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54화 (254/296)

254화 승부사의 기질 02

탬파베이가 동점을 만들었지만, 랜디 존슨은 역전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3번 타자 윌리엄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8회 말을 마무리했다.

“지금부터는 벤치 싸움이군요.”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에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점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선수기용이 달라지겠지.”

유리하다고 해석하면 필승조는 물론 불펜으로 전환한 선발 투수까지 모두 동원할 것이다.

반대로 팽팽한 상황이라 본다면 추격조를 올리면서 타선이 역전에 성공할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물었다.

“우리 수비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공수교대 상황.

카드를 먼저 뽑아야 하는 것은 탬파베이 레이스였다.

이반 감독은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목소리를 높였다.

“킴! 누가 가서 킴을 데려와!”

클락이 움직이려는 순간 김민이 더그아웃 안쪽으로 들어왔다.

“절 부르신 것 같던데…….”

“그래, 자네를 불렀네.”

이반 감독이 김민에게 물었다.

“9회 초 1-1 상황이야. 누구를 마운드에 올려야 할 것 같나?”

“그것은 감독님의 선택 아닙니까?”

“자네가 감독이라면?”

“제가 감독이라면 말입니까?”

“그래, 자네는 우리 팀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투수야. 난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군.”

김민은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대답했다.

“볼튼으로 갑니다.”

“이유는?”

“놓칠 수 없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동점 상황에서 필승조를 다 써 버리면 다음 경기는 어떻게…….”

김민이 이반 감독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 게다가 홈경기입니다. 이 경기를 놓친다면 다음 경기에 이긴다고 해도 절반의 승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감독이라면 선발 투수를 제외한 모든 투수를 출전 대기시킬 겁니다. 이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긴다.

이것이 김민의 대답이었다.

이반 감독은 그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정답이군. 킴은 타고난 승부사야.”

그는 김민처럼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어야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단기전. 게다가 킴의 말대로 홈경기다. 1-1이 된 시점부터 우린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된 거야.’

이반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블렛소.”

블렛소 투수 코치가 재빨리 말했다.

“누굴 올릴까요?”

“볼튼을 올리게.”

“승부를 거시는군요.”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어.”

9회 초.

탬파베이 마운드에 오른 것은 클로저인 볼튼이었다.

“볼튼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클로저의 등판입니다. 탬파베이는 이 경기를 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요.”

맥코비 감독은 산체스에게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 한 점이 아니었다면, 이반은 볼튼을 마운드에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머릿속에 연장전을 그려 보았다.

‘연장으로 간다고 해도 우린 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리베라가 있다.’

양키스의 수호신.

역대 최고의 포스트 시즌 클로저.

리베라가 지키는 양키스 불펜은 철옹성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8마일(158km).

이반 감독이 구속을 확인하며 말했다.

“볼튼은 이제 전성기에 접어들었군. 그의 공을 친다는 건 날아오는 쇠뭉치를 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블렛소 투수 코치도 볼튼의 구위를 인정했다.

“패스트볼 구위만 놓고 보면 킴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볼튼의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조합은 양키스 하위 타선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연속 삼진 아웃.

정규 이닝 남은 아웃 카운트는 이제 하나.

TV 앞에 앉은 양키스 팬들은 연장전을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수비 때, 랜디가 올라올까?”

“연장전을 생각한다면 그게 좋겠지.”

“하지만 9회 말 탬파베이 타선을 생각하면 랜디보다는 리베라를 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랜디 존슨은 위대한 투수였지만, 나이가 적지 않았다.

9이닝을 모두 완투시키는 것보다는 여기서 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반즈 투수 코치가 맥코비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투수를 교체할까요?”

맥코비 감독이 마운드 위에 서 있는 볼튼을 바라보며 물었다.

“랜디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투구수가 89개입니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는 지금 쉬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본인 의사는?”

반즈 투수 코치는 8회 말 투구가 끝난 뒤, 랜디 존슨에게 다음 이닝 등판에 대해 물은 바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꾸도록 하지.”

반즈 투수 코치는 생각했다.

‘조지 왈트가 뛰어난 구위를 보여 주고 있지만, 양키스의 1선발은 랜디다. 아마 랜디의 손에서 시리즈 승리가 결정 날 것이다.’

1차전 선발로 나온 투수는 4차전 또는 5차전에 다시 한번 등판할 수 있었다.

반즈 투수 코치는 가능하다면 랜디 존슨을 5차전에 다시 한번 기용하고 싶었다.

“다음 투수는 생각해 두었나?”

“리베라를 올리겠습니다.”

“클로저를?”

“내일은 조지 왈트에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왈트는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든 젊은 피였다.

‘조지 왈트라면 완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는 조지 왈트의 내구력과 체력을 믿고 리베라를 투입하고자 했다.

맥코비 감독의 지시가 떨어졌다.

“리베라를 올리게.”

감독의 명이 떨어지자 불펜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9회 말.

익숙한 얼굴이 마운드에 올랐다.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양키스도 승부수를 던졌군요.”

9회 1-1 동점 상황.

양 팀은 클로저를 등판시키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탁!

빗맞은 타구가 그대로 유격수에게 흘러갔다.

“지터! 빠른 스텝입니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1루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웃!”

대기 타석에서 본 리베라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라이트가 속으로 혀를 찼다.

‘커터를 공략할 때는 패스트볼 타이밍에 놓고 치면 된다지만, 저 무브먼트는 쉽게 따라갈 수가 없어.’

리베라가 던지는 커터는 배트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구위가 좋았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뒤로 밀려났다.

“파울!”

라이트는 미간을 좁혔다.

‘무리야.’

클락이 라이트의 고전을 보고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리베라군.”

“그만큼 이런 상황이 익숙한 투수는 없을 거야.”

“경험에서 큰 차이가 나는 건가?”

“리베라가 강한 건 경험만이 아니야.”

김민은 리베라가 얼마나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리베라는 2001년 통한의 블론 세이브를 경험했지만, 이후 그는 더욱 단단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은퇴할 때까지 그보다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 준 클로저는 없었다.’

두 번째 공이 안쪽으로 밀려들어 오자 라이트는 배트를 멈췄다.

파앙!

미트에 꽂힌 공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저거 커터지?”

김민이 짧게 대답했다.

“아마도.”

“패스트볼하고 구속이 거의 같군.”

“리베라는 패스트볼보다 더 빠른 커터를 던진다는 말도 있어.”

“설마…….”

“설마가 아니야. 리베라에게 커터는 패스트볼보다 더 익숙한 구종이야.”

투 스트라이크 노 볼.

라이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휘어지긴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진 않는다는 건가? 어느 쪽이든 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군.’

커터를 공략하지 못하면 1루 베이스에 나갈 수 없다.

이것은 리베라를 상대하는 모든 타자들이 겪는 문제였다.

탁!

라이트가 때린 공이 2루수 정면으로 날아갔다.

나이젤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공을 잡아냈다.

“나이젤! 정면 타구를 깔끔하게 처리합니다.”

라이트는 괴물을 보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차라리 랜디의 패스트볼이 낫겠어.”

4, 5번이 나란히 범타로 아웃.

탬파베이의 9회 말은 전망이 어두웠다.

“다음 수비를 준비하는 게 좋겠어.”

칼튼이 글러브를 든 순간이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배터 박스에 서 있던 케니히가 쓰러졌다.

“케니히!”

코스타 타격 코치가 가장 먼저 배터 박스로 달려갔다.

“케니히, 괜찮나?”

케니히가 얼굴을 찡그린 채로 대답했다.

“93마일(150km)짜리 커터를 맞았습니다. 괜찮을 리가 없죠.”

“뼈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겠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와 트레이너는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케니히에게 손발을 움직이게 했다.

“움직이긴 하네요.”

코스타 타격 코치는 모든 것이 다 괜찮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벅지가 많이 부었어.”

“살이 많은 곳인데도 그렇군요.”

“내일이면 검게 변할 거야. 일단 정밀 검진을 받는 게 좋겠어. 살이 많은 부위긴 하지만 뼈에 금이 갔을 수도 있어.”

주심이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말했다.

“1루에 나갈 수 있다면 일단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교체는 그다음에 해도 되니까.”

코스타 타격 코치도 이에 동의했다.

“케니히, 일단 1루로 가지.”

케니히는 느린 걸음으로 1루에 나갔다. 그리곤 바로 대주자와 교체되었다.

“케니히가 빠지고 대주자가 투입됩니다! 부상이 심한 것일까요?”

“공에 맞은 부위는 부상이 자주 발생하는 부위는 아닙니다. 하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대주자를 투입한 것 같습니다.”

맥코비 감독은 케니히이기 때문에 바꿔 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좌익수는 가장 수비가 쉬운 포지션 중 하나지. 유격수가 부상을 당했다면, 저렇게 바꾸지 못했을 거야.”

이 말은 어느 정도 일 리가 있었다.

부상당한 선수가 브라이튼이었다면, 교체 대신 상태를 지켜보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2사 주자 1루입니다! 배터 박스에는 스나이더!”

“1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 끝내기입니다. 스나이더, 이 찬스를 살릴 수 있을까요?”

배터 박스에 선 스나이더가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후흡…….”

‘상대가 리베라군.’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정규 시즌 때도 스나이더는 리베라를 상대로 3타수 무안타였다.

클락이 배터 박스에 선 스나이더를 보며 말했다.

“벅차 보이는군.”

김민은 혼자 힘으로 이 압박감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9회 말이라는 것을 잊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부담감에 배트 스피드가 줄어들 거야.”

“킴, 배터 박스에 들어가기 전에 팁(투수의 버릇)이라도 알려 주지 그랬어.”

김민이 입술 끝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리베라를 상대로 팁이 무슨 필요가 있어. 어차피 패스트볼 아니면 커터일텐데.”

리베라는 랜디 존슨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구종보다는 압도적인 구위로 승부하는 투수였다.

이런 투수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공의 구위를 능가하는 스윙이 필요했다.

탁!

“파울!”

스나이더의 스윙은 리베라의 상대가 아니었다.

“카운트 0-1, 리베라가 앞서 나갑니다.”

“1루 주자가 조금 움직여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리베라가 투구에 들어간 순간 1루에 있던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자일스 뜁니다!”

자일스는 중견수 출신답게 좋은 주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포사다의 상대는 아니었다.

“포사다 2루에 송구!”

공을 잡은 것은 유격수 지터였다.

‘송구가 좋아. 자동 테그다.’

지터는 글러브를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자일스의 도루를 막아 냈다.

“아웃! 2루에서 아웃입니다!”

경기는 정규 이닝을 넘겨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연장 10회.

양키스가 다시 앞서 나가는 점수를 뽑아냈다.

“지터! 홈에 들어옵니다!”

지터의 안타, 그리고 제레미의 적시타.

볼튼은 고개를 숙였다.

“아! 볼튼 여기까지입니다.”

탬파베이 코칭 스텝은 역전을 허용한 클로저를 내렸다.

“투구수가 많았기 때문일까요?”

“다음 타자가 에이로드입니다. 이번 교체는 클로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죠.”

점수를 더 주게 되면 볼튼의 멘탈이 무너질 수 있었다.

해설자의 말대로 이반 감독은 클로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투수를 교체한 것이었다.

“나이스 피칭.”

클락이 손을 내밀었지만, 볼튼은 손뼉을 쳐 주지 않았다. 그는 클락을 지나 창백한 얼굴로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저 친구 얼굴이 심한데?”

“그냥 두면 안 되겠어.”

김민이 볼튼을 따라갔다.

탬파베이 클럽 하우스.

볼튼이 자신의 라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볼튼, 넌 최선을 다했어.”

볼튼이 고개를 들었다.

“최선이라고요? 아닙니다. 전 무리하게 스트라이크존에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습니다. 록튼의 사인을 무시하고 말이죠.”

그는 자신의 구위를 믿고 제레미를 힘으로 누르려 했다.

하지만 제레미의 힘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클로저는 타자를 윽박지를 수 있어야 해.”

볼튼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맞았습니다.”

“결과론이야. 도망치는 투수는 절대 클로저의 자리에 있을 수 없어. 난 볼튼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김민은 시선을 TV로 돌렸다.

“리베라가 올라오는군.”

볼튼을 구원한 부르스가 에이로드를 잡아냈기 때문에 탬파베이는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볼튼, 리베라도 2001년에 제대로 불을 질렀어. 하지만 아직 그는 최고의 클로저야. 이유가 뭔지 알아?”

“최고의 커터를 가졌기 때문입니까?”

“아니, 스트라이크존에 과감하게 공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야.”

김민이 말했다.

“이럴 때는 적시타를 맞은 자신을 자책하기보다 적시타를 때려낸 타자를 칭찬하는 게 좋아.”

“‘대단한 녀석이다.’라고 말입니까?”

“그래.”

볼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 티처처럼 그렇게 시야가 넓은 선수가 아닙니다. 적시타를 맞은 다음은…… 화가 나서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보통은 그렇지. 다음부터는 내가 알려 준 대로 타자를 칭찬해 보라고.”

김민은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볼튼, 내일도 등판하게 될 테니까.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써 줘.”

볼튼이 고개를 들며 말끝을 흐렸다.

“티처…….”

“양키스는 오늘 랜디를 89구에 내렸어. 왜 그랬는지 알아?”

볼튼이 잠시 멈칫했다가 대답했다.

“다음 등판에 대비하기 위해서겠죠.”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일은 길게 던질 수 없어. 팀이 이긴다고 해도 8회가 한계겠지. 그러니까 볼튼이 마지막 이닝을 막아줘야 해.”

그는 볼튼의 어깨를 두드린 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했다.

“볼튼, 위기 상황에서는 제레미하고 에이로드는 피하는 게 좋아. 두 사람의 힘은…… 솔직히 말해 인간의 그것이 아닌 것 같아.”

볼튼이 김민에게 물었다.

“킴도 피할 겁니까?”

“상황이 그렇다면.”

볼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티처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

김민은 볼튼을 다독이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가 더그아웃에 막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양키스! 2-1로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가져갑니다!”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1승을 선취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내일 바로 킴이 등판합니다.”

양키스 선수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기보다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드디어 킴이야.”

“1차전은 30승 때문에 나오지 못한 거지?”

“그래. 라이브볼 시대 최초의 선발 30승 투수. 괴물 같은 녀석이야.”

양키스 타자들은 지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당했던 치욕을 되돌려 주고자 했다.

포사다가 지터에게 물었다.

“지터, 아직도 킴이 그걸 했다고 생각해?”

그것이란 약물을 뜻했다.

“아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군.”

“킴의 투구는 약물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해.”

“그렇지?”

“그래.”

제레미가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킴도 오늘까지야. 내일이면 아무도 그를 이야기하지 않을걸?”

그는 오늘 양키스의 2타점을 모두 책임졌다.

지터가 유니폼을 벗으며 말했다.

“제레미가 해내는 건가?”

“물론.”

그는 지터의 말에 가시가 섞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터,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가능하다고 생각해.”

“말투가 다르잖아.”

“난 원래 이래.”

포사다가 제레미에게 말했다.

“제레미,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상대는 킴이라고.”

제레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누가 되었든 내일 마운드에 서 있는 녀석은 박살이 날 거야.”

그는 오른손 식지를 흔들곤 라커룸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제레미가 걸음을 멈췄다.

‘현기증…… 부작용인가?’

그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다 강한 약물을 주사했다.

‘쳇, 홈런을 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대로 현기증이 지속된다면 출전 자체가 힘들었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는 손으로 벽을 잡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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