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76화 (276/296)

276화 통곡의 벽 04

“브라이튼,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이닝 탬파베이 공격은 브라이튼이 출루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탬파베이를 상대할 때 브라이튼에 가장 집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브라이튼을 출루시키게 되면 산체스와 윌리엄 그리고 아울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들 앞에 주자를 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잘만 감독이 마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브라이튼은 좋은 타자지. 하지만 우타자라서 쓸 수 있는 작전에 한계가 있다.”

브라이튼은 빠른 발을 가졌지만, 우타자였기 때문에 이치로가 자주 보여 주는 내야 안타 비율이 낮았다.

카멜 타격 코치가 말을 받았다.

“그가 좌타자였다면, 간발의 차이로 아웃 되는 타구가 다 내야 안타가 되었겠죠.”

“그렇겠지.”

초구는 낮은 체인지업.

팡!

“브라이튼! 체인지업에 크게 헛스윙합니다.”

“초구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브라이튼은 배트를 짧게 잡으면서 미간을 좁혔다.

‘무슨 체인지업이 저래. 컨디션이 좋다는 건 알겠지만, 너무하는군.’

오늘 경기 산타나의 체인지업은 커브처럼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두 번째 공은 패스트볼.

파앙!

브라이튼은 배트를 짧게 잡았지만, 이번에도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5마일(153km).

구속을 확인한 클락이 말했다.

“평소보다 빨라.”

부르스가 김민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킴은 어떻게 생각해?”

“산타나의 컨디션?”

“아니, 오늘 피칭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일을 낼 것 같은데…….”

부르스는 역대급 투수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킴과 페드로 또는 랜디와 킴처럼 대단한 투수전이 될 것 같다.’

이미 7회.

지금 점수를 준다고 해도 산타나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르스는 산타나가 점수를 내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긁히는 날이야. 이런 날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

김민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길게 가면 우리가 이길 거야.”

“연장전?”

“아니, 8회 또는 9회…… 산타나는 점수를 내주게 될 거야.”

클락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체력 문제인가?”

산타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마운드에 오른 터였다.

김민은 체력 문제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체력 문제가 아니면?”

“너무 강하게 던진다고 할까? 너무 강하면 휘어지는 대신 부러지지. 오늘 산타나의 투구가 그래.”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브라이튼이 삼진으로 돌아섰다.

“산타나!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산타나의 체인지업이 탬파베이 타선을 압도하는군요.”

산타나는 산체스마저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호투를 이어갔다.

“윌리엄마저 잡히면…….”

코스타 타격 코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이 높이 떠올랐다.

“중견수 스펜서가 자리를 잡습니다.”

초구 플라이 아웃.

이반 감독으로서는 절로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가장 믿었던 타순이 공 7개로 끝나는군.”

산타나가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 준 덕분에 김민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그라운드에 올라가야 했다.

“8회 초 미네소타 공격입니다. 선두 타자는 4번 타자 시몬스입니다.”

“시몬스의 표정이 비장하군요. 아마 이번 타석에서 킴을 공략하지 못하면 퍼펙트게임을 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시몬스는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것을 버렸다.

‘킴은 항상 내 생각을 앞지른다. 평범하게 해서는 절대 녀석을 이길 수 없다.’

평범을 넘어선 비범한.

그것은 평범한 자신에게서는 나오지 않는다.

시몬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리기로 했다.

배터 박스에 들어서기 전 피어리를 찾아갔다.

“네가 킴을 리드한다면 초구에 어떤 공을 던질 건가?”

“제가 킴을 말입니까?”

“그래.”

피어리가 대답했다.

“제가 킴을 리드한다면 초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일 겁니다.”

“왜지?”

“오늘 시몬스는 날이 서 있으니까요. 스윙이 나올만한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넣기보다는 하나둘 빼고 넣으면서 간격을 만들 겁니다. 그리고 오프 스피드 피치도 하나 섞겠죠.”

시몬스는 배트를 세웠다.

‘노려야 하는 것은 체인지업이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으로 날아왔다.

‘참자.’

그답지 않은 기다림.

파앙!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 미트에 꽂혔다.

예상대로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성급한 날 유인하는 공이군.’

“볼, 볼입니다!”

“시몬스가 신중하게 나오는군요.”

김민은 시몬스의 배트가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스는 처음부터 초구를 거르기로 한 모양이군.’

패스트볼이 아닌 다른 공을 노렸다면 지금처럼 편안한 표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시 노리는 건 브레이킹볼이나 슬라이더인가?’

시몬스는 좌타자였기 때문에 백도어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가다가 큰 것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쪽은 쉽게 던질 수 없겠군.’

그는 두 번째 공으로 안쪽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시몬스가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면 상당히 위험할 거야.’

리스크 없이는 이득도 없다.

김민은 과감하게 안쪽을 선택했다.

슉!

빠른 공이 안쪽을 향했다.

시몬스는 이 공도 그냥 지나쳤다.

‘내가 노리는 공이 아니다.’

팡!

93마일(150km) 패스트볼.

이번에는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카운트 1-1.

시몬스는 지금부터가 승부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빠른 공 2개. 다음에는 분명 느린 공이다.’

김민은 록튼에게 공을 받은 뒤 모자를 벗었다.

‘패스트볼에 배트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패스트볼은 철저하게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 번째 공에 배트가 나온다면? 아니야. 시몬스는 그렇게까지 머리를 굴리는 친구가 아니다. 그는 패스트볼을 때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노리는 공은 아마도 커브나 체인지업.

피어리는 김민과 시몬스의 싸움을 보면서 입술 끝을 올렸다.

“흥미진진하군.”

시몬스는 이미 김민에게 패스트볼이 아닌 다른 공을 노리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상황에서 김민이 어떤 공을 던질 것인가?

‘킴이 강심장이라면 다시 한번 패스트볼을 던지겠지. 하지만 킴은 그러지 않을 거야. 계산에 밝은 쪽이니까. 다음 공은 아마도 낙차 큰 커브, 그것도 원 바운드에 가까운…….’

브레이킹볼을 노리고 있는 타자에게 원 바운드 공은 치명적이었다.

억지로 맞춘다고 해도 내야 땅볼이 고작.

시몬스가 무리해서 체인지업이나 커브를 공략하려 하면 역으로 당할 가능성이 컸다.

‘노리는 공이 온다고 해서 무조건 배트를 내서는 곤란하다.’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자, 시작이군.’

슉!

빠른 공.

피어리의 판단과는 정반대의 공이었다.

‘빠른 공이라고? 그렇다면 바깥쪽인가?’

원하는 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몬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그는 자세를 바꾸면서 배트를 내밀었다.

‘존에 들어오는 공이다. 그냥 보내진 않는다.’

메이저리그 데뷔와 동시에 팀의 4번 타자를 꿰찬 재능.

시몬스도 야구 천재 중 한 명이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3루 더그아웃 앞에 떨어졌다.

“파울! 파울입니다!”

“시몬스가 백도어 슬라이더를 노렸군요.”

원하는 공이 아니었지만, 투 스트라이크를 그냥 줄 수는 없다.

시몬스는 그렇게 판단했던 것이다.

피어리는 시몬스의 대처를 보고 깨닫는 것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는 기다리던 공이 아니라도 커트 이상의 타격을 할 수 있는 건가? 시몬스가 가능하다면 제레미나 윌리엄도 가능할 거야.’

그는 시몬스와 김민의 대결을 참고로 자신의 볼 배합을 가다듬고자 했다.

“백도어를 쳐 냈지만, 결국 코너에 몰렸군요.”

잘만 감독이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지. 헛스윙과 파울은 같은 스트라이크니까.”

그는 시몬스가 출루하지 못하면 점수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킴의 평균자책점은 0점대다. 믿기지 않는 기록이지만, 이 기록은 인정해야만 한다. 그는 평균적으로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가 가능하다.’

잘만 감독의 시선이 김민에게 향했다.

“킴!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코너를 향하는 빠른 공.

시몬스는 실망했다.

‘체인지업은 끝까지 던지지 않는 건가?’

이번 공은 아마도 스플리터.

시몬스는 어퍼 스윙으로 공을 퍼 올리고자 했다.

‘체인지업은 아니지만, 걷어 올릴 수 있는 공이다.’

그러나 공은 마지막 순간 앞으로 길게 뻗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시몬스는 두 눈을 감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전 타석까지 원했던 바로 그 공이 들어왔군. 녀석은 정말로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건가?’

김민이 승부구로 던진 공은 95마일(153km)의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피어리는 김민의 볼 배합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킴…… 무서운 투수다. 볼 배합에 기준이 없다. 이번 타석, 체인지 오브 페이스도 없고, 빠른 공만으로 시몬스를 잡아냈다. 이런 식으로 던져도 되는 건가?’

그는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배터 박스에 선 행크가 아웃되면 다음 타자는 바로 그였다.

8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

행크는 빠른 공에 포인트를 맞췄다.

‘이번 8회 킴의 볼 배합은 빠른 공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는 대기 타석에서 그냥 서 있었던 것이 아니다.

김민의 구속, 타이밍, 그리고 볼 배합을 유심히 관찰했다.

‘초구는 아마도 스플리터나 커터.’

시몬스에게 던진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행크는 자신에게 같은 공을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킴은 함정을 파는데 일가견이 있는 투수다. 두 타자 연속 같은 볼 배합은 없다.’

그는 김민이 패스트볼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스플리터를 던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윽고 초구가 날아왔다.

바깥쪽 빠른 공.

‘예상대로군. 이건 떨어진다.’

그는 스플리터를 공략하기보다는 그냥 하나 두고 보기로 했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은 그리 힘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역시 스플…….’

다음 순간 주심이 오른손을 들었다.

“스트라이크!”

경쾌한 목소리.

행크는 순간 당황했다.

‘뭐지? 볼이 아니라 스트라이크라고? 포수의 프레이밍(미트질)에 속은 건가?’

행크가 고개를 돌아보자 주심이 한발 앞서 말했다.

“코너에 정확히 들어왔어.”

주심의 빠른 대응에 행크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선을 돌려 전광판을 살폈다.

‘92마일(148km). 설마 구속을 낮춰서 제구를 잡은 건가?’

행크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김민을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몬스에게 던졌던 초구는 유인구가 아니었어. 구속을 너무 높여서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은 것뿐이야. 쳇…… 머리를 너무 쓰고 말았군.’

김민도 사람이다.

행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슉!

두 번째 공도 빨랐다.

‘이번에는 떨어진다.’

행크의 배트가 공을 걷어 올리고자 했다.

하지만 공은 떨어지기보다는 짧게 휘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오릅니다.”

‘커터!’

한순간의 판단이 아웃과 안타를 갈랐다.

행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50% 확률이 빗나갔군.’

“브라이튼이 공을 잡아냅니다. 이것으로 투 아웃입니다.”

“킴! 23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냅니다. 퍼펙트게임까지 이제 아웃카운트 4개가 남았을 뿐입니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모두가 김민의 퍼펙트게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말했다.

“다들 숨죽인 채 경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을 믿었다. 하지만 마음 한곳에서는 조금씩 불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킴이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킴은 아마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하지만 김민도 사람이었다.

조금씩 퍼펙트게임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지면 탈락인 경기에 퍼펙트게임까지 달라붙었군. 여러모로 피곤한 날이야.’

잠시 뒤, 피곤을 더하는 타자가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미네소타의 6번 타자 피어리.

그는 포사다 이상의 타격 재능을 가진 포수였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피어리가 들어섭니다.”

김민은 공을 던지기에 앞서 공의 교체를 요구했다.

“킴, 공을 교체합니다.”

“배트와 충돌하면서 공에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투수가 공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피어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있다.’

그는 김민에 행동이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운 공보다는 한 번 던졌던 공이 브레이킹볼에 유리하다. 그 말은 즉…… 킴의 다음 공은 패스트볼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까지 생각하는 타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피어리는 그 많지 않은 타자 중 한 명이었다.

“킴, 초구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

피어리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카운트를 잡는 공이다.’

그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맞기만 하면……

펜스를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피어리의 배트는 허공을 쳤다.

휙!

‘이게 아니야.’

“스윙 스트라이크!”

주심에 이어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킴, 스플리터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김민이 공의 교체를 요구했던 것은 패스트볼을 던지기 위함이 아니라 까다로운 타자를 앞에 두고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함이었다.

피어리의 깊은 생각은 역효과를 일으켰을 뿐이었다.

“카운트 0-1.”

“킴이 앞서 나가는군요.”

두 번째 공은 떨어지는 커브.

이번 이닝 처음으로 들어온 느린 공이었다.

팡!

피어리는 이 공에 나가던 배트를 간신히 멈췄다.

“2구는 볼입니다. 카운트 1-1입니다.”

“피어리가 이번 공은 잘 골랐습니다.”

김민은 세 번째 공으로 커터를 선택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카운트 1-2.

김민이 다음 공을 준비하려는 순간 피어리가 타임을 걸었다.

“피어리가 타임을 부르는군요.”

“무슨 이유일까요?”

피어리는 대기 타석으로 가서 배트에 왁스를 발랐다.

‘승부에 앞서 한 타이밍 끊는다.’

그는 어떻게든 김민이 정상적인 투구를 하지 못하게 흔들려 했다.

하지만 김민의 네 번째 공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파앙!

미트에 들어온 공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피어리의 배트는 허공을 돈 다음 멈췄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95마일(153km)의 라이징 패스트볼.

피어리는 삼진을 당한 뒤, 배트로 바닥을 쳤다.

‘빌어먹을! 다양한 구종에 완벽한 제구력도 모자라 이런 공까지 던지다니! 이번 승부는 사기야!’

그는 김민이 마치 통곡의 벽처럼 느껴졌다.

“킴! 연속 아웃 카운트의 숫자를 24로 늘리곤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습니다.”

김민은 더그아웃에 들어선 뒤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었다.

“나이스 피칭.”

“킴, 최고였어.”

벤치로 돌아온 김민은 수건을 머리에 썼다.

‘힘들다.’

8이닝밖에 던지지 않았는데 피곤이 두 어깨를 짓눌렀다.

‘평소보다 공을 많이 던졌기 때문인가? 하지만 고교 시절에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공을 던졌어.’

봉황대기 결승전.

김민은 131개의 공을 던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때는 투수가 많고 적고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지.’

8회 말.

산타나가 탬파베이 타선을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왔다.

“탬파베이 4번 아울부터 공격을 시작합니다.”

“산타나도 대단합니다. 안타 하나를 제외하곤 출루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7이닝 1안타나 무실점으로 막아 내고 있습니다.”

“탬파베이, 시리즈를 7차전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오늘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4번 아울은 최선을 다했지만, 3루 땅볼에 그치고 말았다.

5번 타자 라이트의 타구도 깊었지만, 중견수 키를 넘기는 데 실패했다.

“4, 5번이 나란히 물러납니다.”

“두 타자가 조금 더 신중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8회 말 2사.

산타나의 투구수는 이상적이었다.

“케니히가 일을 낼 것 같지는 않고…… 승부는 9회에 갈리는 건가?”

9회 양 팀 타순은 하위 타순이었다.

‘하위 타선 승부라면 이쪽이 더 낫다.’

딱!

강한 소리와 함께 공이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졌다.

“공이 펜스까지 굴러갑니다!”

케니히는 한 때 리드오프를 맡았을 정도로 발이 빠른 타자였다.

‘3루…… 3루까지 갈 수 있다.’

그의 질주에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려!”

“달려라! 케니히!”

케니히의 눈에 3루 베이스가 들어왔다.

‘저곳이다. 저곳이 내 목표지점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촤악…….

‘베이스에 들어왔다.’

글러브 터치는 느껴지지 않았다.

3루타였다.

그런데 관중들의 함성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케니히! 케니히!”

케니히는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폈다.

3루 코치가 자신을 향해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홈으로 뛰라고? 무리야.’

그러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 거지?’

3루수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외야에서 급히 날아온 공이 뒤로 빠진 것이었다.

‘투수 커버는? 공은…….’

커버를 온 투수가 공을 잡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빠진 공은 더그아웃 앞 펜스에 떨어져 있었다.

펜스가 안쪽으로 들어온 구조 때문에 투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저 거리라면 가능하다.’

케니히는 숨을 들이마신 뒤 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케니히가 달립니다!”

“산타나! 홈으로 송구합니다!”

케니히는 홈에서 다시 한번 슬라이딩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산타나가 던진 공은 크게 빠져 1루 더그아웃으로 날아갔다.

“세이프! 탬파베이! 선취점을 뽑습니다!”

0:0 승부의 긴장감이 미네소타 수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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