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반지 사냥꾼 04
2회 초.
탬파베이 공격.
선두 타자는 5번 타자 케니히.
“케니히가 선두 타자군.”
“케니히가 클린업이라니, 이상해. 차라리 산체스를 5번으로 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반 감독은 산체스를 2번에 두는 게 가장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강한 2번 타자 이론인가?”
“그것보다는 산체스의 위치를 이동시키면 루틴이 깨진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케니히는 타점으로 승부하는 전형적인 5번 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가능하면 공을 오래 보고, 정확히 타격하는 타자였다.
로버트는 케니히의 타격 자세를 살피며 생각했다.
‘케니히는 기본적으로 끈질긴 타자다. 배터 박스 위치도 나무랄 곳이 없다. 어설픈 유인구로는 배트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초구는 안쪽 패스트볼.
슉!
케니히는 이 공에 배트를 멈췄다.
팡!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초구는 볼이었다.
로버트는 미간을 좁혔다.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은 다 걸러 낼 수 있다는 건가? 버딩거에게는 천적이군.’
버딩거의 제구력으로는 공 하나를 넣고 빼는 승부가 불가능했다.
두 번째 공은 안쪽으로 떨어지는 커브.
케니히는 이 공도 걸렀다.
팡!
“커브입니다. 판정은…… 볼, 볼입니다.”
로버트가 프레이밍을 시도했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버딩거, 케니히를 상대로 어렵게 가는군요.”
김민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저 친구 5이닝이 목표군.”
“내 생각도 그래, 5이닝 이상은 생각하고 있지 않을 거야.”
김민과 렉터, 두 사람은 버딩거의 유인구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다.
‘볼은 타자에게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고, 그것은 투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버딩거가 유인구를 던지는 것은 구위가 타자의 배트를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슉!
세 번째 공.
케니히의 배트가 나왔지만, 공은 파울 라인 밖에 떨어지고 말았다.
“세 번째 공을 노려보았지만, 파울입니다.”
“버딩거, 오늘 볼이 너무 많습니다. 이번 공도 치지 않았다면 볼이었습니다.”
경기 전, 로버트는 버딩거에게 투구수를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탬파베이는 투구수를 아끼면서 상대할 수 있는 타선이 아니야. 볼넷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리드대로 던져.’
버딩거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버트의 요구에 응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볼 파티였다.
로버트는 빠르게 사인을 낸 뒤 미트를 들었다.
카운트 2-1에서 네 번째 공.
슉!
빠른 공이 다시 한번 안쪽을 향했다.
케니히는 미간을 좁혔다.
‘코너 또는 볼이다.’
볼을 골라내면 카운트는 3-1로 좋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다면?
케니히는 유리함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대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올 수도 있다. 아니야. 이건 거른다.’
배트를 내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는 타자.
그가 바로 케니히였다.
팡!
미트에 꽂힌 공은 예상대로 볼이었다.
“케니히, 제대로 골랐습니다. 카운트는 3-1입니다.”
로버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쳇, 이 공까지 골라낼 줄이야. 소문대로 좋은 눈을 가졌군.’
그는 케니히가 웬만하면 배트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니히는 한 번 더 참으면서 버딩거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로버트는 미트에서 공을 빼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다음 타자는 6번 타자 스나이더. 크게 문제 될 유형의 타자는 아니다. 한 방은 있지만 정확성이 떨어지는 타자. 케니히를 볼넷으로 내보내도 그를 더블 플레이로 잡으면 된다.’
그는 다시 한번 코너에 공을 요구했다.
정확히 제구가 되면 좋고, 아니면 볼넷도 상관없다는 리드.
로버트의 움직임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케니히가 공을 때려냈을 때를 대비해 시프트를 타구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쪽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슉!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너로 날아갔다.
케니히는 이 공에 배트를 내렸다.
‘로케이션인가? 버딩거는 코너로 공을 넣을 제구력이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 4개의 공을 본 뒤 내린 결론이었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주심이 오른손을 들었다.
“스트라이크!”
케니히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
버딩거의 패스트볼은 정확히 코너를 공략했다.
케니히는 판정에 멈칫했다.
‘그게 코너에 들어왔다고?’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버딩거의 제구력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딩거, 케니히를 상대로 풀카운트를 만듭니다.”
“케니히, 이번 공은 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코너를 완벽히 공략한 공이었습니다.”
이반 감독이 턱을 쓰다듬었다.
“운이 따라 주지 않는군. 어려운 승부야.”
“케니히는 잘 싸워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웃된다고 해도 이득입니다.”
“이득이라니? 진루하지 못하면 이득이 아닐세.”
“투구수를 많이 늘려도 말입니까?”
“바이슨, 버딩거는 애초에 오래 가지고 낸 투수가 아니라고.”
바이슨 수석 코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씀은…….”
“내일은 이동일. 상대는 오늘 불펜을 총동원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버딩거를 낸 거야. 그의 목표는 길게 봐도 5이닝이겠지.”
이반 감독은 렉터의 분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리즈 일정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그것을 본 이반 감독이 말했다.
“케니히가 졌군. 다섯 번째 공이 코너에 들어온 게 영향을 미친 거야.”
버딩거의 끈질긴 승부.
케니히는 고개를 숙였다.
‘풀카운트에서 빠지는 공이라…… 이런 친구는 오랜만이군.’
그가 포스트 시즌에서 상대했던 투수들은 대부분 강력한 구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풀카운트에서 어김없이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었다.
반면 버딩거는 풀카운트에서 머뭇거림 없이 유인구를 던지는 투수였다.
“중견수 혼즈가 공을 잡아냅니다. 버딩거, 첫 아웃카운트를 잡아냅니다.”
“혼즈는 수비 범위가 넓은 중견수 중 한 명입니다. 이번에도 상당한 거리를 달려와 공을 잡아냈습니다.”
버딩거는 케니히를 처리한 뒤, 스나이더를 2루 땅볼로 잡아내고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았다.
“다음 타자는 록튼입니다!”
“록튼은 든든한 친구죠. 디비전 시리즈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안타를 때린 바 있습니다.”
록튼은 배터 박스에 들어설 때부터 승부를 길게 보기로 했다.
‘녀석의 볼 배합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스트라이크에 가능한 비슷한 공을 던지면서 범타를 유도하는 볼 배합.
슉!
초구는 빠른 공이었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지 않는다.’
록튼은 배트를 멈추지 않은 채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다음 순간 공이 안쪽으로 휘어지면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
팡!
“스트라이크!”
록튼은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졌다.
‘조금 전 공…… 스트라이크존으로 떨어지는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버딩거, 이런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으면서 지금까지 던지지 않은 이유가 뭐야?’
김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제구가 불안하니까. 록튼, 속지 마. 이번 공은 우연히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 것뿐이야. 녀석은 연속해서 투심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넣은 적이 없어.”
그러나 그의 말은 록튼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탁!
두 번째 공을 컨택한 록튼.
공은 유격수 정면으로 굴러갔다.
“유격수가 잡아서 1루에 송구! 그대로 아웃입니다!”
2구 타격.
유격수 땅볼 아웃.
로버트와 버딩거에게는 단비 같은 결과였다.
‘록튼 녀석, 우리를 도와주는 건가? 케니히 때문에 투구수가 너무 늘어나서 걱정했는데 이걸로 한시름 덜었군.’
록튼은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제길…… 볼을 치고 말았어. 게다가 녀석의 투구수마저 줄여 줬지.’
대기 타석에 있던 김민이 록튼에게 다가왔다.
“록튼, 어제 내가 했던 말을 잊은 모양이야.”
“승부를 길게 보라는 말?”
“그래.”
“잊진 않았어. 다만, 초구에 투심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여유를 잃고 말았어.”
김민이 록튼과 함께 걸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 버딩거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삼진을 각오해야 해.”
“뭐?”
“유인구 속에 감춰진 스트라이크가 있어. 그 공들이 때때로 삼진을 만들어 내.”
“흠, 그 공을 찾아낼 수는 없는 건가?”
“찾아내려 하는 순간 배터리의 페이스에 말리고 말 거야. 그냥 무시하고 삼진을 당하라고.”
록튼이 고개를 갸웃했다.
“킴, 그건 좀 말이 심한…….”
“록튼,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를 얕보지 말라고, 그 정도도 내어 주지 않으면, 버딩거를 공략할 수는 없어. 녀석은 당당한 선발 투수라고.”
김민은 버딩거의 스트라이크 타이밍을 예측하는 것은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를 공략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생각했다.
2회 말.
뉴욕 메츠 공격.
선두 타자는 4번 타자 라이언.
로버트가 대기 타석으로 향하는 라이언을 잡았다.
“라이언, 킴은 오늘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 왼손 타자의 안쪽에 집중적으로 공을 던지고 있어.”
라이언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건 녀석이 오른쪽 배터 박스를 노리고 있다는 말인가?”
“맞아. 아마 그쪽 제구가 편한 모양이야.”
“그렇다면 승부구는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겠군.”
라이언이 몸을 돌렸다.
“로버트,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뻔한 볼 배합에는 당하지 않을 테니까.”
로버트가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라이언, 너무 단정하지는 마. 터커를 쓰러뜨린 것은 스플리터가 아니라 패스트볼이었어. 패스트볼도 생각해야 한다고.”
라이언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스플리터 타이밍에 패스트볼이 날아올 수도 있다는 말인가?”
“패스트볼은 가장 비중이 높은 공이야. 언제든 머릿속에 넣어 둬야 한다고.”
라이언이 고개를 돌렸다.
“무리야. 패스트볼을 머릿속에 넣고 있으면 스플리터를 공략할 수 없어. 스플리터면 스플리터, 패스트볼이면 패스트볼. 이렇게 생각해야 공을 공략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스플리터를 노려.”
로버트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큰 쪽에 배팅했다.
그러나 김민의 초구는 패스트볼이었다.
“킴! 안쪽에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습니다.”
라이언은 자신의 예상과 정반대 코스로 날아온 공에 혀를 찼다.
“쳇, 로케이션인가? 1회 초하고 다르군.”
그는 배트를 두 번 돌린 뒤, 다시 두 손으로 잡았다.
이것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준비동작이었다.
“킴, 와인드업!”
김민의 두 번째 공은 낮게 떨어지는 커브.
라이언은 이 공을 버텨냈다.
“라이언이 커브를 골라냅니다.”
김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상하군. 배트가 나올 법한 공이었는데.”
라이언은 적극적인 타자였다.
그가 배트를 내지 않는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노리고 있는 공이 따로 있다.
‘커브를 걸렀다면 패스트볼인가? 하지만 녀석은 초구를 때리지 않았어.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구종이 아니라 코스.’
김민은 상대가 바깥쪽을 노린다고 판단했다.
‘안쪽을 버리고 바깥쪽이라. 라이언은 원하는 공을 정해 두고 타격하는 타입이 아니야. 그가 특정 코스를 노린다면 전력분석팀이나 코칭 스텝의 지시가 확실해.’
스트라이크존을 반만 쓰는 상대.
김민에게는 이쪽이 더 편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상대라. 이상하군.’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록튼의 미트를 파고들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안쪽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패스트볼.
라이언의 배트는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카운트 1-2, 킴이 유리한 고지에 올랐습니다.”
“라이언, 이번에도 안쪽 공을 치지 않았습니다. 바깥쪽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이언은 타임을 건 뒤 대기 타석으로 물러났다. 그리곤 배트에 왁스를 바르며 생각했다.
‘오른손 타자인데도 바깥쪽 공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로버트의 분석과 전혀 다른 볼 배합. 할 수 없지. 내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투 스트라이크.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보면서 존에 걸치거나 들어온다고 생각되는 공은 모두 때려낸다.
‘킴, 메츠의 4번 타자를 무시하진 마라.’
라이언은 배터 박스에 들어선 뒤 배트를 세웠다.
“배터리가 빠르게 사인을 교환합니다.”
“바로 승부구가 들어갈 겁니다.”
“어떤 공을 예상하시나요?”
“하이 패스트볼이 아닐까요?”
“라이징 패스트볼이라 불리는 그 공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라이언이 숨을 죽인 순간 안쪽으로 공이 날아왔다.
‘같은 코스에 2개?’
망설일 틈이 없었다.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일단 쳐 내야 했다.
배트가 움직였다.
‘제발 맞아라.’
그러나 공은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크게 떨어졌다.
‘스플리터!’
그가 노리고 들어왔던 바로 그 공.
하지만 그의 배트는 스플리터를 쳐 낼 수 없었다.
스윙 궤적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고 말았다.
휙!
주심이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로버트는 라이언의 삼진에 주먹을 꾹 쥐었다.
‘스플리터, 녀석의 주 무기는 오늘도 스플리터다.’
김민의 다음 상대는 5번 엔드류였다.
“엔드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 친구도 좌타자입니다. 메츠에는 좌타자가 유독 많죠.”
엔드류는 라이언이 어떻게 삼진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다.
‘1회 초와 정반대 로케이션을 가져갔다.’
오른쪽 배터 박스가 아닌 왼쪽 배터 박스를 이용하는 피칭.
엔드류는 좌타자였기 때문에 바깥쪽 공을 노렸다.
‘왼쪽 배터 박스를 이용한다면 바깥쪽이다.’
그러나 김민이 던진 초구는 안쪽이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3마일(150km).
“킴, 다시 안쪽을 과감하게 찌릅니다.”
엔드류는 미간을 좁혔다.
‘왼쪽 배터 박스를 쓰는 게 아니야. 그냥 타자의 안쪽을 공략할 뿐이다.’
그는 김민의 패턴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2구는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날아왔다.
한가운데 낮은 코스.
‘뭐야. 이 공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코스가 아니었다.
그대로 존을 통과한다면 그는 코너에 몰렸다.
‘코너에 몰릴 수는 없지.’
배트가 공을 향해 출발했다.
다음 순간 공이 아래로 떨어졌다.
‘스플리터!’
엔드류의 배트는 허겁지겁 공을 추격했다.
탁!
공을 맞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힘 있는 스윙이 아니었다.
팍!
바운드를 일으킨 공이 3루 쪽을 향했다.
“스나이더, 원 바운드로 타구를 처리합니다!”
긴 송구는 바운드 없이 아울의 미트에 들어갔다.
“엔드류 1루에서 아웃입니다!”
로버트는 엔드류의 아웃에 확신을 가졌다.
‘스플리터다. 무조건 스플리터를 노려야 해.’
그는 다음 타자 혼즈에게 다가가 스플리터를 노리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혼즈에게 스플리터는 날아오지 않았다.
김민은 그를 이퓨즈와 커브만으로 잡아냈다.
“아주 느린 공, 그리고 느린 공입니다!”
“느림의 미학인가요? 95마일(153km)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79마일(127km) 커브로 상대를 잡아냅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 명의 타자를 잡아낸 김민.
로버트는 그의 패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스플리터를 아예 던지지 않았다. 왜지? 패턴이 바뀐 건가?’
패턴.
애초에 김민은 패턴을 가지고 있는 투수가 아니었다.
그는 타자에 따라 볼 배합을 다르게 할 뿐이었다.
1회 초 패턴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상대한 세 타자가 비슷한 유형의 타자였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이 로버트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로버트, 우리 수비야.”
로버트가 사고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마스크를 잡았다.
“알겠어.”
그는 장비를 착용한 채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3회 초.
탬파베이 선두 타자는 2루수 칼튼.
로버트는 칼튼은 철저하게 분석했기 때문에 그를 상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딱!
빗맞은 타구가 2루수 정면을 향했다.
“시프트에 걸린 타구. 2루수가 빠르게 처리합니다!”
2루수 땅볼 아웃.
소모된 공은 단 2개에 불과했다.
로버트는 2루수 라이언의 깔끔한 플레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출발이다. 이것으로 상위 타선에 더 많은 유인구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니, 배터 박스로 들어오는 김민이 보였다.
‘킴은 데뷔 이후 줄곧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었던 투수다. 그에게 배터 박스는 익숙한 공간이 아니지. 이번에는 공짜 아웃 카운트다.’
김민이 타석에 들어가기 전 코스타 타격 코치가 그에게 다가왔다.
“킴, 그냥 서 있다가 나와.”
“공을 치지 않아도 좋습니까?”
“점수는 다른 친구들에게 맡기라고.”
“그건 좀 그렇습니다. 상대 투수는 배트를 휘두를 텐데요?”
코스타 타격 코치가 말했다.
“버딩거는 이번 시즌 30타석을 넘게 소화했어. 반면 자네는 몇 타석이나 소화했지?”
경험의 차이.
이것은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었다.
김민이 헬멧을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냥 서 있다가 나오겠습니다.”
“그래, 자네는 그러면 되는 거야.”
배터 박스에 선 김민.
탬파베이 팬들에게는 낯선 장면이었다.
“킴, 그냥 서 있다가 나오는 게 좋겠어.”
“맞아, 배트를 휘두르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곤란하니까.”
버딩거는 로버트와 빠르게 사인을 교환했다. 그리고 지체없이 초구를 던졌다.
슉!
안쪽으로 날아오는 공.
김민은 그 속도에 깜짝 놀랐다.
‘빨라!’
그는 부상을 염려해 몸을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공은 그가 피할 틈도 주지 않고 그의 몸을 강타했다.
퍽!
“윽!”
고통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킴!”
더그아웃의 동료들과 코칭 스텝이 깜짝 놀랐다.
“킴이 공에 맞았습니다!”
“부상을 입었다면 큰일입니다!”
상대 선발 투수를 맞추는 투구.
이것은 메이저리그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 아니었다.
로버트도 예상하지 못한 사구에 미간을 좁혔다.
‘바짝 붙이라고 말한 것뿐인데 그대로 맞춰 버리다니…….’
바이슨 코치가 김민에게 달려와 물었다.
“킴, 괜찮나?”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괜찮습니다. 허벅지에 맞았을 뿐입니다.”
“‘퍽’ 소리가 났어.”
“통증은 느껴지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1루 더그아웃을 쏘아보며 말했다.
“더러운 놈들…… 선발 투수를 맞추다니.”
그는 메츠가 고의적으로 김민을 노렸다고 생각했다.
“고의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킴?”
“고의였다면 조금 더 위를 노렸겠죠.”
김민은 1루를 향해 뛰었다.
‘버딩거의 제구는 때때로 크게 어긋난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는 버딩거에게 사구는 세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1사 1루.
다음 타자는 1번 타자 브라이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