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52화 (252/296)

252화 디비전 시리즈 앞에서 03

이후 김민의 설명은 20분 이상 이어졌다.

록튼은 두 번째 해법을 다 듣곤 눈을 크게 떴다.

“킴, 그게 가능해?”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가능하게 만든다.

록튼은 이 한마디가 김민의 두 번째 해법을 관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점을 파고들거나 하는 게 아니야. 이건 더 고차원적인 느낌이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곤 고개를 주심에게 돌렸다.

“타임입니다.”

“무슨 일이야?”

주심의 물음에 록튼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사인 미스가 난 것 같습니다. 방금 안타 맞은 공 말이죠.”

“그래?”

주심은 더 묻지 않고 타임을 받아 주었다.

“가능한 짧게 끝내도록 해.”

“그렇게 하죠.”

마운드로 올라간 록튼이 렉터에게 말했다.

“녀석들이 알아차렸어.”

렉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5이닝이면 길게 갔지. 아마 1회 초에 홈런이 나왔기 때문에 녀석들이 방심했던 것 같아.”

1회 초에 점수를 내지 못했다면 한 타순이 돌았을 3회 초나 4회 초에 새로운 작전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선취점을 얻었기 때문에 더그아웃과 코칭 스텝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래서 페이즈2로 넘어가는 건가?”

“그래, 당장 다음 타자부터 페이즈2야.”

렉터는 배터 박스에 들어선 타자를 확인했다.

‘에이로드잖아. 잘못하면 투런을 맞을지도 모르겠군.’

그가 농담을 건네듯 말했다.

“홈런을 맞는다면 모두 록튼 탓이야.”

록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탓은 아니지. 이건 킴의 전략이라고.”

“그럼 킴에게 한 턱을 내라고 해야겠군.”

“그래, 그렇게 하자고. 홈런을 맞으면 킴이 저녁을 산다.”

“좋아. 좋아.”

두 사람은 김민이 없는 곳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대화가 길어지는데?”

클락의 물음에 김민이 대답했다.

“볼 배합을 바꾸려는 모양이야.”

“볼 배합 바꾸는 정도로 괜찮을까?”

“무사 1루, 배터 박스에는 에이로드, 이럴 때는 뭐라도 해야지.”

그는 두 사람이 페이스2에 들어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록튼, 긴장하지 마. 여기서 잘 버티면 1, 2이닝은 더 막을 수 있다.’

렉터에게 완봉이나 완투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7이닝 2, 3실점.

이 정도 성적은 바랄 수 있었다.

김민은 렉터가 이 정도로 막아 주면 반격의 기회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했다.

‘야구는 스무스하게 한쪽이 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완봉을 당한다고 해도 한 경기에 1, 2번은 결정적인 찬스가 온다.’

이반 감독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외야수들을 바라보았다.

“렉터는 잘 막아주고 있는데 타선이 터지질 않는군.”

월드시리즈 2연패라는 대업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일까?

탬파베이 타자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타자들의 기록지를 살폈다.

“제가 보기에 월드시리즈에 대한 부담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월드시리즈에 대한 부담감이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더 크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상대가 랜디 존슨이기 때문에 타자들이 위축된 것 같습니다.”

“랜디는 위대한 투수지. 하지만 우린 디펜딩 챔피언이라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위축되면 어쩌자는 거야?”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렉터가 투구에 들어갔다.

슉!

초구는 바깥쪽으로 크게 빠지는 패스트볼.

“렉터, 멀리 달아나는 볼입니다.”

“이 공은 단순히 멀리 뺀 공이 아닙니다. 탬파베이 배터리는 볼넷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키스의 맥코비 감독이 크게 벗어난 공을 보고 혀를 찼다.

“저 녀석들 오스번을 얕보는 건가? 오스번은 말이야. 너희가 평생 끼지 못할 정도의 반지를 이미 소유하고 있어!”

5번 타자 오스번은 지터, 포사다, 리베라와 함께 90년대 후반 양키스 왕조를 이끈 선수였다.

그는 에이로드, 제레미에 비해 스텟은 떨어져도 결정적일 때 한 방은 더 많이 친 선수였다.

수석 코치도 이번에는 탬파베이가 작전을 잘못 짰다고 생각했다.

“데이터 야구에 의존한다면 탬파베이는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단기전인 디비전 시리즈는 데이터 야구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감이든 결단력이든…… 단기전에서 승리하려면 시리즈를 압도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팡!

포수 미트에 공이 들어왔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공도 볼입니다!”

“초구보다는 조금 더 스트라이크존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스트라이크와는 거리가 먼 공입니다. 초구에 말씀드렸듯이 탬파베이 배터리는 볼넷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이로드는 입술 끝을 올렸다.

‘날 거르고 오스번하고 승부하겠다? 안쪽 공으로 병살이라도 유도하려는 모양이군.’

긴장을 조금 늦춘 순간.

너클 커브가 높은 코스에서 스트라이크존으로 떨어졌다.

팡!

주심의 손이 드디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에이로드가 순간 이마를 찌푸렸다.

‘쳇, 얕은 수작을 부렸군.’

렉터는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상대를 리드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탬파베이 관중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큰 것을 맞으면 곤란해.”

“3-0으로 스코어가 벌어지면 오늘 경기는 접어야지.”

“접다니, 디비전 시리즈라고.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해.”

중계진은 렉터의 첫 스트라이크에 주목했다.

“카운트 2-1, 렉터가 첫 카운트를 잡았습니다. 이건 어떤 뜻일까요?”

“이건…… 그렇군요. 처음에 들어왔던 두 개의 볼은 에이로드를 거르려고 던진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걸어 내보내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어떤 목적이었을까요?”

“단순히 패스트볼 제구가 잘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클커브로 카운트를 잡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포사다는 한 관중이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중계를 듣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너클커브는 제구가 힘든 구종 중 하나다. 그런 구종을 스트라이크존에 넣을 수 있는데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넣지 못한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첫 번째 공과 두 번째 공은 도망친 것에 지나지 않아.’

반면 지터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렉터는 패스트볼에 강점이 있는 투수가 아니다. 상대가 에이로드라면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고의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제구가 흔들리면서 공이 코스를 벗어난 것이다.’

부담감이 제구를 어긋나게 만드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렉터, 네 번째 투구에 들어갑니다.”

슉!

이번에는 바깥쪽 빠른 공.

에이로드가 미간을 좁혔다.

‘또 도망치는 모양이군.’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은 볼이었다.

“카운트 3-1, 에이로드가 유리한 카운트를 잡았습니다.”

“카운트를 잡았어야 했는데 너무 엉성한 패스트볼이 들어왔습니다.”

상황은 누가 보아도 에이로드에게 유리했다.

“그냥 걸어 나갈까?”

브라이튼의 물음에 윌리엄이 반문했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난 나가지. 도루를 할 수 있으니까.”

“흠, 그 말은 에이로드라면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군.”

브라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내게 에이로드 같은 파워가 있다면 카운트를 잡으려고 들어오는 공을 노릴 테니까.”

“단숨에 3-0?”

“디비전 시리즈 1차전 MVP가 되는 길이지.”

김민은 록튼에게 두 번째 작전을 설명하면서 양키스 타자 유형을 둘로 나누었다.

“첫 번째 유형은 A형. 이쪽 유형은 적극적인 타자들이 많아. 강력한 파워나 빠른 배트 스피드로 스트라이크존에서 1, 2개 정도 빠지는 공도 그대로 날려 버리지.”

“양키스에서는 제레미, 에이로드, 오스번인가?”

“지터와 나이젤도 A형이라고 봐야겠지.”

“절반 이상이군.”

록튼이 혀를 찬 순간 김민이 말했다.

“페이즈2에서는 이쪽을 잡는 게 중요해.”

“어느 작전이나 다 중요할 것 같은데.”

“…….”

김민이 말을 멈추자 록튼이 두 손을 흔들었다.

“아니야. 계속하라고.”

“이 A형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록튼은 마운드에 선 렉터와 사인을 교환하며 김민이 한 말을 되풀이했다.

‘A형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리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배터 박스에서 적극적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유형이다.’

카운트가 유리해지면 볼넷보다는 장타를 먼저 생각하는 타자.

답은 브레이킹볼이었다.

‘물론 티나게 빠지면 안 돼. 에이로드 정도 레벨이면 나오던 배트도 멈출 수 있으니까.’

록튼은 마른침을 삼킨 뒤 미트를 들었다.

긴장한 순간.

공이 렉터의 손끝을 떠났다.

휙!

호를 그리면서 날아가는 공.

에이로드는 대번 이 공이 너클커브라는 것을 알았다.

‘패스트볼은 어렵고, 커브로 또 카운트를 잡겠다는 뜻이군.’

그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패스트볼이든 너클커브든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이면 그의 배트를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홈런이다!’

배트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딱!

강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높이 떠올랐다.

“높이 떠오릅니다!”

록튼은 마스크를 벗은 뒤 눈으로 공을 쫓았다.

‘이건 사기잖아! 그 공은 완벽한 볼이라고!’

렉터가 방금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지는 너클커브였다.

평범한 타자라면 친다고 해도 내야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나 에이로드는 유인구를 정확히 받아쳐서 대형 타구를 만들어 냈다.

“윌리엄과 산체스가 공을 향해 달려갑니다!”

두 사람이 뛰기 시작했다는 것은 공의 비거리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뜻이었다.

에이로드는 배트를 내던지고 뛰기 시작했다.

‘각이 좋지 않았어.’

타구의 발사각도는 비거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각도가 너무 낮거나 높으면, 타구의 비거리가 짧아졌다.

“산체스! 산체스가 공을 잡아냅니다!”

산체스가 공을 잡은 지점은 펜스 바로 앞이었다.

“멋진 수비입니다. 거의 20m 이상을 뛰어왔습니다.”

“공의 체공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가능한 수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록튼은 산체스의 호수비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휴…… 큰 산을 넘었어.’

김민은 A형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함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서 빼고, 브레이킹볼로 카운트를 잡는 거야.”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서 뺀다고?”

“타자를 달아오르게 만들어야지.”

록튼이 재차 물었다.

“스트라이크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냥 걸어 나가지 않을까?”

“내가 그랬잖아. A형 타자들은 적극적이라고. 그들은 볼넷보다는 안타나 홈런을 원한다고.”

록튼이 손가락을 빼어들었다.

“잠깐, 에이로드나 제레미는 그렇다고 치고, 지터도 같은 유형이라고?”

“지터는 좋은 선구안으로 볼넷을 많이 만들어 내는 선수지. 하지만 기본 적으로는 적극적인 선수에 속해, 특히 큰 경기라면 그런 성향이 더욱 강해져. 그래서 A형에 놓은 거야.”

김민의 A형 공략법은 이랬다.

1. 바깥쪽으로 도망치는 공을 2개 정도 던진다.

→ 타자는 답답함을 느끼지만 기다릴 것이다. 카운트가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2. 브레이킹볼로 카운트를 잡는다.

→ 도망치는 패스트볼에 익숙해진 타자는 이 공을 정확히 공략하기 힘들어진다. 만약 쳐 낸다면 타자의 대처가 뛰어난 것이기에 박수를 쳐 주면 된다.

3. 다시 도망치는 패스트볼.

→ 3-1의 카운트가 되면 타자들의 선택지는 보통 2개가 된다. 볼넷으로 걸어 나가거나, 카운트 잡는 공을 공략. A형은 볼넷보다는 카운트 잡는 공을 공략하려 할 것이다. 그들은 다음 기회보다는 지금 타석에서 타점을 올리려 할 테니까.

4. 브레이킹볼을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뜨린다.

→ 타자는 브레이킹볼을 본 순간 세 번째 공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승부는 이긴 것이다. 타자는 떨어지는 유인구를 카운트 잡는 공이라 생각해 배트를 내밀 테니까.

만에 하나 타자가 배트를 내지 않는다면?

볼넷으로 홈런을 대신했다며 위안을 하면 된다.

이때 베이스에 늘어선 주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투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숙이게 될 테니까.

‘킴의 시나리오는 완벽했어. 하지만 산체스가 아니었다면 펜스 앞에 떨어지는 2루타가 나왔겠지.’

록튼은 배터 박스에 들어온 타자를 체크했다.

5번 타자 오스번.

그는 5년 전만 해도 같이 뛸 수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올스타 플레이어였다.

‘응용 패턴으로 간다.’

록튼은 볼 배합을 반대로 가져갔다.

브레이킹볼을 연속으로 던지고 느닷없이 안쪽으로 패스트볼을 찔러 넣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으니까. 배트가 나오지 못할 거야.’

그러나 오스번은 배트를 멈추는 대신 기다렸다는 듯 휘둘렀다.

딱!

“빠른 타구!”

물수리처럼 날아가던 공이 브라이튼의 글러브에 걸려들었다.

“잘 맞은 타구였는데 아깝군요.”

“잘 맞았다고 해서 다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니죠. 이번에는 브라이튼이 오스번을 상대로 안타를 사냥했습니다.”

록튼은 이번에는 김민의 볼 배합이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스번에게 읽힌 건가? 아니면…… 애초에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었던 건가?’

김민은 록튼을 보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록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아웃 카운트를 잡으면 그것으로 된 거야.”

그는 야구에 완벽한 전술이나 볼 배합은 없다고 생각했다.

전술과 전략이란 승리라는 목표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렉터, 6번 포사다를 볼넷으로 내보냅니다.”

포사다는 뛰어난 선구안으로 렉터를 어렵게 만들었다.

“2사 1, 2루입니다. 양키스는 반드시 여기서 추가 득점을 올려야 합니다.”

“위기 뒤에 기회, 기회 뒤에 위기. 이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분명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7번 타자 머레이.

록튼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한 시름 놓았다.’

머레이는 함께 뛴 시간이 긴 만큼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렉터 또한 양키스의 괴물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머레이를 상대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머레이는 얕보이고 말았다.

딱!

경쾌한 타격음은 렉터와 록튼을 동시에 놀라게 만들었다.

‘설마 머레이가?’

‘머레이에게 내가 적시타를 맞는다고?’

두 사람이 커진 눈이 다시 작아진 것은 타구가 3루 라인을 벗어난 다음이었다.

“파울!”

머레이는 날카로운 타구가 파울이 되자 혀를 찼다.

“하필 이럴 때에!”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탁!

세 번째 공을 공략한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올랐다.

“유격수가 2루 베이스 근처에서 공을 잡아냅니다!”

“렉터, 위기에 몰렸지만, 야수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탈출합니다.”

양키스의 기회가 무산되는 순간 TV를 시청하던 양키스팬들이 일제히 머레이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역시 스파이였어!”

“탬파베이 녀석을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보스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양키스 구단주는 들고 있던 유리잔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저 바보 자식이!”

파악!

사방으로 퍼진 유리 조각이 대리석 위에서 별처럼 반짝거렸다.

6회 말.

탬파베이 공격.

위기 뒤 기회는 없었다.

랜디 존슨은 세 명의 타자를 상대로 삼진 2개를 뽑으며 완벽하게 막아 냈다.

“빅유닛! 멋진 피칭입니다.”

“우린 지금 레전드의 피칭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반 감독이 실망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키 큰 선수는 언제 내려가는 거야?”

바이슨 수석 코치가 한숨을 쉬며 감독의 말을 받았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내려가지 않을 겁니다.”

7회 초.

렉터는 양키스 하위 타선을 상대로 역투를 펼쳤다.

“렉터, 다시 한번 양키스 타선을 막아 냅니다!”

최선을 다한 투구.

아니, 최선의 결과.

이반 감독은 렉터가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 박수를 쳤다.

“나이스 피칭!”

동료들은 렉터가 박수를 받을 만한 피칭을 펼쳤다고 생각했다.

“오늘만큼은 렉터가 아니라 킴을 보는 것 같았어.”

“멋진 투구였어.”

렉터의 투구는 흠잡을 곳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타선이었다.

이반 감독이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7이닝 1실점이야. 9월에 돌아온 투수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피칭이었지.”

“타자들이 렉터를 받쳐 주지 못했습니다.”

“코스타, 렉터의 역투를 무의미하게 흘려 버릴 텐가?”

코스타 타격 코치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것은…….”

타자들은 랜디 존슨이 어떤 공을 던질지 알고도 칠 수가 없다고 말을 하곤 했다.

- 킴의 공이 이렇게 떠오른다면 랜디는 이렇게 떨어지지.

- 떠오르는 공을 때리는 것도 힘들지만, 떨어지는 공을 치는 것도 쉽진 않다고.

더그아웃에 들어온 렉터가 김민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을 킴이 살 뻔했는데 용케 빗겨 나갔군.”

록튼이 옆에서 말을 더했다.

“그러게 말이야. 구단주에게 저녁을 얻어먹는가 싶었는데 무리였어.”

영문을 모르는 김민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 렉터가 말했다.

“킴, 안심하라고, 오늘 저녁은 내가 풀코스로 쏠 테니까. 최고급 호텔에서 말이지.”

김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7회 말.

탬파베이 공격.

랜디 존슨은 다시 한번 탬파베이 타선을 막아 냈다.

“빅 유닛이 또 한 번 해냅니다!”

“오늘 경기 12번째 삼진이군요. 탬파베이 레이스! 이래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탬파베이 타선은 랜디 존슨을 상대로 7이닝 동안 3안타를 때렸지만, 단 한 명의 주자도 2루에 나아가지 못했다.

이반 감독이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이렇게 1차전을 내주면 너무 섭섭한데…….”

블렛소 투수 코치가 물었다.

“라우리를 올릴까요?”

필승조인 라우리를 올린다는 것은 오늘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하지.”

지는 경기에 필승조.

이반 감독은 오늘 경기를 반드시 잡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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