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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267화 (267/296)

267화 레전드 매치 04

딱!

경쾌한 소리에 이반 감독과 블렛소 투수 코치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쏠렸다.

탁……

공이 떨어진 지점은 우측 펜스 중 가장 깊은 곳.

“저곳이라면 3루도 가능하겠는데?”

탬파베이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는 외야가 넓었다.

가장 깊숙한 곳으로 공이 굴러갈 경우 3루타도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타자가 발이 느린 라이트라는 사실이었다.

“라이트 달립니다!”

라이트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지만, 주루 코치가 그를 세웠다.

‘깊은 타구라고 해도 3루는 무리야.’

양키스의 중견수는 머레이.

송구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얕볼 수 있을 정도로 어깨가 약한 선수도 아니었다.

‘머레이는 우리 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알아. 소녀 어깨는 절대 아니야.’

라이트는 2루에서 멈췄고, 맥코비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십년감수했군.”

중계진은 9회 말 나온 극적인 2루타에 목소리를 높였다.

“9회 말 1사에서 라이트의 2루타입니다!”

“야구 정말 재미있습니다. 9회 말에 랜디를 상대로 2루타를 때려내는군요. 탬파베이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들어갑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잘 때렸군요. 랜디의 공을 이렇게까지 잘 칠 수 있는 선수는 드물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번 2루타는 라이트를 열 번 칭찬해도 아깝지 않은 안타입니다.”

라이트는 그냥 2루타를 뽑아낸 것이 아니었다.

‘슬라이더 하나만 보고 들어간 게 효과를 발휘했어.’

그는 100마일(161km)에 육박하는 패스트볼보다는 무브먼트가 있지만, 조금 더 느린 슬라이더를 노렸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이나 헛스윙이 나왔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삼진 머신이라 불리는 랜디잖아. 상대가 랜디라면 삼진을 당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삼진을 각오한 스윙.

그것이 지금의 2루타를 만들어 냈다.

“다음 타자는 6번 케니히입니다.”

케니히는 선구안, 주력, 장타력을 모두 고루 갖춘 선수였다.

그러나 랜디 존슨은 케니히를 어려운 타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능력이 있으면 좋지만…… 그것을 다 갖추고도 올스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다 어중간하다는 뜻이다.’

선구안에서는 윌리엄이나 아울에 미치지 못하고, 파워에서는 산체스나 라이트보다 떨어졌다.

주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칼튼과 브라이튼에 비하면 다소 손색이 있었다.

어느 곳에 들어가도 어울리지만 어느 곳에서도 빛을 발하기 힘든 타자가 바로 케니히였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물었다.

“케니히가 할 수 있을까요?”

“글쎄.”

감독의 대답조차 어중간했다.

힘들다고 말하기에는 케니히가 보여 준 것이 많았고, 칠 수 있다고 대답하기에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해 준 적이 없었다.

해설자가 케니히를 바라보며 말했다.

“많은 분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캐스터의 물음에 해설자가 말을 빨리했다.

“케니히가 고교 시절 전미 유망주 랭킹 3위에 올랐다는 것을 말입니다.”

“전체 3위란 말씀이신가요?”

“대학을 포함해서 3위였습니다.”

“그렇다면 드래프트 순위도…….”

“아쉽지만 그 평가를 드래프트까지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2라운드에서는 뽑힐 수 있었습니다.”

해설자는 케니히가 고교 시절 배리 본즈의 뒤를 이을 만능선수로 평가받았다고 덧붙였다.

케니히는 졸업을 앞두고 성장이 정체되며 최고의 유망주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워낙 잠재력이 높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까지 오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 즉 올스타 레벨에 오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2년 전 받은 골드글러브가 케니히의 유일한 메이저 수상이었다.

팡!

초구는 안쪽을 찌르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케니히는 초구를 본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빠르군.”

100마일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이라고 해서 다 빠른 것이 아니었다.

랜디 존슨의 패스트볼은 유독 빨랐다.

‘좌완이기 때문인가? 아니, 그것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라.’

208cm에 이르는 장신이 이유일 수도 있었다.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는 패스트볼은 그 어떤 공보다 타자들에게 위협적이었다.

‘어떻게 치지?’

앞서 2루타를 때려낸 라이트는 슬라이더를 공략해서 장타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2루타를 맞은 지금 랜디 존슨이 스트라이크존으로 슬라이더를 던질 리 없었다.

‘슬라이더는 역시 유인구겠지.’

슬라이더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패스트볼이다.’

이번에는 케니히도 타이밍을 잡고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배트는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운트 0-2.

투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케니히는 세 개 또는 네 개의 유인구를 견뎌내야 했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들어온다면 꼼짝없이 당하겠군.’

그러나 랜디 존슨의 세 번째 공은 슬라이더가 아니었다.

‘패스트볼!’

케니히의 배트가 힘겹게 공을 커트해 냈다.

탁!

‘유인구를 던질 필요도 없다는 건가?’

“케니히, 랜디의 패스트볼을 커트해 냅니다.”

이반 감독은 케니히의 스윙을 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힘들겠군.”

그는 케니히가 랜디 존슨을 상대로 커트로 저항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생각했다.

‘라이트와 케니히는 다르다. 케니히는 어중간해 삼진을 당하는 것도 안타를 쳐 내는 것도 아니야.’

케니히는 라이트와 달리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승부를 길게 끌고 가려 하고 있었다.

록튼이 김민에게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랜디에게 유리해.”

“킴, 그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잖아. 내가 알고 싶은 것은 9회 말에 우리가 득점할 수 있느냐는 거야.”

케니히가 아웃된다면 다음 타자는 스나이더였다.

스나이더는 파워에서 케니히를 살짝 앞섰지만, 나머지 모든 부분이 부족했다.

케니히가 치지 못하면 스나이더로는 어렵다.

이것이 객관적인 결론이었다.

“아마 힘들겠지.”

김민이 연장전을 준비하려는 순간이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3루 쪽으로 굴러갔다.

“아! 쓰리 번트입니다!”

쓰리 번트는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번트를 말했다.

이 경우 파울 타구가 나와도 아웃이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감독들은 물론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도 쓰리 번트를 지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케니히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쓰리 번트를 무기로 들고나왔다.

이반 감독은 케니히가 자신의 예상을 완벽히 뒤집었다고 생각했다.

‘투 스트라이크, 게다가 1사 2루…… 희생번트로 3루에 주자를 보내도 큰 이득이 없는 상황. 그 누구도 번트를 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기습이다. 하지만 너무 위험해.’

3루수 에이로드가 앞으로 달려 들어왔다.

“에이로드가 공을 잡았습니다.”

에이로드의 어깨는 앞선 경기에서 보여 주었듯 최고 수준의 송구를 자랑했다.

어설픈 번트라면 1루에서 살 수 없었다.

“에이로드…… 아! 공을 던지지 못합니다.”

에이로드는 1루에 공을 던지지 못한 채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지 못하게 견제하는 것으로 그쳤다.

케니히의 번트는 방향과 타이밍이 실로 절묘했다.

“주자와 타자! 모두 살았습니다!”

“쓰리 번트가 성공했군요. 케니히, 센스…… 아니, 죽음을 각오한 플레이를 성공시켰습니다!”

이반 감독은 성공하긴 했지만, 칭찬할 수는 없는 플레이라고 생각했다.

“바이슨,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타를 뽑아낼 수 없는 건가?”

바이슨 수석 코치가 감독의 말을 받았다.

“상대는 랜디였습니다. 케니히도 필사적이었을 겁니다.”

케니히의 쓰리 번트는 김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흐흠, 케니히가 2루에 있는 주자를 이용했군.”

록튼이 배트를 들며 물었다.

“2루 주자를 이용하다니?”

“주자가 2루에 있으면 유격수는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야 해.”

록튼은 김민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유격수가 2루 베이스에 가까워지는 만큼 3루수가 그 공백을 커버하려고 조금 더 3루 베이스에서 멀어진다는 건가? 하지만 그래 봐야 한두 걸음이야. 쓰리 번트를 시도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김민이 말했다.

“케니히는 그 한두 걸음으로 살았어.”

내야 안타에서 한두 걸음은 아웃과 세이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궁지에 몰린 케니히.

그는 에이로드가 데릭 지터 쪽으로 몸이 쏠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케니히는 에이로드의 수비 위치 하나만을 보고 쓰리 번트를 시도했고, 결국 성공시켰다.

“이것으로 상황은 랜디에게 어렵게 되었군.”

블렛소 투수 코치가 말했다.

“하지만 이 상황만으로 랜디가 흔들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 타자는 스나이더.

스나이더가 외야 플라이를 쳐 내지 못하는 한 탬파베이는 득점을 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내야 땅볼은 안 돼, 병살타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포사다의 수비력이면 공이 뒤로 빠질 것 같지도 않고…… 결국 내가 외야로 쳐 내야 하는 건가?’

외야 플라이.

야구팬이나 해설자는 이를 당연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안타 못지않게 힘들었다.

일단 공을 배트에 맞혀야 했으며,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되도록 멀리 쳐 내야 했다.

배팅 포인트, 타이밍.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내야 플라이나 헛스윙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그 상대가 랜디 존슨이었다.

스나이더의 어려움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양키스 외야는 그리 나쁘지 않다. 이쪽은 발이 느린 라이트, 가능한 깊게 쳐야 해.’

스나이더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타자는 절대 좋은 스윙을 할 수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는 깔끔한 헛스윙.

맥코비 감독이 주먹을 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피칭! 잘하고 있어!”

양키스 수비수들은 바짝 전진해 있었다.

내야 땅볼이 나온다면 바로 홈에 송구해서 주자를 잡겠다는 뜻.

3루에 주자가 있으니, 그들로서는 당연한 선택지였다.

모두가 긴장한 상황에서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탁!

배트에 맞은 공.

“어디냐!”

“어느 곳으로 떨어지는 거야?”

백네트를 지나 그 뒤에 떨어지는 공.

“관중석이군.”

타구를 쫓아가던 포사다가 걸음을 멈추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주심의 콜이 이어졌다.

“파울!”

카운트는 이제 0-2.

다음 공 하나에 오늘 경기, 아니 이번 시즌 두 팀의 운명이 달라졌다.

스나이더는 배트를 꾹 쥐었다.

‘쳐 내야 한다.’

슉!

빠른 공.

스나이더는 배트를 내밀었다.

‘외야 플라…… 앗! 떨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의 움직임.

스나이더의 배트는 크게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스나이더의 삼구삼진.

양키스 더그아웃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이스 삼진!”

“최고의 피칭이다!”

“랜디! 역시 랜디야!”

맥코비 감독은 물론 선수들까지 랜디의 이름을 연호했다.

“랜디! 랜디! 랜디!”

랜디 존슨은 삼진을 잡은 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공을 받았다.

‘훗, 아웃 카운트 하나 남은 건가?’

이반 감독은 뒤늦게 하나의 수단이 더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 삼진을 당할 줄 알았다면 번트를 지시하는 건데 말이야.”

블렛소 투수 코치가 말했다.

“하지만 에이로드의 위치가 너무 깊어서 번트를 댔다고 해도 홈에서 살았을지는…….”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아닌가? 이제 안타가 아니고서는 점수를 뽑을 수가 없어.”

탬파베이의 다음 타자는 록튼이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대타 작전을 건의했다.

“대타?”

“듀란이 있지 않습니까?”

듀란은 공격형 포수로 기대를 받고 있었다.

“확실히…… 배트만 놓고 보면 록튼보다는 듀란이지.”

하지만 듀란이 안타를 치지 못한 채 연장전으로 넘어가면 그의 부족한 수비력이 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다.

‘9회 말에 모든 것을 거느냐, 아니면 연장전을 바라보는 운영을 하느냐?’

바이슨 수석 코치가 결단을 재촉했다.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이반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록튼으로 가지.”

“대타는…….”

“대타는 없네.”

이반 감독은 듀란이 타격에 재능이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록튼은 타격에 장점이 있는 포수는 아니지. 하지만 킴의 경기에서만큼은 평균 이상이야.”

“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되묻자 이반 감독이 고개를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돌렸다.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킴의 선발 등판 때는 타율이 0.276까지 올라갑니다.”

“킴과 궁합이 좋아.”

바이슨 수석 코치는 그것만 믿고 이 기회를 그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상대는 랜디입니다.”

“랜디도 투수야. 공을 던지지 않고는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없어.”

파앙!

초구는 100마일(161km) 패스트볼.

“스윙 스트라이크!”

바이슨 수석 코치는 대타를 썼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킴의 등판 때 록튼의 집중력이 올라가는 것은 볼 배합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랜디의 공을 공략할 수 없다. 이 승부는 졌어.’

두 번째 공도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록튼은 두 번의 헛스윙 뒤,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9회 말에 99마일(159km)인가? 무시무시한 속도군. 그러고 보니 킴의 라이징 패스트볼과 비슷한 점이 하나 있군.’

그가 발견한 두 투수의 공통점.

‘일반적인 스윙으로는 배팅 포인트가 맞지 않아.’

전자는 떠오르고, 후자는 더 깊이 떨어졌다.

양쪽 모두 특별한 스윙이 필요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의문은 무의미해. 일단 하고 나서 생각하자.’

이반 감독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너무 쉽게 카운트를 잡혔다.’

랜디 존슨이라고 해서 모든 공을 스트라이크존을 던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탬파베이 타자들은 지금 거의 모든 공에 배트가 나오고 있었다.

‘치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해.’

그들은 점수를 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공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공입니다!”

세 번째 공.

이 공에 헛스윙이 나온다면 양키스는 연장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랜디 존슨이 투구 동작에 들어간 순간 3루 주자 라이트가 스타트를 끊었다.

‘무슨 생각이지? 홈 스틸이라도 하려는 건가?’

발이 빠른 주자라면 그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상대는 발이 느린 라이트였다.

‘무모한…….’

랜디는 그대로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공을 놓았다.

슉!

100마일(161km) 패스트볼이 포사다의 미트를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배트에 맞은 공이 가볍게 떠올랐다.

“2루수!”

랜디는 고개를 돌렸다.

2루수가 잡을 수 있는 타구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2루수는 그가 원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이런!’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이었다.

탁……

공이 외야에 떨어졌고, 3루 주자는 홈을 밟았다.

“라이트! 홈인! 경기 끝! 경기가 끝났습니다! 탬파베이!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입니다!”

“하아…… 이렇게 시리즈가 끝나기도 하는군요.”

록튼의 끝내기 안타.

그것을 허용한 2루수 나이젤은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랜디 존슨이 자책하고 있는 나이젤에게 다가갔다.

“네 탓이 아니다.”

나이젤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너무 앞으로 당겼습니다.”

“내야 전체가 당겨졌잖아.”

“그래도 너무…….”

양키스 내야는 마지막 순간 내야 안타를 의식해 전진 수비를 펼쳤다. 덕분에 록튼의 타구는 2루수 키를 넘길 수 있었다.

환호하는 탬파베이 선수들.

랜디 존슨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슬퍼할 필요 없어. 우리에게는 다음 시즌이 있다.”

그는 나이젤을 일으킨 뒤 동료들과 함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야에 비틀거리는 제레미가 들어왔다.

“저 친구 왜 저러지?”

그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제레미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지터와 포사다 두 사람이 급히 제레미에게 달려갔다.

“제레미, 제레미!”

“누가 제레미를 좀 도와!”

“닥터를 불러와야 해!”

제레미는 이후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한 기자는 이 모습을 보고 양키스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서 탬파베이와 맞섰다고 기사를 썼다.

하지만 제레미가 쓰러진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10분 뒤.

트로피카나 필드 복도.

랜디 존슨은 검은 머리 투수와 마주하고 있었다.

“킴, 인터뷰룸이 아니라 왜 여기 있는 거지?”

김민은 오늘 경기를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랜디 존슨은 그가 인터뷰룸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영웅은 제가 아니니까요.”

“영웅은 록튼인가?”

“랜디에게 끝내기 안타를 쳐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내가 조금 방심했어. 아니, 정정하지. 라이트의 주루 때문에 흔들렸어. 그래서 가운데에 공이 몰렸던 거야.”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대단한 피칭이었습니다. 전 랜디의 나이가 되면 그렇게 못 던질 겁니다.”

랜디 존슨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최고의 게임이었습니다.”

“좋은 게임이었네.”

랜디 존슨은 김민과 헤어진 뒤 버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탬파베이 구단 스텝의 외침이 들려왔다.

“킴! 어서 인터뷰룸으로!”

김민은 인터뷰 일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랜디 존슨을 만나기 위해서 그것을 미루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랜디 존슨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번 월드시리즈도 탬파베이가 가져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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