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79화 (279/296)

279화 반지 사냥꾼 02

“우린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를 위해 뛰었습니다.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이긴 탬파베이와 킴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월드시리즈, 반드시 우승해라!”

산타나의 시즌 마지막 인터뷰.

미네소타 트윈스는 원정에서 2004 시즌을 마무리했다.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몬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옆자리에 있던 선수가 낮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시몬스, 한숨에 비행기 떨어지겠다.”

“내가 잘했다면…… 아니 킴을 이겨냈다면, 우린 지금 뉴욕으로 가고 있었을 거야.”

행크가 차갑게 말했다.

“그건 착각이야.”

“…….”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어.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간 사이클이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내려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시몬스가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내 부진은 단순히 타격 사이클이 어긋났기 때문이 아니야.”

“알고 있어. 킴이라는 천재를 만났기 때문이지. 하지만 우리 모두 다 부진했잖아. 너 혼자 부진했던 건 아니라고.”

행크는 5번 타자로 나섰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시몬스 못지않게 부진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헐크가 이어폰을 빼면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이, 말싸움하지 말고 다음 시즌에 이기자고.”

시몬스가 그의 말을 받았다.

“그래, 다음 시즌에는 반드시 이겨야지.”

미네소타에는 젊은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의 로스터를 2, 3년은 더 유지할 수 있었다.

피어리는 두 눈을 감은 채 챔피언십 시리즈를 돌아보았다.

‘우린 첫 경기를 잡아내면서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2차전에 패하면서 리드를 내주고 말았다. 다시 리드를 잡은 것은 홈 3연전…… 탬파베이는 이 3연전에서 킴을 아꼈다. 왜일까? 3경기 중 한 경기는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까?’

미네소타 원정 3경기를 모두 패했다면 탬파베이는 1승 4패로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김민 카드를 아꼈다.

홈에서 마지막 반전을 꾀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까?

피어리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폭설이 내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6차전 접전은 나오지 않았을 거야. 체력을 비축한 킴과 3일 쉬고 등판한 레드의 대결이었겠지. 이쪽은…… 킴의 압승인가? 그렇다고 해도 7차전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기였어. 단기전은 가능하면 초반에 많은 승수를 쌓는 게 좋아.’

피어리는 자신이 탬파베이 감독이었다면 김민을 원정 3연전 마지막 경기에 투입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정에서 2게임을 이겼다면 홈에서 1승 1패만 해도 월드시리즈에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탁.

누군가 그의 좌석을 때렸다.

“피어리, 자고 있어?”

“누구?”

“나야.”

피어리가 고개를 돌리니 모르스가 서 있었다.

“모르스가 웬일이야?”

“웬일이긴.”

“평소에는 산타나하고 붙어 다니잖아.”

모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산타나는 오늘 내 투구에 실망했는지 쿨쿨 자고 있더라고.”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탬파베이 타선을 막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나도 곧 잘 건데?”

“벌써?”

“플로리다와 미네소타는 비행시간이 짧아. 카드 게임이라도 벌어지면 눈을 부치기도 전에 착륙하게 될걸?”

“피어리, 카드 게임 대신 내기 하나 할까?”

피어리가 미간을 좁혔다.

“내기라고?”

“월드시리즈 우승 팀 맞추기.”

피어리가 손을 내저었다.

“탬파베이 우승. 더 생각할 것도 없어.”

“왜 그렇게 단정 짓는 거야?”

“우리를 이겼잖아. 우리를 이긴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패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흠, 그런가? 하지만 월드시리즈에는 변수가 많다고.”

피어리 옆에 앉아 있던 카인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변수가 많긴 하지만 탬파베이를 넘긴 힘들걸? 메츠는 어쩌다가 월드시리즈에 올라온 팀이잖아.”

뉴욕 메츠는 최근 몇 년 간 강팀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이번 시즌 메츠가 월드시리즈에 올라온 것은 모든 것이 마치 만화처럼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신인들의 성장, 부상 복귀 베테랑의 폭주, 중견 선수들의 FA로이드, FA로 영입한 에이스의 존재감, 감독의 완벽한 작전 설계…… 이런 게 한 시즌 내내 맞아떨어지는 팀이 몇 팀이나 있겠어?”

“이번 시즌 메츠는 그걸 가능하게 했다고.”

“정규 시즌, 아니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월드시리즈에서는 힘들 거야.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탬파베이니까.”

언론들도 탬파베이의 우세를 점쳤다.

- 탬파베이는 이번 시즌 116승을 거둔 팀입니다.

- 압도적인 에이스 김민이 있는 탬파베이가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 뉴욕 메츠가 긴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그 휴식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뉴욕 메츠의 우세를 점치는 언론은 뉴욕과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맞붙은 LA 지역 언론 정도였다.

- 이번 포스트 시즌 탬파베이는 단 한 번도 쉽게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했습니다. 긴 시리즈는 피로를 남기죠. 지금 탬파베이 상태는 정상이 아닐 겁니다.

- 폭설로 챔피언십 시리즈가 길어진 것도 탬파베이에게는 불리할 겁니다. 상대보다 적은 휴식을 취하고 월드시리즈에 나서게 되었으니까요.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면 2차전이 아니라 1차전에 에이스가 등판했을 겁니다.

이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탬파베이는 짧아진 휴식 덕분에 월드시리즈 1차전에 클락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들 탬파베이의 우세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

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모르스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 친구들 아메리칸 리그에만 있어서 로버트를 모르는 모양이군.”

카인이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로버트를 모르긴 왜 몰라. 탬파베이에 있다가 FA로 떠난 클로저잖아. 그럭저럭 빠른 공을 던지긴 했지만, 그렇게 위협적인 투수는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서 후임자인 볼튼이 더 낫다고.”

모르스가 미간을 좁혔다.

“그 로버트가 아니야. 내가 말한 로버트는 뉴욕 메츠의 주전 포수라고.”

피어리는 메츠의 포수 로버트를 알고 있었다.

“그 친구라면 마이너리그 시절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지. 타격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친구였어.”

모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버트는 전형적인 야전사령관이야.”

“야전사령관이라. 그렇게까지 발전했나?”

“지난 시즌부터 뉴욕 메츠의 수비는 전부 로버트의 손에서 나오고 있어. 다저스를 잡아낸 것도 녀석의 지휘 능력 덕분이야.”

피어리가 미간을 좁혔다.

“그 친구의 시프트가 그렇게 대단한가?”

“시프트만이 아니야. 볼 배합, 경기 운영, 모두 최고 수준에 올라 있어.”

피어리는 같은 포수로서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 로버트가 그런 포수란 말이지.”

“어때? 이제 내기할 마음이 생겼나?”

“그래도 탬파베이.”

“뭐?”

“탬파베이의 홈런은 시프트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모르스가 팔짱을 꼈다.

“탬파베이에게 졌다고 너무 띄우는 거 아니야?”

“우리만 진 게 아니니까.”

피어리는 뉴욕 양키스를 말하고 있었다.

뉴욕 양키스를 이긴 팀이 뉴욕 메츠에게 질 리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는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 * *

월드시리즈 1차전.

탬파베이는 선취점을 내면서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2-0, 탬파베이가 앞서 나갑니다!”

“탬파베이 강합니다! 양키스와 트윈스를 물리친 그 파괴력을 월드시리즈에서 마음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다득점 경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탬파베이의 득점은 여기서 그치고 말았다.

2회부터 5회까지 좋은 타구가 제법 나왔지만, 득점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김민이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노련하군.”

“상대 팀 감독의 운영 말인가?”

클락이 선발이었기 때문에 오늘 그의 옆에는 렉터가 앉아 있었다.

“아니.”

“감독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야?”

“저 금발의 포수.”

뉴욕 메츠의 포수 로버트.

김민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보통 포수가 아니야. 록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쪽이 한 수 위야.’

메츠 내야수들은 로버트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산체스의 타구가 유격수 글러브에 들어갑니다!”

“잘 맞은 타구인데 아깝군요.”

3루 쪽으로 치우친 유격수의 수비.

이것은 좌타자인 산체스를 의식한 시프트였다.

“단순히 시프트만 거는 게 아니야. 타자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고 있어.”

“수 싸움에 능하다는 건가?”

“그 이상이야.”

“그 이상이라면 곤란한데.”

5회 초 탬파베이 공격이 무위로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뉴욕 메츠의 5회 말 공격.

“메츠의 연속 안타입니다!”

“메츠, 무사 1, 2루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무실점으로 메츠 타선을 막아 내던 클락이 무너졌다.

“홈런! 좌측 펜스를 넘기는 3점 홈런입니다!”

“안쪽으로 조금 몰린 공을 잘 받아쳤습니다.”

스코어는 3-2로 역전.

탬파베이가 7회 동점을 만들었지만, 8회 스페이츠가 실점하면서 경기는 4-3으로 끝나고 말았다.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 1차전을 승리로 장식합니다.”

“역시 셰이 스타디움에서 메츠는 강합니다!”

셰이 스타디움에서 메츠의 승률은 탬파베이 정규 시즌 승률과 맞먹을 정도로 좋았다.

이반 감독은 아까운 경기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클락이 괜찮은 모습을 보여 줬는데 기회를 살리지 못했어.”

클락은 좌타자가 많은 뉴욕 메츠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승리 투수가 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메츠 내야진이 예상보다 단단합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코스타 타격 코치의 말에 동의했다.

“메츠는 포수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모인 팀입니다. 전력분석팀의 보고가 정확한 것 같습니다.”

탬파베이 전력분석팀은 뉴욕 메츠의 핵으로 3년 차 포수 로버트를 꼽았다.

이반 감독이 라커룸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그 친구 기록을 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나?”

바이슨 수석 코치가 대답했다.

“중심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 이런 타격으로 팀의 중심이 되었다면 ‘다른 부분이 얼마나 뛰어날까?’였어.”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일 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로버트의 시즌 타율은 0.261, 홈런도 6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뉴욕 메츠의 심장으로 팀을 이끌고 있었다.

* * *

“1차전에서 졌어.”

“원정 1차전, 이기면 좋겠지만, 져도 어쩔 수 없지. 모든 경기를 다 이길 수 없으니까.”

김민과 마주 앉은 선수는 록튼이었다.

“킴, 다전제 1차전은 중요해.”

“중요하지만, 이미 끝난 경기야.”

“이길 수 없었을까?”

록튼이 물음에 김민이 대답했다.

“6회가 분수령이었지.”

“6회? 우리 공격? 아니면 녀석들?”

“우리 쪽이지. 상대는 기회가 없지 않았어?”

록튼은 6회 초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1사에 라이트가 볼넷으로 출루한 것 빼고는 특별할 게 없었는데…… 그 볼넷 하나를 살리지 못해서 우리가 졌단 말인가?’

김민이 록튼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버트의 지휘가 잠깐 어긋난 순간이 있었어. 그게 바로 6회 초 케니히 타석이었어.”

“케니히 타석에서 지휘가 어긋났다고?”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떤 식으로?”

“볼 배합을 미뤄 추측해 보면 로버트는 내야 땅볼을 머릿속에 그렸던 것 같아. 하지만 유격수는 시프트를 따르기보다는 베이스를 선택했어.”

“그건 2루수가 공을 잡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야?”

“아니, 그 전에 베이스에 너무 가깝게 있었어. 로버트의 의도에 따르면 유격수가 공을 잡아 2루에 던지게 되어 있었으니까.”

록튼이 말했다.

“볼 배합을 생각하면 로버트는 바깥쪽 공을 밀게 한 건가?”

“그래, 하지만 공은 2, 3루 사이가 아니라 2루 베이스 쪽으로 향했지.”

“그 타구, 케니히가 잘 쳤어.”

“하지만 안타가 되지 않았지. 그게 빠졌다면 오늘 경기 결과가 달라졌을 지도 몰라.”

록튼이 길게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TV로 돌렸다.

TV 아나운서가 경쾌한 발음으로 스포츠 매거진을 진행했다.

“내일 경기 선발은 킴입니다.”

“반지 사냥꾼 킴이 등판하는군요.”

록튼이 TV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반지 사냥꾼이라는데?”

“누구? 내가?”

“킴이 아니면 누가 있겠어.”

김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겨우 두 번째라고, 사냥꾼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TV에 나온 전문가들은 김민의 시즌 성적과 포스트 시즌 기록을 언급하면서 탬파베이의 절대 우위를 이야기했다.

“내일 경기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탬파베이입니다.”

“하지만 탬파베이가 이긴다고 확언할 수는 없죠. 뉴욕 메츠도 충분히 강한 팀입니다.”

뉴욕 메츠 선발은 버딩거.

버딩거는 이번 시즌 9승 8패 평균자책점 4.41을 기록한 투수였다.

록튼이 버딩거의 시즌 영상을 보며 말했다.

“메츠가 2차전을 버린 것 아니야?”

버딩거는 확실한 선발 투수였지만, 뉴욕 메츠가 내세운 4명의 선발 투수 중 가장 떨어지는 선수였다.

“컨디션이 좋은 쪽을 마운드에 올린 것일 수도 있어.”

“그런가?”

“내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

스포츠 매거진은 마지막으로 승리 팀인 뉴욕 메츠의 인터뷰를 다뤘다.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탬파베이는 우리 팀의 상대가 아닙니다. 아, 그들을 얕보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승리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우리가 그들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다소 도발적인 인터뷰.

인터뷰의 주인공은 메츠의 심장인 로버트였다.

록튼은 로버트의 인터뷰를 보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이…….”

김민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저 인터뷰도 계산에 들어가 있을지 몰라.”

“뭐? 인터뷰가 계산에 들어가 있다고?”

“우리 쪽 타자들을 도발한 뒤에 유인구를 줄줄이 던지게 할지도 모르지.”

록튼이 혀를 찼다.

“킴, 너무 과하게 나간 거 아니야?”

“그럴까?”

“근거가 없잖아.”

“버딩거가 유인구 위주의 투수라면?”

“그게 정말이야?”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버딩거는 유인구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볼넷이 많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자책점을 4.50 이하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

“철저하게 타자의 배트를 끌어내는데 맞춰져 있다는 말인가?”

“로버트는 경기 외적인 부분까지 컨트롤하는 포수라고 알려져 있어.”

같은 시각.

뉴욕 메츠의 심장 로버트는 잠자리에 드는 대신 팀의 중심 타선과 머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로버트,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로버트가 4번 라이언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것도 부족해.”

“벌써 3일째 킴, 킴, 킴이군. 그렇게 대단한 투수인가?”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챔피언십 시리즈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야. 우리가 상대한 투수들과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게…….”

로버트가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절대 아니야.”

“그런가?”

“킴은 우리가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투수야.”

3번 타자 터커가 말했다.

“칠 수 없는 공이라면, 그 라이징 패스트볼을 말하는 건가?”

“그것도 그렇고, 나머지 구질도 모두 위력적이야.”

5번 타자 엔드류가 자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난 스플리터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의 말에 터커도 동의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킴이 던지는 구종 중 포심을 빼면 스플리터의 비중이 가장 높아.”

4번 타자 라이언은 고개를 갸웃했다.

“포심 빼고 가장 높다고? 그럼 그냥 포심을 노리는 게 낫지 않아?”

“아니, 포심은 라이징 패스트볼도 포함되어 있잖아. 그건 못 친다고.”

“스플리터는 칠 수 있고? 영상을 보니, 포크볼처럼 떨어지던데?”

엔드류가 말했다.

“올스타전 때 본즈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

“자이언츠의 본즈에게?”

“그래, 저 스플리터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본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라이언이 되물었다.

“뭐라고 했어?”

“10마일 빠른 포크볼로 생각하고 치라더군.”

“쳇, 그게 공략법인가?”

로버트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플리터라.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아. 킴은 테이블 세터나 하위 타선보다 중심 타선을 상대로 스플리터를 더 많이 던지고 있어.”

“내일은 스플리터를 노리면 되는 말이군.”

라이언이 가볍게 말하자 로버트가 미간을 좁혔다.

“라이언,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곤란해. 언제 스플리터가 날아오는지 연구해야 하니까.”

라이언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이미 로버트가 연구를 끝내 놓은 것 아니었어?”

그는 여기 모인 사람 중 로버트를 가장 믿고 있었다.

로버트가 새로운 자료를 꺼내며 말했다.

“눈치가 빠르군. 이건 킴이 스플리터를 던질 때 카운트 상황이야. 이걸 보면 대충 어떤 상황에서 스플리터가 나오는지 알 수 있어.”

라이언이 자료를 들며 물었다.

“이걸 보면 되는 건가?”

“모두 머릿속에 넣어 두는 게 좋아.”

“이것으로 끝?”

로버트가 목에 힘을 주었다.

“아니, 킴을 무너뜨리면 부르스나 렉터가 마운드에 올라올 거야.”

“그쪽도…….”

“당연히 분석해야지.”

뉴욕 메츠의 미팅은 이후로도 1시간 이상 이어졌다.

로버트는 뉴욕 메츠 타자들에게 타격 코치 이상으로 영향력이 큰 선수였다.

* * *

월드시리즈 2차전.

시작 1시간 전.

팡!

팡!

김민의 공을 받아 주고 있는 포수는 스미스였다.

“나이스 볼.”

스미스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건 불펜 포수인 헨드릭스가 배탈이 났기 때문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

“물론이지. 내가 킴의 공을 한두 번 받아 보는 게 아니잖아.”

셰이 스타디움은 무개성이라고 표현될 만큼 평범했다.

김민은 생각했다.

‘하지만 넓은 외야는 마음에 들어.’

셰이 스타디움의 외야는 트로피카나 필드 이상으로 넓었다.

‘불펜도 펜스 뒤쪽에 잘 만들어져 있고. 투수들에게 괜찮은 구장이야.’

불펜이 외야가 아닌 펜스 뒤쪽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몸을 풀고 있는 투수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덜컥.

블렛소 투수 코치가 불펜 안으로 들어섰다.

“킴, 컨디션은 어때?”

“70%입니다.”

“음,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는 건가?”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타자들에게 퍼펙트게임은 없으니, 분발해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쓴 미소를 지었다.

“오늘 경기도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좋아. 완봉이라고 전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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