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승부사의 기질 01
“라우리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이반 감독, 필승조를 가동했군요. 1점 차 경기. 포기하는 것은 아직 이르겠죠.”
“클로저인 볼튼까지 나오게 될까요?”
“경기가 연장으로 흐른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맥코비 감독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멋진 친구야. 선수 생활 때는 이렇게까지 못했는데. 감독이 되고 변했군.”
선수 시절, 이반 감독은 맥코비 감독의 상대가 아니었다.
맥코비 감독은 스타였고, 이반 감독은 레귤러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반 감독은 디펜딩 챔피언이 되어 맥코비 감독의 앞을 막고 서 있었다.
반즈 투수 코치가 말했다.
“지고 있는 경기에 필승조입니다. 역전하지 못하고 경기가 끝나면 내일 경기에 과부하가 걸릴 겁니다. 이건 우리에게는 희소식입니다.”
불펜 투수들은 연투를 밥 먹듯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차전 필승조 투입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불펜 투수들이 162경기를 달려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등판을 쉽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와 이길 수 있는 경기에 필승조를 투입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마디로 이반이 승부수를 던졌어.”
반즈 투수 코치가 말끝을 흐렸다.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만…….”
“뭔가?”
“스페이츠와 라우리를 분리시켜 운영하려는 건 아닐까요?”
“자네의 말은 라우리가 필승조가 아니다?”
반즈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부르스를 라우리 대신 쓴다고 하면 필승조는 부르스, 스페이츠, 그리고 볼튼이 됩니다. 이 경우 라우리를 추격조로 돌릴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겠군.”
맥코비 감독은 투수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라우리가 추격조로 밀려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발 투수를 필승조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 방법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투수 분업화에 따른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4, 5선발로 활약했던 투수는 필승조로 짧게 던지는 것보다는 롱릴리프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
실제로 양키스는 5선발로 활약했던 아이작을 롱릴리프로 활용하고자 했다.
“양키스! 선두 타자는 제레미입니다!”
제레미의 파워는 언제 보아도 대단했다.
그러나 라우리는 그 파워에 기죽지 않았다.
‘1이닝만 놓고 보면 나도 메이저리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투수다!’
물론 이것은 라우리 스스로가 한 평가였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리고 떨어졌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록튼은 라우리의 공을 미트로 받진 못했지만, 공 끝이 좋다고 느꼈다.
‘라우리는 포지션 때문에 저평가받는 투수 중 한 명이다. 녀석의 포지션이 클로저였다면 라우리는 지금보다 2단계는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거야.’
다음 공은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라이더.
제레미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블렛소 투수 코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라우리의 공 끝이 좋습니다. 마치 이날을 기다렸다는 것 같군요.”
“지난 시즌 나오지 못한 것이 컸지.”
라우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안쪽으로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제레미의 룩킹 삼진.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 메운 팬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K! K! K!”
“멋지다! 라우리!”
“끝내주는 공이었어!”
1이닝으로 제안한다면 라우리의 패스트볼은 랜디 존슨의 그것에 비할 수 있었다.
지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적이지만, 멋진 공이군.”
포사다가 말을 받았다.
“좌완의 95마일(153km). 저건 우완 투수의 98마일(158km)과 같아.”
“나도 다음 생에서는 왼손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할 거야.”
“지터, 다음 생에서도 야구인가?”
“야구만큼 사랑스러운 건 없다고.”
지터는 플레이보이로 유명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야구였다.
포사다는 생각했다.
‘지터는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그는 지터가 여러 여자와 사귀는 것은 여자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중견수가 공을 따라갑니다! 산체스! 공을 잡아냅니다.”
에이로드의 깊숙한 타구는 안타가 되지 못한 채 산체스의 글러브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제 투 아웃입니다!”
“라우리, 양키스 클린업을 상대로 호투하고 있습니다.”
라우리 피칭의 백미는 5번 타자 오스번을 상대로 한 삼구삼진이었다.
오스번은 두 번이나 헛스윙을 한 끝에 중심이 무너지면서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라우리! 오스번이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대단한 체인지업이군요. 요한 산타나의 그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랜디 존슨의 패스트볼과 요한 산타나의 체인지업.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라우리는 무적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렇게 던질 수 있는 것이 딱 1이닝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물었다.
“다음 이닝은 스페이츠를 낼까요?”
스페이츠까지 나온다면 필승조 세 명 중 두 명이 등판하는 것이었다.
“다음 이닝을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일단 몸은 풀어 두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반 감독은 다음 이닝 역전에 성공한다면 스페이츠가 아닌 볼튼이 등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8회 말.
탬파베이 공격.
선두 타자는 9번 타자 칼튼.
그는 브라이튼에게 선두 타자 자리를 내준 이후 그것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하지만 산체스라는 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 복귀는 요원해 보였다.
‘재계약까지 앞으로 한 시즌, 지금부터 나서는 타석은 모두 돈이 된다.’
그는 FA 로이드를 맞은 사람처럼 돈과 성적에 집착했다.
하지만 랜디 존슨의 공은 그런 집착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4번째 슬라이더에 배트가 크게 헛돌고 말았다.
“탬파베이 다시 한번 선두 타자가 아웃 됩니다!”
“빅 유닛, 우승을 위해 양키스에 온 것이 아니라 우승을 시키기 위해 양키스에 왔다는 말을 남긴 사내입니다!”
김민은 랜디 존슨의 강인함이 타고난 것이라 생각했다.
‘랜디 존슨은 약물 의혹에서 자유로운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40세가 될 때까지 무지막지한 공을 던졌지만, 노화를 이기지 못하고 말년에는 성적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생각했다.
몸이 재능이라면 랜디 존슨의 재능은 하늘의 내린 것이라고.
“다음 타자는 선두 타자 브라이튼입니다.”
브라이튼은 다음 시즌 연봉 조정 신청을 앞두고 있었다.
‘최대한 성적을 끌어올려야 한다.’
최고의 계약을 위해서는 포스트 시즌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뒤로 흘렀다.
‘배트 스피드가 늦는 건가?’
그는 배팅 포인트를 조금 더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슬라이더가 저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카운트는 0-2로 나빠졌다.
‘후우…… 미치겠군.’
배트를 조금 더 짧게 잡는 정도로는 소용이 없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다시 한번 뒤로 흘렀다.
‘공을 앞으로 밀어내지 못하고 있어.’
코스타 타격 코치가 브라이튼의 고전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너무 치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자네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스트라이크존을 좁히고, 칠 수 있는 구종도 줄일 겁니다.”
이반 감독이 말했다.
“그건 이상론이야. 배터 박스에서 느끼는 공포는 자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거야.”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브라이튼과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드와이어트 구든의 패스트볼은 지금 랜디 존슨의 그것과 같았지.’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브라이튼은 결국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빅 유닛! 삼진입니다!”
“이 선수는 지치지 않는군요.”
8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
산체스에게는 모든 것이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산체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포사다는 산체스의 미소에 한기를 느꼈다.
‘뭐지?’
평범한 선수가 그랬다면 미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산체스는 탬파베이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타자였다.
‘대기 타석에서 랜디에 대한 공략법을 알아낸 건가? 하지만 랜디의 공은 알고도 칠 수 없다고.’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단 두 가지 구종.
사실 랜디 존슨의 버릇을 모르더라도 두 번 중 한 번은 자신이 원하는 공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타자들은 랜디 존슨의 공을 쳐 내지 못했고, 그는 메이저리그 최정상에 군림했다.
“아침에 본 만화책이라도 생각난 건가?”
포사다의 물음에 산체스가 고개를 돌렸다.
“만화책? 난 그런 걸 보지 않아.”
“그럼 아까 그 미소는 뭐야.”
산체스가 말했다.
“최고의 투수와 상대하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니까.”
포사다는 이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믿지 않았다.
‘랜디와 상대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랜디를 상대했다. 그 말은 즉, 처음부터 즐겁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사인을 내기 전 고민에 빠졌다.
‘패턴을 바꿔야 하는 것일까?’
멈칫하는 사이에 주심이 말했다.
“사인이 엉킨 건가?”
“아, 아닙니다.”
포사다는 재빨리 초구 사인을 냈다.
‘볼 배합 변화는 없다. 그대로 간다.’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슈욱!
96마일(154km)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날아왔다.
파앙!
“스트라이크!”
산체스는 배트를 내지 않은 채 공을 지켜보기만 했다.
포사다는 그 모습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슬라이더를 노리고 있는 건가?’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 역시 알고도 칠 수 없는 공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슬라이더를 선물해 주지.’
두 번째 공으로 슬라이더가 날아왔다.
슉!
한가운데서 좌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이것은 오직 좌투수만이 던질 수 있는 공이었다.
산체스는 이 공에도 배트가 나오지 않았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두 가지를 모두 다 버린다고? 그렇다면 노리는 것은 구종이 아니라 코스인가?’
포사다가 요구한 공은 모두 바깥쪽에서 형성되었다.
‘녀석이 노리는 것은 안쪽!’
포사다는 감이 좋은 포수였다.
‘안쪽에 공을 주면 당한다.’
홈런을 맞지 않는다고 해도 주자가 나가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녀석의 뒤는 윌리엄이니까. 주자는 가능한 없는 게 좋겠지.’
포사다는 바깥쪽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이 공은 알고도 칠 수 없다.’
그 순간, 랜디 존슨이 고개를 내저었다.
빅 유닛이 패스트볼을 거부한 것이었다.
포사다의 눈이 커졌다.
‘랜디가 패스트볼을 거부했어.’
오늘 경기 처음 있는 상황.
포사다는 재빨리 구종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랜디가 고개를 내저었다.
‘패스트볼도, 슬라이더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원하는 공은 뭐야!’
포사다는 먼저 사인을 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랜디 존슨이 사인을 냈다.
- 안쪽 패스트볼.
포사다는 식은땀을 흘렸다.
‘상대가 노리고 있는 코스에 패스트볼을 꽂아 넣겠다는 말인가?’
랜디 존슨은 자신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체 왜!’
포사다는 랜디 존슨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구란 가장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 아니던가?
그러나 랜디 존슨은 포사다와 생각이 달랐다.
‘타자가 눈빛과 행동으로 말하고 있잖아. 안쪽 공을 던져 달라고. 녀석은 나와 정면으로 붙고 싶은 거야.’
그는 경험이 많은 투수였다.
타자가 어떠한 공을 원하고 있는지는 대번 알 수 있었다.
‘루키가 패기 있게 도전해 오는데 피할 수는 없지.’
랜디 존슨은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안쪽 빠른 공을 선택했다.
슉!
97마일(156km) 패스트볼이 포사다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산체스의 배트가 움직였다.
‘랜디가 내 도전장을 받아 줬군!’
딱!
날카로운 소리.
공은 그대로 외야를 향해 날아갔다.
포사다는 미간을 좁혔다.
‘빌어먹을! 맞을 줄 알았어.’
아무리 뛰어난 패스트볼도 일단 배트에 맞기만 하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랜디 존슨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펜스를 넘어가는 타구는 아니다.’
산체스의 타구는 날카로웠지만, 발사 각도가 낮아 홈런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익수 잡는다면…… 3루는 막을 수 있다.’
펜스를 때리고 나오는 공을 정확히 커버한다면 2루타에서 그칠 수 있는 타구였다.
“에드가 공을 잡기 위해 달립니다!”
우익수 에드의 전력 질주.
포사다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에드 그만둬!’
디비전 시리즈 1차전.
1점 차 리드.
게다가 경기는 원정.
에드는 자신들이 1회에 뽑은 그 1점을 지키고 싶었다.
‘2루타는 주지 않겠어! 잡을 수 있다고!’
그는 몸을 날리면서 글러브를 들었다.
그러나 공은 에드의 글러브를 외면했다.
툭…….
바운드를 일으킨 공이 뒤로 빠져나갔다.
“공이 빠집니다!”
우익수 뒤로 흘러간 공은 그대로 폴대까지 굴러갔다.
“산체스! 달립니다!”
산체스는 탬파베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준족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1루를 통과해 2루로 향했다.
이때까지도 공은 수비수의 글러브에 들어가지 않았다.
“중견수 머레이가 커버합니다!”
머레이의 커버는 늦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산체스라면 조금 더 빨리 공을 잡았어야 했다.
“산체스! 3루를 돕니다!”
‘뭐야! 벌써 3루라고!’
머레이는 홈플레이트를 보았다.
‘무리야. 한 번에 던질 수 없어.’
그는 포사다에게 직접 송구하는 대신 2루수 나이젤을 선택했다.
“공이 중계됩니다!”
산체스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내달렸다.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랐다.
하지만 주루 코치는 연신 팔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홈으로 밀고 들어갔다.
촤아아악!
먼지가 피어오르는 순간 포수의 미트가 자신의 몸을 터치하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홈까지 공이 온 건가? 하지만 내가 한발 빨랐다.’
다음 순간 주심이 양쪽 팔을 활짝 폈다.
“세이프!”
산체스의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
탬파베이 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체스! 산체스!”
산체스는 흙을 털고 일어나 손을 번쩍 들었다.
8회 말.
2사에 나온 동점 홈런.
맥코비 감독이 우익수 에드를 사나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우익수 경기를 망쳤군.”
그의 한마디는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에드의 수비는 본헤드 플레이에 가까운 것이었다.
“투수가 랜디잖아! 2루에 주자가 나간다고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
네네 타격 코치는 상황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연장을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맥코비 감독이 혀를 찼다.
“실책 하나 때문에 연장인가? 반즈!”
“말씀하시죠.”
“불펜을 가동해!”
“알겠습니다.”
랜디 존슨의 완봉으로 끝날 것 같았던 경기는 에드의 무리한 수비 하나로 동점이 되고 말았다.
포사다는 에드가 본헤드 플레이를 펼쳤지만, 근본 적인 원인은 랜디 존슨,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타임을 걸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랜디, 조금 전 공은 지나쳤어.”
“높았다는 건가?”
“아니, 그 코스에 공을 던지면 안 되는 거잖아.”
랜디 존슨이 미소를 지었다.
“포사다, 자네는 메이저리그에 막 올라온 루키의 도전을 피할 정도로 마음이 약해진 건가?”
“도전이라고?”
“녀석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어. ‘안쪽 공이 오면 배트를 휘두르겠다.’라고.”
“그건 그냥 노리고 있는 코스에 패스트볼을 넣은 것에 불과해!”
랜디 존슨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지. 녀석은 최고의 패스트볼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원했던 거야. 그리고…… 난 그렇게 정직한 사람만은 아니야.”
“패스트볼을 그렇게 던져 놓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니!”
“그 공. 볼이었어.”
포사다가 멈칫했다.
‘랜디가 던진 패스트볼이 볼이었다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더그아웃의 산체스를 바라보았다.
랜디 존슨이 말했다.
“스트라이크존에서 하나 또는 반 개 정도 빠지는 공이었지. 그런데 녀석은 멋지게 그걸 당겨 내더군. 산체스, 이름을 기억할 만한 친구야.”
포사다는 산체스가 전혀 다른 선수로 보였다.
‘데뷔 1년 차에 저렇게 칠 수 있는 선수가 있단 말인가?’
산체스는 랜디 존슨의 패스트볼을 처음 보았을 때 전율을 느꼈다.
‘그래, 이런 공이다. 이런 공을 상대하기 위해 난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그가 받은 전율은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처음 접했을 때와 유사했다.
산체스는 조금씩 랜디 존슨의 공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
그는 랜디 존슨의 공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떠오르는 공보다 떨어지는 공을 때리는 게 더 쉽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산체스는 날카로운 스윙으로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만들어 냈다.
탬파베이 1:1 뉴욕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승자는 아직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