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49화 (249/296)

249화 최고의 시즌 06

이치로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마이크.

마이크는 2001 시즌 이전부터 주전으로 뛰고 있던 선수였다.

한마디로 그는 시애틀의 최전성기를 함께 한 선수였다.

“마이크가 3경기 만에 출전하는군요.”

“이번 시리즈를 내줄 수 없다는 시애틀의 의지가 엿보이는 출전입니다.”

“시리즈 승리에 집착하는 것은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 때문일까요?”

“그렇습니다. 탬파베이가 시애틀을 스윕하게 되면 시애틀이 가지고 있는 2001년 116승과 타이를 이루게 됩니다. 시애틀로서는 탬파베이가 타이기록을 세우는 것이 탐탁지 않을 겁니다.”

폴만 감독은 성적이 크게 떨어졌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탬파베이도 아니고 우리 홈에서 그런 기록을 세우게 그냥 둘 것 같으냐!’

그러나 상황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번 타자 마이크는 라이징 패스트볼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킴! 연속 삼진입니다! 시작이 좋습니다.”

“방금 삼진으로 킴이 요한 산타나를 따돌리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는 소식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는 겁니까?”

“평균자책점은 2위와 1점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오늘 경기에서 10점 이상을 내줘도 역전이 되지 않습니다. 다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위 그룹과 7승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1위가 확정입니다. 가장 치열했던 것은 요한 산타나와 겨룬 삼진 부문이었는데 오늘 2개를 추가함으로써 요한 산타나를 넘어섰습니다.”

“2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에 이어 트리플 크라운! 정말 최고의 시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 산타나가 무리해서 3일 쉬고 등판한다면 김민의 트리플 크라운을 저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을 위해 팀의 에이스가 무리하게 등판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해서 기록을 세웠다고 해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다음 타자는 3번 무카베입니다.”

무카베는 2년 차 1루수로 트레이드로 떠난 덴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괴력에 있어서는 덴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번 시즌 성적은 타율 0.277에 17홈런 78타점.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덴과는 클래스가 달랐다.

탁!

배트 위쪽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내야에 공이 떠오릅니다!”

1루수와 2루수가 동시에 달려들다가 록튼의 콜에 아울이 뒤로 물러섰다.

“2루수 칼튼이 공을 잡아냅니다! 킴! 깔끔하게 1회를 마무리합니다.”

폴만 감독은 무카베의 타격을 보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덴이 있을 때가 훨씬 좋았단 말이지.”

팀을 젊게 만들기 위한 트레이드.

하지만 그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반 감독이 공수 교대에 나선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이치로가 버티고 있는 테이블 세터는 아직도 견고하고, 수비도 수준급, 선발도 2001 시즌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괜찮은 수준. 하지만 성적은 나오지 않는다. 왜인 것 같나?”

바이슨 수석 코치는 그 이유를 클린업의 파괴력에서 찾았다.

“3번 무카베가 17홈런 4번 브렛이 25홈런 5번 히메네스가 19홈런입니다. 다른 시대라면 모를까? 홈런이 지배하는 시대에 30홈런 타자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더욱이 3번 무카베를 제외하곤 타율마저 낮습니다. 이런 클린업으로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애틀은 노장 브렛을 대신할 확실한 4번 타자를 찾아야 합니다.”

풀만 감독은 부러운 눈으로 탬파베이 타자들을 훑어보았다.

‘2번 산체스부터 5번 라이트까지 30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특히 윌리엄은 3번을 치고 있지만, 4번에 놓아도 손색이 없는 타자다.’

윌리엄은 이번 시즌 32홈런에 112타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타율도 3할을 넘겨 3할 30홈런 100타점이라는 엘리트 타자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풀만 감독은 무카베와 윌리엄을 비교하면 클래스가 2단계 정도는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다.

“아울 정도 되는 타자만 있어도 좋을 텐데 말이야.”

아울은 이번 시즌 29홈런에 103타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3할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30홈런과 100타점 달성이 유력했다.

“감독님 저런 타자를 FA로 데려오려면 연간 1,000만 달러(124억 원)로도 안 될 겁니다.”

시애틀은 탬파베이와 달리 스몰마켓은 아니었지만, 리빌딩에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대형 FA 영입은 무리였다.

2회 초.

탬파베이 공격.

시애틀 선발 모르시오는 하위 타선을 상대로도 고전을 거듭했다.

탁!

“중견수 플라이 아웃입니다!”

모르시오는 마지막 타자를 잡고 난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풀만 감독은 그 모습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점수는 내주지 않았지만 19개나 공을 던졌군.”

“이대로라면 5회를 채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 투구수를 조금 줄이도록 지시하겠습니다.”

폴만 감독은 에이스 가르시아를 지난 시리즈에 등판시킨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가르시아가 있었다면 적어도 한 경기는 안정적으로 잡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가르시아가 등판했다고 해도 물이 오른 탬파베이 타선을 막아 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탬파베이는 3회에도 시애틀 마운드를 맹폭했다.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 3루 주자가 걸어서 홈에 들어옵니다!”

브라이튼의 볼넷, 산체스의 안타, 그리고 윌리엄의 적시타.

잘 만들어진 기계처럼 돌아가는 타선.

클락은 마운드의 모르시오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타선이군.”

렉터는 흥이 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들 물이 올랐어. 이번 가을에도 좋은 성적을 낼 거야.”

탬파베이 공격은 1, 2점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울의 볼넷과 라이트의 싹쓸이 2루타가 터지면서 점수 차이는 8-0까지 벌어졌다.

“모르시오,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교체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폴만 감독이 과거와 달리 날카로운 맛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폴만이 이렇게 빨리 백기를 들어 올릴 줄이야.”

“선발 투수가 이렇게 빨리 무너지면 누구라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저건 달라. 시작부터 내일을 염두에 둔 로스터였어.”

바이슨 수석 코치가 멈칫하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 시애틀의 선발 로스터는 레귤러로 채워져 있습니다. 내일을 기약하는 로스터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슨, 오늘 로스터는 이런 뜻이야. 초반에 경기가 잘 풀리면 싸워보고 아니면,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데 주력하겠다. 사흘 동안 출전하지 않던 선수들의 경기력을 일순간 끌어올릴 수는 없다고. 오늘 경기는 컨디션 점검 정도로 끝내고 진짜 승부는 내일 걸겠다는 뜻이겠지.”

바이슨 수석 코치도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말씀이 옳다. 킴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제부터 출전해서 감을 찾아야 했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풀만 감독의 전술은 나쁘지 않았다.

리그 최고의 에이스인 김민을 건너뛰고 다음 경기를 노린다.

하지만 이반 감독은 승리에 대한 집착이 옅어진 순간 승리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풀만이었다면 절대로 이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승부를 어렵게 끌고 갔을 테지. 하지만 오늘 풀만은 아니군. 평범한 감독처럼 선수단을 운용하고 있어.”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해서는 승리를 가져갈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30승에 도전하는 투수가 29승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게 야구야. 안 그래?”

“그건 그렇습니다.”

“그 작은 가능성을 무시하는 순간 팀은 패배란 구덩이에 빠지고 말지.”

블렛소 투수 코치는 팀의 대량 득점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대량 득점 덕분에 5회가 끝나자마자 킴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등판이 디비전 시리즈 2차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전개다.’

그는 승리 투수 요건을 채우자마자 김민을 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민은 5회가 지난 다음에도 마운드에 올라가고자 했다.

“킴, 더 던질 필요는 없어.

“아직 투구수가 많이 남았습니다.”

김민은 지난 5이닝 동안 44개만을 던졌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양손을 펴며 호소했다.

“스코어가 11-0이라고. 누가 나가도 막을 수 있는 스코어야.”

김민은 글러브를 놓지 않았다.

“블렛소, 사람들은 절 스타라고 부릅니다.”

“그래, 자네는 스타지.”

“팬들은 스타를 보기 위해 그라운드를 찾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시애틀 팬들도 있지만, 절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팬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전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그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킴의 말대로다. 팬을 잊은 프로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김민이 그를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컨디션이 나쁘다고 생각한 순간 교체 사인을 내겠습니다. 그러니, 불펜을 준비해 주십시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라우리를 준비시키지.”

6회 말.

시애틀 공격.

“선두 타자는 9번 타자 올랜도입니다!”

“올랜도는 이번 시즌 악몽을 꾼 것 같을 겁니다.”

올랜도의 이번 시즌 성적은 타율 0.243에 4홈런 24타점이었다.

포지션이 유격수라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낮은 타율과 장타율이었다.

시애틀이 플레이오프에 도전하는 팀이라면 그는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킴을 상대로 올랜도라니, 상대가 되지 않아.”

누구나 올랜도의 패배를 예상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공이 펜스를 때렸다.

탁!

“펜스 직격 2루타입니다!”

김민은 모자를 벗은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후우…… 메이저리거는 메이저리거군.”

맞춰 잡겠다고 던진 공이 스윙에 제대로 걸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점수를 내줄 수는 없지.”

김민은 기어를 바꿔 넣었다.

슉!

95마일(153km) 패스트볼이 미트를 강하게 때렸다.

팡!

“스트라이크!”

이치로는 완벽한 제구에 속으로 혀를 찼다.

‘허! 시즌 마지막 경기인데도 힘을 끝까지 쓰는군. 플레이오프는 대비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그는 배트를 세우곤 두 번째 공을 기다렸다.

슉!

두 번째 공은 안쪽.

‘패스트볼?’

배트가 나갔지만, 공은 그대로 미트에 들어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이치로는 두 번째 공이 스플리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플리터가 마치 포크볼 같군.’

이치로는 일본에서 많은 포크볼과 스플리터를 상대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김민처럼 빠르게 크게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던지지 못했다.

‘스플리터 구위만 보면 킴이 메이저리그 제일이다.’

그는 김민의 스플리터 구위가 로저 클레멘스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삼진을 당할 수는 없지.’

이치로는 배트를 짧게 쥐었다.

탁!

세 번째 공은 3루 더그아웃 앞에 떨어지는 파울.

탁!

네 번째 공은 백네트에 꽂혔다.

“이치로 배트를 짧게 잡고 버팁니다!”

“커트하면 이치로입니다. 킴도 삼진을 잡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상대는 이치로입니다.”

김민은 타임을 건 뒤, 땀을 닦았다.

“후……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그는 그라운드를 둘러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익숙해지질 않는군.’

스타는 팬들의 시선을 즐긴다고 했다.

그러나 김민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슈퍼스타와 대결할 때 마음이 더 편했다.

‘타자 쪽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김민은 사인을 교환한 뒤 공을 강하게 쥐었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자고.”

오른손이 강하게 공을 뿌렸다.

슈욱!

빠른 공이 한가운데 높은 코스로.

이치로는 바로 어떤 공인지 알 수 있었다.

‘하이 패스트볼이냐!’

그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과 몇 번이고 맞선 바 있었다.

‘지금이라면 라이징 패스트볼이라고 해도 칠 수 있다.’

하지만 김민이 던진 공은 라이징 패스트볼이 아니었다.

파앙!

미트가 울린 순간 배트가 허공을 쳤다.

‘더 높이 떠올랐다.’

업 라이징 패스트볼.

김민이 흔히 던지지 않는 마구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치로의 삼진과 동시에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킴! 오늘 경기 7번째 삼진입니다. 이것으로 300K를 달성합니다!”

“정말 멋진 시즌입니다. 0점대 평균자책점과 30승 그리고 300K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우린 지금 가장 위대한 시즌을 보내고 있는 투수와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점수 차이가 컸기 때문에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김민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MVP! MVP!”

그라운드 한곳에서 시작된 MVP콜은 곧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원정에서 MVP콜인가?”

“슈퍼스타는 슈퍼스타군.”

원정 선수에게 MVP콜은 흔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김민은 주자를 2루에 두고 있음에도 흔들림 없는 투구를 보여 줬다.

“높이 뜬 타구가 2루수 글러브에 들어갑니다!”

2번 타자 마이크의 내야 플라이.

남은 것은 3번 타자 무카베.

“2사 2루! 시애틀 완봉패만큼은 당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상대가 킴이라고 해도 완봉을 당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죠.”

무카베는 배트를 세웠다.

‘다양한 구질을 가졌다고? 결국 공은 아래로 떨어질 뿐이다.’

그는 어퍼 스윙으로 김민의 모든 구질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민은 떨어지는 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는 헛스윙.

무카베는 위로 떠오르는 공을 보곤 눈을 깜빡였다.

‘내가 뭘 잘못 본 건 아니겠지?’

그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곤 배트를 다시 세웠다.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킴의 라이징 패스트볼인가?’

슉!

바깥쪽 빠른 공.

무카베는 거칠게 배트를 휘둘렀다.

‘떠오르는 공을 찍어 눌러주마!’

공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이건……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온다!’

탁!

배트 안쪽에 맞은 공이 바운드를 일으켰다.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에게 향합니다.”

“유격수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브라이튼은 빠른 움직임으로 공을 잡은 뒤 그대로 1루에 송구했다.

팡!

“무카베! 1루에서 아웃! 시애틀 잔루 2루로 6회 말을 마감합니다.”

김민이 마운드로 향하자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그들은 이것이 이번 시즌 김민의 마지막 투구라고 생각했다.

“MVP! MVP!”

그러나 이것은 김민의 마지막 투구가 아니었다.

그는 7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킴, 큰 점수차에도 불구하고 마운드에 다시 올랐습니다.”

“투구수가 적기 때문일까요? 오늘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것 같습니다.”

상대는 시애틀의 4, 5, 6번.

김민은 그들을 상대로 빠르고 완벽한 승부를 보여 주었다.

“킴! 8개로 7회 말을 마무리합니다.”

모두가 완봉을 생각한 그 순간 김민이 블렛소 코치에게 말했다.

“교체를 해 주십시오.”

“끝까지 던지지 않는 건가?”

“여기까지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공이 잘 들어갔다.

‘그래도 여기서 끊는 게 좋겠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손톱이 갈라질지도 모르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 날 좋은 성적을 거두는 투수는 왕왕 있었다.

예를 들어 양키스에서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데이비드콘 같은 경우 전날 음주로 숙취가 있는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퍼펙트게임.

사람들은 데이비드콘의 퍼펙트게임을 음주퍼펙트라 부르곤 했다.

8회 말.

라우리가 김민을 대신해 등판했다.

“라우리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시애틀 타자들은 이제야 점수를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우리는 만만한 투수가 아니었다.

“3연속 삼진! 라우리의 커브가 타자들의 배트를 농락합니다!”

풀만 감독은 라우리 같은 불펜 투수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저런 투수가 클로저 앞을 막아주면 감독이 게임을 풀어나가기가 쉽지.’

9회 말.

탬파베이 마운드에 선 것은 신인 투수 메이였다.

“신인 투수까지 나오는 건가?”

“쳇,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5인 로스터에도 들지 못하는 투수를 공략하지 못할까?”

그러나 메이는 만만한 투수가 아니었다.

파앙!

강력한 패스트볼이 시애틀 타자의 배트를 윽박질렀다.

“97마일(156km)입니다! 빠릅니다! 메이!”

메이는 삼진을 잡곤 마음속으로 외쳤다.

‘내 뒤에는 그 어느 팀보다 강한 수비가 있다!’

그는 김민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 뒤 공을 던졌다.

슉! 탁!

“빗맞은 타구가 중견수 머리 위에 떠오릅니다!”

“이것으로 경기가 마무리되겠군요.”

중견수 산체스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오면서 마지막 시리즈 첫 경기가 끝났다.

“탬파베이! 14-0으로 시애틀을 격파합니다.”

“오늘 경기는 디펜딩 챔피언의 무시무시한 화력쇼였습니다.”

“도니, 이번 시즌 우승은 어떻게 될까요?”

“어느 팀이 우승한다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탬파베이가 강력한 후보임은 분명합니다.”

탬파베이는 이날 114승을 기록하며 구단 최다승 신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김민은 최고의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4시즌 김민의 기록은 다음과 같았다.

승패: 30승 1패

평균자책점: 0.64

삼진: 304개

이닝: 248이닝

라이브 시대가 열린 뒤, 최고의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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