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레전드 매치 01
과거 랜디 존슨은 로저 클레멘스와 마찬가지로 빠른 공 그리고 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하지만 그는 로저 클레멘스처럼 데뷔와 함께 최고가 되진 못했다.
그 이유는 메이저리그 평균 이하의 제구력.
한 경기 5, 6개의 볼넷을 기본이고.
리키 핸더슨에게 한 경기에서 볼넷 4개와 도루 5개를 내주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소속 팀 시애틀은 그의 제구력에 지쳐 그를 트레이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현재 랜디 존슨은 제구는 물론 완급조절까지 가능한 메이저리그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2회 초.
양키스 공격.
김민은 5, 6, 7번을 맞아 안타 없이 플라이 2개와 땅볼 하나로 간단히 막아 냈다.
“맞춰 잡는군요.”
“예상보다 탬파베이 내야가 안정되어 있어.”
실책이 나온 양키스와 달리 탬파베이 내야는 김민의 뒤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었다.
2회 말.
탬파베이 공격.
5번 타자 라이트부터 시작하는 타순.
이반 감독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라이트는 괜찮은 친구지만, 산체스와 윌리엄 이상은 아니야.”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것일까?
라이트는 초구를 노렸지만, 내야에 높이 띄우고 말았다.
“2루수가 두 팔을 벌립니다.”
라이트는 배트를 내던지곤 1루로 걸음을 옮겼다.
‘큭,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났어.’
랜디 존슨의 오프 스피드 피치는 탬파베이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98마일(158km)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을 때, 90마일(145km) 패스트볼이 날아오면 저런 타구가 나올 수밖에 없지.”
“패스트볼만 날아오는 게 아닙니다. 같은 속도의 슬라이더도 있죠.”
“맞아, 슬라이더도 있지. 랜디가 최고인 이유는 그가 단지 왼손으로 빠른 공을 던지기 때문이 아니야.”
포사다의 리드도 좋았다.
6번 타자 케니히는 포사다의 현란한 프레이밍에 걸려 볼을 골랐음에도 룩킹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케니히로서는 억울함 그 자체였다.
“랜디! 케니히를 상대로 오늘 네 번째 삼진을 빼앗아 냅니다!”
“탬파베이 타선은 양키스를 제외하면 리그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랜디는 그런 타선을 완벽히 압도하고 있습니다.”
7번 타자 스나이더는 하이 패스트볼에 크게 헛스윙하며 2회 말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장식했다.
“또 삼진입니다! 랜디! 다섯 번째 삼진입니다.”
“99마일(159km)까지 나오는군요. 정말 빠릅니다!”
경기 초반 가장 돋보인 선수는 랜디 존슨이었다. 그는 일곱 타자를 상대해 다섯 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랜디는 좋아 보입니다.”
이반 감독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긁히는 날의 랜디라.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오늘이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랜디 존슨의 삼진이 늘어날 때마다 속이 쓰렸다.
‘이러다가 위장병이 도지고 말겠어.’
이반 감독이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
그는 아직 극단적인 방법을 꺼내 들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3회 초.
양키스 공격은 8, 9, 1번으로 이어졌다.
“하위 타순에서 안타 하나만 나오면 좋겠는데…….”
맥코비 감독의 바람은 9번 타자 에드에 의해 이뤄졌다.
“에드! 1사 후에 안타를 만들어 냅니다.
에드의 안타는 바깥쪽 공을 밀어 친 것이었다.
“타구는 강하지 않았지만, 방향이 좋았습니다. 2루수 칼튼이 끝까지 따라갔지만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민은 하위 타선에서 나온 안타에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지막까지 공을 따라간 칼튼의 플레이에 주목했다.
‘내야수들의 수비 집중력은 아직 살아 있다. 아직은 믿고 뒤를 맡길 수 있어.’
다음 타자는 양키스의 리드 오프 데릭 지터.
김민은 지터와 벌써 4년째 맞서고 있었다.
‘이쯤 되면 서로를 다 알 만하지.’
지터는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타자였다. 하지만 제레미나 에이로드처럼 모든 공에 배트가 나오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스트라이크존을 철저하게 지켰고, 그 존 안에 들어오는 공만을 공략했다.
‘오늘 지터의 존은 조금 넓은 것 같아.’
김민은 포심 그립을 잡았다.
슉!
안쪽을 향하는 패스트볼.
지터의 배트는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딱!
잘 맞은 타구였다.
평소라면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갈랐을 것이다.
하지만 타구는 외야로 나가지 못한 채 브라이튼의 글러브에 막히고 말았다.
“브라이튼이 2루에 연결합니다!”
“탬파베이, 2루에서 선행주자를 잡아내는군요.”
지터가 미간을 좁혔다.
‘시프트였나?’
유격수가 3루수 쪽으로 2, 3걸음 정도 움직인 간단한 시프트였다.
“지터는 아직 1루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내지 못했지만, 지터의 발이라면 2루를 노려볼 수 있습니다.”
록튼은 훗날 지터가 최고의 도루 센스와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자들은 그런 지터가 왜 도루왕이 되지 못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록튼은 이렇게 대답했다.
- 때로는 도루를 하지 않을 때가 더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터의 뒤에는 오스번과 제레미, 그리고 에이로드가 있었습니다.
김민은 초구에 앞서 1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세이프!”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지만, 지터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견제구였다.
‘역동작에 걸릴 뻔했다.’
김민의 견제구는 그의 몸동작을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우연인가? 아니면……’
정규 시즌이었다면 한 번쯤 김민을 시험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이었다.
패하면 탈락인 엘리미네이션 게임.
상대를 시험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도루보다는 한 베이스를 더 가는 데 주력하자.’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공격적인 주루.
이것만으로도 상대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김민은 지터를 한 번 더 확인하지 않고 초구를 던졌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외야로 향하는 공!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합니다!”
공은 중견수 산체스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킴, 3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 냅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김민을 주시하며 말했다.
“킴도 무실점이군요.”
이반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상대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건 그렇습니다.”
기자들은 김민이 지친 것 같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30승을 하기 위해서 무리한 것 같아.”
“맞아, 평소 같았다면 삼진 3, 4개는 뽑았을 거야.”
“그러게 오늘 경기 삼진이 별로 없지?”
“구위가 정규 시즌보다 못하다는 증거야.”
맥코비 감독이 반즈 투수 코치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누구 말입니까?”
“킴 말이야.”
“투수 코치로서 말씀드리면 되는 겁니까?”
맥코비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삼자의 시점에서 솔직하게 의견을 이야기하면 더욱 좋지.”
반즈 투수 코치가 말했다.
“구속은 올랐지만, 삼진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렇다고 맞춰 잡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건 뭐랄까…….”
“우리 타자들의 컨디션이 좋다는 말인가?”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지터의 타구도 조금만…… 그러니까 30cm 정도만 3루 쪽으로 움직였어도 내야를 빠져나갔을 겁니다. 킴은 오늘 타자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키스 전력분석팀장 호이스트는 양키스가 이번 시리즈를 잡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팀의 전력이 우세하기 때문인가요?”
팀원의 물음에 호이스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단기전은 전력의 격차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지.”
“선수들의 단결입니까?”
“그럴 리가?”
“그럼…….”
호이스트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미치는 선수. 단기전은 그런 선수가 나와야 상대를 이길 수 있어.”
탬파베이에서는 산체스와 윌리엄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미쳤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양키스에는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3번 타자 제레미였다.
“제레미는 3차전을 결장하고도 무시무시한 성적을 내고 있다. 그가 오늘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일을 낼 것이다.”
제레미는 이미 첫 타석에서 김민을 상대로 안타를 터트렸다.
그의 타격 감각은 한마디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호이스트가 말했다.
“제레미가 양키스를 월드시리즈로 보낼 거야.”
3회 말.
탬파베이 공격.
“하위 타선이 강하기로 소문이 난 탬파베이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강함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오늘 탬파베이는 상위 타선과 하위 타선을 가리지 않고 랜디 존슨의 제물이 되었다.
“랜디 다시 삼진 2개를 추가합니다!”
“오늘만 벌써 7개째 삼진이군요.”
열 명의 타자를 상대로 7개의 삼진.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은 엘린은 랜디 존슨이야말로 미친 선수라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킴이 질지도 모르겠어.’
그는 김민의 피로를 걱정하는 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4회 초.
양키스 공격.
선두 타자는 3번 제레미.
대기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그에게 다음 타자인 에이로드가 다가갔다.
“괜찮나?”
제레미가 고개를 돌렸다.
“뭐?”
“괜찮냐고?”
“내가 이상한가?”
“이상해 보이진 않지만, 정상인 것 같지도 않아.”
제레미가 쓰디쓰게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아직 이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에이로드는 그의 말에 멈칫했다.
‘뭔가 했다.’
그는 제레미와 마찬가지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설마, 그걸?’
텍사스 시절 트레이너가 정체불명의 약물을 제시했던 적이 한 번 있었다.
에이로드는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약물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스테로이드 이상의 것은 룰 위반이라고 생각했다.
- 스테로이드는 하고 있는 녀석들이 많잖아. 하지만 이 약물은 그렇지 않아. 이걸 쓰면 돌이킬 수 없는 녀석이 되고 만다고.
아마도 제레미는 그것을 한 것 같았다.
‘곤란한 친구군.’
주심의 신호와 함께 경기가 4회 초 공격이 시작되었다.
“4회 초 선두 타자는 제레미입니다.”
“이전 타석에서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던 제레미입니다.”
김민은 제레미의 배트 스피드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경기 초반이니, 한 점을 줘도 된다는 생각으로 던질까? 아니야. 오늘 랜디의 컨디션을 보면 한 점을 준다는 생각은 곤란해.’
젊은 시절 랜디 존슨은 한 경기에서 150개가 넘는 공을 던진 적이 있는 철완이었다.
오늘같이 중요한 경기라면 그에 준하는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랜디는 무조건 완투다.’
김민도 완투를 생각했다.
‘여기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사인을 교환한 뒤 과감하게 가운데로 공을 밀어 넣었다.
제레미는 가운데로 날아오는 공을 보곤 멈칫했다.
‘가운데? 가운데라고?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윽고 공이 떠올랐다.
제레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 공이었군.’
배트가 공을 향해 나아갔다.
탁!
“공이 그 자리에서 떠오릅니다!”
록튼은 마스크를 쓴 채 공을 쫓았다.
‘바로 정면이다.’
그는 미트를 든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바로 그 순간 록튼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어! 이게 뭐야!’
쓰러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지면을 향해 빠르게 쓰러지고 있었다.
퍽……
록튼이 쓰러짐과 동시에 공이 그의 옆에 떨어졌다.
툭……
양키스에게 완벽하게 유리한 장면.
그러나 맥코비 감독은 주먹을 쥐었다.
“바보 자식!”
김민이 달려와 공을 잡았지만, 그 이상의 플레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주심이 그 자리에서 타자 아웃을 선언했다.
“아! 이것은! 제레미가 록튼과 충돌해 쓰러진 것 같습니다.”
“이건 느린 화면으로 정확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의로 발을 걸었거나 한다면 추가 징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느린 화면에는 제레미가 공을 친 뒤 바로 물러서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장면이 담겼다.
“공에 집중한 나머지 포수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을 잊은 모양입니다.”
록튼은 제레미의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추가 징계는 없군요. 양키스로서는 다행인 상황입니다.”
제레미는 혼자 죽는 것으로 끝났다. 그는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며 낮게 중얼거렸다.
“떠오르는 공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김민이 그를 잡기 위해 던진 공은 바로 업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그걸 쳐 낼 줄이야.’
업 라이징 패스트볼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는 던질 공이 없었다.
‘어쨌든 아웃 카운트를 잡았으니, 통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는 제레미와 대결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에이로드와 마주했다.
“4번 에이로드입니다!”
에이로드는 지난 타석에서 하나의 공을 노렸다.
하지만 김민은 끝까지 그 공을 던져 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전개로 흘러갔다.
“에이로드! 원 바운드 공에 스윙!”
“커브가 크게 떨어졌군요.”
김민은 커브를 앞세웠다.
“두 번째도 커브입니다. 이번 공은 높은 코스에서 떨어지는 스트라이크입니다.”
에이로드는 미간을 좁혔다.
‘킴, 남자답게 던져 보라고. 자네는 이런 투수가 아니었잖아.’
그가 원하는 것은 코너를 정확하게 찌르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김민은 그 공을 던져 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세 번째 공은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에이로드는 이 공을 파울로 연결했다.
“에이로드, 커트합니다!”
“킴이 유리한 카운트를 마음껏 사용하는군요.”
김민은 에이로드만큼은 공을 얼마든지 더 던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에이로드를 잡아낼 수 있다면 10개 이상을 던져도 아깝지 않아.’
슉!
네 번째 공은 고속 슬라이더.
에이로드는 이 공도 커트해냈다.
“배트 끝에 맞은 공이 1루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로드, 거의 모든 공을 다 쳐 내고 있습니다. 감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성급한 것일까요?”
맥코비 감독은 성급한 쪽에 무게를 실었다.
“걸어 나간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군.”
지터는 에이로드와 김민의 긴박한 대결보다 구석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제레미를 주시했다.
‘정상이 아니야.’
제레미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탁!
“다시 한번 파울! 에이로드! 배트가 살아 있습니다!”
김민은 모자를 벗어 땀을 닦았다.
‘어느 쪽으로 변하든 다 따라올 수 있다는 뜻이군.’
감이 좋을 때 에이로드는 배리 본즈 못지않았다.
‘그걸 또 던질 수는 없고…….’
두 타자 연속 업 라이징 패스트볼은 악력 소모가 너무 컸다.
김민이 선택한 결정구는 바로 이퓨즈였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
“이퓨즈군요.”
‘킴! 계속 그렇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다!’
에이로드는 몸을 눕히면서 이 공을 받아쳤다.
따악!
강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솟아올랐다.
“타구가 가운데로 날아갑니다!”
“이 타구는 큰데요?”
산체스는 타격음이 들리자마자 스타트를 끊었다.
‘이건 멀리 가는 공이다.’
“산체스, 전력 질주!”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
외야의 가장 깊은 곳.
타구는 그곳으로 날아갔다.
얼마나 뛰어온 것일까?
산체스는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속도를 늦추면 안 돼.’
그는 전속력으로 뛰면서 글러브를 들었다.
‘제발 늦지 말았으면…….’
다음 순간 그의 글러브가 출렁였다.
‘잡았어!’
“산체스! 산체스가 공을 잡아냅니다!”
“빠른 스타트가 호수비를 끌어 냈습니다. 탬파베이, 좋은 수비력입니다!”
산체스의 수비를 본 포사다는 혀를 내둘렀다.
“허! 다음 시즌 골드글러브를 노려볼 만하겠는걸?”
머레이가 뒤에서 포사다의 말을 받았다.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잡는군. FA 되면 돈 좀 만지겠어.”
그는 자신의 후임자가 너무 뛰어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맥코비 감독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킴이 잘 버티는군.”
“하지만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반즈 투수 코치는 김민의 공이 정규 시즌만 못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김민을 상대한 타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킴도 만만치 않아.”
“구속도 평소보다 빠르고, 로케이션도 좋아.”
“저쪽도 필사적인 거야. 엘리미네이션 게임이니까.”
“쉽게 점수를 내긴 힘들겠어.”
양키스의 4회 초 공격은 오스번의 삼진으로 마무리되었다.
“오스번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삼진입니다!”
“오프 스피드 피치가 먹혔군요.”
양키스 선수들은 수비를 위해 글러브를 들고 그라운드로 나갔다.
그러나 한 선수만은 여전히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지터가 그를 알아보곤 걸음을 되돌렸다.
“제레미, 뭐해. 공수교대야.”
제레미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지터, 지금 몇 회지?”
“뭐라고?”
제레미의 눈은 소설에 나오는 마인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