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반지 사냥꾼 03
경기 시작 20분 전.
탬파베이 더그아웃.
1차전을 패했지만, 선수들의 얼굴은 밝았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더그아웃을 훑어보고 스나이더의 어깨를 잡았다.
“다들 표정이 좋군.”
“킴의 선발 경기니까요.”
“무조건 이긴다는 건가?”
“그렇죠. 킴이 나오는 경기를 진다는 건 솔직히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절대적인 믿음. 만약 이 믿음이 깨지면…… 우리 팀은 무너진다.’
이번 시리즈…….
아마도 김민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시즌이라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언젠가는 무너진다.
그것이 투수였다.
‘그때 이 팀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이반 감독과 바이슨 수석 코치는 오늘 경기가 아니라 3차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설리반을 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렉터가 아니라 설리반인가?”
“메츠 타선…… 수비 못지않게 단단합니다. 렉터로는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눈에 띄는 강타자는 없지만, 그렇다고 약점이 있는 타선도 아니지. 하지만 렉터가 마운드에 서지 못할 정도로 강한 팀은 아니야.”
탬파베이가 4선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렉터가 적어도 1경기 정도는 선발을 맡아 줘야 했다.
“감독님, 3차전은 1차전 못지않게 중요한 경기입니다. 그 경기에 렉터를 내보낸다는 것은…….”
“3차전 선발로 렉터를 내보낸다는 말이 아닐세. 난 렉터가 메츠 타선을 상대할 수 없다는 말에 반대하는 것뿐이야. 3차전 선발은 자네와 같아. 설리반을 생각하고 있네.”
“자, 잘 결정하졌습니다.”
이반 감독은 시리즈를 길게 끌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월드시리즈 원정은 단순히 홈과 어웨이가 바뀌는 게 아니야.”
지명타자 제도가 사라지는 내셔널 리그 원정.
탬파베이는 아울과 라이트 두 사람 중 한 명을 벤치로 돌릴 수밖에 없다.
1차전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울이 빠졌고, 오늘은 라이트가 벤치로 물러났다.
“난 홈 3경기를 모두 잡을 생각이네.”
“홈에서 시리즈를 끝낼 생각이시군요.”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네소타처럼 되고 싶진 않아. 그걸 위해서라면 킴의 5차전 투입도 생각하고 있네.”
2차전 선발로 나온 김민의 5차전 투입.
이것은 초강수였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물었다.
“그럼 클락은 건너뛰는 겁니까?”
“5차전에서 끝낼 수 있다면…….”
3, 4차전을 잇달아 승리하면 김민이 나와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이반 감독의 계획이었다.
“곧 경기가 시작합니다.”
구단 스텝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함께 그라운드 안이 바빠졌다.
“홈팀 수비수들이 나오는군요.”
“라인업은 어제와 그대로인가?”
“그렇습니다.”
뉴욕 메츠는 로버트를 중심으로 강하게 뭉쳐 있었다.
시구와 국가 연주가 끝나고 월드시리즈 2차전이 바로 시작되었다.
“플레이볼!”
배터 박스에 들어선 것은 1번 타자 브라이튼.
“브라이튼! 화이팅!”
멀리 뉴욕까지 원정 온 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클락이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렉터에게 말했다.
“브라이튼은 양키스 팬이었지?”
“어렸을 때는 그랬다고 해.”
“그럼 이번 시리즈는 괜찮겠군.”
“그게 무슨…….”
렉터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안타가 나왔다.
“브라이튼! 시작과 동시에 안타입니다!”
“깨끗한 스윙이군요. 버딩거의 패스트볼을 당겨 중견수 앞에 떨어뜨렸습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시작이 좋군.”
그는 오늘 경기 시작 전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녀석들이 무슨 말을 하던 우린 우리의 경기를 한다. 알겠나?
바이슨 수석 코치가 말했다.
“우린 디펜딩 챔피언입니다. 상대의 도발에 흔들릴 레벨이 아니죠.”
클락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어제도 3타수 1안타, 오늘도 시작부터 안타. 메츠를 상대로는 확실히 강해.”
“브라이튼 말인가?”
“브라이튼은 양키스 팬이기 때문에 강한 거야.”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산체스.
로버트는 신중하게 초구 사인을 냈다.
‘산체스는 어떤 공이든 때려낼 수 있는 타자다.’
초구는 볼.
두 번째 공도 볼.
세 번째 공도 볼이었다.
다만 산체스는 이 세 번째 공을 타격해 파울을 만들어 냈다.
“버딩거, 스트라이크를 거의 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1루에 주자가 있기 때문일까요? 바깥쪽으로 제구 되는 공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1루 주자 브라이튼의 빠른 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브라이튼의 리드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배터리는 그의 리드를 좌시할 수 없었다.
‘뛸 수도 있다. 아니, 뛸 것이다.’
로버트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여기서 공을 바깥쪽으로 뺄 수는 없다. 산체스는 공을 빼면서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타자가 아니야.’
카운트 2-1.
여기서 하나를 더 빼면 3-1로 카운트가 나빠졌다.
도루를 허용하는 것과 볼넷을 허용하는 것.
후자 쪽이 당연히 더 나빴다.
로버트는 도루를 허용하더라도 타자와 승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산체스를 잡아내면, 윌리엄인가? 탬파베이 타선도 답이 없군.’
그는 사인을 빠르게 냈다.
“버딩거! 네 번째 투구에 들어갑니다.”
네 번째 공은 안쪽으로 깊이 찌르는 패스트볼.
‘로케이션으로 승부군.’
산체스는 강하게 공을 당겼다.
딱!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1루 베이스 옆에 떨어졌다.
“파울!”
카운트 2-2.
버딩거는 코너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파울, 파울입니다.”
“산체스, 급했던 것일까요?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지는 공을 잡아당겼습니다.”
“파울 타구가 나오는 사이 1루 주자가 뛰었지만, 이 플레이는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산체스는 바닥에 배트를 세우곤 미간을 좁혔다.
‘4개 연속 볼이라고? 로버트,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냐!’
로버트는 산체스의 제스처를 보곤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산체스 포기해, 너 같은 엘리트 타자가 알기에 이쪽은 너무 복잡한 세계야.’
산체스는 배트를 세웠고, 공은 다시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볼, 풀 카운트입니다!”
“이 승부가 길어지는군요.”
“주자는 여전히 1루에 있습니다.”
클락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버딩거로 우리 타선을 막는 건 무리지.”
렉터는 클락과 달리 표정이 밝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렉터, 걱정할 필요 없다고, 녀석은 풀카운트에 몰렸어.”
“풀 카운트는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트가 아니야. 투수에게도 할 만한 카운트라고.”
“그렇긴 하지만, 녀석은 지금까지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지 못하고 있다고.”
렉터가 물었다.
“그래 녀석은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지 못했지. 하지만 다음 공도 그렇게 될까?”
“녀석이 다음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넣기라도 한다는 거야?”
“넣는다면?”
“으음…… 볼넷을 기다렸다가는 지금까지 카운트가 아무 의미가 없게 되겠지.”
“산체스는 그 마지막 공을 놓치지 않으려 할 거야.”
산체스는 조용히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을 노렸다.
‘버딩거는 제구가 흔들려서 볼이 나오는 게 아니야. 녀석의 볼은 분명 의도된 것이다. 아마 내야 땅볼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겠지. 풀카운트, 로버트는 볼넷으로 무사 1, 2루를 만들지는 않을 거야. 다음 공은 무조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다.’
메이저리그 아니, 모든 프로 투수 코치들은 볼넷이 안타보다 나쁘다고 가르쳤다.
- 볼넷은 단순히 주자를 1루 베이스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진 공은 수비수들에게 수비할 기회마저 빼앗아 버린다. 알겠나? 네가 던진 볼은 수비수들의 리듬을 흔들고, 그들의 집중력을 흩어지게 한단 말이다. 네 뒤를 지키는 아군을 약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볼넷이다.
산체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볼넷은 없다.’
슉!
빠른 공이 안쪽으로 날아왔다.
‘안쪽이라고? 2루수 쪽 땅볼로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 내겠다는 뜻인가?’
산체스의 배트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이 아래로 떨어졌다.
‘끝까지 볼이라니…….’
“산체스! 헛스윙 삼진 아웃! 주자는!”
주자는 2루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2루심의 사인은 아웃이었다.
“주자도 2루에서 아웃!”
단 하나의 공으로 아웃 카운트 2개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안쪽에서 떨어진 스플리터.
브라이튼의 발을 생각하면 도루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반 감독이 혀를 찼다.
“믿기지 않는 어깨군.”
로버트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앉은 자세 그대로 2루에 공을 던졌다.
흔히 말하는 앉아 쏴.
바이슨 수석 코치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확한 송구였습니다. 로버트, 소문대로 대단한 포수군요.”
로버트가 던진 공은 브라이튼과 유격수 글러브 사이로 들어왔고, 브라이튼은 자동 테그 되고 말았다.
클락은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여기서 더블 아웃이라니, 믿기지 않는군.”
그는 고개를 렉터에게 돌렸다.
“렉터는 일이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어?”
렉터가 대답했다.
“더블 아웃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어. 내가 예상한 건 마지막 공이 볼이라는 것 정도였어.”
“볼이라고? 아까는 스트라이크를 이야기했잖아.”
“모두가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한 순간 볼을 던지는 게 바로 로버트의 볼 배합이야.”
클락이 미간을 좁혔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
렉터는 버딩거의 피칭이 자신의 양키스전 피칭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 볼 배합…… 킴이 록튼에게 알려 줬던 볼 배합과 유사하다.’
버딩거는 3번 타자 윌리엄에게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맞았지만, 다음 타자 아울을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곤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다.
“버딩거, 안타 2개를 맞았지만, 로버트의 도움으로 위기를 탈출합니다!”
“로버트는 오늘 경기도 대단합니다. 수비형 포수의 완성형이라고 할까요?”
록튼은 장비를 착용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버트, 확실히 대단한 포수다. 하지만 최고의 포수는 아니야.’
그는 김민의 공을 받기 위해 더그아웃을 향했다.
1회 말.
뉴욕 메츠 공격.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킴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가 셰이 스타디움을 방문했군요.”
“오늘 킴의 투구 어떻게 보시는지요?”
“뛰어난 투구가 될 것 같습니다.”
“완봉 가능할까요?”
“완봉이 가능하다고 하면 메츠 팬들이 절 그냥 두지 않겠죠. 다만, 완봉이 가까운 피칭이 나올 것 같습니다. 킴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0점대입니다.”
팡!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나이스 볼.”
록튼은 고개를 끄덕이곤 공을 김민에게 건넸다.
“화이팅!”
“킴! 부탁한다!”
김민의 30번 저지를 입은 원정 팬들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연습 투구가 끝나자 주심이 공격 시작을 알렸다.
“플레이!”
김민은 배터 박스에 선 타자를 확인했다.
‘1번 브론송, 발이 빠른 좌타자. 이 친구…… 전형적이지.’
메츠 팬들은 어제 1차전에 승리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킴이 아무리 대단해도 브론송의 발은 막을 수 없을 거야.”
“브론송은 3루 쪽으로 공을 굴리고 뛰기만 해도 세이프지. 아메리칸 리그에는 이렇게 빠른 타자가 없었을 거야.”
브론송의 발은 확실히 빨랐다.
이번 시즌 도루는 31개.
도루 성공률은 83%.
빠른 발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의 도루 숫자가 30개 전후에 멈추는 건 출루율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반 감독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출루율이 좋지 않은 리드오프라. 요즘 트랜드와는 맞지 않는군.”
빌리 빈의 머니볼 이후 리드오프는 출루율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발이 빨라서 상대 내야에 위협적입니다.”
김민은 초구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좌타자들은 이 공을 쉬이 3루 쪽으로 보낼 수 없었다.
브론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백네트 뒤로 흘렀다.
“파울!”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초구는 안쪽 스트라이크였습니다.”
로버트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선호하는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 공을 넣었다. 이건 볼 배합을 평소와 다르게 가져가겠다는 뜻이군.’
김민은 두 번째 공으로 커브를 선택했다.
팡!
“스트라이크!”
브론송은 볼이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주심은 고개를 흔들었다.
“느리지만 확실히 들어왔어.”
뉴욕 메츠 팬들은 주심이 프레이밍에 당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똑똑히 눈을 뜨고 공을 보라고!”
“여긴 셰어 스타디움이라고! 정신 차려!”
로버트는 록튼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상당히 노련해 1, 2년 연습해서 만든 프레이밍이 아니야. 특히 바깥쪽이나 떨어지는 공을 잡을 때 느낌이 좋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군.’
그는 블로킹과 송구, 투수 리드 모두 최상급이었지만, 프레이밍만은 아직 부족했다.
프레이밍.
이 부분만큼은 록튼이 로버트를 능가했다.
브론송은 배트를 짧게 잡으면서 김민을 노려보았다.
‘저 녀석 바깥쪽으로 공을 던지지 않고 있어.’
바깥쪽 공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내야 안타를 철저하게 봉쇄하겠다는 뜻.
‘난 내야 안타만 있는 게 아니야.’
그는 김민의 안쪽 공을 정조준했다.
슉!
세 번째 공이 안쪽으로 날아왔다.
‘리그 최고의 투수라고 하더니, 이 정도 패스트볼이면 문제없어.’
배트가 패스트볼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공이 브론송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지?’
팡!
사라졌던 공이 포수 미트에서 발견되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은 큰 제스처로 김민의 첫 삼진을 알렸다.
“킴!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이게 킴이죠. 정말 대단한 투수입니다. 방금 스플리터는 타자가 꼼짝 못 하는 공이었습니다.”
대기 타석에 서 있던 더들리는 브론송이 헛스윙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스플리터의 낙차가 포크볼 이상이다. 저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있었을 줄이야.’
그는 브론송과 달리 긴장한 채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더들리입니다.”
“더들리는 착실한 선수죠. 탬파베이의 미스터 기본기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뉴욕 메츠의 유리 감독은 더들리를 2번에 전진 배치해 타선의 무게를 앞쪽에 실었다.
이것은 이반 감독이 산체스를 2번으로 기용하는 것과 같은 논리였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더들리는 이 공에 크게 헛스윙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의 구속은 95마일(153km).
“킴! 빠른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패스트볼임에도 무브먼트가 상당합니다.”
로버트는 김민이 더들리를 상대로 바깥쪽 공을 던지자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 타자에게는 바깥쪽, 왼손 타자에게는 안쪽 공이군. 좋아. 패턴을 읽었어.”
그는 메츠의 클린업이라면 충분히 김민을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관중석 상단에 떨어졌다.
“두 번째 공은 체인지업이었군요.”
“더들리가 엉덩이를 빼면서 컨택했지만, 안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킴, 카운트 0-2로 앞서 나갑니다.”
김민은 승부를 길게 끌지 않았다.
세 번째 공은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
‘하이 패스트볼인가?’
더들리는 배트를 짧게 잡고 휘둘렀지만, 공은 그대로 포수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연속 삼진.
셰이 스타디움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더들리마저 삼진인가?”
“저 공에 왜 배트가 나오는 거야?”
유리 감독은 입 안에 모래가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저 공이 바로 라이징 패스트볼이군.”
“상대한 타자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공이 떠오르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탬파베이 더그아웃은 김민의 연속 삼구삼진에 환호했다.
“역시 킴이지!”
“킴은 무조건 이긴다니까. 문제는 다른 경기야!”
로버트는 더들리가 욕심을 냈기 때문에 삼진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킴의 하이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비중이 다른 투수들보다 높다. 그렇지만, 공략하지 않는 쪽이 낫다.’
김민의 하이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0.041에 불과했다.
다음 타자 터커가 배터 박스에서 물러나는 더들리에게 물었다.
“어땠어?”
“소문대로더군.”
“흠, 소문대로라.”
“하이 패스트볼은 로버트 말대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터커가 고개를 끄덕이곤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다음 타자는 3번 터커입니다.”
그는 과거 김민과 선발 자리를 다퉜던 투수 터커와 먼 친척 관계였다.
‘아메리칸 리그 최고 투수의 투수라. 로버트의 분석이 정확했으면 좋겠군.’
로버트는 터커에게 스플리터를 노리라고 말했다.
- 킴은 적극적인 타자일수록 스플리터 비중이 높아. 터커가 상대라면 초구부터 스플리터를 던질 수도 있어.
‘초구에 스플리터가 들어온다면 나야 고맙지.’
터커가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바깥쪽 빠른 공.
‘무시무시한 빠르기는 아니다.’
터커는 스플리터라고 확신했다.
‘걷어 올린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공은 외야로 나아가지 못하고 유격수 머리 위에 머물렀다.
“유격수 브라이튼이 글러브를 들고 기다립니다!”
“브라이튼은 이런 쉬운 공을 종종 놓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실수가 나오지 않았다.
팡!
브라이튼의 글러브가 1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수확했다.
“킴이 터커를 내야 플라이로 처리합니다.”
“킴, 삼진 행진은 끊겼지만, 터커가 초구를 공략해 준 덕분에 투구수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는 터커가 노린 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스플리터를 노렸지만, 패스트볼이 들어왔군. 킴, 1회는 네가 이겼지만, 우리 공격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마지막 승자는 메츠가 될 거야.”
그는 월드시리즈 2차전이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