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60화 (260/296)

260화 악마와 영웅 01

부러진 주사기와 흘러내린 약물.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제레미는 더 강한 약물을 추천하는 개인 트레이너에게 고개를 흔들었다.

트레이너가 물었다.

“여기서 그만둘 겁니까?”

“몸이 한계야.”

“부작용이 적은 약물을…….”

제레미가 쓰디쓰게 웃었다.

“이제와 부작용이 적은 약물이라고?”

“제레미, 약물을 끊으면 당신의 성적은 급격히 떨어질 겁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이대로라면 몸이 버티지 못해. 한계라고!”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제레미는 선발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

양키스 팬들은 맥코비 감독을 비난했지만,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컨디션이 엉망인 선수를 쓸 수는 없잖아!

제레미는 어떻게든 시리즈 내에 자신의 컨디션을 정상으로 맞추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약물에 너무 깊게 담가져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이 약물을 써 보시죠.”

제레미가 고개를 돌렸다.

“그건…….”

캡슐형으로 되어 있는 알약.

표면에는 제조사나 약물의 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약물인가?’

트레이너가 약에 대해 설명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각성제입니다. 단기간 효과는 최고죠. 디비전 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당신에게 아주 딱 맞는 약물입니다. 사실 지난해 주입했던 약물은 이것을 1/10로 희석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설명을 마친 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제레미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스테로이드와는 격이 다른 약물. 이것에 손대는 자는 그 인성마저 파괴될 수 있다.’

흔히 PTSD라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물질.

제레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위험한 물건이야.”

“지금은 위험을 가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트레이너가 그의 손바닥 위에 캡술을 올려놓았다.

“쓰고 안 쓰고는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마 이걸 쓰게 될 겁니다.”

그는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렸다.

제레미는 멀어져 가는 트레이너를 보며 낮게 말했다.

“나는 악마와 손을 잡았군.”

남들도 다 하니까.

제레미는 이런 마음으로 약물을 시작했다.

하지만 군용 각성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것에 손을 대는 순간 그의 인생이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대로 끝내기에는 남은 선수 생활이 너무 길었다.

* * *

디비전 시리즈 3차전.

탬파베이 레이스와 뉴욕 양키스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맞붙었다.

“오늘 탬파베이 선발은 클락입니다.”

“설리반이 아니라 클락이 선발로 나왔다는 것은 좌완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홈팀 양키스의 선발은 좌완 라몬스.

라몬스는 양키스에 합류할 때 만해도 우승을 위한 마지막 열쇠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팀의 3선발을 맡고 있을 뿐이었다.

“1년 전만 해도 클락과 라몬스는 클래스 차이가 컸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반 감독은 클락이 라몬스를 많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다.

“줄어들긴 했지만, 차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클락보다 라몬스가 위라고 평가했다.

이반 감독이 그라운드를 주시하며 말했다.

“그 정도 차이는 당일 컨디션으로 극복이 가능한 것 아니겠나?”

1회 초.

탬파베이 공격.

“플레이볼!”

라몬스는 자신 있게 스트라이크존으로 공을 던졌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울림을 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예리하게 코너를 공략.

양키스 팬들은 라몬스의 스트라이크에 미소를 지었다.

“라몬스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

“랜디 존슨과 조지 왈트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라몬스가 1선발이었다고.”

“그리고 클락보다는 라몬스지. 솔직히 말해서 둘은 비교가 되지 않아.”

그러나 라몬스의 좋은 평가는 브라이튼의 안타가 나오자마자 깨졌다.

“브라이튼, 깨끗한 중전 안타입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브라이튼은 뉴욕에 오면 눈빛이 달라진단 말이야.”

“사연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죠.”

스미스는 브라이튼과 고향이 같았다.

때문에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브라이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포사다는 마스크 안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큰일 났군. 주자를 둔 채 산체스와 윌리엄이야.’

산체스와 윌리엄.

두 천재 타자는 단기전에서 아울이나 라이트보다 훨씬 위험했다.

‘이들이라고 매 타석 안타를 치는 건 아니지만, 주자가 나가면 집중력이 올라간단 말이야.’

그는 두 사람의 컨디션이 최고라면 라몬스에게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피할까? 아니야. 산체스 정도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전성기에 접어든 윌리엄이라면 몰라도 산체스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

포사다는 이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3분 뒤.

그의 판단에 대한 결과가 나왔다.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입니다! 브라이튼! 홈으로 돌진합니다!”

안타와 2루타 콤비네이션으로 선취점.

맥코비 감독이 혀를 찼다.

“시작과 동시에 실점이라고? 저 두 녀석이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는 라몬스와 포사다를 함께 비난했다.

맥코비 감독이 배터리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이유는 오늘 경기가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 시리즈 3차전을 잡는 자가 시리즈를 가져간다.

반즈 투수 코치도 네네 타격 코치도 이 말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탬파베이가 3차전을 이길 경우 4차전을 패해도 홈에서 양키스를 잡을 수 있었다.

양키스가 이길 경우에는 더욱 빨리 시리즈가 끝날 가능성이 컸다.

이반 감독은 3차전을 잡은 뒤 4차전에서 이번 시리즈를 끝내고 싶었다.

‘킴이 나오기 전에 시리즈를 끝낸다.’

그는 김민이라는 슈퍼에이스보다는 클락과 설리반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쪽이 훨씬 더 확률이 높다고 계산했다.

“산체스 다음 타자는 윌리엄입니다.”

포사다는 윌리엄을 고의사구로 내보내고자 했다.

그러나 맥코비 감독은 정면 승부를 지시했다.

“부딪혀서 깨지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다가 넘어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맹장으로 유명한 그다운 발언이었다.

딱!

날카로운 타구가 지터 정면으로 날아갔다.

지터는 글러브를 들어 타구를 잡아낸 뒤, 움직임만으로 2루 주자를 묶었다.

“지터 좋은 수비로 윌리엄을 막아 냅니다!”

“좋은 타구가 나온다고 해서 다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니죠. 라몬스가 오늘 경기 첫 아웃 카운트를 잡았습니다.”

맥코비 감독은 지터의 호수비에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보라고! 도망치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이지!”

오늘 라몬스의 구위는 나쁘지 않았다.

포사다는 두 타자를 상대한 뒤, 라몬스의 구위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90마일 중반의 패스트볼. 80마일 중반의 슬라이더. 그리고 그보다 더 느린 체인지업.’

그는 이 정도 조합이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산체스와 윌리엄이 너무 괴물이었던 거야. 평범한 타자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그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라몬스는 아울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오늘 경기 첫 삼진을 기록했다.

“아울! 체인지업에 크게 헛스윙합니다!”

“무게 중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스윙이 나온 것입니다.”

이반 감독은 한 점으로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무사 주자 2루에서 3, 4, 5번이 타점을 올리지 못한다면 이건 조금 그렇지 않은가?”

바이슨 수석 코치도 한 점 정도는 더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양키스 배터리는 여기서 한 점으로 막는다면 최고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1회에 1점은 잊고 갈 수 있다.’

‘여기서 더 실점하지 않는다면, 빠르게 따라붙을 수 있다.’

팡! 팡!

패스트볼과 슬라이더가 잇달아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했다.

전광판은 투수의 일방적 리드를 말하고 있었다.

“카운트 0-2! 라이트, 코너에 몰립니다.”

5번 타자 라이트.

그는 신인으로서 디펜딩 챔프의 클린업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주목받는 일이 드물었다.

뉴욕에 위치한 언론사 기자 두 명이 라이트를 보며 말했다.

“라이트가 여섯 시즌을 채우고 FA가 되면 31세. 첫 번째 FA 시즌에는 32세. 계약을 못 할 정도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20대에 FA가 되는 선수들에 비하면 매력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

“저런 선수가 의외로 알짜일 수 있어. 마이너리그에서 오래 굴렀기 때문에 멘탈이 단단하다고.”

“하지만 양키스가 원하는 유형은 아니야. 이쪽은 타고난 천재가 더 어울리거든.”

두 사람은 양키스에 어울리는 탬파베이 선수로 산체스와 윌리엄을 꼽았다.

“윌리엄은 곧 FA야.”

“탬파베이는 윌리엄을 지키기 힘들 거야. 하지만 양키스가 윌리엄을 영입하기도 힘들걸? 이번 시즌이 지나면 셀러리가 꽉 막힐 테니까.”

양키스는 랜디 존슨과 조지 왈트를 데려오기 위해 미래를 희생했다.

윌리엄이 FA 시장에 나온다고 해도 그들은 그를 위한 딜을 만들 수 없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더그아웃 앞에 떨어졌다.

“파울!”

라이트는 투 스트라이크 노 볼로 코너에 몰렸지만, 연달아 파울을 때리면서 버텼다.

“끈질기군요.”

맥코비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성이 있어. 난 저런 친구를 좋아하지.”

그는 깔끔한 천재형보다는 지저분한 파이터를 좋아했다.

물론 라이트가 지저분한 파이터라는 것은 아니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갈랐다.

“지터와 로드! 두 사람 모두 잡지 못했습니다!”

2루에 있던 윌리엄이 가볍게 홈인, 점수는 2-0으로 벌어졌다.

“오늘 경기 감이 좋습니다.”

바이슨은 승리를 예감했지만, 양키 스타디움에서 승리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1회 말.

양키스가 반격에 나섰다.

지터와 나이젤의 연속 안타.

그리고 호크의 희생타.

“양키스! 1점을 추격합니다. 스코어는 2-1입니다!”

클락의 구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양키스 타선을 막아 내지 못했다.

“펜스까지 굴러가는 2루타!”

에이로드의 동점타.

경기는 순식간에 2-2 동점이 되었다.

부르스가 그 광경을 보며 김민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클락의 구위는 렉터보다 훨씬 낫지 않나?”

클락이 렉터보다 낫다.

이것은 코칭 스텝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양키스를 상대로는 달랐다.

양키스 타자들은 공격적인 클락을 훨씬 더 쉽게 생각했다.

김민이 입을 열었다.

“포수 리드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리드라면…….”

“록튼은 말이야. 렉터를 리드할 때 방어적으로 볼 배합을 가져갔어. 하지만 지금은 클락의 구위를 믿고 공격적으로 리드를 가져가고 있지. 그 차이가 지금의 스코어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어.”

부르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클락의 구위는 좋은 편이지만, 양키스를 상대로 공격적으로 임할 정도는 아니란 말인가?”

“아마도.”

클락은 더 점수를 내주지 않았지만, 다음 이닝에서도 위태로운 투구를 보여 주었다.

“부르스, 불펜에서 대기하라는 지시야.”

부르스가 불렸다는 것은 클락이 5이닝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

김민이 그라운드를 보며 말했다.

“매번 깔끔한 경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3차전은 접전이었다.

탬파베이가 달아나면 양키스가 동점을 만들었고, 양키스가 역전하면 다시 탬파베이가 따라붙었다.

4회가 끝났을 때 스코어는 5-4 양키스의 리드.

이반 감독은 클락의 실점이 아쉬웠다.

“4이닝 동안 5실점.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성적이군.”

클락은 최선을 다해 던졌지만, 양키스 타선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부르스를 내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탬파베이의 두 번째 투수는 부르스였다.

5회 초.

탬파베이 공격.

벤치에 앉은 록튼이 김민에게 물었다.

“킴, 왜 통하지 않는 걸까?”

1회가 끝난 뒤, 록튼은 볼 배합을 완전히 바꾸었다.

1차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바로 그 볼 배합.

‘렉터가 효과를 봤던 그 볼 배합을 클락이 사용한다면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4이닝 5실점.

록튼은 클락의 부진과 자신이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민이 말했다.

“운이란 요소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으니까.”

그는 록튼의 볼 배합이 틀렸거나 클락이 잘못 던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클락은 렉터보다 더 정교한 제구력으로 코너에 공을 꽂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록튼이 물었다.

“킴, 운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차이가 크지 않아?”

“그럼 양키스 타자들의 집중력 차이라고 해 두지.”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양키스 타자들은 긴장감보다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느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 이 경기에서 패하면 끝이다.

- 3차전을 이기는 쪽이 시리즈를 가져간다!

높아진 집중력은 클락의 맞춰 잡는 피칭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투수를 믿고 끝까지 리드해. 네가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나는 거야.”

클락의 뒤를 이어 올라갈 부르스는 구위와 제구력, 둘 다 클락보다 떨어졌다.

록튼의 리드마저 무너진다면 경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장타가 터졌다.

“윌리엄의 2루타가 나왔습니다!”

“아쉬운 타구군요. 비거리가 조금만 더 나왔더라면 펜스를 넘어갔을 겁니다.”

라몬스는 힘에 부치는 얼굴이었다.

‘지난 시즌만 해도 이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지난 시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탬파베이를 상대한 바 있었다.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산체스와 라이트의 가세가 큰 건가?’

2003 시즌에는 두 사람 대신 머레이와 그렉스가 있었다.

라몬스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맞아. 확실히 그랬어. 그 두 사람이 훨씬 더 쉬웠어.’

슉!

패스트볼이 코너를 노리자 배트가 그것을 막고 나섰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펜스를 넘어갔다.

“아울! 투런 홈런입니다! 이것으로 역전입니다!”

“아울이 4번 타자 몫을 해 주는군요. 이반 감독, 든든하겠습니다. 이런 4번 타자를 구하긴 아주 어렵거든요.”

6-5 탬파베이의 역전.

하지만 이것으로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7회 말 양키스가 부르스를 두들겨 3점을 내면서 경기는 다시 8-7 양키스 리드로 바뀌었다.

“1점 차이라.”

“8회에 리베라가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경기라면 그럴 수도 있지.”

클로저의 조기 투입.

이기고 있다면 이반 감독도 한 번쯤 생각했을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우린 지고 있다.’

선택권은 맥코비 감독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맥코비 감독은 조기 투입보다는 9회 투입을 선택했다.

“리베라 한 사람에게 너무 의존해서는 이번 시리즈를 잡는다고 해도 다음 시리즈가 문제다.”

그는 리베라를 제외한 다른 불펜들이 더 힘을 내주길 바랐다.

하지만 불펜 투수들은 맥코비 감독의 바람에 답하지 못했다.

“산체스!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립니다.”

산체스의 적시타.

스코어는 8-8 동점.

“지금이라도 리베라를…….”

맥코비 감독이 오른손을 들었다.

“아직 카운트가 하나 남았어.”

그는 카운트 하나를 잡고 리베라를 올릴 생각이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어쩌면 윌리엄에게 리베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옆을 빠져나갔다.

“연속 안타입니다! 1사 주자 1, 3루입니다!”

이번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리베라를 올려.”

“알겠습니다.”

전설적인 클로저 리베라.

그가 양키스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 위에 섰다.

“8회 초 리베라가 등판합니다! 맥코비 감독이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오늘 경기만큼은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가 보이는군요.”

배터 박스에 들어선 타자는 4번 타자 아울.

4번 타자와 클로저의 대결.

김민이 그라운드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이 대결에서 이기는 쪽이 경기를 가져간다.”

승부의 분수령.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힘없이 1루로 흘렀다.

4번 타자의 기습 번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리베라 달려와서 공을 잡습니다! 하지만 홈에는 던지지 못합니다!”

3루 주자 산체스의 빠른 발은 리베라의 송구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이프! 홈에서 세이프!”

리베라는 1루에 공을 던져 타자 주자를 잡는 데 그쳤다.

“탬파베이가 9-8로 역전에 성공합니다.”

“아울의 기습 번트가 나올 것이라고는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반 감독은 아울이 아웃되었음에도 박수를 쳤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산체스와 아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김민은 이 한 점이 크다고 보았다.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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