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왕조의 서막 01
1승 1패.
숫자로 상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득실차를 들여다보면 두 팀의 힘 차이는 명확했다.
탬파베이가 뉴욕 메츠를 압도했다.
‘야구는 축구가 아니다. 득실차는 큰 의미가 없다. 오직 승리만이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말하며 득실 차이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슬아슬한 승리와 압도적인 승리. 전자는 우리고 후자는 탬파베이다.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4번…… 성공한다면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우리는 트로피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김민에게 헌납할 2패는 이미 계산에 들어있었다.
‘1차전 승리, 2차전 패배, 그리고 다시 3차전과 4차전 승리, 김민의 등판인 5차전은 패배…….’
로버트는 생각했다.
오늘 패한다면 자신의 계산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고.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정점이 바로 오늘이다.’
헤르만은 버딩거가 아니다.
그의 유인구라면 탬파베이 타자들의 배트를 흘려 낼 수 있다.
그리고…….
오늘 탬파베이 마운드에 오르는 이는 김민이 아니라 설리반이다.
로버트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경기도 결국에는 1, 2점 싸움. 승리를 가져가는 것은 실수가 없는 쪽이 될 것이다.’
로버트는 트로피카나 필드 외야에 서 있었다.
중견수 혼즈가 그에게 다가왔다.
“로버트, 포수가 무슨 일이야?”
“외야가 얼마나 넓은지 보려고.”
“구단 자료에 보면 다 나오잖아.”
“숫자보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혼즈가 좌우를 살피며 말했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상당히 넓어. 하지만…….”
“하지만?”
“셰어 스타디움에 비하면 작은 구장이지.”
혼즈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맞는 말이야. 좌우가 100m가 안 되니까. 그리 넓은 구장은 아니지.”
로버트는 미간을 좁혔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투수 친화적인 구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투수들의 천국 셰어 스타디움에 비하면 타자들에게 할 만한 구장이다. 이곳이라면 점수가 제법 나올 것이다.’
그의 예상 승리 스코어는 6-5.
6점을 뽑고 상대 타선을 5점으로 묶으면 승리.
혼즈가 그에게 물었다.
“어때? 이길 마음이 섰어?”
“계산은 나왔어. 다만…….”
“변수가 있나?”
“처음 접하는 구장이잖아. 내 계산대로 경기가 흘러갈지는 미지수야.”
“그렇군. 난 네가 포기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
2차전의 대패.
게다가 팀의 중심인 로버트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로버트가 말했다.
“7차전 시리즈에서 1패를 했을 뿐이야. 그걸로 포기하는 선수가 어디 있어.”
“하긴 그렇지.”
“혼즈, 오늘 경기는 이길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오케이. 너만 믿는다.”
팀의 중심인 만큼 로버트의 한마디는 큰 영향력을 가졌다.
김민은 더그아웃에서 로버트를 주시했다.
“야전 지휘관이 외야까지 나갔군.”
“구장을 이곳저곳 스캔하는 거겠지.”
“준비성이 철저한 친구야.”
설리반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로버트는 모범생 중의 모범생입니다.”
클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네가 로버트를 알아?”
“같은 지구 출신입니다.”
“마이너때?”
“아뇨. 고교 시절에…….”
설리반이 기억하는 로버트는 형편없는 팀에서 악전고투하는 포수였다.
고교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로버트는 4번을 치며 타선을 이끌었다.
설리반은 생각했다.
‘로버트는 지금도 4번을 치고 싶을 거야.’
프로에 들어온 뒤, 로버트는 4번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기량이 중심 타선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메이저리그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동료들의 2배에 달하는 훈련을 소화하면서 메이저리그를 정조준했다.
“로버트보다 설리반, 네 컨디션은 어때?”
“괜찮습니다. 솔직히 말해 홈에서 등판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셰어 스타디움이 투수들의 천국인데도?”
“제게 셰어 스타디움은 어색한 구장입니다. 외야가 너무 넓어서 불안할 정도죠.”
셰어 스타디움은 뉴욕에 두 번째 메이저리그 구단을 유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변호사 셰어의 이름을 딴 구장이었다.
김민이 고개를 설리반에게 돌렸다.
“설리반, 몸쪽 공을 조심해.”
“예?”
“너무 깊이 넣지 마.”
“그 말은 혹시?”
“힛 바이 피치볼(데드볼)을 조심하란 뜻이야.”
2차전 버딩거는 김민을 맞춘 뒤 급격하게 흔들렸다.
설리반이 글러브를 흔들었다.
“전 버딩거가 아닙니다.”
“버딩거 문제가 아니야. 오늘 상대는 필사적으로 나올 거야.”
설리반이 멈칫했다.
“그 말씀은 오늘 경기가 지저분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선발 투수가 난투극에 휘말려 퇴장당하면 3차전은 끝이야. 상대가 포효해도 대응하지 마.”
설리반이 미간을 좁혔다.
“어려운 주문이군요.”
“록튼에게도 말해 뒀으니까. 어떠한 상황이 발생해도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도록 하죠.”
설리반은 지금까지 타자가 시비를 걸었을 때,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김민의 말을 따라보려고 했다.
‘월드시리즈 3차전이다. 고의로 투수를 충동질할 수도 있어.’
이반 감독과 코칭 스텝도 일찍 그라운드에 나와 선수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외야는?”
“그린(OK)입니다.”
“그럼 내야는?”
“내야도 그린입니다.”
“선발만 체크하면 되겠군.”
이반 감독이 블렛소 투수 코치를 찾았다.
그러자 바이슨 수석 코치가 대신 대답했다.
“블렛소는 불펜에 있습니다.”
“선발은 아직 체크 중이란 말이군.”
이반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았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감독의 뒤를 따랐다.
“홈에서 첫 경기입니다.”
이반 감독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이겨야지. 무조건.”
그는 평소와 달리 쾌활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생각했다.
‘오늘 경기 자신이 있으신 건가? 하지만 설리반은 기복이 심한 투수다. 승리를 자신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은가?’
그는 설리반의 오늘 컨디션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2시간 뒤.
월드시리즈 3차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 선공은 원정팀인 뉴욕 메츠입니다.”
“뉴욕 메츠, 오늘 경기에 이기면 시리즈를 홈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승리에서 2승 1패로 리드를 잡게 되면, 나머지 원정 경기에 모두 패한다고 해도 셰어 스타디움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패한다면…….
그들은 셰어 스타디움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경기 시작 10분 전.
로버트가 타자들을 모았다.
“오전 미팅 때도 말했지만, 설리반은 킴과 전혀 다른 유형의 투수다.”
“정면 승부를 좋아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 말이지?”
“그래.”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세세한 팁은 이야기하지 않겠어. 어제 내내 이야기했으니까. 지금 하고 자 하는 말은 대략적인 것이야.”
선수들의 시선이 로버트에게 집중되었다.
“오늘 경기는 초반이 가장 중요해. 초반 3이닝 동안 점수를 뽑지 못하면 경기가 크게 어려워질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메츠 타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초반이란 말이지?”
“맡겨 달라고!”
브론송이 배트를 들며 말했다.
“시작과 동시에 풀 스윙으로 가지!”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미팅을 마무리했다.
‘선취점을 내면 오늘 경기를 잡을 확률이 20% 이상 오른다.’
1회 초.
뉴욕 메츠 공격.
선두 타자는 1번 타자 브론송.
“브론송은 2차전에서 상당히 부진했죠.”
“2차전은 브론송만 부진한 게 아니었습니다. 뉴욕 메츠 타선 전원이 부진했죠.”
설리반은 빠르게 사인을 교환한 뒤 초구를 던졌다.
슉!
빠른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따악!
큰 타격음.
캐스터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큰 타구입니다!”
잠시 뒤, 산체스가 걸음을 멈췄다.
‘틀렸어.’
그가 멈췄다는 것은 타구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탁……
외야 관중석 한가운데 떨어지는 공.
캐스터가 1회 초 시작과 동시에 목에 핏대를 세웠다.
“뉴욕 메츠! 선두 타자 홈런으로 리드를 잡습니다!”
“워워! 메츠, 오늘 시작이 좋습니다!”
이반 감독은 시작과 동시에 목이 탔다.
“물.”
바이슨 수석 코치가 그에게 물병을 전달했다.
“너무 쉽게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이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제구가 가운데로 몰렸어.”
그는 물병을 발아래 둔 뒤, 미간을 좁혔다.
‘힘의 차이는 확실하다. 평소대로 플레이한다면 우리가 질 리 없다. 하지만…… 그게 잘되지 않는 게 야구다.’
2번 타자 더들리.
툭.
더들리는 기습 번트를 시도해 내야 안타를 성공시켰다.
“더들리! 간발의 차이로 1루에서 세이프입니다!”
“메츠, 오늘 시도하는 모든 작전을 다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유리 감독, 야구가 술술 풀리는군요.”
홈런과 안타.
2차전 패배 이후 가라앉았던 메츠 더그아웃이 살아났다.
“할 수 있어!”
“탬파베이는 킴이 나오는 날만 강해지는 팀이야.”
“시리즈를 탬파베이에서 끝내 버리자고!”
반면 탬파베이 더그아웃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작이 좋지 않아.”
“설리반이 흔들리는군.”
“여기서 록튼이 타임을 걸어야 하지 않아?”
선수들 사이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킴은 어때?”
김민이 클락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쩌면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음?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게 왜 킴 때문이야?”
“안쪽을 조심하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공이 전부 바깥쪽으로만 들어오고 있어.”
“그, 그건…… 정말 큰 문제 아니야?”
“록튼이 해결하길 바랄 뿐이야.”
록튼은 아직 볼 배합에 큰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두 타자 홈런은 볼 카운트가 정리되기도 전에 나온 것. 한마디로 게스 히팅의 결과다. 그리고 기습 번트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바깥쪽 공을 그렇게 밀 줄이야. 지금은 이 부분은 조금 수정해야겠어.’
그는 심호흡을 한 뒤 사인을 냈다.
- 안쪽 커브.
‘설리반의 오늘 공은 좋아. 패스트볼이 98마일(158km)까지 나오고 있다고.’
패스트볼이 좋음에도 커브를 요구한 것은 상대 타자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휙!
공이 큰 호를 그리면서 타자 안쪽을 향했다.
3번 타자 터커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공을 피했다.
느린 커브를 칠 생각이 없다는 뜻.
팡!
공이 미트에 들어오자마자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터커가 깜짝 놀라 주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게 스트라이크라고요?”
“안쪽을 통과했어.”
터커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 대기 타석에 있던 라이언이 목소리를 높였다.
“터커, 로버트의 말을 기억해.”
그의 한마디에 터커가 움찔했다.
‘오늘 경기는 초반이 중요하다. 1-0 리드, 여기서 싸움에 휘말리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터커는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투수에게 돌렸다.
‘커브로도 스트라이크를 넣는단 말이지?’
그는 배트를 세웠다.
잠시 뒤,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빠른 공!’
터커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8마일(158km).
“설리반, 좋은 공입니다!”
“공이 꿈틀거리면서 날아가는군요. 전 이런 공이 아주 좋습니다.”
김민은 설리반의 피칭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설리반이 리듬을 탔어.”
“리듬이라고?”
“이번 이닝, 더 이상 실점은 없을 거야.”
김민의 예상대로였다.
설리반은 터커를 삼진, 라이언을 1루 땅볼, 엔드류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메츠, 클린업이 등장했지만, 2루에 있는 주자를 불러들이지 못하고 이닝을 마감합니다.”
“이번 이닝 메츠는 선두 타자 홈런으로 1-0 리드를 잡았습니다. 원정에서 리드를 잡는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일입니다.”
1회 말.
헤르만은 메츠 코칭 스텝의 걱정과는 다르게 좋은 피칭을 보여 주었다.
“헤르만! 첫 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 냅니다!”
“코너를 찌르는 패스트볼과 살짝 벗어나는 유인구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갔습니다.”
헤르만은 2회도 좋았다.
그는 안타 하나 맞지 않고 2이닝을 버텼다.
클락이 혀를 차며 말했다.
“로버트의 볼 배합이 좋군.”
“볼 배합만 좋은 게 아니야. 시프트와 야수들의 움직임 또한 베스트야.”
“오늘 메츠는 완벽이라는 건가?”
하지만 완벽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3회 말.
탬파베이 공격.
선두 타자는 6번 타자 케니히.
“헤르만! 풀카운트 접전 끝에 케니히를 출루시킵니다.”
“케니히, 이번 시리즈 활약이 좋습니다. 오늘도 첫 타석부터 출루군요.”
3, 4, 5차전은 아메리칸 리그 룰에 따르고 있었다.
덕분에 하위 타선이라고 해도 쉬어 갈 수 있는 투수 타석이 없었다.
이것은 로버트의 경기 운영을 빡빡하게 만들었다.
‘다음 타자는 무조건 잡아야 해.’
“다음 타자는 스나이더입니다.”
스나이더는 지난 2차전에서 2안타 2타점을 올린 바 있었다.
“스나이더는 홈런은 아니라고 해도 장타를 기대할 수 있는 타자죠.”
로버트는 적극적인 승부를 원했지만, 헤르만은 스나이더를 상대로 도망쳤다.
이것은 포수가 제어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였다.
‘헤르만……. 상대는 스나이더라고, 네 공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야! 도망치지 말라고!’
카운트 3-1.
로버트는 안쪽 코너에 패스트볼을 요구했지만, 공은 코너가 아니라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고 말았다.
“볼, 베이스 온 볼스입니다!”
“여기서 볼넷은 좋지 않습니다. 메츠, 고민이 깊어지겠습니다.”
스코어 1-0, 리드는 겨우 1점.
무사 주자 1, 2루.
로버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장 좋은 것은 록튼을 더블 플레이로 잡아내는 것이다.’
록튼을 잡은 뒤, 칼튼마저 잡아낸다.
그렇게 하면 기회가 브라이튼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
팡!
초구는 바깥쪽으로 벗어나는 볼.
록튼의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침착해.’
로버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서는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어야 한다.’
그는 볼넷을 두려워하지 않는 포수였지만, 지금 상황에서 볼넷은 위험했다.
‘리드를 넘겨주는 순간 경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탬파베이는 언제든 빅이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팀이었다.
그런 팀을 상대로 무사 만루는 절대 피해야 했다.
- 안쪽 패스트볼.
로버트가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슉!
빠른 공이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록튼은 이 공을 때리는 대신 몸을 뒤로 뺐다.
팡!
로버트가 프레이밍을 시도해 보았지만, 주심의 판정은 볼이었다.
“또 볼입니다! 카운트가 2-0으로 나빠집니다.”
“헤르만 3회 크게 흔들립니다.”
로버트는 할 수 없이 타임을 걸고 마운드에 올라갔다.
“헤르만.”
“미안해.”
“사과할 일이 아니야. 코너에 공을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건 좋지 않아.”
“여기서 맞으면…….”
“볼넷이 더 위험해.”
로버트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
“헤르만, 잘 들어. 다음 공은 무조건 맞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 리드대로 던져.”
“무조건?”
“그래, 타자의 사각을 알고 있어.”
헤르만은 로버트의 한마디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어. 다음 공은 로버트의 리드대로 넣겠어.”
홈플레이트로 돌아간 로버트.
그가 낸 첫 번째 사인은 바로 커브였다.
- 한가운데 커브.
오프 스피드 피치를 이용한 승부.
‘내가 타자라면 스트라이크존을 잡으려고 들어오는 패스트볼을 노릴 거야. 이걸 노려서 커브로 승부. 록튼이라면 타자라면 커트가 고작이겠지.’
미트를 들자 공이 큰 호를 그렸다.
‘코스가 좋아. 이 공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다.’
로버트는 만족했다.
휙!
높은 코스에서 공이 회전을 하면서 떨어졌다.
0.2-3초 뒤면 공이 미트에 들어올 것이다.
록튼은 로버트와 달리 생각해 둔 공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순간 망설였다.
‘커브다. 이 공을 쳐서 더블 플레이가 나온다면? 그렇게 되면 내가 이번 이닝 공격을 망치게 된다. 하나 보는 쪽이…….’
하지만 그 망설임은 잠시뿐이었다.
‘젠장! 2-0 카운트에서 물러난다면 어떤 공을 때릴 수 있겠어!’
배트가 공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해결한다.
록튼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탁!
1, 2루 사이로 민 타구.
로버트의 눈이 커졌다.
‘이걸 쳤다고?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던 게 아니었나?’
헤르만에게 약속한 승리의 공.
그 공이 1, 2루 사이를 향했다.
‘제발! 엔드류 잡아 줘!’
1루수 엔드류가 몸을 날렸지만, 공은 그대로 빠져나갔다.
“아! 공이 수비 틈새로 빠져나갑니다!”
우익수 레너드가 공을 잡기 위해 돌진했다. 그러나 2루 주자는 발이 빠른 케니히였다.
“2루 주자 케니히가 홈으로 돌진합니다.”
레너드가 공을 잡아 홈에 송구했지만, 케니히의 발이 한발 빨랐다.
촤악!
먼지와 함께 주심이 두 손을 활짝 폈다.
“세이프! 세이프!”
탬파베이 1:1 뉴욕
로버트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