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최고의 시즌 02
2회 초.
다시 한번 깔끔하게 삼자 범퇴.
이반 감독은 물병을 들었다.
추위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9월.
물병을 든다는 것은 목이 말라서가 아니었다.
“이대로 경기가 길어지면 곤란한데…….”
2회 말 마운드에 올라간 김민.
그를 상대하는 것은 보스턴의 4, 5, 6번.
보스턴 팬들은 선취점은 아니라도 안타 하나 정도는 바라고 있었다.
“날려 버려!”
“펜웨이 파크가 어떤 곳인지 알려 주라고!”
보스턴 팬들이 타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김민은 압도적인 피칭으로 타자들의 배트를 돌려세웠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4번 그란델이 삼진, 5번 토미도 삼진, 그나마 6번 헬리오가 배트에 공을 맞혔지만, 내야 플라이에 그치고 말았다.
“여전하군.”
페드로가 발렌타인의 말을 받았다.
“저게 킴이지.”
“이상하단 말이야.”
“한 경기 정도 삐끗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발렌타인이 팔짱을 풀며 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건 아니라고 해도 후반기잖아. 피로감에 한 경기 정도는 삐끗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킴은 그게 없단 말이지. 사람 같지가 않아.”
“로테이션을 모두 뛰었다고 하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킴은 적절한 타이밍에 잘 쉬었어. 그 덕분에 지금 저런 공을 던질 수 있는 거야.”
김민은 이번 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2번 걸렀다.
페드로는 그 두 번이 김민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것과 적절한 타이밍에 한 번 쉬어 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승수에 여유가 있는 팀들이 에이스를 쉬게 해 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될 것 같아?”
페드로가 대답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1점 승부.”
“솔로 홈런 한 방인가? 예상하지 못한 친구가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뜻이군.”
“그렇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3회도 끝이 났다.
“킴과 웨이크, 두 사람 모두 무실점입니다! 특히 웨이크는 단 한 명의 주자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웨이크의 너클볼이 춤을 추고 김민의 패스트볼이 코너를 공략했다.
“빌어먹을.”
탕!
더그아웃에 들어온 칼튼이 거칠게 물통을 찼다.
“칼튼, 물통에 화를 푸는 건 그만둬.”
“화가 안 나게 생겼어? 저 이상한 공은 대체 뭐야?”
칼튼은 오랜만에 2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안타 없이 삼진만 2개를 당했을 뿐이었다.
‘이래서는 테이블 세터로 복귀할 수 없단 말이야.’
브라이튼이 복귀하는 순간 그는 다시 9번 타순으로 내려가야 했다.
“기습 번트 어때?”
스미스의 조언에 칼튼이 혀를 찼다.
“저건 번트를 대기도 힘들어. 자칫 잘못하면 위로 떠오른다고.”
이반 감독과 코스타 타격 코치도 이번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너클볼러의 공이 춤을 출 때는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습니다.”
구장 안에 흐르는 기류가 안정을 찾아 공이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4회 말.
보스턴의 1, 2, 3번이 차례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나 탬파베이 시프트가 코버와 노라 그리고 라파엘을 완벽히 막아 냈다.
“기가 막힌 시프트입니다. 라파엘의 타구를 정확하게 잡아내는군요.”
라파엘이 때린 타구는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성 타구였다.
하나 탬파베이는 2루수가 우익수와 2루 베이스 사이에 자리를 잡는 극단적인 시프트로 라파엘의 안타를 막아 냈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발렌타인이 혀를 차자 페드로가 대답했다.
“낮은 페이롤, 발 빠른 수비, 그리고 준수한 제구력을 지닌 투수. 저건 그 셋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지.”
페드로의 대답을 들은 발렌타인이 혀를 찼다.
“시프트를 쓴다고 해도 라파엘이 상대라면 외야수와 내야수들이 뒤로 물러나던가? 오른쪽으로 몇 발 움직이는 정도잖아. 그런데 저 녀석들은 아예 자리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있어.”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면 라파엘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발렌타인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탬파베이의 첫 안타가 터졌다.
탁!
배트 정중앙에 맞은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아울이 오늘 탬파베이의 첫 안타를 신고합니다!”
“아래로 떨어지는 너클볼을 정확히 걷어 올렸군요.”
이반 감독은 라이트와 케니히의 장타력이 기대를 걸었다.
‘연속 안타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2루타나 그에 준하는 타구가 나온다면 홈을 파고들 수 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말했다.
“번트로 2루에 주자를 가져갈까요?”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가져간 뒤, 짧은 안타로 득점을 노리자는 뜻.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번트 작전은 그리 선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라이트에게 번트를 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울은 1루수 중에는 발이 빠른 편이었다.
이반 감독은 2루타 한 방이면 아울이 홈에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라이트는 삼진, 케니히는 우익수 플라이에 그치고 말았다.
“무사 1루가 2사 1루로 바뀌었습니다.”
“웨이크, 오늘 정말 좋은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탬파베이 타선이 무력했던 것이 얼마만 일까요?”
김민이 다음 이닝 준비를 위해 워밍업을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웨이크의 너클볼이 뒤로 빠져나갔다.
“1루 주자 2루에 들어갑니다!”
“중요한 순간 포수가 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캄푸는 수비력이 좋은 포수였지만, 웨이크의 너클볼은 그의 수비력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탬파베이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냈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득점은 쉽지 않을 거야. 웨이크를 믿고 기다리세.”
배터 박스에 선 타자는 7번 타자 스나이더.
스나이더는 수비가 견고한 선수였지만, 타격에 장점이 있다고 말하긴 힘들었다.
“대타를…….”
이반 감독은 스스로 말을 삼켰다.
‘대타를 낼 상황이 아니다.’
유격수 브라이튼이 빠진 상황에서 3루수 스나이더마저 빠진다면, 내야를 백업 선수들로 운용해야 했다.
이반 감독은 이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자. 아직 점수를 낼 기회는 많다.’
팡!
2루 주자가 신경이 쓴 것일까?
너클볼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웨이크, 흔들립니다.”
“여기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지 못하면 주자가 둘로 불어납니다.”
발렌타인이 혀를 찼다.
“스나이더는 어차피 치지 못한다고, 한가운데로 패스트볼을 꽂아 버려.”
너클볼러가 간혹 던지는 패스트볼은 100마일(161km) 패스트볼 이상의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웨이크는 패스트볼 대신 너클볼을 고집했다.
팡!
캄푸가 공을 잡았지만, 스트라이크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나이더가 1루로 걸어 나갑니다.”
“2사 주자 1, 2루입니다. 탬파베이 좋은 기회를 잡습니다.”
발렌타인은 주자가 늘어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아웃 카운트 하나 싸움이야. 만루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페드로는 발렌타인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비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아.”
“1, 2루 베이스 모두를 신경 써야 한다는 건가? 하지만 더블 스틸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나온다고 하면?”
발렌타인이 멈칫했다.
“그렇게 되면 주자가 3루에 들어가게 되겠지.”
탬파베이의 더블 스틸로 2사 2, 3루가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웨이크는 뒤로 빠지는 공이 많은 너클볼러, 주자가 3루에 위치하게 되면 다른 투수들보다 훨씬 큰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가능하면 3루 도루만큼은 주고 싶지 않을 거야.”
수비수들이 1, 2루 베이스를 커버한다고 하면 1, 2루 사이와 2, 3루 사이에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페드로가 발렌타인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오른손 타자가 강하게 당긴다면 어떨까?”
“흠, 3루수 옆을 빠지는 적시타란 말인가? 좋지 않은 상황이군.”
페드로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그건 타자가 웨이크의 너클볼을 쳐 냈을 때 이야기긴 하지만.”
너클볼을 쳐 내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가정은 무의미했다.
이반 감독은 주먹을 꾹 쥐었다.
“이 순간이 오늘 경기 분수령이다.”
득점을 뽑는다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지게 될 것이다.
김민은 차분히 워밍업을 이어갔다.
그는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킴, 경기는 안 보는 건가?”
클락의 물음에 김민이 대답했다.
“워밍업하면서 보고 있어.”
“어차피 포수 타석이잖아. 바로 이닝이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워밍업은 좀 늦어도 되잖아.”
“포수 타석이라고 경기가 늦게 시작되는 게 아니야.”
포수가 마지막 타석일 때, 백업 포수가 다음 이닝 선발 투수를 위한 연습 투구를 받아 주는 게 보통이었다.
스미스는 이미 그라운드로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배터 박스의 록튼이 배트를 세웠다.
‘웨이크의 너클볼은 위아래 움직임보다 좌우 움직임이 크다.’
어퍼 스윙.
아울이 그랬던 것처럼 중견수 앞으로 공을 쳐 내면 된다.
물론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휙!
초구는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너클볼.
록튼은 배트를 냈지만,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공이 날 비웃는 것 같군.’
그는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배터 박스 가장 뒤쪽에 섰다.
그러자 마스크를 쓴 캄푸가 입을 열었다.
“록튼, 공략 방법을 반대로 알고 있는 것 아니야?”
변화구는 너클볼이든 슬라이더든 변화가 적은 앞쪽에서 치는 게 보통이었다.
“너클볼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린다고, 마지막 순간에 보고 치는 게 나아.”
“그게 아니겠지. 록튼, 내 머리를 배트로 부수려고 그러는 거지?”
배터 박스 가장 뒤쪽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경우, 크게 휘두른 배트가 왼쪽으로 끝까지 돌아 포수를 강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캄푸의 대화는 트래쉬 토크가 아니라, 그것을 록튼에게 상기시켜 준 것이었다.
“나도 포수라고. 네 머리를 노리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러면 다행이겠지만…….”
휙!
두 번째 공은 크게 떨어지는 너클볼이었다.
‘좌우 움직임은 약하다.’
록튼의 배트가 움직였다.
탁!
제대로 맞은 타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공은 빈 공간을 뚫고 외야로 굴러갔다.
“저런!”
발렌타인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 순간 토미가 글러브를 내밀었다.
“아울, 이제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진합니다!”
탬파베이가 선취점을 뽑으려는 순간, 토미의 오른손에서 무지막지한 송구가 뿜어져 나왔다.
슈우욱!
“공도 홈으로!”
아울은 홈으로 달려오면서 우익수를 슬쩍 확인했다.
토미는 홈을 향해 큰 폼으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홈에서 승부인가?’
타이밍상 자신이 유리했다.
‘자동 테그가 아닌 이상 홈에 들어간다!’
송구가 완벽하지 않는 한 살아남는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토미의 송구는 불행하게도 완벽 그 자체였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아울의 발이 미트를 스치고 지나갔다.
촤아악!
스파이크가 홈플레이트를 긁었지만, 주심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아웃!”
홈에서 아웃.
록튼의 적시타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이렇게 흘러가다니!”
이반 감독이 탄식한 순간 김민이 마운드로 향했다.
‘가끔은 상대의 호수비도 나와 줘야지.’
페드로는 오늘 경기만큼은 김민이 이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탬파베이를 버렸군. 이런 송구가 나오는 날에는 경기를 잡기가 힘들지.”
선발 투수인 웨이크는 십년감수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홈에서 세이프 되는 줄 알았어.”
그의 말을 캄푸가 받았다.
“송구가 조금만 어긋났어도 세이프였어.”
“하지만 어긋나지 않았잖아.”
“오늘 탬파베이는 운이 없는 것 같아.”
강한 팀만 이기는 것이 아니다.
운이 좋은 팀이 때로는 강한 팀을 능가한다.
캄푸는 그렇게 생각했다.
“5회 말 보스턴 레드삭스의 공격입니다.”
호이스 감독은 반헬 투수 코치에게 말했다.
“이런 팽팽한 경기를 깨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하위 타선에서 터지는 한 방이나 수비 실책이 아닐까요?”
“하나 더 있지. 긴장된 상황에서 나오는 수비의 실투. 이 셋 중 하나가 오늘 경기 승패를 가르게 될 거야.”
그는 이번 이닝 김민의 실투나 탬파베이 내야진의 실책을 기대했다.
‘위기 뒤, 기회, 기회 뒤, 위기. 이 야구 격언은 틀린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5회 말 호이스 감독이 믿었던 야구 격언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김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킴! 강합니다! 세 타자 연속 삼진입니다!”
“30승에 도전하는 당대 최고의 투수답습니다! 최고의 플레이로 펜웨이 파크를 도서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호이스 감독은 김민의 의연한 투구를 보곤 혀를 찼다.
“저 친구는 아쉬움이란 감정조차 없는 모양이군.”
평범한 투수였다면 선취점을 낼 찬스가 날아간 순간 아쉬움에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6회와 7회 그리고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보스턴 타선을 막아 냈다.
웨이크 역시 대단했다.
1회부터 8회까지 막강한 탬파베이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이번 시즌 최고의 피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9회 초! 스코어는 아직 0-0입니다!”
“팽팽한 투수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팀이 먼저 균형을 무너뜨릴까요?”
호이스 감독은 웨이크의 투구수를 체크했다.
“101구, 적지 않군.”
반헬 투수 코치가 고개를 내저었다.
“웨이크는 교체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클볼러는 일반적인 투수에 비해 한계 투구수가 높았다.
웨이크의 말을 빌리면 그는 150구까지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호이스 감독이 말했다.
“그래도 너무 오래 던지게 하면 곤란해. 바람도 슬슬 바뀌고 있어.”
불펜에서는 클로저인 버나드가 연습 투구를 하고 있었다.
반헬 투수 코치가 화이트 보드를 확인한 뒤 말했다.
“버나드로 바꾸시겠습니까?”
“주자가 나가면 교체하도록 하지.”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호이스 감독은 그렇게 판단했다.
9회 초.
마운드에 오른 것은 선발 투수인 웨이크였다.
“웨이크! 버텨라!”
“탬파베이를 잡아내자고!”
보스턴 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웨이크와 상대할 탬파베이 타자는 1번 타자 산체스.
“산체스, 1번 타자 자리가 어색한 듯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체스의 경우 브라이튼이 출루했을 때 타율이 좋습니다.”
몇몇 탬파베이 팬들은 이반 감독의 용병술이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이튼이 빠졌다면 그 자리에 칼튼을 넣었어야지.”
“맞아, 칼튼은 리드오프 출신이라고. 반면 산체스는 윌리엄과 비슷한 강타자야. 리드오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1번 타자는 무조건 출루가 우선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따악!
강한 타구가 그대로 중앙 펜스를 넘어나갔다.
“산체스! 초구를 공략해서 그대로 펜스를 넘겼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는 산체스.
“예상이란 빗나가는 법이지.”
“여기서 산체스가 한 방을 때릴 줄은 몰랐습니다.”
보스턴 코칭 스텝은 산체스나 윌리엄이 아닌 록튼이나 스나이더 같은 선수가 한 방을 쳐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산체스는 벼락같은 홈런으로 그 예상을 깨뜨려 버렸다.
클로저인 버나드는 연습 투구를 중단했고, 웨이크는 끝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탬파베이 1:0 보스턴
보스턴 레드삭스의 9회 말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두 타자는 노라입니다.”
“노라가 출루하면 보스턴도 할 수 있습니다!”
보스턴의 심장.
보스턴의 자존심.
주장인 노라가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이대로 경기를 끝낼 수는 없잖아.’
가능하다면 산체스처럼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난 산체스나 윌리엄이 아니야. 일단 출루하고 라파엘의 적시타를 기다린다.’
정확히 보고 날카롭게 스윙한다.
노라는 자신의 역할을 출루로 정했다.
배트를 들자 초구가 날아왔다.
‘바깥쪽 코너!’
이 코스는 패스트볼이나 스플리터가 많았다.
‘조금 낮게.’
노라는 배트를 내리며 스플리터를 노렸다.
그러나 공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앞으로 뻗었다.
탁!
배트에 스친 공이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초구는 파울.
노라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괜찮아.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어.’
첫 스윙으로 타이밍을 잡고, 두 번째 스윙으로 결과를 만든다.
노라가 다시 배트를 세웠다.
슉!
빠른 공.
이번 공은 바깥쪽으로 크게 휘어져 나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노라의 허를 찌른 슬라이더.
‘쉽게는 안 되는군.’
김민은 빠른 탬포로 세 번째 공을 던졌다.
휙!
‘탬포는 빨랐지만, 공은 빠르지 않았다는 건가?’
노라는 미간을 좁히며 배트를 휘둘렀다.
탁!
빗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2루수 칼튼이 손을 듭니다!”
이퓨즈를 공략한 타구는 내야를 넘지 못했다.
팡!
칼튼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왔다.
“노라 아웃입니다!”
노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후우……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군.”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라파엘.
라파엘의 스테로이드는 아직 진행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프 스피드 피치가 스테로이드를 이겨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삼진.
이제 보스턴에게 남은 아웃 카운트는 하나뿐이었다.
“힘들겠어.”
“라파엘이 치지 못했는데 그란델이 칠 수 있을 리가 없지.”
보스턴 팬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였다.
따악!
강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외야로 날아갔다.
“큽니다!”
김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98번째 공이 빠졌군.’
실투를 던지지 않는다고 알려진 그였지만, 100개의 공을 던지면 3개 정도는 실투가 나왔다.
탁!
그린몬스터를 직격한 공이 그라운드로 되돌아왔다.
케니히는 그 공을 바운드 없이 잡아냈다.
“케니히! 그대로 2루에 송구!”
그린 몬스터를 직격한 대형 타구.
그란델은 공을 때리는 그 순간 홈런 아니면 2루타라고 생각했다.
2루로 향하다가 죽는 시나리오는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속으로 혀를 찬 순간 2루수의 글러브가 다리를 쳤다.
“아웃! 2루에서 아웃!”
펜스 직격 타구를 때리고 2루에서 아웃.
좌측 펜스가 극단적으로 짧은 펜웨이 파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납니다! 탬파베이 보스턴을 상대로 원정에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갑니다!”
“킴, 26승에 성공하는군요. 이제 30승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김민은 경기가 끝난 뒤 케니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살았어.”
케니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하이라이트 필름은 나지?”
김민이 미소로 화답했다.
“물론이지.”
이반 감독은 오랜만에 힘든 경기를 했다고 평가했다.
‘산체스의 홈런과 케니히의 호수비가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경기였어.’
탬파베이는 이날 승리로 양키스를 다시 4경기 차이로 따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