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타이밍을 지배하는 자 03
7번 공격에서 3점.
상대가 상대인 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문제는 레드다.’
레드가 탬파베이 타선을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5이닝 또는 6이닝.
아니, 그 이상을 막아 줘야 오늘 경기는 승산이 있었다.
‘레드, 자네가 그토록 원하던 포스트 시즌이 아닌가?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 주게.’
2회 말.
탬파베이 공격.
레드는 하위 타선을 상대로 잘만 감독이 원하는 바로 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삼진을 끌어 냈고, 코너를 찌르는 패스트볼이 땅볼을 만들어 냈다.
“1루에 송구! 그대로 아웃입니다!”
잘만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수를 쳤다.
“훌륭한 피칭이군.”
그는 레드가 이대로 버텨 주면 2차전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3회 초.
미네소타 공격.
김민은 하위 타선을 상대로 연속 안타를 내주고 말았다.
“킴! 제구력 난조에 빠지기라도 한 것일까요? 연속 안타입니다.”
8, 9번의 연속 안타.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거 무사 1, 2루입니다. 미네소타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김민은 로진백을 만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하위 타선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에서 하나 정도 빠진 공.
보통이라면 땅볼 또는 플라이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공이 전부 시프트를 갈랐다.
‘타자들의 집중력이 좋아진 걸까? 아니면 내 제구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유가 어느 쪽이든 1회 초와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 되고 있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두 주자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킴이 연속 안타를 맞다니, 이상합니다. 혹시 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다음 타순이 1, 2, 3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8, 9번에게 맞은 연속 안타는 치명적이었다.
이반 감독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몸에 문제가 생겼다면 우리에게 먼저 알렸겠지. 그리고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네. 킴은 삼진 능력이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아졌어.”
김민은 이번 시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투수, 그의 삼진 능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이 삼진으로 아웃 카운트를 늘린 뒤 중심 타선과 승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김민의 선택은 삼진이 아니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2루수 칼튼에게 향했다.
“칼튼! 빠르게 잡아서 2루에 토스, 브라이튼이 다시 1루로!”
4-6-3의 병살타.
이반 감독은 김민의 선택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허! 맞춰 잡는 투구로 연속 안타를 내줬음에도 다시 맞춰 잡기인가? 대단한 강심장이군.’
미네소타 팬들은 1번 타자 카인의 병살타에 혀를 찼다.
“아! 이 좋은 기회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나!”
“차라리 번트를 댔어야지!”
“카인, 이번 시리즈에서 패하면 다 너 때문이야!”
이반 감독은 잘만 감독이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번트를 댔으면 어땠을까?”
번트를 대고 1사 2, 3루 상황에 2, 3번으로 공격.
미네소타 입장에서는 이쪽이 더 나았다.
“1점을 뽑는다고 생각하면 그쪽이 더 좋았을 겁니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잘만이 대량득점을 원했다는 것인가?”
“하위 타선에서 연속 안타를 때렸으니, 욕심이 났을 겁니다. 상위 타선…… 그리고 클린업까지 연결 되었다면 빅이닝이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요.”
한 번의 공격으로 동점 또는 역전.
이것이 잘만 감독이 바란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나은 결과는 더블 플레이였다.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2사 3루입니다!”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이번 공은 안쪽 스플리터였습니다. 사실 이런 공은 치지 않는 게 더 좋을 때가 많죠.”
안쪽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나 투심 패스트볼이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모르는 야구 선수는 없었다.
문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이 스플리터나 투심이라는 사실을 알 게 되는 시점이었다.
2루에서 아웃된 사일론이 병살타를 친 카인에게 물었다.
“카인, 뭘 친 거야?”
카인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스플리터.”
“투심이 아니고?”
“스플리터였어. 배트를 이렇게 내리면서 밀었는데 2루수 정면으로 가더라고.”
그가 스플리터를 알아챈 시점은 타격 직전.
이래서는 배트를 멈출 수 없었다.
김민은 더블 플레이를 성공시킨 뒤 3루 주자를 체크했다.
‘리드가 깊은 것 같지만,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있어. 홈스틸 같은 건 없다는 뜻이지.’
스코어 3-0.
홈스틸로 한 점을 뽑는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경기가 아니었다.
‘앞서도 그랬지만, 잘만 감독은 주자를 여럿 두고 공격을 진행하고 싶었을 거야.’
상대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그에 따라 볼 배합을 가져간다.
이것은 김민의 볼 배합 특징 중 하나였다.
“다음 타자는 2번 번즈입니다.”
앞서 삼구삼진을 당했던 번즈.
이번 공격에는 배트를 조금 더 짧게 쥐었다.
‘공이 변하기 전에 때려낸다.’
그는 커브와 슬라이더 같은 브레이킹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하지만 김민의 선택은 무빙 패스트볼이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내야에 떠올랐다.
“2루수 칼튼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립니다!”
“또 칼튼인가요?”
칼튼이 침착하게 공을 잡아내자 김민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좋은 캐치였어.”
무사 1, 2루의 찬스가 득점 없이 끝나 버렸다.
산타나는 미네소타가 오늘 경기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킴이다. 방심인지 우연인지 몰라도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게 분명해.’
위기 뒤, 기회라고 했던가?
탬파베이는 3회 초 위기를 넘기고 3회 말 1사 1, 2루의 기회를 잡았다.
“윌리엄이 볼넷을 골라 출루합니다.”
“레드, 윌리엄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요? 마지막 공이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윌리엄을 잡았다면 2사 1루.
하지만 그를 잡지 못해 상황은 1사 1, 2루로 바뀌었다.
노리 투수 코치가 잘만 감독에게 물었다.
“제가 마운드에 올라갈까요?”
그는 레드가 마운드에서 심한 압박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드는 에이스야.”
에이스를 믿고 경기를 맡긴다.
보통 때라면 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잘만 감독은 생각했다.
‘상대는 아울, 레드가 무조건 진다고 할 수는 없는 타자다. 그리고 여기서 더블 플레이가 나온다면, 킴이 그랬던 것처럼 무실점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
레드를 상대로 한 아울의 타율은 0.253, 아울의 시즌 타율을 생각하면 기대를 걸어 볼 만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레드는 아울을 상대로 6구까지 가는 긴 승부를 펼쳤다.
“높이 뜨는 타구! 긴 승부의 결과는 우익수 플라이입니다!”
잘만 감독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탬파베이는 강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기지 못할 팀은 아니다.’
미네소타는 서부지구 1위 텍사스를 꺾고 올라온 강팀이었다.
잘만 감독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이제 2사 1, 2루입니다!”
“라이트를 잡아낸다면 실점 없이 이닝을 끝낼 수 있겠군요.”
리드를 1점이라도 벌리는 것과 그대로 유지 되는 것.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컸다.
“라이트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레드는 라이트를 이미 삼진으로 잡아낸 바 있었다.
‘이번에도 잡아낸다.’
상대는 이번 시즌 데뷔한 루키.
레드는 루키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패스트볼로 유인하고 브레이킹볼로 카운트를 잡는다.’
팡!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난 패스트볼에 배트가 끌려 나왔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3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파울!”
레드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패스트볼에 자동으로 배트가 나오는군.’
두 번째 공은 슬라이더.
라이트는 타이밍이 맞지 않는 듯 크게 헛스윙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레드는 라이트가 노리는 게 패스트볼이라고 확신했다.
‘트리플A에서 오래 있었다고는 하지만, 루키는 루키군. 슬라이더에 저렇게 큰 스윙이 나오다니.’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타자들이 마이너리그와 다른 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투수들의 브레이킹볼과 무빙 패스트볼이 마이너리그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신인들이 포심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머지 공은 자신이 없으니, 포심 패스트볼을 공략할 수밖에 없다.
레드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 번째 공.
레드의 손을 떠난 공이 큰 호를 그리면서 피어리의 미트를 향했다.
패스트볼과 거리가 먼 공.
‘이걸 칠 수 있다면 신인이 아니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커브.
레드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라이트의 배트가 움직였다.
따악!
강한 타격음.
이것은 정확한 배팅이 이뤄졌다는 뜻이었다.
‘완벽한 타이밍에서 맞았다.’
피어리는 눈으로 타구를 쫓았다.
‘크다.’
중계진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펜스까지 굴러가는 공! 2루 주자 홈인! 1루 주자도 여유 있게 홈에 들어옵니다!”
라이트는 안전하게 2루까지.
완벽한 패배.
레드는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커브를 노렸다고? 그렇다면 처음 나왔던 그 스윙은 뭐지?’
라이트의 첫 스윙은 페이크가 아니었다.
배터 박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는 카운트를 잡으려고 던진 패스트볼을 노렸다.
하지만 슬라이더에 헛스윙한 뒤, 생각을 바꿨다.
패스트볼보다는 브레이킹볼.
그는 타이밍을 뒤쪽에 두고 커브나 슬라이더를 기다렸다.
김민은 창백한 표정의 레드를 보며 생각했다.
‘레드, 타자의 타이밍은 하나가 아니야.’
상황에 따라 패스트볼과 브레이킹볼을 골라 칠 수 있는 것이 뛰어난 타자의 조건 중 하나였다.
라이트는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타자였다.
잘만 감독이 노리 투수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리, 불펜을 가동하게.”
“준비는 누굴…….”
“졸라.”
졸라는 팀의 4번째 불펜 투수였다.
4번째 불펜 투수가 등판한다는 것은 오늘 경기를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전광판은 3회 말 탬파베이 공격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산타나는 나쁜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운드를 지키는 투수가 킴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투수를 아끼는 쪽이 낫다.’
노리 투수 코치가 바로 움직이지 않자 잘만 감독이 말을 덧붙였다.
“노리, 졸라가 몸을 푼다고 무조건 그가 올라간다는 것은 아니야. 이번 이닝을 잘 막고 4회 초에 따라가는 점수가 나온다면 다른 투수를 올릴 수도 있어. 그리고 원정이 아닌가? 너무 타이트하게 할 필요는 없어.”
오늘 경기에 패해도 1승 1패.
미네소타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결과였다.
“알겠습니다.”
레드의 피칭은 딱 3회 말까지였다.
미네소타에게 다행인 것은 레드가 더 이상 실점하지 않고 후속 타자를 막아 냈다는 사실이었다.
4회 초.
미네소타 공격.
“4회 초, 미네소타 타선이 나쁘지 않습니다.”
“3번 헐크부터 시작하는 타선은 나쁜 게 아니라 최고입니다.”
3, 4, 5번.
게다가 4번 타자 시몬스는 김민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번 공격에서 2점 정도는 따라갔으면 좋겠는데…….”
잘만 감독은 팀의 4번째 중계를 준비시키면서도 승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크게 헛스윙.
카멜 타격 코치가 이마를 찌푸렸다.
“헐크가 타이밍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잘만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게 아니야. 어떤 공이 들어올지 예측을 못 하는 것이지.”
헐크는 김민을 상대로 게스 히팅에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김민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구종을 가진 선발 투수였다.
그를 상대로 한 게스 히팅이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헐크는 게스 히팅을 고수했다.
‘녀석은 연속 안타에도 무너지지 않았어. 잽으로는 녀석을 무너뜨릴 수 없어. 녀석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바로 큰 거 한 방이야.’
게스 히팅은 그것이 완벽하게 이뤄졌을 경우 대형 타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헐크가 노리는 것은 바로 홈런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다시 한번 헛스윙.
바이슨 수석 코치가 감탄하듯 말했다.
“킴의 완급조절이 대단하군요.”
“오늘은 오프 스피드 피치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군.”
김민의 승부구는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헐크는 다시 한번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시몬스는 헐크의 삼진 장면을 보고 혀를 찼다.
“너무 뻔하잖아.”
그는 헐크가 초구에 생각을 읽혔다고 생각했다.
‘클로즈 스탠스를 취한 채 길게 잡은 배트를 끝까지 휘둘렀다. 이건 패스트볼을 노린다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자신의 타격을 믿는 것도 좋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좋은 결과를 나을 수 없었다.
시몬스는 김민을 상대로 승리하려면 충분한 대비와 약간의 기만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승부로 알았어. 녀석을 정면에서 깨뜨리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그는 배트를 짧게 잡은 뒤 배터 박스 뒤쪽에 섰다.
록튼은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자세만 보면 커브나 슬라이더를 노리는 건데…… 시몬스가 이렇게 정직한 타자였나?’
그는 시몬스와 비슷한 유형의 타자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제레미나 호세인가? 시몬스는 호세보다는 제레미에 가깝지. 제레미는 기만책보다는 정면으로 승부하는 타자였는데…… 그렇다면 정말로 커브를 노리고 있는 건가?’
김민도 시몬스의 타격 자세를 확인했다.
‘커브를 노리는 자세라. 이건 페이크군.’
그가 페이크라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였다.
‘오늘 난 커브와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지 않았다.’
투수가 많이 던지지 않는 공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메이저리그 타자는 없었다.
‘원하는 공은 아마도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이겠지.’
에이로드가 그토록 원했던 카운트볼.
일본이나 국내 프로야구를 경험한 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투수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구된 공이 맞아 나간다는 것이었다.
국내, 아니 일본 프로야구에서 바깥쪽 코너를 찌르는 90마일(145km) 패스트볼을 쳐 낼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바깥쪽 코너에 90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정확하게 넣을 수 있다면, 1억엔(10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달랐다.
코너로 제구된 90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이 펜스를 넘어갔다.
김민도 같은 경험을 했다.
‘시몬스는 잘 제구된 공도 펜스 밖으로 넘겨 버릴 수 있는 파워를 가진 타자다.’
약물이든 재능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시몬스에게 펜스를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휙!
초구는 큰 호를 그리는 이퓨즈.
시몬스는 이 공에 멈칫했다.
‘쳐야 하나?’
그의 스탠스와 타격 자세는 이퓨즈를 치기 딱 좋았다.
하지만 시몬스는 이퓨즈를 공략하는 데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공략해서 안타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1사 1루일 뿐이었다.
‘이건 거른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스트라이크!”
카운트 0-1.
“킴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이상하군요. 시몬스의 자세를 보면 커브나 슬라이더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한데 왜 이퓨즈를 그냥 보냈을까요?”
“너무 느리기 때문일까요?”
산타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으니, 이퓨즈를 칠 수 있을 리가 있나.”
모르스는 그렇게 힐난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시몬스의 도전이 괜찮다고 생각해. 헐크처럼 다 보이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는 편이 나아.”
“시몬스도 다 보이니까 문제지. 저 스탠스라면 나도 알겠어. 커브를 노리는 척 하면서 패스트볼을 노리는 거잖아.”
산타나는 기만책을 사용하려면 더 매끄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공은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시몬스는 이 공에 배트가 나왔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3루 라인을 벗어납니다!”
“파울이군요. 이것으로 시몬스가 코너에 몰립니다.”
스플리터에 배트가 나왔다는 것은 빠른 공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김민은 시몬스의 타구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역시 그랬군.’
커브를 노리는 척 했지만 실제로 노리는 공은 패스트볼.
김민은 시몬스에게 커브를 던져 주기로 했다.
‘이걸 보면 참을 수 없게 될 거야.’
손을 떠난 공이 아름다운 호를 그렸다.
시몬스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에 마른침을 삼켰다.
‘커브다.’
노리는 척했던 바로 그 공.
‘쳐야 하나? 아니 칠 수밖에 없다.’
시몬스의 배트가 움직였다.
‘제발 외야로!’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올랐다.
‘아아…….’
“시몬스! 떨어지는 커브를 받아쳤지만, 내야에 높이 뜹니다!”
“이건 떨어지는 볼이었군요. 시몬스, 원하는 공이 왔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에서 다소 빠져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치지 않았을 것이다.
시몬스의 배트가 움직인 것은 김민이 자신의 기만책을 간파하고 한가운데로 커브를 넣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카운트에 여유가 있었다면 배트를 내지 않고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시몬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시몬스에게 모르스가 손을 내밀었다.
“시몬스 나쁘지 않았어.”
선발 투수와 하이파이브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쁘지 않았다니?”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시도였다고.”
“보였나?”
모르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조금 보이긴 했지.”
시몬스는 자신이 왜 삼진을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랬군. 모르스 정도 되는 투수도 알 수 있는 것을 킴이 몰랐을 리가 없지. 내 페이크가 너무 쉬웠어.’
그는 자신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틀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어설픈 페이크다.’
시몬스는 다음 타석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