키는 전사지 6이닝을 던지고 내려가는 노동자가 아니야.”

그는 과거 투수들이 현재 투수들보다 투쟁심이 뛰어났다고 생각했다.

6회 초.

뉴욕 메츠 선두 타자는 3번 타자 터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상대 타순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클린업과 세 번째 승부입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세 번째라. 벌써 그렇게 되었나?”

“1회와 4회에 공이 조금 많았습니다.”

공이 많았다는 것은 주자 역시 많이 나갔다는 뜻이었다.

이반 감독이 턱을 쓰다듬었다.

“흠, 불펜을 가동하는 게 좋겠어.”

경기는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탬파베이의 불펜 가동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바로 불펜에 연락을 넣었다.

그러자 포터 불펜 코치가 목소리를 높였다.

“스페이츠, 라우리, 둘 다 몸을 푼다.”

탬파베이 필승조가 한꺼번에 마운드로 향했다.

“누가 먼저 나가는 거야?”

라우리의 물음에 스페이츠가 대답했다.

“글쎄, 설리반이 언제 안타를 맞느냐에 따르겠지.”

“3번에 맞으면?”

“내가 나가겠지.”

“그럼 난?”

“4번에게 맞으면 네가 나가게 될 거야. 5번 엔드류가 좌타자거든.”

유리 감독은 상대 필승조가 모두 불펜에 등장한 것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탬파베이가 방패를 세웠군.”

“아직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 있습니다.”

“이반은 안타가 나오면 바로 투수를 교체할 거야.”

마운드의 설리반은 불펜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난 최선을 다해서 상대 타선을 막을 뿐이다.’

그는 가능한 한 오래 마운드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투구수가 많았다.

5이닝 동안 91개.

100개 이상을 투구한다고 해도 이번 이닝이 한계였다.

록튼이 미트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이닝도 화끈하게 가자고!”

설리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물론이지!”

초구는 안쪽 패스트볼.

파앙!

터커의 배트가 크게 헛돌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클락은 전광판의 구속을 확인하곤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빠르다! 빨라!”

부르스가 그의 말을 받았다.

“98마일(158km)인가?”

“난 태어나서 한 번도 저 속도로 공을 던져 본 적이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100마일은 어떤 느낌일까?”

김민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풀악셀하는 느낌 아닐까?”

클락이 그의 말을 받았다.

“아, 그 느낌 어떤 느낌인지 알아. 몸이 뒤로 슉 하는 느낌이지. 그런데 킴, 언제 타 본 거야?”

“타 보긴. 스나이더의 스포츠카를 멀리서 몇 번 본 게 전부야.”

김민은 메이저리그 슈퍼스타였지만, 명품이나 스포츠카와는 거리가 멀었다.

“진짜? 킴이 스포츠카를 타 보지 않았다고?”

김민이 클락의 물음에 대답하려는 순간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나왔다.

“터커, 97마일(156km) 패스트볼을 받아쳐서 중견수 앞에 떨어뜨립니다.”

“빠른 공만으로는 터커를 막아 낼 수 없죠.”

3번 타자의 진루.

이반 감독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설리반의 힘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점점 설리반의 공에 익숙해지고 있다. 여기서 투수를 교체하는 게 좋을까?’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라이언.

안타가 아닌 홈런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대였다.

이반 감독은 고개를 블렛소 투수 코치에게 돌렸다.

눈빛으로 말을 받은 것일까?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블렛소 투수 코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스페이츠가 대기 중입니다.”

“스페이츠는 셋업인데? 지금 올려도 괜찮겠나?”

“라이언은 오른손입니다. 스페이츠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이츠가 1이닝, 라우리가 1이닝, 부르스가 1이닝을 맡으면 9회까지 경기를 끌고 갈 수 있었다.

“흠.”

이반 감독은 턱을 만지곤 다시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교체는 아직 아니라는 뜻.

“4번 타자 라이언이 배터 박스에 들어섭니다.”

“뉴욕 메츠! 동점으로 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라이언이 배터 박스에 들어가기 전, 타격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부담가지지 말고 때려라. 오늘 경기에 패한다고 시리즈가 끝나는 게 아니야.”

어깨의 힘을 빼고, 가볍게.

이것이 타격 코치가 바라는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 좋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는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98마일(158km) 패스트볼. 빠르지만 쳐 낼 수 없는 공은 아니다.’

휙!

초구는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공이었다.

‘체인지업?’

낮게 떨어지는 공에 배트가 멈췄다.

팡!

록튼은 즉시 1루수를 향해 미트를 들었다.

“배트가 돌아갔을까요?”

1루심은 오른손을 들었다.

스윙이었다.

“배트가 돌아갔습니다!”

“설리반이 타자의 허를 찔렀군요.”

탬파베이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설리반이 이 위기를 막아 내고 6회 초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파앙!

미트에 꽂힌 공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라이언의 배트는 이번에도 공을 맞히지 못했다.

“카운트 0-2, 설리반이 라이언을 압도합니다!”

“라이언,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배트가 공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이언은 타임을 건 뒤 배터 박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는 고개를 돌려 1루 주자를 확인했다.

‘장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진루타면 충분하다. 1사 2루 나쁘지 않았다.’

라이언은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배터 박스에 들어서자 이내 공이 날아왔다.

슉!

세 번째 공도 빠른 공.

‘높은 코스인가?’

라이언은 조금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탬파베이 투수들은 높은 코스의 유인구가 많다. 이 공도 보나 마나 헛스윙을 유도하는 하이 패스트볼이다.’

그가 배트를 멈추자 공이 미트를 파고들었다.

파앙!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6마일(154km).

라이언은 배트를 내리며 다음 공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주심이 오른손을 들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라이언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입니까?”

주심이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공이 존을 통과했어!”

“그 높은 공이 말입니까?”

“그래.”

라이언이 여기서 한마디 더 했다면 퇴장 판정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언은 고개를 돌린 뒤 묵묵히 더그아웃을 향했다.

그는 화를 삭여야 하는 때를 잘 알고 있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라이언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이언이 잘 참았군요.”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심과 싸워서 득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겠지. 옳은 판단이야.”

“그는 홈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 공은 홈콜이 아니야.”

설리반은 높은 코스에 정확히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다.

물론 뉴욕 메츠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공정한 판정하에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홈콜인가?”

“플로리다 녀석들 텃세를 부리고 있어.”

“뉴욕으로 돌아가면 백배로 갚아주지.”

캐스터는 빠르게 다음 타자를 소개했다.

“1사 1루, 다음 타자는 엔드류입니다.”

“엔드류, 어떻게 보면 라이언보다 더 까다로운 타자입니다.”

엔드류는 파울을 2개나 때려내면서 2개의 공을 골랐다.

‘우린 이기기 위해 플로리다에 왔다.’

“카운트 2-2입니다.”

“엔드류, 배터 박스 안쪽에 바짝 붙어서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고 있습니다. 설리반이 제법 압박감을 느끼겠는데요?”

설리반은 그 압박감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과감하게 안쪽 공을 선택했다.

‘타자가 배터 박스에 붙는다고 스트라이크가 달라지진 않는다.’

슉!

빠른 공이 안쪽 코너를 노렸다.

그 순간 엔드류의 발이 앞으로 나왔다.

‘피하지 않고, 치겠다고? 아니, 이건 좀 달라…….’

록튼과 설리반이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이 엔드류의 신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타격 동작에서 맞았다.’

타격 동작에서 공에 맞을 경우 힛 바이 피치볼 판정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엔드류는 소리가 나자마자 뒤로 넘어졌다.

마치 공을 피하다가 맞은 사람처럼.

“주심이 힛 바이 피치볼을 선언합니다.”

주심의 선언에 엔드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어.’

그는 1루로 향하는 대신 설리반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개자식아! 싸워 보자고!”

설리반은 엔드류가 공을 피하는 대신 발을 앞으로 내미는 것을 보았다.

‘저 자식이 심판을 속였어!’

평소라면 마운드 위에서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기 전 김민의 조언이 떠올랐던 것이다.

‘킴은 무조건 참으라고 했다.’

엔드류가 설리반을 향해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록튼이 그를 뒤에서 잡았다.

“엔드류, 진정해!”

“뭐야!”

엔드류는 록튼을 밀쳤다. 그러자 록튼이 힘으로 그를 제압했다.

“네 힘으로는 날 이길 수 없어!”

바닥에 깔린 엔드류.

“싸움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월드시리즈 3차전.

탬파베이 레이스와 뉴욕 메츠 선수들이 엉켰다.

5분가량 이어진 몸싸움.

결과는 엔드류와 록튼의 동시 퇴장이었다.

“주전 포수와 1루수의 맞교환이군요.”

“이건 탬파베이 쪽이 더 아프겠는데?”

“설리반은 이닝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말이죠?”

“지금 교체돼도 이상하지 않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록튼에게 김민이 주먹을 내밀었다.

“최고의 보디가드였어.”

록튼이 김민과 주먹을 마주하며 말했다.

“한 방 더 갈겨 줬어야 했는데.”

“한 방 갈겼어?”

“엉켜 있을 때, 한 방.”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억울하진 않겠군.”

“그 자식 속임수를 썼어.”

“이쪽에서도 보였어.”

록튼이 마스크를 옆에 내려놓았다.

“내 퇴장이 가치를 지니려면, 설리반이 이 위기를 막아 내야 해.”

1사 1, 2루.

설리반은 아직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이반 감독, 투수를 교체하지 않는군요.”

“설리반으로 계속 갈 모양입니다.”

탬파베이 홈플레이트는 이제 스미스에게 맡겨졌다.

‘월드시리즈 반지를 공짜로 얻을 생각은 없어.’

그는 미트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설리반, 부탁한다!”

설리반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한번 안쪽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슉!

6번 타자 혼즈는 이 공을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

‘뉴욕 사나이는 안쪽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탁!

배트 안쪽에 맞은 공이 투수 정면으로 굴러갔다.

“공이 먹혔습니다!”

설리반은 공을 잡자마자 바로 몸을 돌려 2루에 송구했다.

팡!

“2루에서 아웃! 공은 다시 1루로!”

혼즈는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유격수의 송구가 미세하게 빨랐다.

“1루에서 아웃! 더블 플레이입니다!”

1루심이 오른손을 든 순간 로버트가 크게 탄식했다.

“크윽…… 이 기회를 놓치다니…… 오늘 경기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6회 초, 뉴욕 메츠는 벤치 클리어링까지 벌였지만, 동점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