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악마와 영웅 03
“결국 최종전까지 왔군.”
탬파베이 레이스와 뉴욕 양키스.
두 팀 모두 최종전까지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디비전 시리즈부터 최종전을 치른다면 그다음인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시리즈에 이르러서는 체력이 고갈되기 때문이었다.
“반대편은 이미 끝났습니다.”
텍사스와 미네소타가 맞붙은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미네소타가 텍사스를 3-1로 누르고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 킴이 등판한다는 사실 정도군.”
탬파베이는 역대급 에이스 김민이 대기하고 있었다.
양키스도 나쁠 건 없었다.
그들에게는 1차전 선발로 나왔던 레전드 랜디 존슨이 있었다.
“랜디와 킴의 대결이군요.”
“저득점 경기가 될 거야.”
이반 감독은 선취점을 뽑는 팀이 이길 가능성이 80%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경기는 어떻게든 먼저 점수를 뽑아야 해.”
코스타 타격 코치가 타순을 확인하며 말했다.
“전진 배치를 할까요?”
“이 이상 어떻게 전진 배치를 한단 말인가?”
“1번에 산체스 2번에 윌리엄 그리고 3번에 아울 4번에 라이트를 쓰는 겁니다.”
이반 감독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받았다.
“전형적인 리드오프를 빼고 장타자로 상위 타선을 구성하자는 말인가?”
“내일 경기는 실투를 노린 홈런으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들을 앞에 배치하는 것이 한 번이라도 많은 기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테이블 세터에 장타자를 활용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난 다르게 생각하네. 내일 경기는 홈런보다는 실책으로 갈릴 거야. 실책을 유발시키는 건 발이 빠른 주자지.”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발생한 피로에 의한 실책.
코스타 타격 코치는 이쪽도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수비를 강화하는 쪽으로…….”
“아니, 기존 라인업 그대로 갈 걸세.”
“그건 변화가 너무 없지 않습니까?”
디비전 시리즈 5차전.
코스타 타격 코치는 필승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반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변화가 능사는 아니야.”
그는 김민과 선수들을 믿고 내일 경기에 임하고자 했다.
“116승을 거둔 팀이네. 그들을 믿지 않는다면 누굴 믿겠나?”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양키스 쪽도 탬파베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맥코비 감독은 호이스트의 마지막 제안마저 거부했다.
“즉흥적인 전략으로는 탬파베이를 이길 수는 없다. 아니, 이겼다고 해도 다음 시리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매번 다른 전략을 들고나와 상대를 격파할 것인가? 포스트 시즌은 컴퓨터 게임이 아니다. 사람이 직접 공을 던지는 스포츠란 말이다.”
그는 선수들의 루틴을 중시했다.
“5차전은 4차전과 같은 라인업으로 간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게 무엇이 있겠나? 우린 4차전 라인업으로 이미 탬파베이를 무너뜨린 바 있다.”
디비전 시리즈 4차전.
양키스는 탬파베이 마운드를 맹폭했다.
특히 제레미의 대활약은 구단주를 흡족하게 했다.
“이제야 돈값을 하는군.”
제레미를 영입한 이후, 양키스는 한 번도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느낌이 온다고. 다시 한번 그 트로피를 들 수 있겠지.”
보스라 불리는 구단주는 디비전 시리즈 승리는 물론 월드시리즈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기는 것은 바로 우리다.”
그는 홀로 축배를 들었다.
같은 날 저녁.
바이슨 수석 코치와 블렛소 투수 코치가 저녁을 함께했다.
“의외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어.”
“그러게 말이야.”
탬파베이 시내는 디비전 시리즈로 술렁거리기보다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리즈가 2-2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겠지.”
블렛소 투수 코치가 스테이크를 자르며 말을 받았다.
“바이슨, 내일은 역사적인 경기가 될 거야.”
두 코치는 사석에서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랜디 존슨과 킴민의 대결인가? 두 선수 사이에서 사진이라도 찍고 싶군.”
통산 300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빅 유닛.
라이브볼 시대 최고의 투수 김민.
두 사람의 대결은 역사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유리할까?”
“젊은 킴이 유리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랜디는 5일을 쉬었어. 포스트 시즌에서 5일 휴식은 꿀맛이겠지.”
“그도 그렇군.”
김민은 나이에 이점을, 랜디는 일정의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키는 타선에 있는 건가?”
양키스 타선은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정점을 찍었다.
특히 컨디션을 회복한 제레미는 설리반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며, 양키스 타선의 부활을 선언했다.
“하지만 킴이 양키스에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나도 그래.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어떤 불길한 예감인가?”
“피로스의 승리라고 할까?”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큰 승리.
그것은 다음 시리즈 상대를 이롭게 할 뿐이었다.
“월드시리즈가 아닌 이상 피로스의 승리는 곤란해.”
디비전 시리즈가 5차전까지 간다면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휴식일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챔피언십 시리즈 홈어드벤테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하루의 휴식조차 이동일로 사라져 버렸다.
물론 탬파베이는 챔피언십 홈어드벤테이지를 가지고 있었다.
“1-0.”
“음?”
“내일 스코어.”
“난 2-1.”
“두 투수 모두 실점한단 말인가?”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야에서 실책이 나올 거야. 이번 시리즈 실책 수가 너무 적었어.”
“그건 내야수들의 집중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집중력은 항상 스트레스를 동반해 5차전쯤 오면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기 힘들 거야. 경기 후반 나오는 실책이 내일 경기를 가르겠지.”
“그건…… 킴에게 불리한 조건일 텐데?”
랜디 존슨은 전형적인 파워 피처였다.
그의 삼진 능력은 메이저리그에서 독보적이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일수록 실책에 강하다고 생각했다.
“랜디만 삼진을 많이 잡는 게 아니야. 이번 시즌 킴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고.”
“하지만 시즌 삼진의 절반 이상을 전반기에 달성했지.”
삼진왕을 향해 미칠 듯 달리던 전반기.
그에 비해 후반기 삼진 숫자는 평년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다.
그 덕분에 김민은 후반기 막판 요한 산타나에게 추격을 허락하기도 했다.
“중요한 경기라고 생각하면 다시 삼진 머신으로 돌아갈 거야.”
“킴이 필요할 때 삼진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킴은 그런 투수야. 그러니까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친구야.”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식사를 마무리했다.
* * *
딸칵. 딸칵.
비디오테이프가 앞뒤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여, 이게 뭐야? 비디오테이프잖아.”
인터넷 동영상이 유행하고 있는 시대.
비디오테이프는 구시대 산물이었다.
“아직은 나쁘지 않아.”
대답한 이는 김민이었다.
“뭘 그렇게 찾아보는 거야? 아니, 누구 동영상이야? 아니, 이거 맙소사 야구잖아!”
놀라고 있는 이는 그의 단짝 록튼.
김민이 화면을 정지시키면서 말했다.
“과거의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었어.”
화면에 나온 유니폼은 지금의 그것과 차이가 있었다.
록튼이 화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90년대인가?”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90년대 중반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이지.”
“10년 전 비디오를 봐서 뭐하게?”
“양키스 선수들의 전성기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말이야.”
록튼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성기라고? 지터의 전성기는 지금 아니야?”
김민이 대답했다.
“양키스에는 지터만 있는 게 아니잖아. 시애틀 시절 에이로드라던가? 제레미도 있고.”
“흠, 그게 내일 경기에 도움이 되나?”
김민이 소파에 몸을 눕혔다.
“분위기 전환용이지.”
“난 킴이 자료와 싸우고 있을 줄 알았어.”
“포스트 시즌에서 정규 시즌 자료는 큰 의미가 없어.”
“그런가? 하지만 지난 시즌은 꽤 많이 봤잖아.”
김민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사실 조금 피곤해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 거야. 원래라면 내일 경기 예상 타순을 뽑아 그것을 분석하고 있어야겠지.”
록튼이 김민 옆에 앉았다.
“킴, 게으름이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어. 정규 시즌을 풀로 뛰고 포스트 시즌, 그것도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이잖아. 피곤함을 느끼는 건 당연해.”
“록튼은 어때?”
“나? 난 괜찮아. 무릎이 약간 결리긴 하지만, 뭐 항상 달고 있는 거고.”
포수들에게 무릎 건강은 롱런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무릎이 이상하면 트레이너를 찾아가라고. 그러다가 진짜 부상이 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게 난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그는 기혼인 스미스에게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킴은 두근거림 없어?”
“두근거림?”
“명예의 전당이 확실한 레전드와 대결이잖아.”
김민이 대답했다.
“처음도 아닌데 뭘.”
지난 몇 년간 김민은 역사에 이름이 남을 만한 대투수들과 싸워 왔다.
- 로저 클레멘스, 페드로 마르티네스, 마이크 무시나, 로이 할러데이, 요한 산타나…….
여기에 랜디 존슨이 추가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질문을 바꾸는 게 좋겠군. 누가 가장 힘들었어?”
“지금.”
김민의 대답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랜디 존슨이 가장 무서운 상대인가?”
“그것보다 지금 양키스 타선이 좀 버거워.”
록튼은 김민이 어떤 의미로 대답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하긴 이번 4차전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지. 어떤 볼 배합도 먹히지 않았어. 코너로 가는 공이나 하이 패스트볼까지 전부 맞고 말았지. 설리반의 멘탈이 괜찮을까 모르겠어.”
설리반은 김민의 가르침을 받은 뒤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그의 승리는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투수는 아프면서 크는 법이야.”
김민은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에 나온 선수는 젊은 제레미였다.
“제레미 경기군.”
“빠르고 정확한 타자였지.”
“지금도 정확해.”
“하지만 빠르진 않아.”
‘제레미는 스테로이드로 스피드를 잃었다. 아니, 스테로이드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나이라면 스피드를 자랑할 수는 없다.’
김민은 어제 보았던 모습과 화면에 비친 제레미를 머릿속으로 비교해 보았다.
“완벽하게 달라.”
“뭐가? 타격자세가?”
김민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모든 것이.”
그는 제레미가 뭔가 위험한 것에 손을 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붉게 충혈된 눈은 정상이 아니었어. 방송에서는 눈에 염증이 조금 난 것이라고 했지만,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아. 저건 약물 부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선수 시절 국내 프로야구에도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투수 코치인 그는 약물을 사용하는 이들을 엄하게 꾸짖었지만, 완벽히 근절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야구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면 되는 게 아니야.’
김민은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 *
제레미는 거울 앞에 섰다.
“패배자의 모습이군.”
붉게 충혈된 눈.
잔뜩 부풀어 오른 근육.
수면에 들지 못하는 각성상태.
예민한 동료들은 그가 특별한 약물을 사용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패배자가 아니야. 내 앞에 서 있는 건 악마지.”
그는 악마가 되었다면 끝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킴을 쓰러뜨리고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돌려받겠다.”
돈과 명예.
그리고 그에 따르는 많은 것들.
제레미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언급된 모든 것을 얻고자 했다.
“난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언젠가는 약물의 후유증으로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제레미는 두 눈을 뜬 채로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을 맞이했다.
* * *
“괜찮은 건가?”
경기 시작에 앞서 네네 타격 코치가 제레미를 찾아왔다.
‘눈은 어제보다 더 붉어져 있군.’
“병원에 가 보는 게…….”
“시리즈 마지막 경기입니다. 오늘 경기를 끝내고 병원을 찾아가겠습니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아니,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자네가 괜찮다고 하면 그렇게 하게.”
그는 제레미를 선발 라인업에 올려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포사다는 아니었다.
‘제레미가 위험해. 저 상태는 정상이 아니야.’
지터 또한 의혹의 눈길로 제레미를 바라보았다.
‘4차전에 보여 준 힘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악마와 손을 잡았다면,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약물을 혐오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잠시 뒤.
타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오늘 탬파베이 선발은 킴이다. 4일 쉬고 등판하는 만큼 체력에 문제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노려야 할 부분은 바로…….”
네네 타격 코치의 브리핑은 30분가량 이어졌다.
양키스 선수들은 평소와 달리 집중해서 네네 타격 코치의 브리핑을 들었다.
‘오늘도 특별한 건 없군. 카운트가 유리할 때 적극적으로 배팅에 나서야 한다. 이것뿐이군.’
같은 시각.
김민은 불펜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꿈은 잘 꿨어?”
록튼의 물음에 김민이 대답했다.
“아니, 악몽이었지.”
“저런…….”
“꿈에 자네가 나오더라고.”
록튼이 마스크를 쓰며 말했다.
“내가 나온 꿈이 어째서 악몽이야.”
“자네가 나오면 꼭 마운드에 있더라도.”
“마운드에 있을 때가 최고로 좋을 때 아니야?”
“글쎄.”
김민은 쓴웃음을 짓곤 연습 투구에 들어갔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오늘 김민의 컨디션이 70%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좋군요.”
“전력투구가 아닌데도 그것을 알 수 있나?”
“표정이나 동작? 대충 그런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블렛소는 김민과 오래 한 투수 코치였다.
‘이 정도 시간이면 얼굴만 보아도 투수의 컨디션을 알 수 있어야 해.’
짧은 식전 행사 후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이 시작되었다.
“플레이볼!”
주심의 시작 선언과 함께 김민이 사인을 교환했다.
-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평소와 다름없는 볼 배합.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김민의 킥킹이 조금 더 높다는 것뿐이었다.
슉!
바깥쪽 빠른 공.
지터는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빠른 공은 이제 지겹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백네트를 넘어갔다.
“파울!”
지터는 공을 쳐 낸 뒤 미간을 좁혔다.
‘묵직한 느낌이다.’
그의 손을 맴도는 감각은 강력한 패스트볼을 때렸을 때 느껴지는 것이었다.
‘킴의 공이 그렇게 빨랐다고?’
지터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확인했다.
95마일(153km).
평소보다는 분명 빨랐다.
하지만 강력하다고 말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더 때려보면 알겠지.’
김민의 두 번째 공은 안쪽 커브.
지터는 이 공을 버텨 냈다.
“카운트 1-1에서 세 번째 공을 기다립니다!”
“긴장되는 승부군요.”
김민의 세 번째 공은 다시 바깥쪽 패스트볼.
지터는 제대로 타이밍을 잡았다.
‘그대로 밀어낸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수 앞으로 굴렀다.
‘어째서 이것밖에……’
지터는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1, 2루 사이를 빠지는 안타가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 타구는 1루수 아울 앞으로 굴러가는 평범한 땅볼에 불과했다.
아울이 직접 공을 잡아 베이스를 터치했다.
“지터, 1루수 땅볼로 물러납니다!”
지터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지 않고 김민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킴! 공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지터에게 네네 타격 코치가 물었다.
“바깥쪽을 민 것 같은데 힘이 부족했나?”
“아닙니다. 전 정확히 때렸습니다. 하지만 공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네네 타격 코치가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호이스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호이스트라면…….”
“전력분석팀장이지. 그가 그러더군. 오늘 경기에서 킴이 무시무시한 공을 던질 수도 있다고.”
지터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킴은 여유를 남기고 있었단 말입니까?”
“글쎄, 그것과 이것은 조금 다른데…… 호이스트는 기온에서 답을 찾더군.”
“기온 말입니까?”
“최근 트로피카나 필드 기온이 킴과 잘 맞는다고 하더군. 특히 이번 5차전은 그를 위한 특별 세팅이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했어.”
지터가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그건 킴을 위해 그라운드의 기류를 조작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네네 타격 코치가 손을 저었다.
“지터, 그건 너무 나갔군. 트로피카나 필드에 그런 장치가 되어 있을 리 없잖아.”
다음 순간 나이젤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킴! 시작이 좋습니다. 지터와 나이젤을 가볍게 잡아냅니다!”
“패스트볼 구속을 보면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요. 하지만 이 타자는 쉽지 않을 겁니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제레미가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다음 타자는 4차전의 영웅 제레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