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포스트 시즌의 사나이 02
“킴! 삼진으로 첫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다운 퍼포먼스입니다. 킴이 무너지지 않는 한 탬파베이는 언제든 시리즈를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김민은 팬들의 환호와 함께 마운드를 내려갔다.
‘오늘 경기의 키는 내가 아니라 조지 왈트가 쥐고 있다.’
조지 왈트.
탬파베이 타선은 그를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
“조지 왈트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조지는 이번 시즌 탬파베이를 상대로 2번 등판해 두 번 모두 승리했습니다.”
“밥, 랜디와 조지가 3승 1패로 탬파베이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왜 승차는 좁혀지지 않은 거죠?”
“다른 투수들이 그 이상으로 많이 졌기 때문입니다.”
맥코비 감독은 김민의 투구를 보곤 혀를 찼다.
“1회 초는 어렵지 않은 공이었어. 그런데도 공략하지 못했다는 것은 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건가?”
네네 타격 코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트라우마보다는 제레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런 공에 룩킹 삼진을 당할 정도로 말인가?”
네네 타격 코치의 대답에 앞서 수석 코치가 반문했다.
“몸살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요?”
“네네, 체크하지 않은 건가?”
네네 타격 코치가 대답했다.
“경기 전 체크 때는 괜찮다고…….”
“그래도 확실하게 체크했어야지. 디비전 시리즈가 아닌가?”
“죄송합니다.”
네네 타격 코치는 제레미의 컨디션을 체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미트를 찢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파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101마일(163km).
김민은 전광판 구속을 보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미친 구속이군.”
과거로 돌아왔을 때조차 꿈꿔 보지 못한 구속.
조지 왈트는 그런 공을 매 경기 던지고 있었다.
“브라이튼의 배트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브라이튼이 연속해서 헛스윙하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브라이튼! 고향 팀이라고 힘을 못 쓰는 거냐!”
“사실은 양키스에 가고 싶었다면서!”
브라이튼은 미간을 좁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내 탓이 아니라고. 그리고 양키스에 가고 싶다고 공식적으로 인터뷰한 적도 없다고.’
조지 왈트의 패스트볼은 컨디션이 좋을 때도 컨택이 힘들었다.
하물며 컨디션이 떨어진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음 공은 어떻게든 때린다.’
브라이튼은 배트를 짧게 잡은 뒤 타이밍을 당겼다.
그러나 다음 공은 패스트볼이 아닌 커브였다.
‘이…… 이런…….’
배트가 크게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어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이튼! 팽이처럼 돌다가 그 자리에 쓰러집니다!”
팽이처럼 돌면서 쓰러지는 것은 보통 힘을 앞세우는 클린업에서 많이 보여 주는 행동이었다.
브라이튼처럼 컨택이 좋은 타자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일까?
탬파베이 팬들이 다시 브라이튼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똑바로 해!”
“너무 티가 나잖아! 양키스를 그만 도우라고!”
“수비에서 에러하진 않겠지? 오늘 등판은 킴이라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브라이튼에게 아울이 말했다.
“브라이튼,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않아.”
브라이튼은 어두운 표정으로 벤치에 앉았다.
“빌어먹을…….”
그가 시선을 바닥으로 돌린 순간 산체스가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탬파베이의 다음 타자는 산체스입니다!”
산체스는 표정 없는 얼굴로 조지 왈트를 주시했다.
“킴, 산체스는 어떨까?”
록튼의 물음.
김민이 대답했다.
“첫 타석은 못 칠 거야.”
“산체스의 재능으로도 안 되는 건가?”
“조지 왈트의 재능도 보통은 아니니까.”
파앙!
초구는 배트에 스치지도 않은 깨끗한 스트라이크.
“스윙 스트라이크!”
산체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조지 왈트는 미소를 지었다.
록튼이 손을 머리 뒤로하며 말했다.
“쾌활한 친구군. 마운드에서 미소를 짓는 투수는 많지 않은데 말이야.”
조지 왈트는 메이저리그에서 기분파로 유명했다.
긁히는 날에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무시무시한 공을 던졌고, 긁히지 않는 날에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꾸역꾸역 이닝을 먹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
“그거, 우리한테 좋은 소리가 아닌데?”
“그렇지. 좋은 소리가 아니지.”
김민은 그라운드를 주목했다.
‘언제 보아도 산만한 투구폼이야. 과거의 나였다면 한소리 했겠지.’
지금은?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조지 왈트의 산만한 투구폼이 그에게 맞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공이다.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있다면 폼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부상이 염려되는 폼이라면 바꿀 필요는 있었다.
탁!
“산체스! 배트가 스피드에 밀립니다.”
산체스는 배트를 타고 올라온 충격에 미간을 좁혔다.
‘스치기만 했는데 이 정도인가? 대체 얼마나 강한 공을 던지는 거야?’
그는 강한 투수를 상대할 때 더욱 힘을 내는 타자였다.
그러나 조지 왈트는 강하다는 기준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대기 타석의 윌리엄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산체스, 타석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녀석의 공을 칠 수 없을 거야.”
그는 마이너리그 시절 조지 왈트의 공을 때려 홈런을 만든 바 있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뒤로는 리그가 갈리면서 상대할 기회가 적었다.
이번 시즌 조지 왈트의 이적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
결과는 7타수 2안타로 조지 왈트의 판정승.
“나도 마찬가지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녀석의 공을 칠 수 없을 테지.”
탁!
세 번째 공도 파울.
조지 왈트는 미소를 지었다.
“기분 나쁜 미소야.”
김민이 록튼의 말을 받았다.
“저런 식으로 텐션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군.”
네 번째 공.
산체스는 크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은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록튼은 산체스의 아웃에 혀를 찼다.
“산체스마저 당할 줄이야.”
“첫 타석은 못 친다고 그랬잖아.”
“산체스가 저렇게 당할 정도면 난 어떻게 하라고.”
“멋지게 세 번 배트를 휘두르고 들어와. 록튼에게 안타나 홈런을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테니까.”
록튼이 조지 왈트를 주시하며 말했다.
“킴이 그렇게 말하니까. 오기가 생기는데.”
“오기로 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주지.”
배터 박스에 들어선 타자는 3번 타자 윌리엄.
조지 왈트는 과거 라이벌을 보곤 모자챙을 만졌다.
그때 누군가 관중석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조지 왈트의 예고 삼진이다!”
예고 삼진.
조지 왈트는 삼진을 잡을 때 항상 모자챙을 잡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김민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자를 속이기 위한 프로파간다인가? 앞에 두 번은 모자챙을 만지지 않았어.”
“글쎄, 조금 더 집중하겠다는 예고 정도가 아닐까?”
“어느 쪽인지는 보면 알겠지.”
윌리엄은 배트를 길게 잡았다.
‘녀석의 패스트볼은 다음을 생각하면 칠 수 없다.’
삼진을 각오하더라도 빠른 스윙.
조지 왈트에게 빼앗은 2개의 안타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슉!
빠른 초구.
생각할 여지도 없이 공이 날아들었다.
탁!
“파울!”
조지 왈트는 윌리엄의 파울 타구가 1루 관중석에 떨어지자 고개를 갸웃했다.
‘쳐 냈어? 그것도 초구를?’
브라이튼과 산체스는 윌리엄과 달리 초구를 스치지도 못했다.
‘대기 타석에서 타이밍을 읽은 모양이군. 하지만 두 번째 공부터는 힘들 거야.’
조지 왈트는 빠르게 사인을 교환한 뒤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슉!
빠르게 날아가다가 휘어지는 고속슬라이더.
윌리엄의 배트가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록튼이 혀를 찼다.
“뭐야! 저게 슬라이더라고?”
“진짜 고속 슬라이더군.”
조지 왈트의 세 가지 구종은 투수 코치들이 바라마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조지 왈트는 그 세 가지 무기를 가지고도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가 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세 가지 무기를 유지할 만한 체력이 없다.’
마의 90구.
조지 왈트는 90구를 넘기는 순간 구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 투수 코치는 그의 약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지 왈트는 8회까지 무적입니다. 하지만 9회는 아니죠. 그래서 리베라가 필요한 겁니다.”
두 번째 약점 기복.
조지 왈트는 긁힐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큰 투수였다.
물론 긁히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공략할 수 있는 투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긁히지 않을 때는 렉터나 클락 정도의 투수로 클래스가 내려왔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떨어지는 커브에 헛스윙.
“조지 왈트! 윌리엄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1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합니다!”
“상대 팀 슈퍼스타를 상대로 예고 삼진인가요? 포스트 시즌다운 피칭입니다! 팬들은 이런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법이죠.”
칼튼은 혀를 찼다.
“예고 삼진이라고? 건방진 녀석!”
스나이더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칼튼, 수비 시간이야.”
“알고 있다고.”
칼튼이 글러브를 챙겨 스나이더와 함께 그라운드로 향했다.
1회 두 투수는 모두 상대를 압도하는 피칭을 보여 주었다.
2회도 마찬가지였다.
김민과 조지 왈트 두 사람은 4, 5, 6번을 상대로 모두 주자를 내보내지 않고 이닝을 끝냈다.
“투수전이군.”
“이틀 연속이군요.”
탬파베이는 저득점 경기에 강한 팀이었다.
하지만 어제 패배는 꽤 아팠다.
이반 감독이 말했다.
“킴이 버텨 준다고 해도 1점은 뽑아야 해.”
“한 타순 돌면 괜찮아질 겁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탬파베이 타자들의 힘을 의심하지 않았다.
‘월드시리즈 우승 타선에 신인왕 산체스가 더해졌다. 타선의 힘은 지난 시즌보다 더 세다.’
그는 터지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는 타선이 탬파베이 타선이라고 생각했다.
‘변수는 하나, 도화선에 불이 붙지 않는다면 우리가 질 것이다.’
3회 초.
8번 타자 에드가 양키스의 첫 안타를 뽑아냈다.
“에드! 안타입니다!”
“킴의 슬라이더를 가볍게 밀어서 안타를 만들어 냈군요.”
에드의 안타는 탬파베이 시프트를 뚫은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다.
“1사 1루, 배터 박스에 선 타자는 알렌입니다!”
“알렌은 하위 타선에 위치하고 있지만, 한 방이 있는 선수입니다. 여기서 장타가 터진다면 선취 득점이 가능합니다.”
양키스 하위 타선은 얕볼 수 없다.
이것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김민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하위 타선에서 힘을 아끼고 싶었는데 힘들 것 같군.’
그는 오늘 경기 투구수를 조지 왈트와 같은 90구로 낮춰 잡았다.
‘던질 수 있는 데까지는 전력투구.’
슉!
초구는 바깥쪽 스플리터.
알렌의 배트가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주심이 목소리를 높인 순간 록튼이 미트에서 빠르게 공을 뺐다.
“공이 2루로 갑니다!”
촤아아악!
에드의 발이 브라이튼의 글러브를 피해 2루 베이스를 파고들었다.
“세이프!”
김민은 모자를 벗은 뒤 록튼에게 자신의 잘못이라는 사인을 보냈다.
‘타자에 집중하느라 타이밍을 내주고 말았다.’
그는 주자의 도루를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 도루는 1차적으로는 투수의 책임이다. 주자가 도루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포수가 아닌 투수의 약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즉, 투수가 약점을 보여 주지 않으면 주자는 2루로 뛸 수 없다.
하지만 팬들은 브라이튼의 커버가 나빴기 때문에 2루에서 주자가 살았다고 생각했다.
“브라이튼! 또 스파이짓이냐!”
“양키스를 상대로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번에는 록튼의 송구도 나쁘지 않았다고!”
브라이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빌어먹을, 뭐든 내 잘못이냐!’
김민은 야유가 심해지자 타임을 걸었다. 그리곤 내야수들을 마운드로 불러 모았다.
“킴, 무슨 일이야?”
스나이더의 물음에 김민이 말했다.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겠어.”
“음? 알렌에 대한 시프트가 아니라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겠다고?”
록튼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다음 타자는 지터잖아 괜찮겠어?”
“괜찮아. 단지 하나 걸리는 게 있어.”
“뭔데?”
“배트에 공이 맞게 되면 유격수 쪽으로 갈 거야.”
브라이튼이 미간을 좁혔다.
“킴, 설마 나를 믿지 못해서 타임을 건 것은 아니겠지?”
“믿지 못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관중들의 말에 신경을 쓴다면 빠른 타구를 잡아내지 못할 거야.”
브라이튼이 얼굴을 굳혔다.
“야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정말로 집중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 아니, 하지 못한다면 프로가 아니야.”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 말을 믿겠어.”
그는 고개를 칼튼에게 돌렸다.
“알렌은 1, 2루 쪽으로 갈 테니까. 칼튼, 부탁해.”
“오케이.”
탬파베이 내야수들은 자신의 포지션으로 흩어졌다.
지터는 그 모습을 보고 탬파베이가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치기 좋은 공을 던져 주고 시프트를 걸겠다는 생각이군.’
알렌이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투구에 들어갔다.
슉!
주자가 2루에 있었기 때문에 알렌은 진루타에 집중했다.
툭!
배트에 맞은 공이 1, 2루 방향으로 날아갔다.
‘빠지지 않아도 주자를 3루에…….’
그러나 칼튼의 커버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래서는 2루 주자가 움직일 수 없어.’
2루 주자 에드는 3루를 향해 뛰려고 하다가 상대의 빠른 대처에 2루로 되돌아왔다.
“1루에서 아웃! 2루 주자를 3루로 가지 못합니다.”
지터는 탬파베이의 빠른 시프트를 보곤 혀를 찼다.
‘역시 시프트였군.’
그는 가볍게 배트를 한 번 휘두르고 타석에 들어섰다.
“2사 2루. 지터와 킴의 대결입니다.”
“알렌은 몰라도 지터는 쉽지 않은 타자죠.”
초구는 바깥쪽 슬라이더.
슉!
지터가 예상한 공과 반대되는 공이었다.
‘초구는 카운트 잡는 공이 아니었나? 시프트도 없고, 이상한데?’
배트가 멈춘 순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빠져나갔다.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지터가 공을 하나 골랐군요.”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있는 만큼 킴도 신중을 기하는 것 같습니다.”
안타 하나면 주자가 홈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
김민은 호흡을 조절했다.
‘역시 그런 공에는 속지 않는다는 거군.’
첫 번째 슬라이더는 쳐 주면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에서 던진 공이었다.
중요한 공은 바로 두 번째 공이었다.
슉!
빠른 공이 안쪽으로 날아왔다.
‘로케이션!’
지터는 카운트 잡는 공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배트가 멈췄다.
‘시프트!’
그는 공을 보는 대신 시프트를 확인했다.
‘변화가 없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주심이 손을 들었다.
“스트라이크!”
상대에 대한 의심.
그것이 지터의 배트를 멈추게 만들었다.
“킴, 카운트를 1-1로 만듭니다.”
맥코비 감독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지터가 하지 못하면 곤란한데…….”
지터는 홈런 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적시타를 만드는 능력은 양키스 제일이었다.
“지터는 해낼 겁니다.”
네네 타격 코치는 지터의 투쟁심과 재능을 믿었다.
‘지터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
이반 감독도 지금이 경기 초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선취점을 내주면 어제처럼 끌려갈 가능성이 커.”
“킴이라면 막아 낼 겁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평균자책점이 0점대라는 것을 강조했다.
“킴은 평소대로 던지면 되는 겁니다.”
김민은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곤 주자를 슬쩍 바라보았다.
‘뛸 생각은 없군.’
3루 도루보다는 지터의 안타 때 홈을 밟겠다.
‘미안하지만 안타는 없다.’
모두의 시선이 김민의 손끝에 모였다.
다음 순간 김민이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슉!
안쪽으로 가는 공.
지터의 배트가 움직였다.
‘약간 느린 느낌. 패스트볼은 아니다.’
커터 또는 스플리터.
지터는 그렇게 판단했다.
‘스윙 높이를 낮춰서 때려낸다.’
탁!
배트에 걸린 느낌은 좋지 않았다.
‘아까 그 공!’
김민의 고속 포크볼.
그러나 이번에는 헛스윙 대신 앞으로 공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지터다운 집중력이었다.
“느린 타구가 유격수 쪽으로 향합니다!”
“제대로 맞은 타구는 아니지만, 속도가 느려 까다로운 타구입니다!”
록튼은 미간을 좁혔다.
‘지터의 빠른 발을 생각한다면 내야 안타가 될 수도 있다!’
지터의 발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민과 록튼의 시선이 동시에 브라이튼에게 모였다.
“브라이튼이 달려듭니다!”
김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침착해!”
브라이튼은 맨손 캐치를 시도했다.
‘이게 아니라면 1루에서 지터를 잡을 수 없다.’
록튼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바보야! 내야 안타를 줘도 2루 주자는 홈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지만 여기서 악송구가 나오면 바로 실점이야!’
그는 공을 던지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라이튼은 공을 잡았고, 그대로 1루에 송구했다.
‘저 바보가!’
팡!
아울의 미트를 때리는 공.
결과는 록튼의 생각과 달리 좋았다.
“브라이튼! 멋진 수비로 지터를 잡아냅니다!”
“공수교대군요. 양키스로서는 정말 아까운 공격이었습니다.”
이반 감독과 바이슨 수석 코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일 날 뻔했군.”
“지나치게 공격적인 수비였습니다.”
“그래도 막았으니 된 거야.”
김민은 마운드에서 브라이튼에게 다가가 주먹을 내밀었다.
“좋은 집중력이었다.”
“정말 나한테 오더군.”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3회 말.
탬파베이가 위기 뒤 반격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