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레전드 매치 02
“제레미? 괜찮아?”
강하게 되묻는 지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코치들.
제레미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어.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고. 정신 차려야 한다. 교체만은 막아야 해!’
그는 손을 들었다.
그리곤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터, 괜찮아. 그냥 농담을 던진 것뿐이야. 지금 4회 말이잖아.”
지터는 제레미가 이닝을 정확하게 맞추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몸이 좋지 않으면 코치에게 말해.”
제레미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네네 타격 코치가 다가왔다.
“제레미, 괜찮은 건가?”
“괜찮습니다. 조금 피곤하지만 경기를 뛰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붉게 충혈된 눈.
네네 타격 코치는 제레미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위험한데……’
수비가 불가능한 1루수를 경기에 출전시킨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들고 뛰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 제레미를 빼면, 오늘 경기에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제레미는 양키스에서 가장 핫한 타자였다.
‘디비전 시리즈 5차전, 제레미를 여기서 빼는 건 힘들다.’
제레미 대신 호크를 내보낸다면 김민은 에이로드를 고의사구로 거를지 몰랐다.
‘그건 곤란하지.’
네네 코치는 제레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이야기해. 야구는 이번 시즌만 하는 게 아니니까.”
제레미가 글러브를 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양키스의 4회 말 수비는 불안함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랜디 존슨이 압도적인 피칭으로 탬파베이 타자들을 막아 냈다.
“또 삼진입니다!”
“이번에는 100마일(161km)이군요. 경기 중반 오늘 경기 최고 구속을 경신했습니다.”
랜디 존슨도 내야수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쪽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힘으로 탬파베이를 누르는 수밖에 없겠군.’
파앙!
다시 한번 배트가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타자 연속 삼진.
“당할 수가 없군.”
이반 감독의 한마디는 솔직한 심정을 말한 것이었다.
“내야수들이 실책을 범할 틈조차 주지 않는군요.”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터에게 향하는 땅볼이 나왔다.
지터는 실책이란 있을 수 없다는 듯 안정적으로 공을 처리했다.
“1루에서 아웃! 탬파베이! 아무 소득 없이 4회 말 공격을 끝냅니다!”
5회에도 두 투수의 호투가 이어졌다.
“킴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맥코비 감독이 혀를 찼다.
“주자가 나가도 스코어링 포지션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군.”
“견제 능력도 괜찮습니다.”
“감탄만 하지 말고 공략 방법을 생각해 보게.”
“이런 말씀을 드리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킴은 클린업이 아니면 공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5회 말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의 투구수는 다음과 같았다.
김민 57개.
랜디 존슨 68개.
삼진을 많이 잡은 랜디 존슨 쪽이 김민보다 투구수가 많았다.
기자들이 투구수를 비교하며 말했다.
“킴은 9회가 가능해도 랜디는 힘들겠어.”
“모르는 소리를 하는군. 랜디는 120개도 쉽게 던지는 투수야. 오히려 난 킴이 더 어렵다고 생각해. 휴식일도 랜디보다 하루 더 적었거든.”
“그런가?”
“뭐가 그런가야? 랜디는 전성기 시절 160개도 던진 적이 있는 투수라고.”
양 팀 투수 코치는 오늘 경기가 두 선발 투수의 스테미너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킴은 효율적인 투구로 투구수를 줄이고 있다. 100개까지 던진다고 할 때, 9회 초까지는 문제가 없다.’
‘랜디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투수다. 체력 부족으로 마운드를 내려오는 일은 아마 없을 테지. 9회가 넘어가면 랜디 쪽으로 경기가 기울게 될 것이다.’
두 감독은 투수 코치들과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그들은 오늘 경기의 열쇠를 클린업이 쥐고 있다고 판단했다.
‘최고의 방패를 깨는 것은 하나의 작은 실투다. 그 실투를 놓치지 않고 장타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클린업뿐이다.’
‘킴은 맞춰 잡길 좋아하지. 하지만 그건 언제든 장타를 맞을 수 있다는 뜻이야. 제레미와 에이로드,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홈런을 때려낸다.’
맥코비 감독은 제레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를 라인업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홈런 하나. 그것만 해 주면 된다.’
6회 초.
양키스 공격.
선두 타자는 1번 타자 지터.
맥코비 감독이 지터를 주시하며 말했다.
“네네, 자네는 마이너리그에서 몇 년 있었지?”
“7년 있었습니다.”
“코치 말고.”
“아…… 선수로 4년 있었습니다.”
맥코비 감독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싱글A에서부터 시작했나?”
“로우 싱글A에서 시작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건 언제였나?”
“하이 싱글A였습니다.”
트리플A에서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길만큼 어려운 것이 싱글A에서 더블A였다.
“야구를 하는 레벨이 달랐다고 할까요? 더블A는 프로다운 야구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지금 그런 질문을…….”
맥코비 감독이 말했다.
“난 자네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어. 오직 위만을 바라보고 뛰었지. 지터도 나 같은 선수야. 마이너리그를 어려움 없이 돌파한 뒤, 메이저리그 입성. 그리고 신인왕과 올스타…… 물론 지터가 나보다 시간은 더 오래 걸렸지만.”
네네 타격 코치는 맥코비 감독이 슈퍼스타 출신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와는 시작이 다른 분이다.’
맥코비 감독이 말했다.
“내가 어려움을 느꼈던 건 올스타 레벨에 이르고 나서야.”
파앙!
안쪽을 깊이 찌르는 공에 지터가 배트를 멈췄다. 그러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맥코비 감독이 전광판을 확인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올스타전에 출전한 뒤, 올스타 레벨 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올스타전을 뛰고 있지만, 다 같은 레벨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나보다 더 뛰어난…… 그러니까 명예의 전당이 예약된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벽을 느꼈지. 지금 지터가 나와 같은 벽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군.”
“지터가 말입니까?”
지터는 양키스의 상징이었다.
이대로 커리어를 이어간다면 영구결번은 물론 명예의 전당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게 느끼고 있는 벽이란 무엇일까?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주심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그리고 카운트는 0-2로 변했다.
“킴, 저 친구…… 지터의 벽이야.”
김민은 지터를 완벽하게 봉쇄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안타를 맞았고, 가끔 홈런도 허용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지터를 막아 내고 있었다.
“아주 영리한 친구지.”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투수 정면으로 흘러갔다.
김민은 공을 잡은 뒤 가볍게 1루에 토스했다.
“지터 1루에서 아웃!”
지터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며 미간을 좁혔다.
‘그걸 또 치지 못했어.’
김민이 던진 승부구는 포크볼처럼 떨어지는 파워 스플리터였다.
“다음 타자는 나이젤이군.”
“센스가 있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나이젤의 센스는 김민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툭.
배트에 닿은 공이 3루수 쪽으로 흘렀다.
“나이젤! 기습 번트입니다!”
스나이더는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스타트를 끊었고, 좋은 지점에서 공을 잡는 데 성공했다.
‘좌타자도 아니고, 우타자의 기습 번트쯤은 쉽게 막을 수 있다.’
그의 강한 어깨가 나이젤의 앞을 가로막았다.
파앙!
“나이젤 1루에서 아웃!”
기습 번트.
호이스트는 너무 뻔한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테이블 세터를 상대로 기습 번트에 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밖에 보는 것과 안에서 직접 그것을 플레이로 옮기는 것.
이것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나이젤은 기습 번트가 뻔한 공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한 것이었다.
‘빌어먹을…… 단단하잖아.’
그가 노렸던 것은 상대의 방심이 아니라 3루수 스나이더의 예상하지 못한 실책이었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침착하게 플레이했고, 실책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책을 기대하고 번트를 댄다는 것.
이것은 김민의 투구가 그만큼 타자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6회 초 양키스의 마지막 타자는 3번 타자 제레미입니다.”
제레미는 공격이 시작되기 전 물을 머리에 부었다.
그러자 아주 잠깐이지만 맑은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지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번 시리즈…… 난 영웅이 된다.’
김민은 제레미에게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제레미에게서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그는 초구를 바깥쪽에 뿌렸다.
슉!
제레미의 배트는 나오다가 멈췄다.
팡!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초구는 볼입니다.”
“킴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했군요. 제레미의 한 방을 경계한 것일까요?”
반 개 정도 빠진 공이었다.
록튼의 프레이밍이라면 스트라이크존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공이었다.
하지만 록튼의 프레이밍은 평소보다 느렸고,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김민은 프레이밍보다 중요한 것이 제레미의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배트가 나오다가 멈췄다. 그 말은 어느 순간 내 공이 경로에서 이탈한 것을 알았다는 뜻이다.’
제레미의 선구안이 살아 있다.
이는 김민에게 큰 위협이었다.
‘다음 공으로…… 카운트를 잡는다.’
제레미나 에이로드를 상대로 2-0의 볼 카운트는 위험했다.
그는 두 번째 공으로 1-1을 맞출 생각이었다.
슉!
바깥쪽 빠른 공.
타자가 보기에는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진 공이었다.
그러나 제레미의 배트는 멈추는 대신 앞으로 움직였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온다.’
딱!
배트에 맞은 타구가 눈 깜짝할 사이에 3루수 키를 넘겼다.
“타구가 3루수 키를 넘겨서…… 아! 라인 밖에 떨어집니다!”
무브먼트가 큰 타구는 3루수 스나이더의 키를 넘긴 다음 파울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위험한 타구였습니다!”
“제레미의 배트가 살아 있군요. 이번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낸다면 오늘도 멀티 히트입니다.”
부진한 2차전을 포함해도 제레미의 디비전 시리즈 타율은 4할에 육박했다.
오스번이 더그아웃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제레미 가자!”
그의 한마디에 포사다도 호응했다.
“제레미! 그대로 넘겨 버려!”
양키스 동료들의 응원.
제레미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저 녀석들…… 꽤 이기고 싶은 모양이군.’
김민은 공을 글러브에 넣은 다음 호흡을 조절했다.
“후우…….”
‘백도어 슬라이더까지 쳐 낼 줄이야. 지금 녀석의 선구안은 최고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공을 강하게 잡았다.
‘이걸로 가 보자.’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하이 패스트볼!’
제레미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이번 공이 진짜 승부구다.’
높은 코스에서 떠오르는 공은 김민의 시그니처 무브였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백네트 뒤로 흘렀다.
‘큭, 아깝다. 조금 밀렸어.’
“파울!”
김민은 제레미의 배트가 타이밍을 점점 잡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기세면 곧 업 라이징 패스트볼도 쳐 내겠군.’
“카운트는 1-2로 변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킴은 킴이군요. 어느새 유리한 카운트를 가져왔습니다.”
“킴, 네 번째 공입니다!”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이 큰 포물선을 그렸다.
“이것은! 킴의 이퓨즈입니다!”
앞서 에이로드는 이 공을 때려 큰 타구로 연결시킨 바 있었다.
제레미는 이 타구에 배트를 내지 않았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
그러나 주심은 손을 들지 않았다.
“볼, 볼입니다! 제레미, 이퓨즈를 걸렀습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이퓨즈를 그냥 넘겼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강심장입니다!”
제레미의 눈에 보이는 이퓨즈는 너무 느려 졸릴 정도의 공이었다.
그는 이퓨즈가 떨어질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지나는 볼. 이걸 내가 친다고? 농담하지 마.’
공은 그의 예상대로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고,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김민은 제레미의 붉게 충혈된 눈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악마와 거래한 눈이란 말이지?’
볼이면 거르고, 스트라이크면 친다.
‘그렇다면 이런 공은 어떨까?’
스트라이크와 볼 그 경계에 위치한 공.
록튼의 프레이밍 실력이라면 이 공은 스트라이크였다.
슉!
95마일(153km) 패스트볼이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아슬아슬하게 걸쳐 들어갔다.
다음 순간 제레미의 배트가 공을 쳐 냈다.
“파울!”
공이 떨어진 지점은 3루 관중석.
“제레미, 5구를 받아쳐서 파울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커트했다고 보는 게 좋겠죠.”
‘비슷하면 나온다는 말이지?’
김민은 로진백을 만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비슷하면 나오고 벗어나면 치지 않는다. 그러니, 배트를 내게 하려면 비슷한 공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비슷한 공은 프레이밍에 실패하면 바로 볼이다.’
최악의 경우 볼넷이라는 수단도 있었다.
그러나 제레미 다음 타자는 에이로드였다.
‘에이로드까지 거르고 2사 1, 2루에서 오스번과 대결? 아니, 그건 아니지. 오스번은 왕조시절 4번을 쳤던 친구라고. 자칫 잘못하면 쓰리런이야.’
그는 공을 글러브에 넣곤 록튼과 사인을 교환했다.
김민의 사인을 받은 록튼은 마른침을 삼켰다.
‘킴 그건 좀 위험한 거 아니야?’
때때로 김민은 도박에 가까운 볼 배합을 할 때가 있었다.
록튼은 그럴 때마다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휙!
김민의 손에서 빠진 공이 가운데로 날아왔다.
‘한가운데?’
빠르지 않았다.
적당히 느린 공.
제레미는 생각했다.
‘스플리터? 아니, 이것은 그것보다 더 느린 공이다.’
생각할 수 있는 공은 하나뿐.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
공이 홈과 마운드 중간 지점에 이르렀다.
‘여기서 떨어지면 정확히 스트라이크존 끝에 걸친다. 킴이 던질 법한 공이군.’
제레미의 배트가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딱!
“멀리 갑니다!”
제레미는 배트를 쥐곤 공의 궤적을 살폈다.
‘내가 당한 모양이군.’
공은 외야로 날아가고 있었지만, 점점 속도가 줄고 있었다.
“산체스가 글러브를 들고 공을 기다립니다!”
중견수 플라이.
김민이 제레미를 향해 던진 승부구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느린 공이었다.
77마일(124km) 패스트볼.
이것을 김민이 던졌다고 하면 믿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록튼이 미트를 들며 김민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런 공을 던질 생각을 한 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공이 그것밖에 없더라고.”
“투심이 있잖아.”
“음, 그것도 있었나?”
김민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제레미의 아웃과 함께 양키스의 6회 초 공격이 끝났습니다. 다음은 탬파베이의 6회 말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6회 말.
탬파베이 반격.
이반 감독은 이 공격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랜디 존슨은 탬파베이에게 점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랜디, 다시 한번 트로피카나 필드를 침묵시킵니다.”
“2001년 포스트 시즌을 재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후 경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7회와 8회……
두 팀은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보내지 못한 채 아웃카운트만 소모하고 말았다.
“투수전이군요.”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오늘 선발 투수는 킴과 랜디라고.”
8회 말.
랜디 존슨은 오늘 경기 15번째 삼진을 잡아냈다.
“플레이오프 삼진 신기록이 몇 개인지는 모르지만, 오늘 랜디가 그것을 깨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대단한 투구입니다. 현장에서 이런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두 투수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양 팀 타선은 두 투수에게 눌려 제대로 된 투구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9회 초.
양키스의 선두 타자는 제레미.
그는 6회 이후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를 걱정했던 동료들과 코칭 스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를 뛰면서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아.”
“환각제 같은 걸 했다가 약 기운이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니야?”
“쉿, 그런 소리를 하면 곤란해.”
지터는 에드와 나이젤의 대화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레미, 이렇게까지 하고도 지면 납득할 수 없을 거야.’
그는 제레미가 옳지 못한 수단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3타수 1안타의 제레미입니다.”
“선두 타자로 나왔군요. 제레미가 나갈 수 있다면 양키스가 극적인 승리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김민의 현재 투구수는 92개.
아직까지는 패스트볼을 던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오늘 경기만큼은 제레미가 에이로드보다 껄끄러워.’
순간 고의사구에 대한 유혹에 휩쓸렸다.
‘발이 느린 제레미를 1루에 내보내고 내야 땅볼을 유도해서 에이로드와 제레미를 한 번에 처리한다. 바보 같은 생각이군. 야구 만화도 아니고 3, 4번 타자를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다면 누가 그 고생을 해서 제구력을 익히겠어.’
제레미를 잡아내고 에이로드를 상대한다.
김민의 전략은 처음과 같았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백네트 뒤로 흘렀다.
“제레미의 배트가 밀립니다.”
제레미는 배트가 밀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떠오르는 공이군. 이제 완전히 타이밍을 잡았어. 하나 더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김민은 같은 공을 두 번 던질 생각이 없었다.
‘녀석은 괴물, 난 괴물을 상대하는 사냥꾼.’
영웅이 아니라 사냥꾼.
김민은 자신의 포지션을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