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82화 (282/296)

282화 반지 사냥꾼 05

김민은 생각했다.

‘이번 찬스에서 점수를 뽑는다. 공에 한 번 맞은 것쯤은 이자를 더하고도 남아.’

바이슨 수석 코치가 1루에 나간 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기 후반이었다면 킴을 빼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군요.”

“아메리칸 리그 투수에게 주루는 생소한 일이지. 킴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김민은 고교 시절 에이스에 호타준족의 4번 타자였다.

봉황대기에서 한 경기 연속 3도루를 성공시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수십 년 전 이야기였다.

‘생을 거슬러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벌써 5, 6년은 된 이야기. 그때처럼 달릴 수는 없겠지.’

주루 연습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인 주루는 아무래도 위험했다.

김민은 유광점퍼를 입은 채 조심스럽게 리드를 가져갔다.

브라이튼은 배터 박스에 들어가기 전 코스타 타격 코치의 지시를 받았다.

‘확실하지 않으면 때리지 마라.’

이 지시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첫째 버딩거의 제구는 예상 이상을 좋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비슷한 공을 때리면 대부분 볼이었다.

둘째는 1루 주자가 김민이기 때문이었다.

김민은 앞서도 설명했지만, 아메리칸 리그 투수였다. 그에게 주루는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어설픈 타구로 더블 아웃 될 바에는 그냥 삼진을 당하라는 뜻인가? 뭐, 그쪽이 킴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브라이튼은 배트를 세웠다.

슉!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팡!

미트에 공이 들어왔지만, 주심의 오른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초구는 볼이군요. 브라이튼은 하나 기다려 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공도 바깥쪽.

팡!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존에 살짝 걸치는 공이었다.

“스트라이크!”

브라이튼은 미간을 좁혔다.

‘주심이 프레이밍에 당했군.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 빠지는 공이었는데 말이야.’

평소라면 화를 냈을 브라이튼이었다.

하지만 이번 타석에서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받은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다.

‘어설픈 공이라는 건 아마 이런 공을 말하는 것이겠지.’

브라이튼은 다시 배트를 세웠다.

‘자, 버딩거, 세 번째 공은 어떤 공이냐?’

브라이튼은 상대 볼 배합을 예상하기보다는 날아오는 공을 보고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타입이었다.

그에게 공을 보고 타격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관중석에 자리 잡은 오티즈 2세는 브라이튼이 평소보다 신중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신중한 브라이튼은 최고야. 그 누구도 당해 낼 수 없단 말이지!”

그는 브라이튼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이튼! 한 방 쳐라!”

주변 메츠 팬들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누구야?”

“저 녀석 제정신인가? 여긴 셰어 스타디움 1루라고.”

브라이튼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면 1루가 아닌 3루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오티즈 2세는 1루에 앉아 브라이튼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야구를 잘 모르는 매니저가 1루 쪽 표를 예매했기 때문이었다.

버딩거의 3구는 커브.

공이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날아왔다.

브라이튼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은 공이란 바로 이런 공이지.’

딱!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앞에 떨어졌다.

“브라이튼! 커브를 완벽하게 걷어 올렸습니다.”

“깔끔한 안타군요.”

김민은 배트가 공을 때려내는 순간 타구가 안타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속도를 높였다.

‘우익수 앞이나 근처에 떨어지는 안타다. 이 안타라면 3루까지 갈 수 있다.’

뉴욕 메츠 우익수 레너드의 어깨는 평균 정도.

우익수 쪽에서 3루로 송구한다고 할 때, 노바운드로 송구가 들어갈 가능성은 적었다.

‘원 바운드, 또는 투 바운드다.’

김민은 단숨에 2루 베이스를 지나쳤다.

이것을 본 주루 코치가 두 손을 들었다.

“무리야!”

그가 김민을 멈춰 세우려 한 것은 타이밍보다는 김민이 투수였기 때문이었다.

‘킴! 3루에서 슬라이딩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 난다고! 자넨 선발 투수라고!’

그러나 김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1사 1, 2루와 1사 1, 3루가 어떻게 다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사 1, 3루를 만든다.’

김민에게 1사 1, 3루는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해 볼 만한 모험이었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하지 않는다.

부상 위험이 클 뿐 아니라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슬라이딩이었다.

선택은 스탠딩 슬라이딩.

시도 거리는 대략 4m.

‘키가 큰 선수들은 더 멀리에서도 하지만, 난 딱 이 정도 거리가 좋아.’

베이스와 거리를 체크한 김민이 몸을 날렸다.

‘앞다리는 땅에 닿지 않게…… 땅에 닿게 되면 부상의 위험성이 있다.’

촤아아아악!

엉덩이와 허벅지로 지면을 훑으면서 나아갔다.

탁.

베이스에 발이 닿은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글러브 터치는 없다.’

김민은 반동을 이용해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이것은 다음 플레이를 위한 준비 동작으로 프로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연습하는 동작이었다.

몸을 일으킨 김민은 가장 먼저 상황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야수들은 침착했다.

실책이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3루수는 어디 있지?’

고개를 돌리자 3루수 터커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베이스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송구가 조금 길었던 모양이었다.

‘송구가 빠지진 않은 건가?’

김민이 동작을 멈춘 순간 3루심의 판정이 나왔다.

“세이프!”

적극적인 주루로 주자 1, 3루.

주루 코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내 사인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군.”

로버트는 3루 베이스를 밟고 선 김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버딩거에게 버거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반 감독은 김민의 주루에 고개를 끄덕였다.

“킴이 어떤 야구를 추구하는지 알겠어.”

“1점을 짜내는 야구입니까?”

“아니, 킴은 어느 포지션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어. 킴이 추구하는 야구는 완벽한 야구야.”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킴은 퍼펙트게임도 3번이나 했죠. 완벽한 야구. 킴에게 어울리는군요.”

1사 1, 3루 상황에서 배터 박스에 들어선 것은 산체스였다.

로버트가 버겁다고 생각한 것은 줄줄이 들어서는 탬파베이 강타자들 때문이었다.

‘산체스를 더블 플레이로 잡아내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안쪽 제구가 완벽하거나 훌륭한 브레이킹볼이 있다면 한 번 승부를 걸어 볼 만했다.

하지만 버딩거에게는 그 두 가지가 모두 결핍되어 있었다.

‘대체 어떤 공을 요구해야 하지?’

로버트는 고심했다.

그의 고심이 길어질 무렵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다.

- 한 점을 주고 아웃 카운트를 잡아라.

유리 감독이 냉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로버트는 유리 감독의 지시에 고민을 끝냈다.

‘아웃 카운트와 1점을 바꾼다면 외야 플라이가 가장 좋다.’

높은 쪽 볼.

산체스는 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공을 거르지 않을 것이다.

‘아웃 카운트와 선취점을 맞바꾸는 거야. 산체스에게도 나쁠 게 없다고.’

그는 빠르게 사인을 낸 뒤 미트를 들었다.

‘자, 트레이드를 시작하자고.’

슉!

빠른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팡!

산체스는 이 공을 치지 않고 그냥 흘려보냈다.

이것은 로버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냥 보냈다고? 외야 플라이를 칠 수 있는 공을?’

산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배트를 내렸을 뿐이었다.

“산체스, 초구를 골랐습니다.”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려는 것 같습니다. 버딩거에게는 괴로운 상황이군요.”

마운드에 선 버딩거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치지 않았어. 녀석은 플라이나 안타로 끝내려는 게 아니야.’

장타를 때리겠다는 타자의 의지가 마운드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산체스를 거르고 싶었다.

하지만 1사 만루를 허락할 포수와 벤치가 아니었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윽고 다음 사인이 나왔다.

바깥쪽 패스트볼.

버딩거는 심호흡을 한 뒤 공을 던졌다.

슉!

92마일(148km) 패스트볼이 코너를 노렸다.

‘이건 들어간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공.

그러나 다음 순간 산체스의 배트가 그 공을 걷어 올렸다.

따악!

중견수 혼즈는 타격음을 듣는 순간 결과를 알았다.

‘결과를 볼 필요도 없는 타구다.’

외야수 세 명이 한 명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

하늘 높이 날아간 타구는 그대로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

탁!

공이 떨어진 지점은 관중석 상단.

초대형 홈런이었다.

“산체스! 터졌습니다! 초대형 홈런입니다!”

“한 방에 3점이군요. 희생 플라이 같은 건 생각하지 않은 타격이었습니다.”

로버트는 산체스에게 홈런을 맞은 직후 리드의 한계를 느꼈다.

‘포수 리드는 만능이 아니다.’

탬파베이는 산체스의 홈런으로 단숨에 큰 리드를 잡았다.

탬파베이 3:0 뉴욕

김민은 산체스가 베이스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와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훌륭한 타격이었다.”

산체스는 김민의 한마디에 미소를 지었다.

“킴의 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공입니다.”

그는 아직도 김민과의 대결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윌리엄입니다.”

산체스의 홈런이 나왔지만, 탬파베이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윌리엄의 안타입니다!”

탬파베이 타선의 힘.

그것은 버딩거로서는 막아 낼 수 없는 압도적인 그 무엇이었다.

4와 1/3이닝 7실점.

버딩거의 월드시리즈 피칭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존슨 타수 코치가 따라붙었다.

“수고했다.”

“7실점입니다.”

버딩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탬파베이가 터질 때는 아무도 막을 수 없어.”

“…….”

존슨 투수 코치는 버딩거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버딩거의 생각은 달랐다.

“킴을 맞췄기 때문에 진 겁니다.”

“버딩거.”

“그때 사구가 나오면서 제구력이 더 크게 흔들렸습니다.”

산체스에게 홈런을 맞은 공은 원래 바깥쪽으로 빼려던 공이었다.

하지만 제구가 흔들린 덕분에 그 공은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홈런을 맞았다.

“네 탓이 아니야.”

클럽 하우스 안은 밖과 달리 고요했다.

“아뇨. 제 탓입니다. 킴은 다음 타석에서 배터 박스에 선 절 맞추지 않았습니다.”

“킴은 네가 고의로 공을 던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것뿐일까요? 그것을 안다고 해도 자신을 맞춘 투수를 그냥 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팀의 다른 투수들 입장도 있거든요.”

4번 타자를 맞추면 상대 팀의 중심 타자를 맞춰 보복한다.

“월드시리즈에서 퇴장을 당할 수는 없잖아. 킴은 아마 퇴장을 염려했을 거야.”

“제 생각은 다릅니다. 킴은 아마도 제게 고마움을 느꼈을 겁니다. 제 실투가 아니었다면 점수가 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존슨 투수 코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왜 점수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로버트의 볼 배합은 완벽하니까요.”

존슨 투수 코치는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

“버딩거, 그 생각은 틀렸어. 로버트의 볼 배합은 완벽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일반적인 볼 배합보다 불완전하지.”

버딩거가 고개를 들었다.

“존슨!”

존슨 투수 코치가 손을 들며 버딩거의 말을 막았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보라고. 지금까지 로버트의 볼 배합이 통했던 것은 우리 수비력이 다른 팀을 압도했기 때문이야. 그 위험한 함정 수비도 그래서 가능했던 거고. 일반적인 팀이라면 로버트의 볼 배합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어. 그리고 하나 더. 펜스를 넘어가는 공은 시프트로 막을 수가 없어.”

“존슨, 그 말은…….”

“탬파베이는 우리하고 상성이 나빠. 장타자가 너무 많다니까.”

이날 로버트는 타격과 수비 양쪽 모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버딩거가 강판된 이후 공을 뒤로 흘리면서 추가점을 허용했으며, 타격에서는 2타수 무안타로 끌려갔다.

“이것이 탬파베이와 우리의 차이인가?”

며칠을 고민해 짠 전략은 김민을 상대로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셔널 리그 상위권이라고 자부했던 클린업도 삼진의 탑을 쌓고 있었다.

야전 사령관이라 불리는 그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게 킴.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

로버트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오늘의 20번째 아웃 카운트.

아웃을 당한 타자는 1번 타자 브론송.

김민은 단 3개의 공으로 처리했다.

“킴! 7회 두 번째 아웃 카운트까지 단 하나의 안타만을 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킴은 퍼펙트에 버금가는 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투수입니다.”

7회 말이 끝나자 이반 감독은 투수 교체를 검토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이의를 제기했다.

“벌써 킴을 내리는 겁니까? 아직 투구수는 68개에 불과합니다. 더 던져도…….”

이반 감독이 그 말을 끊으며 말했다.

“3일 쉬고 등판이라면 투구수를 조절해야겠지.”

바이슨 수석 코치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3일 쉬고 등판, 결정된 것 같군요.”

“이 기세라면 5차전에서 끝낼 수 있어.”

탬파베이 코칭 스텝은 힘의 강약이 이번 경기로 드러났다고 판단했다.

“뉴욕 메츠, 좋은 팀이지만, 미네소타보다도 약해.”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전 텍사스 이하라고 생각합니다.”

탬파베이 타선은 계속해서 뉴욕 메츠 투수진을 몰아붙였다.

“탬파베이 다시 안타입니다.”

“9-0으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안타군요.”

코스타 타격 코치는 아직 미네소타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치는 것 아닐까요?”

이반 감독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만큼은 아니야. 타선에 불이 붙었거든.”

그는 이 불이 플로리다에 가서도 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네소타를 상대로 부진했던 것은 단순히 타격 사이클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산타나와 레드 그리고 모르스가 뛰어난 피칭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 메츠는 다르다. 수준급 투수들을 보유하긴 했지만, 미네소타 에이스들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야. 앞으로 2, 3년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반 감독은 두 팀이 가진 힘의 차이가 오늘의 스코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홈으로 돌아가면 힘의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날 거야.”

“지명 타자를 쓸 수 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우린 라이트라는 훌륭한 지명 타자를 가지고 있지만, 저쪽은 대타 자원을 라인업에 올리는 게 고작이야.”

유리 감독도 원정 경기에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려운 시리즈가 되었군.”

“이제 막 1승 1패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경기는 킴이 나온 경기입니다. 킴이 아니라면 할 만합니다.”

유리 감독이 코칭 스텝을 향해 말했다.

“원정은 룰이 달라.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야.”

8회 말.

스페이츠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완벽한 피칭으로 어제의 실점을 씻었다.

“스페이즈가 8회 말 세 타자를 깔끔하게 막아 냅니다.”

“점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일까요? 뉴욕 메츠 타자들의 배트가 크게 나오고 있습니다.”

9회 초.

탬파베이 공격.

유리 감독은 오늘 1패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로버트의 표정이 좋지 않군. 뚫리지 않는 벽을 마주한 얼굴이야.’

9회 초, 탬파베이는 주전을 대거 빼면서 홈경기를 대비했다.

“12-0, 주전을 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스코어입니다.”

“그래도 월드시리즈에서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유리 감독이 수석 코치와 투수 코치를 향해 말했다.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감독님.”

유리 감독이 손을 들며 말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그래야 패배를 수습할 수 있으니까.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뉴욕 메츠 타격 코치였다.

“경기 후, 타자들의 멘탈을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유리 감독의 시선이 존슨 투수 코치에 닿았다.

존슨 투수 코치는 감독보다 먼저 말문을 열었다.

“버딩거는 이미…….”

유리 감독이 그의 말을 잘랐다.

“버딩거가 아니야. 3차전 선발 투수인 헤르만이 문제야.”

“헤르만이 문제란 말씀이십니까?”

“그는 오늘 탬파베이 타선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봤어.”

헤르만은 팀의 2선발로 버딩거와 유사한 투구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버딩거의 차이는 제구력과 커브의 낙차 정도였다.

유리 감독은 헤르만에 좌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존슨 투수 코치가 말했다.

“버딩거는 다저스를 상대로 잘 던졌습니다. 강팀이라고 주눅 드는 투수가 아닙니다.”

“상대는 다저스가 아니라 탬파베이야. 그들의 힘은 다저스 이상이라고.”

유리 감독은 존슨 투수 코치에게 반드시 헤르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라고 지시했다.

월드시리즈 2차전은 12-0 탬파베이의 승리로 끝났다.

존슨 투수 코치는 경기 뒤 헤르만을 찾아갔다.

그의 예상과 달리 헤르만의 표정은 어두웠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헤르만…….”

“존슨, 버딩거가 무참하게 당했습니다. 로버트도 속수무책이더군요.”

“으음…….”

헤르만이 계속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 포타 같은 패스트볼이 없습니다.”

포타는 월드시리즈 1차전에 등판한 뉴욕 메츠의 에이스였다.

그는 7이닝 동안 탬파베이 타선을 잘 막아 승리 투수가 되었다.

헤르만은 생각했다.

포타가 탬파베이 타선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것은 98마일(158km)에 이르는 강속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제가 마운드에 올라간다면 버딩거와 다를 게 없을 겁니다.”

“헤르만, 넌 버딩거와 달라. 네 제구는 신뢰할 수 있어.”

“버딩거의 제구가 오늘 나빴다는 말씀입니까?”

존슨 투수 코치가 대답했다.

“킴을 맞출 정도로 버딩거의 제구는 좋지 못했어. 헤르만, 너라면 다를 거야.”

“산체스에게 맞은 공은 완벽히 제구된 공이었습니다. 윌리엄에게 맞은 2루타도 제구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버딩거에게 벅찬 제구였습니다.”

“산체스는…… 산체스를 상대로 스트라이크존에 승부구를 넣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야. 사실 그 홈런은 버딩거의 잘못이 아니야.”

존슨 투수 코치는 어떻게든 헤르만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같은 시각.

알렉산더 타격 코치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오늘 경기는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는 다르다.”

목소리에 힘을 실었지만, 타자들은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9이닝 동안 2안타 무득점.

그들은 오늘 철저하게 막히고 말았다.

‘이래서는 곤란해. 어떻게든 팀을 끌어올려야 해.’

그는 필사적으로 팀의 텐션을 높이려 했다.

“미네소타를 생각해. 녀석들은 퍼펙트게임을 당하고도…….”

중견수 혼즈가 말했다.

“퍼펙트게임을 당한 뒤 그대로 시리즈를 내줬죠.”

“…….”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뒤, 로버트가 그것을 깼다.

“힘의 차이는 확실합니다. 오늘 그것을 느꼈습니다.”

“로버트.”

“존슨,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린 그냥 물러서진 않을 겁니다. 오늘은 제가 틀렸습니다. 그래서 진 겁니다. 다음에는…… 다음에는 틀리지 않을 겁니다.”

로버트는 오늘 경기에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 누구보다 빠르게 회복했다.

‘킴을 이길 수는 없다. 이것을 인정하면 오히려 편하다. 그가 나오는 2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를 잡는다. 그러면 4승 2패로 월드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다.’

그는 시리즈를 길게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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