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55화 (255/296)

255화 포스트 시즌의 사나이 01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미국에서는 잔디 하나만 깎을 줄 알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멋진 차와 저택 그리고 모델 출신 와이프.

여기에 하나 더.

슈퍼스타.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배트를 들었다.

탁.

김민은 책을 덮고 일어났다.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방법이 나빠.”

그가 읽던 책은 은퇴한 슈퍼스타 케일의 자서전이었다.

책에는 케일이 마이너리그에서 경험했던 고생과 도전 그리고 좌절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지.”

그것은 바로 약물.

케일을 슈퍼스타로 만든 홈런과 타점은 스테로이드의 산물이었다.

브라이튼이 다가와 물었다.

“킴, 독서인가?”

“왜? 난 책을 읽으면 안 되는 모양이지?”

“아니, 킴에게 독서는 이상한 일은 아니지. 매일 뭔가를 읽고 있으니까. 오늘은 책을 읽고 있어서 한마디 던져 본 거야.”

브라이튼의 말대로 김민은 상대 타자들에 대한 정보가 담긴 리포트를 매일 읽곤 했다.

김민이 그에게 물었다.

“컨디션은 어때?”

브라이튼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별로야.”

“곤란한데? 오늘은 내 선발 경기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컨디션이 올라오질 않아. 빌어먹을…… 사실은 피로가 쌓인 모양이야.”

정규 시즌 116승.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연승을 달리는 것과 지고이기는 것을 반복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단연 전자다.

승리가 주는 쾌감은 전자가 컸지만,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 좋지 않았다.

후자는 버릴 경기는 버리고, 이길 경기는 최대한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 전자는 모든 경기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었다.

최다승 기록도 마찬가지였다.

기록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연승과 마찬가지로 한 경기 한 경기에 큰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케니히는 어때?”

“글쎄, 오늘 경기는 나온다고 하던데.”

“검진 결과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군.”

김민은 탬파베이 타자들의 컨디션에 B를 주었다.

‘116승의 피로. 시애틀이 포스트 시즌에서 정규 시즌 만한 위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머니볼로 유명한 빌리 빈은 프런트가 할 수 있는 것은 정규 시즌까지고, 포스트 시즌은 운의 영역이라 말했다.

김민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포스트 시즌은 정규 시즌의 연장이다. 이 둘을 따로 생각할 수는 없다. 즉, 정규 시즌의 피로가 포스트 시즌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빌리 빈은 이 점을 무시한 채 정규 시즌에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정규 시즌 마지막은 포스트 시즌을 대비하는 기간이 돼야 해.’

그는 양키스 타자들의 컨디션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쪽은 B+, 우리 팀만큼은 아니지만, 116승 팀하고 경쟁했으니, 피로가 없을 수는 없겠지. 어제 렉터의 공에 말렸던 것도 피로가 한몫했을 거야.’

윌리엄이 클럽 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케일의 책이잖아. 킴, 케일에게 관심이 있었나?”

김민이 대답했다.

“아니, 오늘 경기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한 번 살펴봤어.”

“케일이 투수를 어떻게 공략하는지 써 두기라도 한 건가?”

“그 비슷한 내용은 있는데 참고는 안 되더라고.”

“그렇겠지.”

경기 시작 3시간 전.

탬파베이 클럽하우스는 선수들로 가득 찼다.

“워밍업까지 앞으로 1시간이다.”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에 선수들이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1시간 뒤에 알려 주시죠.”

김민은 전력분석팀에서 작성한 리포트를 들었다.

제목은 디비전 시리즈 1차전 타격 리포트.

‘경기 초반은 적극적으로, 중반 이후부터는 공을 기다리면서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려 노력했다. 뭐,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

그가 타자들의 정보를 확인하는 사이 코스타 타격 코치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타자들을 모았다.

“오늘 양키스 선발은 조지 왈트다.”

그의 한마디에 선수들이 야유를 내뿜었다.

“우우우우!”

“싫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투수로 바꿔 주시죠!”

코스타 타격 코치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조용! 오늘은 무조건 조지 왈트가 나온다. 알겠나?”

선수들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 조지 왈트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마지막 경기에서 패스트볼 구속이 100마일(161km)을 기록했다. 여차하면 101마일(163km)도 던질 수 있다고 봐야겠지.”

어떻게 보면 랜디 존슨보다도 더 두려운 투수가 조지 왈트였다.

“100마일(161km)이 제구까지 되니까.”

“난 조지 왈트의 공을 한 번도 외야로 날려 본 적이 없어.”

“물먹은 솜을 때리는 것 같다니까.”

조지 왈트에 대한 타자들의 주된 의견은 치기 힘든 무거운 공이었다.

김민은 양키스 타자들에게 대한 내용보다 조지 왈트에 대한 설명 쪽으로 귀가 움직였다.

“녀석은 패스트볼을 자신 있게 가운데로 던진다.”

“코너웍을 할 텐데요?”

“코너로 꽂아 넣을 때는 구속이 대략 2, 3마일 떨어진다.”

칼튼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구속이 떨어진 공이라고요?”

스나이더가 옆에 있다가 혀를 찼다.

“100마일이 아니었군. 제길…… 너무 빨라서 100마일인 줄 알았어.”

김민은 그가 혀를 차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100마일 공에서 2마일 떨어져 봐야 98마일(158km)이니까.’

문득 자신이 100마일을 던질 수 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그거야말로 사기였겠지.’

매 시즌 30승은 장담 못 해도 평균자책점을 0점대가 아니라 제로에 가깝게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코스타 타격 코치의 브리핑이 끝나자 록튼이 김민에게 다가왔다.

“킴, 불펜 투구 시작해야지.”

“그래야지.”

김민은 리포트를 내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팡! 팡!

록튼은 김민의 공을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스 볼.”

“정말 괜찮나?”

“그럭저럭.”

“퍼팩트 때를 100이라고 하면 어때?”

“70 정도?”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쁘지 않군.”

그는 록튼이 자신의 사기를 위해서 컨디션을 높게 쳐 주었다고 생각했다.

‘실제 컨디션은 65 또는 60 정도겠지.’

불펜 투구가 끝나자 스텝이 경기 시작을 알렸다.

“식전 행사가 시작합니다.”

김민과 록튼 두 사람이 그라운드로 나오자 관중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킴! 킴! 킴!”

“오늘도 승리를 부탁해!”

탬파베이 팬들은 김민이 등판하는 경기는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기면 1승 1패. 승부를 내는 건 뉴욕에서인가?”

“뉴욕에서도 1승 1패 정도 하겠지. 진짜 승부는 이곳에서 펼쳐지는 5차전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마 킴과 랜디가 맞붙겠지.”

김민은 5차전까지 시리즈가 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시리즈 흐름은 5차전을 향하고 있었다.

짧은 식전 행사가 시작되었다.

양키스 타자들이 마운드 옆에 선 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드디어 진짜 승부군.”

“킴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탬파베이를 이길 수 없어.”

“그래, 킴이 등판하는 경기가 진짜 1차전이야.”

머레이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킴이 나오는 경기를 빼고 다 이기면 되는 것 아닐까?”

포사다가 그의 말을 받았다.

“이론상은 그렇지. 하지만 3경기 중 한 경기는 꼭 지게 되더라고. 한마디로 킴이 나오는 2경기 중 한 경기는 이겨야 시리즈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지.”

어제 경기는 이겼지만, 이대로 접전이 계속되면 1경기 정도는 탬파베이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머레이, 킴의 약점에 대해서 아는 것 없어? 탬파베이에서 오래 뛰었잖아.”

머레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킴에게 약점이 있을 리가 없잖아. 저 친구는 너무 완벽하다고. 한마디로 머신이야.”

“그 정도인가?”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루틴도 대단해.”

“루틴이라, 이치로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식사를 하는 건가?”

머레이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항상 웃으면서 동료들을 칭찬한다고.”

포사다가 물었다.

“선발인 날에도?”

“그래, 선발인 날에도. 특히 연패로 분위기가 무거워지거나 실책이 나왔을 때, 활기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전환시키곤 하지. 심지어 퍼팩트 게임으로 긴장될 때, 먼저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대단한 친구야.”

지터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킴은 라커룸 리더군.”

“맞아, 탬파베이는 킴이 라커룸 리더야.”

“투수가 라커룸 리더라니, 특이하군.”

투수가 라커룸 리더를 맡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타자 쪽이 라커룸 리더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네네 타격 코치가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오늘 상대는 킴이다. 킴에게 가장 먼저 안타를 치는 선수에게 100달러(12만 원)를 상금으로 걸지.”

“첫 홈런은 없습니까?”

“첫 홈런도 있지. 1,000달러(124만 원)야.”

야수들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오우…… 나쁘지 않은데요?”

“그러고 보니. 지터는 어떻게 하죠?”

1번 타자인 지터는 대기 타석에서 식전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네네 타격 코치가 말했다.

“지터가 안타를 친다면 50달러(6만 2천원).”

“1번 타자라서 그런 겁니까?”

“그렇지. 1번 타자는 너무 유리하거든.”

오스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터보다는 나이젤이 유리할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킴의 공은 대기 타석에서 보고 들어가도 치기 힘듭니다. 하지만 지터가 대기 타석에서 볼 수 있는 건 연습 투구뿐이죠.”

네네 타격 코치는 오스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 그럼 지터가 쳐도 100달러다!”

맥코비 감독은 네네 타격 코치가 오랜만에 노련함을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긴장된 경기에 앞서 분위기를 살리는 건 중요한 일이지. 오늘만큼은 밥값 이상을 하고 있군.’

식전 행사가 끝나자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플레이볼!”

1회 초.

양키스의 선두 타자는 지터였다.

“지터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지터, 어제 안타가 있습니다.”

김민은 차분하게 록튼과 사인을 교환했다.

‘초구는 바깥쪽으로…….’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또 그 공이냐!’

지터는 94마일(151km) 패스트볼을 힘으로 상대했다.

딱!

강한 타구가 3루 라인을 지나 3루 쪽 펜스를 강타했다.

퍽!

“파울!”

지터는 타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좁혔다.

‘배트를 내는 타이밍이 너무 빨랐어. 힘을 빼고 타이밍을 늦췄어야 해. 힘으로 바깥쪽 공을 당기는 건 제레미 같은 친구나 해낼 수 있는 거니까.’

그는 김민의 공에 큰 위력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킴의 컨디션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군.’

김민은 지터의 날카로운 스윙에 속으로 혀를 찼다.

‘정규 시즌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스윙이야. 스테로이드는 아니라도 임페타민 정도는 하고 있는 건가?’

임페타민은 금지약물로 지정되기 전까지 많은 선수들이 애용했던 약물이었다.

효능은 피로를 줄여 주고, 집중력을 높여 주는 것이었다.

슉!

두 번째 공도 바깥쪽 빠른 공.

지터는 이 공도 때려냈다.

탁!

“파울!”

두 번째 파울은 3루 쪽이 아닌 1루 라인 바깥쪽에 떨어졌다.

“지터! 커터를 밀어 쳤지만, 1루 라인을 넘고 말았습니다.”

“오늘 지터의 배트가 날카로운데요?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습니다.”

대기 타석에 선 나이젤이 미간을 좁혔다.

‘평소의 킴이 아니야. 지친 건가? 공이 조금 느릿해.’

전광판의 구속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양키스 타자들은 김민의 공이 전과 같지 않다고 느꼈다.

‘오늘은 칠 수 있겠는걸?’

‘쳇, 지터가 100달러(12만 원)를 가져가겠군.’

휙!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커브.

‘체인지 오브 페이스인가?’

지터는 앞으로 나가던 배트를 멈췄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왔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지터, 볼을 골라냅니다.”

김민은 카운트를 확인하곤 로진백을 만졌다.

‘빠른 공에 두 번 스윙, 커브는 거른다. 감이 좋은 모양이군.’

투수에게 긁히는 날이 있듯 타자에게도 필 받는 날이 있었다.

‘필 받은 친구들은 피하는 게 좋지. 하지만 지터는 1번 타자잖아. 피할 수 없어.’

그는 한숨을 내쉬곤 사인을 교환했다.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고의 공으로 승부할 수밖에.’

슉!

지터는 안쪽 빠른 공을 보자마자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킴! 로케이션으로 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

배트가 공에 닿으려는 순간 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지터는 크게 허공을 친 뒤 미간을 좁혔다.

‘사라졌다. 아니, 떨어진 거야.’

그는 김민이 어떤 공을 던졌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떠올리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고 말았다.

“포크볼이군.”

록튼은 지터의 말을 받았다.

“스플리터야.”

지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포크볼이야.”

“지터, 전광판을 확인하라고.”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2마일(148km).

포크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빨랐다.

지터가 배터 박스를 벗어나며 말했다.

“정정하지. 고속 포크볼이군.”

그는 김민의 스플리터가 스플리터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나이젤은 김민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했던 것을 취소했다.

‘빌어먹을, 킴은 언제나 킴이군.’

그는 지터의 배트가 허공을 칠 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2번 타자 나이젤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나이젤, 이번 시즌 0.289의 타율에 67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현재 신인왕 후보로 산체스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경쟁하고 있다는 말은 해설자의 립서비스였다.

나이젤이 산체스를 넘어 신인왕을 탈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이젤이 뛰어난 신인인 것은 분명했다.

슉!

초구는 안쪽 빠른 공.

나이젤의 배트는 이 공을 따라붙지 못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의 구속은 95마일(153km).

“킴이 속도를 높입니다!”

“초반부터 강하게 양키 타선을 몰아가는군요.”

김민은 초구를 던진 뒤 호흡을 조절했다.

“후우…….”

그에게 95마일 이상 빠른 공은 상당한 체력을 요구했다.

‘이 공을 계속 던질 수는 없고…… 다음 공은 조금 느린 게 좋겠지.’

휙!

두 번째 공은 체인지업이었다.

나이젤의 배트가 공을 따라와 밀어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바운드를 일으켰다.

“1루!”

아울의 돌진.

그러나 공은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키면서 라인을 벗어났다.

“나이젤! 운이 좋았습니다. 타구가 아울을 비켜 나갔습니다.”

“이번 공은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습니다. 킴의 완급조절은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강약조절.

김민은 이쪽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하마터면 두 번째 공에 죽을 뻔했잖아. 집중하자. 나이젤!’

세 번째 공은 커브.

나이젤은 이 공을 높이 띄웠다.

“우익수 쪽으로 날아가는 공! 그러나 우익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이젤은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띄워서 펜스를 넘길 수는 없는 건가?’

그는 파워 부족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이 플라이를 처리합니다. 양키스, 투 아웃입니다!”

김민은 생각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제레미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스테로이드 괴물들의 등장이군.’

김민은 3번 제레미부터 5번 오스번까지는 약물을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풀어 오른 근육과 엄청난 비거리, 그리고 벼락같은 배트 스피드. 스테로이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들이야.’

제레미는 어제 양키스가 올린 2타점 모두를 책임지는 괴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이런 몸으로 녀석의 공을 때려낼 수 있을까?’

경기 전 어제와 같은 양의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컨디션은 회복되긴커녕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빌어먹을…… 부작용이 나타난 모양이군.’

슉!

빠른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아왔다.

‘이 코스라면…….’

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공이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트라이크!”

제레미는 배트를 내 보지도 못한 채 첫 카운트를 먹고 말았다.

김민은 제레미의 반응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좋아하는 공일 텐데. 배트가 나오지 않는군. 체인지업이라도 노리고 있는 걸까?’

그는 구종을 바꾸어 바깥쪽에 던졌다.

‘이쪽이라면 내야 땅볼이다.’

슉!

빠르게 날아오다가 떨어지는 스플리터.

지터에게 던졌던 공만큼은 아니었지만, 낙차가 제법 있는 공이었다.

제레미는 이 공에 크게 헛스윙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캐스터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제레미, 배트가 크게 늦습니다.”

해설자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제레미답지 않은 스윙이군요. 킴의 공이 패스트볼이 아니라 체인지업이라고 착각한 것일까요?”

김민은 제레미의 컨디션에 의문을 품었다.

‘땅볼을 유도하기 위한 공이었는데 저렇게 큰 헛스윙이 나오다니…… 오늘 제레미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다.’

그는 제레미가 장염이나 몸살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답은 무리한 출전이군. 제레미, 디비전 시리즈 영웅이 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날 꼭 상대하고 싶다는 호승심인가? 어느 쪽이든……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3번째 공.

제레미는 이 공에 꼼짝하지 못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안쪽 코너에 꽉 찬 94마일(151km) 패스트볼.

제레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대로는 킴을 이길 수 없다.’

어제의 호언장담이 무색한 삼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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