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48화 (248/296)

248화 최고의 시즌 05

“킴은 휴가도 가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샐러리맨 같아.”

김민에게 말을 던진 선수는 클락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는 아니지 않아?”

“오늘 경기도 쉬지 못하고 나왔잖아.”

“쉴 수 없는 경기니까. 이런 기회는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라고. 그리고 로테이션을 지키는 것뿐이야.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잖아.”

인생에 한 번.

김민이 도전하고 있는 기록은 시즌 30승이었다.

5인 로테이션이 정립된 이후, 이 기록에 도전해 성공한 이는 없었다.

라이브볼 시대 마지막 30승 디지 딘조차 5인 로테이션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다.

“33번 등판에서 30승.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

“그러고 보니, 어제 기사가 실렸더라.”

“기사?”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나올 수 없는 기록 베스트 30이었던가?”

“킴도 들어가 있는 건가?”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2개 들어가 있더라고.”

“2개나?”

“한 시즌 퍼펙트게임 2번. 한 투수가 퍼펙트게임 2번.”

“퍼펙트게임을 두 번 한 투수가 킴 말고는 없던가?”

“나도 몰랐는데 없더라고.”

퍼펙트게임.

KBO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기록이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스무 명 남짓한 선수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

“혹시 그게 1위인가?”

“1위는 아니더라고.”

“2위?”

“3위더라.”

“3위면 꽤 높은 건가? 그 두 가지를 이긴 기록이 뭐야?”

김민이 대답했다.

“통산 최다완투.”

“그거 사이영 기록이군.”

“클락도 이 기사를 읽은 건가?”

“아니, 하지만 통산이라는 전제가 붙은 한 사이영을 능가하는 투수는 없다고.”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이영의 통산 완투 749회, 배리 본즈가 때린 홈런수와 비슷하지.”

홈런이라면 한 경기 3, 4개도 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완봉은 5일에 한 번이 고작이었다.

1선발로 나와 휴식 없이 로테이션을 시즌 마지막까지 지킨다고 하면, 33번에서 34번 정도……

휴식일과 올스타 브레이크를 조정한다고 해도 35번이 한계.

“1년에 35번 마운드에 선다고 해도 22년이나 걸리는 기록이군.”

“사실상 불가능하지. 3대가 나눠서 던진다고 해도 아마 안 될 거야.”

“그 시절 투수들 기록은 제외했으면 해. 아니면 따로 두던가?”

클락은 라이브볼 시대 투수들의 기록을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1위는 뭐야?”

“59승.”

클락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한 시즌 59승.”

“뭐?”

사이영상의 통산 승수가 511승이었다.

한 시즌 59승이라면 그 기록을 10년 안에 넘을 수 있는 페이스였다.

“또 고대 기록이군.”

“제목이 깰 수 없는 기록이니까.”

“차라리 1,000홈런이 더 현실성이 있겠어. 50홈런씩 20년을 때리면 되니까.”

스테로이드의 시대.

50홈런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클락이 물었다.

“30승은 없었어?”

“없었지.”

“생각보다 깨기 쉬운 기록인가?”

“고대기준에서는…….”

클락이 몸을 뒤로 눕히며 말했다.

“라이브볼 시대에는 단 한 번밖에 없었던 기록인데 이렇게 저 평가를 받는군.”

“어쩌면 작성한 기자가 30승이라는 기록을 생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

그때 칼튼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저 친구, 오늘 음악이 특이한데?”

김민의 물음에 클락이 고개를 갸웃했다.

“해드폰 소리가 들려?”

“언제나 볼륨이 최고니까. 저 친구, 고막이 걱정될 정도야.”

“오늘은 무슨 음악인데 그래?”

“록키.”

정확히는 록키의 메인 테마.

클락이 김민에게 물었다.

“Gonna Fly Now?”

“그래 바로 그거.”

클락이 라커룸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킴을 위한 테마군.”

“나를 위한?”

“도전자를 위한 노래잖아.”

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전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지.”

“워밍업인가?”

“연습투구까지 할 거야.”

“몸을 끝까지 풀어두라고, 시애틀의 9월은 춥단 말이지.”

김민은 문을 열고 그라운드로 나섰다.

“킴, 컨디션은 어때?”

라이트의 인사에 김민이 손을 들었다.

“나쁘지 않아.”

“킴, 최고야라고 말해 주면 곤란한 건가?”

“그래, 그럼 말을 바꾸지. 최고야.”

김민은 최고라고 말했지만, 실제 컨디션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어깨, 손목, 손톱 다 좋지 않아. 특히 좋지 않은 건 손톱이야. 아직 깨진 건 아니지만, 회전을 심하게 걸면 깨질 수도 있어.’

투수에게 손톱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끼익……

불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헨드릭스가 몸을 푸는 게 보였다.

“좋은 아침.”

“아침은 아닌데?”

“난 아침이야.”

김민은 유광잠바를 입은 채 몸을 풀기 시작했다.

클락을 제외한 동료들은 그에게 30승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김민의 30승을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게임과 동등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민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그런 분위기를 만들자.

하지만 김민은 그런 분위기가 더 거북했다.

그래서 먼저 말을 붙였다.

“헨드릭스, 오늘 이기면 30승인데 선물은 누굴 줘야 하는 거야? 퍼펙트게임이라면 포수한테 시계인데…….”

헨드릭스가 장비를 착용하며 말했다.

“지난 퍼펙트게임처럼 하면 되잖아.”

“전원에게 시계? 농담하지 마. 난 부자가 아니라고. 지난번에 시계를 나눠 줬다가 통장 잔고가 바닥을 기었다고.”

“허어, 구단주께서 왜 이러신담?”

지난 반년 동안 헨드릭스는 김민과 많이 친해졌다.

그와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헨드릭스는 진중한 라몬과 달리 농담과 잡설이 많은 편이었다.

김민이 물었다.

“설마 오늘 경기가 끝나고 헨드릭스에게도 뭔가 줘야 하는 건 아니지?”

“왜? 그냥 넘어가려고? 내가 공을 받아 준 경기가 절반은 될 텐데?”

원정 경기는 대부분 헨드릭스가 공을 받아 줬기 때문에 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김민이 오른손 식지를 들며 말했다.

“오케이. 30승 하면 선물을 하나 하지.”

“킴, 기대하겠어. 멋지고 큰 차로 부탁해.”

“어이, 선물 내용을 그렇게 말해 버리면 어떻게 해?”

“킴의 독심술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꽃다발 같은 걸 선물로 주면 곤란하잖아.”

김민은 스트레칭을 마친 뒤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킴, 러닝도 하는 건가?”

“겨울에는 몸을 좀 오래 푸는 게 좋더라고.”

“겨울이라니, 아직 9월 말이야.”

“시애틀은 춥잖아.”

김민은 클락의 충고에 따라 몸을 끝까지 풀고 연습 투구로 넘어가고자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일수록 몸을 오래 풀어 줘야 해.’

탬파베이 레이스의 시즌 마지막 상대는 시애틀 매리너스.

시애틀 매리너스는 서부지구 시즌 3위를 예약한 상태로 플레이오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킴, 그거 알아? 오늘 경기 신인들이 대거 나온다고 하더군.”

시즌 마지막 시리즈였기 때문에 신인들이 여럿 등장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도 이치로는 나오겠지.”

“그 친구는 기록을 의식하고 있으니까.”

200안타와 3할.

이치로는 이 두 가지 기록을 반드시 챙기고자 했다.

“이치로 타순은 역시 1번이겠지?”

“말해 무엇해.”

“적어도 4번은 만나야 한단 말이군.”

“킴, 퍼펙트로 끝내 버려, 그럼 3번만 만나도 되잖아.”

“헨드릭스…….”

“왜?”

“말 참 쉽게 한다.”

오늘 퍼펙트게임을 성공시키면 한 시즌에 3번 퍼펙트게임에 성공한 투수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 깨지지 않을 기록 역대 1위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무리야. 상대는 이치로가 버티고 있는 시애틀이라고.’

김민이 연습 투구에 들어갈 무렵 식전 행사가 시작되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원정이라니 아쉽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을 이반 감독이 받았다.

“원정이라고 해도 탬파에서 가까웠다면 어땠을까 싶군.”

이반 감독은 원정 경기 피로가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내셔널 리그보다 하루 늦게 시작한다는 건 다행이지만, 상대가 양키스라니……’

시즌 종료 3일 전.

탬파베이 레이스와 뉴욕 양키스의 순위가 정해졌다.

레이스는 동부지구 1위, 양키스는 동부지구 2위.

두 팀은 아메리칸 리그 승률에서도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한 야구팬은 이렇게 말했다.

“이 순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의미가 없다.

한 팀은 1위이고, 한 팀은 2위인데.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그 이유는 두 팀의 월등한 승률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대진룰에 따르면, 가장 승률이 높은 지구 1위 팀이 와일드카드 진출팀과 맞붙게 되어 있었다.

탬파베이 레이스와 뉴욕 양키스는 다른 지구 1위 팀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팀이 1위를 해도 와일드카드 팀과 맞붙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팀 중 2위가 되는 팀은 압도적인 승률 덕분에 자동으로 와일드카드를 획득했다.

즉, 아래와 같은 구도의 대진표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1위 뉴욕 양키스 VS 와일드카드 탬파베이 레이스

1위 탬파베이 레이스 VS 와일드카드 뉴욕 양키스

한마디로 누가 동부지구 1위를 해도 대진에는 변화가 없었다.

변하는 것은 홈어드벤테이지정도.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NBA나 NHL에 비해 홈어드벤테이지가 약했다.

“차라리 몇 경기 쉬어 갈 걸 그랬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경계하는 것은 구단 사상 최고 승률을 올린 뒤, 디비전 시리즈에서 허무하게 탈락하는 것이었다.

“기록을 앞에 두고 있는 킴만이 아니야.”

시애틀과 시리즈 3경기를 모두 이기면 탬파베이 승수는 116승으로 2001년 시애틀과 타이를 이뤘다.

“자신들의 기록을 지키기 위해서 시애틀이 필사적으로 나오겠군요.”

“사무국에서 미래를 알고 대진을 짠 모양이야.”

이반 감독은 탬파베이의 2004 시즌이 김민의 2004 시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 이 이상의 시즌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식전 행사가 모두 끝나자 탬파베이 1회 초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반 감독은 수비에 나선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다 레귤러잖아?”

“기록을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시애틀은 어제 경기까지 신인들을 대거 투입했다. 하지만 탬파베이와 마지막 시리즈는 달랐다.

그들은 116승이라는 기록을 지키기 위해 레귤러로 스타팅 로스터를 꾸렸다.

“플레이볼!”

배터 박스에 들어선 타자는 1번 타자 브라이튼.

브라이튼은 사촌형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후, 살짝 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며칠 쉬면 좋을 텐데 본인이 쉬지 않겠다고 합니다.”

“배터 박스에서 감을 찾는 타자들도 있어.”

이반 감독은 브라이튼이 플레이오프에서 어떻게 살아났는지를 알고 있었다.

팡!

“스트라이크!”

브라이튼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다시 배트를 세웠다.

“타이밍을 잡은 것 같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브라이튼의 배트가 공을 때렸다.

탁!

“큰 바운드와 함께 공이 3루로 향합니다!”

3루수 클락슨이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했지만, 브라이튼의 발이 한 발 빨랐다.

“브라이튼! 발로 안타를 만들어 냅니다.”

브라이튼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루 코치에게 말했다.

“이치로처럼은 안 되는군요. 바운드가 컸는데도 아슬아슬 했습니다.”

“자네는 유격수잖아.”

유격수는 수비 위치 때문에 우투우타가 대부분이었다.

‘좌타자인 이치로와 우타자인 자네가 같을 수는 없지.’

시애틀 내야수들은 브라이튼의 도루를 견제하기 위해 위치를 살짝 바꿨다.

“산체스를 상대로 저런 수비는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시애틀이 보여 준 내야 시프트는 1, 2루 사이에 큰 구멍이 있었다.

“당겨서 1, 2루 사이를 뺀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산체스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군.”

딱!

강하게 맞은 공이 그대로 1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큰 파울 타구입니다!”

산체스는 안타가 아닌 홈런을 노리고 있었다.

‘우리 상대는 시애틀 따위가 아니야.’

그의 두 눈은 첫 디비전 시리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네가 투수라면 어떻게 하겠나?”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의 물음에 대답했다.

“당연히 브레이킹볼이죠.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산체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군.”

따악!

다음 순간 공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산체스!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퍼 올렸습니다. 타구는 큽니다!”

타구는 우익수 이치로의 키를 넘겼다.

남은 것은 펜스를 넘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뿐.

탁!

펜스 상단을 맞고 튀어 나온 공이 이치로의 예측과 반대로 움직였다.

“이것도 불규칙 바운드라고 봐야 할까요?”

“펜스 플레이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죠. 펜스가 얼마나 높은지 어떤 방향을 보고 있는지 심지어 얼마나 두꺼운지도 생각해서 공의 바운드를 예측해야 합니다.”

해설자가 입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사이 1루에 있던 브라이튼이 3루를 지나 홈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치로! 홈으로 공을 쏩니다!”

어깨가 좋기로 유명한 이치로였지만, 펜스에서 홈플레이트까지 정확히 송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치로의 송구가 살짝 어긋난 사이 브라이튼이 홈을 파고들었다.

“세이프!”

브라이튼의 선취 득점.

탬파베이가 첫 공격에서 1-0으로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

“탬파베이의 화력이 다시 한번 폭발합니다.”

클락은 주먹을 불끈 쥐며 크게 기뻐했다.

“그래! 바로 그거라고!”

그는 김민의 승리를 위해서는 대량 득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킴은 오늘 길게 던질 수 없어. 초반에 점수를 많이 뽑아 놓는 게 좋아.’

이반 감독의 생각도 같았다.

‘빅 이닝을 만들어 초반에 승기를 굳힌다.’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윌리엄.

상황만 놓고 보면 충분히 대량 득점이 가능했다.

마음이 급했던 것일까?

윌리엄은 초구와 2구를 놓치면서 투수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후우…… 나도 긴장하고 있는 건가?’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다시 배터 박스에 섰다.

세 번째 공.

빠르고 낮은 공이었다.

‘볼이다.’

배트를 멈추자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팡!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

이번 공은 볼이었다.

“윌리엄이 공을 하나 골랐습니다.”

“카운트 1-2이군요. 승부구가 날아올 타이밍입니다. 윌리엄,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공 하나에 승부가 갈릴 수 있습니다.”

슉!

네 번째 공은 느린 커브.

‘스트라이크? 아니야. 이건 헛스윙을 유도하는 공이다.’

좋은 눈이 다시 한번 볼을 골라냈다.

“카운트 2-2, 윌리엄 신중합니다.”

“이번 공은 정말 잘 골랐군요. 모르시오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투수의 표정이 무너졌다는 것은 타자에게 희소식이었다.

‘조금 전 커브가 마음먹고 던진 승부구였던 모양이군.’

윌리엄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2루 베이스를 빠져나갔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옵니다!”

아웃 카운트 하나 없이 2-0.

탬파베이 타선은 루키 투수에게 버거운 상대였다.

모르시오는 최선을 다해 던졌지만, 아웃 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4점을 내주고 말았다.

“스코어는 어느덧 4-0입니다! 탬파베이 1회부터 크게 앞서 나갑니다.”

“타자들이 킴의 30승을 위해 화끈한 지원 사격에 나섰군요.”

경기는 탬파베이의 압도적 우세로 시작했다.

1회 말.

시애틀 공격.

김민은 마운드에 올라간 뒤 길게 심호흡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 실수하지 말자.’

사람들은 그의 30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오늘 경기는 시즌 30승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트리플 크라운으로 가자!”

원정 팬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다.

김민은 오늘 경기에서 적어도 2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야 했다.

그래야만 삼진 2위 요한 산타나를 따돌리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수 있었다.

시즌 30승과 트리플 크라운이 모두 달려 있는 경기.

김민으로서는 절대 쉴 수 없는 경기였다.

슉!

바깥쪽 코너를 노리는 패스트볼.

이치로는 가볍게 공을 밀어 쳤다.

딱!

공이 3루 베이스 옆에 떨어지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저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군.”

김민은 이치로의 감각이 평소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저 친구는 시즌 마지막까지 빈틈이 없군.’

이치로는 팀이 부진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안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훗날 발리안은 그를 이기적인 선수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이치로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었다.

두 번째 공은 스플리터.

이치로는 이 공도 때려냈다.

“파울!”

큰 바운드가 1루 더그아웃 쪽에 떨어졌다.

“굴리고 나가기보다는 정타를 때리겠다는 스윙이군.”

“킴을 상대로 어설픈 타구는 곤란하다는 뜻이겠죠.”

김민은 빠르게 사인을 내고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슉!

빠른 공이 타자 눈높이로 날아갔다.

이치로는 순간 배트를 뒤로 물렸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하이 패스트볼, 유인구다!’

그러나 김민이 던진 공은 하이 패스트볼이 아니었다.

높은 코스로 날아오던 공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떨어졌다.

팡!

주심이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치로는 룩킹 삼진과 동시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그 코스에 스플리터를 던질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그는 다시 한번 허를 찔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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