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통곡의 벽 02
2회 초.
미네소타 공격.
타선은 4, 5, 6번의 호타순.
선두 타자 시몬스는 날이 서 있었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진 않는다.’
2차전에 당했던 굴욕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슉!
초구는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
시몬스는 이 공을 걸러냈다.
“카운트 1-0입니다. 시몬스가 앞서 나갑니다.”
두 번째 공은 바깥쪽에서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는 백도어 슬라이더.
팡!
“스트라이크!”
시몬스는 배트를 내지 못한 채 카운트 하나를 소모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멋진 백도어 슬라이더가 들어왔습니다!”
“두 번째 공은 킴의 승리군요. 시몬트의 배트가 움찔할 정도로 좋은 공입니다!”
카운트 1-1.
세 번째 공은 라이징 패스트볼이 아니라 커브.
시몬스는 이 공도 걸렀다.
“커브가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합니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온 건 록튼의 프레이밍도 한몫을 한 것 같군요. 어쨌든 카운트 1-2로 킴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김민은 록튼에게 공을 받은 다음 로진백을 만졌다.
‘각기 다른 세 구종. 하지만 세 번 모두 배트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리고 있는 건……. 하이 패스트볼인가?’
그는 바로 사인을 냈다.
- 안쪽 하이 패스트볼.
하이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는 타자에게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상대가 노리고 있는 구종을 안쪽으로 꽂아 넣는 건가? 킴은 너무 모험을 즐긴다니까.’
록튼은 투 스트라이크를 이미 잡았기 때문에 유인구만으로도 충분히 시몬스를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 이럴 때는 체인지업이 가장 좋을 텐데…….’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미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민의 손에서 라이징 패스트볼이 뻗어 나왔다.
슈욱!
시몬스의 눈이 순간 커졌다.
‘높은 코스의 빠른 공!’
기다렸던 바로 그 공.
시몬스는 잔뜩 움츠렸던 팔을 폈다.
‘바로 이 공이다!’
앞으로 돌진하는 배트.
배트 코스는 공의 위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공이 배트에 닿았다.
딱!
나쁘지 않은 울림이었다.
록튼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 뻗어나가는 건가?’
그러나 공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1루 쪽에 뜨는 공이라고?’
“1루수가 파울 라인에서 손을 들고 있습니다.”
1루수 파울 플라이.
제대로 맞았다고 할 수 없는 타구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록튼은 물론 시몬스마저 고개를 갸웃했다.
‘제대로 때렸을 텐데.’
김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볼이 되는 공을 무리하게 때렸으니까. 좋은 소리가 났다고 해서 다 좋은 타구가 나오는 건 아니야.’
그가 던진 라이징 패스트볼은 안쪽 스트라이크존을 2개 정도 벗어난 공이었다.
한마디로 누구나 알 수 있는 볼.
그러나 시몬스는 무리하게 그 공을 쳐 냈다.
‘제대로 스윙한 것 같지만 마지막 순간 하체가 무너지면서 스윙 각도가 변했지. 공이 뜬 것도 그 때문이야.’
1루수 아울은 공을 잡은 뒤 그것을 다시 2루수 칼튼에게 던졌다.
“킴! 선두 타자를 1루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합니다.”
“시몬스, 컨텍에 성공했지만,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군요.”
다음 타자는 5번 타자 행크.
잘만 감독은 박수를 치며 타자의 기를 세워주고자 했다.
“할 수 있어! 행크!”
행크는 심호흡을 한 뒤에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이상한 일이군.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풋내기였던 킴이 생각나다니.’
신인 시절 김민의 구위는 지금과 달랐다.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펜스 직격 2루타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루타는커녕 안타도 쉽지 않다.’
신인 당시에도 오프 스피드 피치와 로케이션은 좋았다.
‘신인 시절에 비하면 구종도 늘었고, 무브먼트도 심해졌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행크는 이 공을 노렸다.
‘투수를 공략할 때 가장 가능성 큰 공은 첫 카운트를 노리고 던지는 공이다.’
이것은 메이저리그 타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였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큰 바운드를 일으켰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스플리터였군.’
행크는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하지만 공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팡!
1루수 아울의 미트에 들어온 공.
1루심은 강하게 손을 뻗었다.
“행크! 여유 있게 아웃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성급한 공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몬스처럼 하나 정도 공을 보고 대처해도 좋았을 겁니다.”
미네소타 코칭 스텝은 행크의 땅볼 아웃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배팅 포인트가 너무 앞에 있군.”
“무빙 패스트볼(스플리터, 커터, 투심)이 변하기 전에 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체인지업을 노리는 게 낫지 않겠나?”
“아닙니다. 킴은 이번 이닝 체인지업 계열의 공을 거의 던지지 않고 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방법이 없었단 말이군.”
2회 초 김민이 던진 느린 공은 시몬스에게 던진 커브 하나가 끝이었다.
대기 타석에 선 피어리가 낮게 중얼거렸다.
“1회하고 완전히 다른 볼 배합이라 이건가?”
매 이닝 바뀌는 볼 배합.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구종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2회 초 세 번째 타자는 피어리입니다.”
“좌타석에 들어서는군요. 스위치히터로서 면모를 보여 주려는 것 같습니다.”
김민은 피어리가 방금 상대한 두 명의 강타자보다 더 까다롭게 느껴졌다.
‘피어리는 스위치히터면서 센스가 좋은 친구다. 코너에 공을 넣는 정도로는 잡을 수 없어.’
머리가 좋은 타자는 쉽게 속여 넘길 수 없었다.
김민은 투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승부하라.
그러나 초구 볼 배합은 자신의 말을 잊은 듯 상대의 허를 찌르려고 했다.
‘패스트볼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브레이킹볼을…….’
휙!
초구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커브.
피어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공.
허를 찌르는 것까지는 성공한 김민이었다.
피어리의 눈에 공이 회전하는 것이 보였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커브인가?’
다른 타자였다면 어긋난 타이밍에 헛스윙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피어리는 타이밍이 어긋났음에도 컨택에 성공했다.
탁!
둔탁한 타격음.
그러나 타구의 방향이 좋았다.
“엉덩이를 쭉 빼면서 때린 공이 좌익수 쪽으로 날아갑니다.”
“이건 안타가 되겠는데요?”
안타가 거의 확실해 보이는 타구.
김민은 뒤늦게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피어리의 배트 컨트롤을 생각했어야 했다. 저 친구는 타이밍을 조금 뺏는 정도로는 막을 수가 없어!’
그러나 피어리의 타구는 안타가 되지 못했다.
촤아아악!
케니히가 인조 잔디를 미끄러지면서 공을 걷어 올렸다.
“케니히! 다이빙 케치를 성공시킵니다!”
“멋진 플레이군요! 하지만 다소 위험했습니다. 빠졌다면 2루타 이상이 되었을 테니까요.”
케니히의 이번 수비는 자신이 어떻게 골드글러브를 받았는지를 증명하는 수비였다.
“나이스 케치히!”
“잘했다!”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케니히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공수교대.
먼저 더그아웃에 들어온 동료들이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멋진 수비였어!”
“킴에게 한턱 내라고 말해!”
동료들은 케니히의 이번 수비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성공에는 도전이 필요한 법이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저런 플레이를 만들 수 없지.’
김민은 케니히가 외야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곤 그가 도착하자 주먹을 마주했다.
“케니히! 나이스 캐치.”
“킴,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경기 끝나고 숙소에서 TV로 다시 한번 보겠군.”
“꼭 보라고. 마지막 순간 글러브를 번쩍 들었으니까. 그게 키포인트야.”
레이몬드 수비 코치는 케니히가 근거 없이 위험한 다이빙 케치를 시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케니히는 골드글러브 수비수다. 이는 메이저리그 최상급 수비수라는 뜻이지. 그가 다이빙 캐치를 시도한 이유는 첫째 잡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공이 뒤로 빠진다고 해도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유는 미네소타 타선이 하위 타선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어리까지는 위험한 타자로 분류할 수 있었지만, 7번 브라이언부터는 다소 약한 타선이었다.
‘마운드를 지키는 투수가 킴이니, 하위 타선에게 적시타를 내줄 가능성은 적다. 케니히는 이렇게 판단한 것이다.’
물론 안타로 처리한 뒤 하위 타선을 상대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3회 초 1번 타자 번즈가 배터 박스에 들어서게 되었다.
상위 타선을 배터 박스에 들어서게 하는 것보다는 하위 타선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는 것이 훨씬 깔끔했다.
케니히는 짧은 시간에 타순의 변화까지 생각하면서 몸을 날린 것이었다.
레이몬드 코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케니히의 수비는 너무 저평가 되어 있어. 지금보다 연봉이 200만 달러는 더 높아야 한단 말이지.”
그러나 좌익수의 높은 수비 공헌도에 추가 연봉을 지불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은 많지 않았다.
2회 말.
탬파베이 공격.
산타나는 1회 말을 삼자범퇴로 막아 냈다. 그 덕분에 이번 이닝 탬파베이 타선은 4번부터 시작하는 호타순이었다.
“탬파베이, 2회 말 타선이 좋습니다!”
“무사에 미스터 기본기가 나오는군요.”
“미스터 기본기라? 이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별명인데요?”
“다른 리그에서 가져왔습니다. 그쪽에 아울과 비슷한 선수가 있거든요.”
그 비슷한 선수는 아울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졌지만, 리그 MVP에 도전할 정도로 빼어난 기량을 좌우했다.
상대가 미스터 기본기임에도 불구하고 산타나는 자신 있게 공을 뿌렸다.
‘오늘 내 공은 최고다!’
파앙!
코너를 찌르는 96마일(154km)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아울은 산타나의 공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구속만 뛰어난 게 아니야. 제구도 완벽하다. 이런 공은 커트도 쉽지 않아.’
탁!
두 번째 공은 파울.
세 번째 공은 배트를 살짝 스치곤 그대로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파울 팁 삼진.
아울은 전광판을 확인한 뒤 고개를 갸웃했다.
‘산타나가 97마일(156km)이라고? 스피드건이 고장 난 모양이군.’
좌완 투수의 97마일은 우완 투수의 100마일(161km)과 비슷한 느낌으로 미트에 꽂혔다.
그 때문이었을까?
5번 타자 라이트도 산타나의 공에 버거움을 느꼈다.
‘빠르다! 1회와는 로케이션이 달라. 이거면 랜디하고 비벼 볼 수 있겠는데?’
그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상대했던 랜디 존슨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블렛소 투수 코치는 산타나의 투구에 불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1회는 예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2회부터 본격적으로 던진다는 말이군.”
산타나는 2회 말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산타나!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산타나가 탬파베이 타선을 압도하는군요. 멋진 피칭입니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산타나의 호투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3회, 양 팀은 모두 하위 타선이 나섰다.
김민과 산나타 두 선수는 하위 타선을 상대로 일방적인 피칭을 펼쳤다.
“경기 초반은 완벽하군요.”
“양 팀 모두 주자가 나가지 못했어.”
“타격 코치들의 고민이 클 것 같습니다.”
“우리 팀은 뭐 잘 되었지만 말이야.”
악천후가 몰고 온 3일 휴식.
이것은 챔피언십 시리즈 일정을 늦췄지만, 월드시리즈 일정까지 늦추진 못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승리하는 팀은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뉴욕 메츠와 월드시리즈를 가져야 했다.
“킴과 산타나 두 사람 모두 1차전에는 나오지 못할 거야.”
그라운드를 주시하고 있는 이는 뉴욕 메츠의 전력분석팀장 허드슨이었다.
허드슨은 LA 다저스의 몬도와 교체하듯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았다.
그의 소속 팀 뉴욕 메츠는 마지막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LA 다저스를 꺾고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월드시리즈 반지뿐이었다.
“미네소타가 올라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투수 로테이션 때문에?”
“그렇습니다. 탬파베이는 킴이 1차전에 나오지 못한다고 해도 설리반이나 렉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아마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등판할 겁니다.”
렉터는 미네소타를 상대로 고전했지만, 양키스와 1차전에서 호투한 바 있었다.
뉴욕 메츠 전력분석팀은 그에게 B등급을 부여했다.
B등급이란 포스트 시즌에서 언제든 퀄리티 스타트를 보여 줄 수 있는 선수를 말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산체스가 그 자리에 멈췄습니다!”
1번 타자 번즈는 중견수 플라이 아웃.
“4회 초 공격도 시작이 좋지 않군. 미네소타는 힘들겠군.”
“킴을 상대로 점수를 뽑긴 힘들 겁니다. 차라리 전 산타나를 내일 경기에 투입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허드슨은 팀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월드시리즈 반지를 생각한다면 그게 더 나을 수 있지.”
김민은 레드로 맞서 보고 안 되면 7차전에 산타나.
탬파베이 선발 투수는 클락 또는 설리반이었기 때문에 분명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잘만 감독은 이쪽을 택하지 않은 걸까?’
잘만 감독이 산타나를 김민과 매치업시킨 이유, 그것은 바로 산타나를 믿기 때문이었다.
“킴은 분명 대단한 선수다. 하지만 절대적인 선수는 아니다. 언젠가는 그도 점수를 주게 되어 있다.”
7차전까지 가기보다는 6차전에서 끝내고 싶다.
이것이 잘만 감독의 생각이었다.
7차전까지 길게 보고 로테이션을 정한 이반 감독과는 정반대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번 타자 카인의 삼진에 트로피카나 필드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었다.
“K! K! K!”
2사 주자 없는 상황.
3번 타자 헐크의 스윙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큰 헛스윙에 캐스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헐크! 공과 배트가 완전히 따로 움직입니다!”
“킴의 체인지업에 타이밍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는 공을 하나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김민은 공을 낭비하는 투수가 아니었다.
그를 상대로 기다린다는 것은 알아서 코너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탁!
이번에는 배트에 공이 닿았다.
“파울!”
3루 쪽 관중석으로 넘어가는 파울.
“헐크 힘내라!”
원정 팬의 한마디.
헐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힘은 이미 충분해. 문제는…… 녀석의 볼 배합이다.’
그는 상대의 궤적을 읽는 게스 히팅보다 그때그때 공을 보고 판단하는 타입이었다.
혹자는 김민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런 타입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게스 히팅 쪽보다 더 좋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보고 대처하기에는 공이 너무 다양했다.
‘구종이 2, 3개인 친구는 구속…… 그러니까 느낌으로 구종을 판단할 수 있지만, 킴은 전혀 아니야. 같은 구속으로 날아오는 공이 각각 구종이 다르다고.’
스플리터라고 생각하면 커터.
커터라고 생각하면 고속 슬라이더였다.
‘이번에는 어떤 공이냐?’
배트를 세우자 세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빨랐다.
‘브레이킹볼은 아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어떤 공인지 알 수 없었다.
김민이 던지는 빠른 공은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스플리터, 고속 슬라이더, 커터 등 다섯 가지에 달했다.
‘스플리터!’
헐크는 눈을 크게 뜨고 어퍼 스윙으로 공을 걷어 올렸다.
하지만 김민이 던진 공은 커터였다.
“우익수 방향으로 높이 뜨는 공!”
윌리엄은 미리 좌표를 정해 둔 사람처럼 두 손을 벌리고 서 있었다.
“윌리엄이 공을 잡아냅니다!”
12명의 타자가 나와 12개의 아웃 카운트를 적립했다.
잘만 감독이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퍼펙트군.”
“산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산타나는 3회 말까지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4회 말.
산타나도 김민과 마찬가지로 1, 2, 3번과 마주했다.
하지만 탬파베이 1, 2, 3번은 미네소타 1, 2, 3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끈질긴 브라이튼.
그는 파울 타구를 4개나 때린 뒤 기습 번트를 시도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기습 번트! 일단 공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산타나가 직접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팡!
산타나의 송구는 브라이튼의 발보다 반 박자 더 빨랐다.
“1루에서 아웃! 브라이튼, 아웃입니다!”
“브라이튼, 끝까지 산타나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1루에서 그의 손에 아웃되고 마는군요.”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산체스.
브라이튼의 끈질긴 공략에 도움을 받은 것일까?
그는 산타나의 퍼펙트를 깨는 안타를 때려냈다.
“탬파베이! 첫 안타를 때려냅니다.”
“산체스가 1, 2루 사이를 깔끔하게 갈랐습니다. 정말 훌륭한 타자입니다.”
산타나는 안타를 맞은 뒤 모자를 고쳐 썼다.
‘완벽하게 제구된 공을 미트에서 깨어냈다. 산체스, 저 녀석은 괴물이야.’
성장하는 괴물.
산체스의 강함은 산타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다음 타자다.’
3번 타자 윌리엄.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탬파베이 타선의 중심이었다.
‘여기서 맞으면 게임의 분위기가 바뀐다.’
산타나는 신중했다.
“3번 타자 윌리엄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산타나는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선택할 겁니다.”
윌리엄도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녀석의 컨디션은 최고다. 날 피할 리가 없다. 초구는 아마도 바깥쪽 패스트볼이나 안쪽으로 깊이 찌르는 패스트볼. 난 그것을 놓치면 안 된다.’
그는 배트를 바짝 세웠다.
그러나 산타나의 초구는 윌리엄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써클 체인지업이라니…….’
툭.
배트 끝에 걸친 공이 유격수 사일론에게 향했다.
“사일론! 공을 잡아 2루에 토스! 그리고 다시 공은 1루로 향합니다!”
6-4-3의 병살타.
이반 감독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듯 물병을 들었다.
“산체스와 윌리엄이 공 하나로 끝나는군.”
바이슨 수석 코치가 위로하듯 말했다.
“다음 이닝에 기대를 걸어 봐야할 것 같습니다.”
12명의 타자를 상대로 12개의 아웃 카운트.
안타를 하나 맞았지만, 산타나도 김민과 같았다.
그는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