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레코드 메이커 04
“발렌타인, 아직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했습니다.”
“다음 타자가 윌리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점수 차이가 더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사 2루.
타석에는 윌리엄.
탬파베이 팬들은 빅 이닝을 머릿속에 그렸다.
“여기서 5점 이상 뽑으면 편히 갈 수 있어.”
“지금 탬파베이 타선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다음 순간 윌리엄의 배트가 공을 강타했다.
딱!
강한 타구가 그대로 내야를 빠져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공은 노라의 다이빙 캐치에 막히고 말았다.
“노라! 멋진 수비입니다!”
노라는 쓰러진 그 자세로 2루에 공을 던졌다.
성급하게 3루로 향했던 산체스를 잡기 위한 플레이.
산체스는 급히 2루로 귀루했지만, 공이 조금 더 빨랐다.
“코버가 테그에 성공합니다! 산체스마저 2루에서 아웃 됩니다!”
노라의 환상적인 플레이에 순식간에 아웃 카운트 2개가 올라갔다.
보스턴의 호이스 감독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그래 이게 바로 야구지.”
게임이 끝날 때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스포츠.
그것이 바로 야구였다.
호이스 감독은 경기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역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발렌타인은 노라의 호수비로 안정을 되찾은 듯 4번 타자 아울을 삼진으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발렌타인, 선취점을 내줬지만, 수비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탈출합니다.”
“전 마지막 아울에게 던진 승부구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은 이전에 던졌던 공들과 다르게 아주 제구가 좋았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메이저리그에 처음 올라온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5년 이상 생존한 선수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해라. 그들이 너희보다 느리고, 파워가 없다고 해도 그들에게 배워라. 왜? 그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를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무기를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발렌타인은 5년을 넘어 8년을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버텼다.
그의 완급 조절과 로케이션은 최고는 아니라도 A레벨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민은 자신과 탬파베이 타선이 발렌타인을 얕보았다고 생각했다.
‘전의를 상실하고 침몰하는 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수비를 믿고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었다. 그가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지 않았다면 노라의 호수비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베테랑의 끈기와 위기관리 능력.
김민은 이것이 젊은 투수의 강속구 못지않게 무서운 무기라고 생각했다.
2회 초.
김민은 그렌달에게 중전 안타를 내주며, 좋지 못한 스타트를 끊었다.
“위기 뒤에 기회! 보스턴 레드삭스, 킴을 상대로 기회를 잡습니다.”
다음 타자인 5번 타자 토미는 지난 오프 시즌 보스턴이 영입한 강타자였다.
참고로 볼티모어의 토미 감독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김민은 토미가 패스트볼에 매우 강한 타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설픈 패스트볼은 펜스 밖으로 쉽게 넘겨 버리는 타자다. 코너를 찌르기보다는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 좋다.’
그는 그립을 고쳐 잡았다.
‘체인지업을 초구부터 던질 수는 없어.’
슉!
빠른 공이 안쪽 코너로 날아갔다.
‘안쪽 패스트볼인가?’
토미는 기다렸다는 듯 공을 당겼다.
탁!
둔탁한 타격음.
‘빌어먹을…….’
그는 1루를 향해 뛰며 타구를 확인했다.
‘유격수 쪽이 아니라 3루 쪽으로 가!’
빗맞은 타구가 3루수 쪽으로 향한다면 일단 병살타는 막을 수 있었다.
팍.
한 차례 바운드를 일으킨 타구가 3루 쪽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좋았어. 병살타는 면했다.’
토미는 전력을 다해 1루로 뛰었다.
그는 2루에서 그란델이 아웃된다고 해도 자신이 1루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탬파베이 수비는 그가 예상한 이상이었다.
팍!
스나이더는 공을 잡은 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2루에 공을 뿌렸다.
2루수 칼튼의 움직임은 더욱 좋았다.
그는 완벽한 타이밍으로 1루 주자 그렌달의 태클을 피해내며 1루에 송구했다.
팡!
1루수 아울의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1루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웃!”
보스턴 팬들은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
“동점 찬스가 이렇게 날아가다니…….”
토미의 더블 플레이.
이는 호이스 감독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패스트볼을 너무 무리하게 당겼어.”
반헬 투수 코치가 토미를 변호하듯 말했다.
“스플리터가 생각보다 더 떨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쪽이든 깔끔하게 주자가 지워졌군.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지.”
김민은 오른손 제스처로 스나이더와 칼튼에게 감사를 표했다.
“탬파베이의 집중력이 상당합니다.”
반헬 투수 코치는 김민을 상대로 쉽게 점수를 뽑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0점대 평균자책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야.’
그는 타자들이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한다고 해도 2점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했다.
‘오늘 경기는 3점을 내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반헬 투수 코치는 발렌타인이 어떻게든 6회까지 2실점 이내로 막아 내야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김민은 토미를 더블 플레이로 잡아낸 뒤 힘을 냈다.
“스윙 삼진 아웃! 킴,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2회 초를 끝냅니다.”
“킴이 무실점 이닝을 51이닝으로 늘리는군요. 오늘 경기를 완봉으로 끝낸다면 역대 3위인 월터 존슨까지 노려볼 수 있습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김민.
그의 머릿속에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병살타로 타석이 늘어나는 것은 막았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오늘 보스턴은 집중력이 좋으니까 적어도 3, 4명은 주자가 나갈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고 해도 퍼팩트 게임이나 노히트 게임을 경기마다 할 수는 없었다.
김민은 오늘 경기 목표를 완봉으로 잡았다.
2회 말.
발렌타인은 라이트부터 시작하는 탬파베이 5, 6, 7번과 맞섰다.
탬파베이 하위 타선은 짜임새가 좋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안타를 내주지 않고 깔끔하게 그들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발렌타인! 좋습니다! 땅볼 2개와 뜬공 1개로 탬파베이 타선을 막아 냅니다.”
“이번 이닝 효율적인 투구로 투구수를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발렌타인의 투구수는 25개.
효율적인 투구로 유명한 김민보다 5개가 많을 뿐이었다.
김민은 발렌타인의 투구수를 체크하곤 미간을 좁혔다.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진 않는군. 이 상태라면 7회까지는 던지겠어.’
그는 메모장을 접은 뒤 마운드로 향했다.
3회 초.
보스턴 타선은 7번부터 시작하는 하위 타선이었다.
평소라면 쉽게 갈 수 있는 타선이었다.
하지만 첫 타자부터 끈질기게 김민을 물고 늘어졌다.
탁!
“파울!”
다섯 번째 공이 관중석에 떨어졌다.
김민은 로진백을 만지면서 미간을 좁혔다.
‘이런 식이면 9회까지 던질 수 없어.’
그는 조금 더 투구수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넬슨, 카운트 2-2에서 6구를 기다립니다.”
슉!
여섯 번째 공이 바깥쪽 낮은 코너를 노렸다.
넬슨은 다시 한번 배트를 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은 멀리 가지 않고, 1루수 아울 앞에 떨어졌다.
“아울 공을 잡아 투수에게 토스!”
김민은 깔끔한 연계 플레이로 넬슨을 잡아냈지만,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는데 6개의 공을 소모하고 말았다.
‘후우…… 오늘 경기는 투구수와 싸움이 되겠군.’
그는 다음 타자 8번 잭슨을 우익수 플라이로 손쉽게 잡아냈지만, 9번 캄푸에게는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행운의 안타를 허락하고 말았다.
“주자가 다시 1루에 나갑니다.”
김민은 모자를 벗었다.
‘하위 타선이라고 얕본 게 패착이야. 9번 타자마저 끝까지 따라붙을 줄은 몰랐어.’
오늘 보스턴은 힘을 빼고 던질 수 있는 타자가 없엇다.
“다음 타자는 1번 코버입니다.”
코버는 배트를 짧게 잡고 타석에 들어섰다.
‘정확하게 때려서 2, 3루 사이를 통과한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타점을 만들기보다는 찬스를 이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김민의 초구가 날아왔다.
슈욱!
‘높다!’
배트를 멈춘 순간 공이 미트를 강타했다.
파앙!
묵직함을 넘은 강렬한 소리.
‘이건 볼이다.’
그러나 판정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스트라이크!”
코버가 눈을 크게 뜨며 주심에게 항의했다.
“볼 아닙니까?”
주심은 고개를 내저었다.
“높은 코스를 통과했어.”
코버는 한마디를 더 하려다가 타격 코치가 그를 말리기 위해서 나오는 것을 보곤 몸을 돌렸다.
‘하이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고? 그럴 리 없어. 이건 슈퍼스타 콜이 분명해.’
그는 주심이 김민의 기록을 만들어 주기 위해 슈퍼스타 콜을 적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버의 생각은 지나친 것이었다.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정확히 통과했고, 주심은 자신이 본 그대로 판정을 내린 것뿐이었다.
코버는 슈퍼스타 콜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다음 공에 집중하고자 했다.
‘첫 번째 공은 힘을 잔뜩 실은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공은 체인지업이나 커브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그는 김민이 모든 공을 전력으로 던지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두 번째 공도 빨랐다.
‘바깥쪽!’
그는 다시 한번 배트를 멈췄다.
‘이건 빠진다.’
다음 순간 코너에 패스트볼이 꽂혔다.
파앙!
“스트라이크!”
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항의 없이 콜을 인정했다.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 코너를 정확히 노렸다. 언제 봐도 뛰어난 제구력이군.’
객관적으로 보면 감탄할 만한 공이었다.
‘다음에 같은 공이 들어온다면 반드시 친다.’
세 번째 공.
코버는 김민이 카운트에 여유가 있을 때도 과감하게 승부구를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슷하면 친다는 생각과 함께 배터 박스에 바짝 붙었다.
슉!
다시 한번 빠른 공이 바깥쪽으로 날아왔다.
‘이번에는 때린다.’
배트가 앞으로 나간 순간 공이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코버는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속았다. 패스트볼이 아니야.’
휙!
배트는 허공을 쳤고, 주심은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김민이 마지막에 던진 공은 고속 슬라이더였다.
“킴! 코버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3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 냅니다.”
“무실점 이닝이 52이닝까지 늘어나는군요. 다음 이닝을 막으면 잭 쿰스와 타이기록입니다.”
김민은 잭 쿰스의 53이닝 무실점 기록보다는 자신의 투구수를 먼저 체크했다.
“몇 개입니까?”
블렛소 투수 코치가 대답했다.
“38개.”
“그렇게 많습니까?”
“이번 회에 너무 많았어.”
9회까지 던진다고 하면 114개.
김민의 한계 투구수를 10개 이상 초과하고 있었다.
‘플레이오프라고 하면 무리해서라도 완봉을 노리겠지만, 아직은 5월이다.’
그는 이대로 투구수가 늘어난다면 볼튼에게 9회를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3회와 4회 그리고 5회.
양 팀은 점수를 내지 못한 채 산발적으로 주자를 내보내고 있었다.
관중들이 살짝 흥분했던 것은 김민이 잭 쿰스의 기록을 뛰어넘었을 때뿐이었다.
“발렌타인의 투구수가 80개에 육박했습니다.”
반헬 투수 코치는 교체 시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렌타인은 110개까지 던질 수 있지 않은가?”
“110개를 다 채우시겠습니까?”
“자네 생각은?”
“탬파베이는 강팀입니다. 100개가 넘어가면 맞아 나갈 겁니다.”
호이스 감독이 말했다.
“그럼 95개에서 교체하도록 하지.”
공을 아끼지 않는 발렌타인의 스타일을 생각하다면, 1이닝 정도가 한계였다.
‘2회처럼 효율적인 투구가 되면 좋겠지만, 6회 말까지 던진다고 보는 게 좋겠지.’
탬파베이 코칭 스텝 역시 김민의 투구수를 체크하고 있었다.
“72개면, 아직 2, 3이닝은 더 던질 수 있겠군.”
10개 전후로 이닝을 끝낼 수 있다면 8회 초까지 던질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투구수가 늘어난다면 7회가 마지막 이닝이었다.
“스페이츠를 준비시키겠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의 건의에 이반 감독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은 아니야.”
“그럼 라우리를 준비시킬까요?”
“아니, 킴의 투구를 조금 더 지켜보세.”
이반 감독은 김민이 이번 이닝만큼은 확실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펜을 가동하는 건 7회부터 해도 늦지 않아.’
6회 초.
보스턴의 선두 타자는 5번 토미였다.
김민은 토미를 확인하곤 심호흡을 했다.
‘후우…… 여기서 투구수를 줄여야 해.’
그는 심호흡을 마친 뒤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았다.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이다.’
김민은 높은 코스로 강하게 공을 던졌다.
슈욱!
토미는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로 공이 날아오자 거침이 없었다.
딱!
강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높이 솟아올랐다.
“멀리! 멀리 갑니다!”
홈런인가?
김민은 고개를 돌렸다.
‘아니야.’
산체스가 공을 향해 뛰고 있었다.
그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이 펜스를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산체스, 워닝 트랙까지 공을 따라갑니다!”
산체스는 마지막 순간 펜스와 가볍게 부딪혔다. 그러나 쓰러지는 대신 균형을 잡고 서서 글러브를 들었다.
공은 그의 글러브 안에 들어 있었다.
“멋진 수비입니다. 산체스! 오늘 유일한 타점을 올린 것도 모자라 호수비로 킴을 구해냅니다.”
“이번 시즌 신인왕을 예약한 선수답습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선수는 오직 라이트뿐입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산체스와 같은 수비를 할 수 없습니다.”
라이트는 인터리그를 비롯한 몇몇 경기에서 케니히 대신 좌익수로 출전한 바 있었다.
하지만 수비수로서는 큰 메리트가 없었다.
“성공이군.”
도박은 통했다.
김민은 단 하나의 공으로 토미를 잡아내며 투구수를 줄였다.
‘다음은 헬리오야.’
6번 타자 헬리오.
그는 토미와 비슷한 유형이었지만, 조금 더 상대하기 쉬웠다.
‘토미보다는 파워가 약하니까.’
김민은 이번에도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에 공을 던졌다.
슈욱!
‘안쪽 높은 코스라고?’
홀리오는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탁!
이번에는 정타가 아닌 빗맞은 타구.
“유격수 브라이튼이 앞으로 달려들어 타구를 처리합니다!”
호이스 감독은 김민이 맞춰 잡기에 나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코스에 하나 정도 빠진 공을 던지고 있군.”
“토미가 때린 공도 그럼…….”
“아마 빠진 공이었을 거야. 하지만 토미쯤 되면 공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타자들이게 비슷한 공을 주의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터 박스에 있는 타자에게까지는 그 지시가 전달되지 못했다.
탁!
높이 떠오른 공이 우익수 윌리엄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킴! 이번 이닝을 공 4개로 마무리합니다.”
“남은 이닝이 적기 때문일까요? 보스턴 타자들이 성급하게 배트를 내고 말았습니다.”
6이닝을 투구한 지금.
김민의 투구수는 76개에 도달했다.
‘앞으로 3이닝…… 9개씩 던진다고 하면 103개에서 끊을 수 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은 역시 김민이라고 생각했다.
‘킴을 걱정하는 건 시간 낭비야.’
그는 1점밖에 뽑지 못하는 타선으로 눈을 돌렸다.
“대타를 써 보지.”
“예?”
“하위타순이잖아.”
이반 감독은 좀처럼 대타를 쓰지 않는 감독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뭔가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 타자는 스나이더입니다.”
3루 백업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대타를 쓸 수 없다는 말이었다.
“록튼 타석에서 대타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스나이더에게도 자극이 필요할 거야.”
스나이더는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진 못했지만, 수비에서 한몫해 주고 있었다.
그는 교체 지시를 듣곤 눈을 크게 떴다.
“제가 교체라고요?”
“감독님이 돌먼을 써 보고 싶다는군.”
돌먼은 외야 백업이었기 때문에 이번 타석이 끝나면 내야 백업과 교체될 것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배팅 능력만을 보고 대타로 기용한 것이었다.
“돌먼은 트리플A에서 열심히 했던 친구야. 기회를 줘야지.”
코스타 타격 코치의 말에 스나이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타석에 들어선 돌먼은 이반 감독이 기대에도 불구하고 2루 땅볼이라는 그저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쉽지 않군.”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의 말을 받았다.
“모든 선수가 산체스나 라이트처럼 잘할 수는 없죠.”
“알고는 있지만, 답답하군.”
돌먼은 마이너리그에서 5년을 뛴 선수였다.
이반 감독은 가능하면 그가 이번 기회를 잡아줬으면 싶었다.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기회는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말했다.
“다음 타자는 록튼입니다.”
록튼은 초구를 노렸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2루수 키를 넘어갔다.
록튼으로서는 2경기 만에 맛보는 손맛이었다.
“나이스 록튼!”
“바로 그거야!”
한 점 더 달아나자.
탬파베이 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보스턴 야수들은 필사적이었다.
칼튼의 타구는 3루수 넬슨, 브라이튼의 직선타는 우익수 토미가 거구를 날리며 잡아냈다.
“보스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탬파베이가 추가점을 내지 못하고 쫓기고 있군요. 킴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질 것 같습니다.”
김민은 마운드로 향하기 전 스코어 보드를 확인했다.
‘1-0, 나쁜 상황은 아니군. 넉넉한 점수는 아니지만, 내가 점수를 주지 않으면 이길 수 있으니까.’
그가 더그아웃을 막 나온 순간 관중석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높였다.
“킴! 기록을 부탁해!”
김민은 걸음을 멈칫했다.
‘기록? 그렇군.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 아직 계속되고 있었지.’
이번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낸다면 그는 월터 존슨을 넘어 역대 3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김민은 목소리가 난 쪽을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기록을 맡겨 달라는 제스처.
탬파베이 팬들은 그의 제스처에 환호했다.
“킴! 킴! 킴!”
“부탁한다!”
“멋지게 깨 버려!”
김민은 함성과 함께 마운드에 섰다.
“보스턴의 7회 초 공격이 시작됩니다!”
배터 박스에 들어온 타자는 8번 타자 잭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