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다저스의 영건들 07
발리안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더그아웃을 떠나지 못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졌다면, 김민의 공을 쳐 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발리안.”
짧은 부름.
발리안은 고개를 돌렸다.
“경기는 끝났어.”
그를 부른 이는 쇼트였다.
“알고 있어.”
발리안은 텅 빈 상대편 라커룸을 주시했다.
“발리안, 누굴 보고 있는 거야?”
“아무도.”
“아직도 오늘 패배를 마음속에 두고 있는 건가? 오늘의 패배는 내일의 승리로 갚아 주면 되는 거야.”
탬파베이와 시리즈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내일 승리한다면 다저스는 2승 1패로 위닝 시리즈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한 마음이 다 풀리지 않았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공을 상대했다.’
떠오르는 공을 때렸을 때의 짜릿한 감각.
발리안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감각을 잊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공을 던지는 투수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
메이저리그에 올라 온지 2달 남짓.
그는 최고의 상대를 만나고 말았다.
발리안이 쇼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킴을 다시 만나라면 월드시리즈에 나가야겠지?”
쇼트가 멈칫했다.
“킴과 재대결을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발리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쇼트가 말했다.
“우리가 월드시리즈에 나간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확답할 수는 없어. 탬파베이가 월드시리즈에 꼭 올라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발리안이 목에 힘을 주었다.
“아니, 킴은 반드시 올라온다.”
그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쇼트, 월드시리즈에 가자.”
“뭐?”
“킴을 다시 한번 만나는 거야.”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최고의 승부를 벌인다.
발리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내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이유다.’
다음 날 벌어진 3차전.
LA 다저스는 어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저스가 선취점을 뽑아냅니다. 발리안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갑니다!”
“어제 퍼팩트 게임을 당하긴 했지만, 좋은 타구가 여러 차례 나왔죠. 발리안은 메이저리그를 이끌 차세대 스타 중 한 명입니다.”
6회까지 4-2로 앞서가던 다저스.
그러나 다저스는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윌리엄과 아울의 연속 안타가 터집니다!”
“탬파베이, 폭발력이 대단합니다! 다저스 불펜이 탬파베이 화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순식간에 동점.
탬파베이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산체스가 2루타, 스나이더가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를 6-4로 뒤집었다.
“탬파베이! 강합니다!”
“이것이 디펜딩 챔프의 저력이군요. 중심타선에서 붙은 불이 하위 타순까지 이어집니다. 다저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9번 타순에 클락뿐입니다.”
클락은 김민과 마찬가지로 타석이 어색한 투수였다.
“클락이 굳이 안타를 때릴 필요는 없어.”
“맞아, 킴처럼 마운드를 지켜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클락은 그래도 타석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의 배트는 허공을 칠 뿐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탬파베이의 매서웠던 공격은 클락의 삼진과 함께 끝났다.
이반 감독은 클락이 발리안에게 2루타를 맞자마자 불펜을 가동했다.
“라우리를 올려보내.”
“알겠습니다.”
탬파베이는 라우리-스페이츠-볼튼을 잇달아 투입해 경기를 매조지었다.
최종 스코어는 6-5 탬파베이의 1점 차 짜릿한 승리.
“탬파베이가 다저스를 꺾고 동부지구 선두를 굳게 지킵니다.”
“다저스로서는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7회만 잘 버텼다면 대어를 낚을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김민은 다저스가 패하긴 했지만, 정말 좋은 팀이라고 생각했다.
‘텍사스 못지않은 팀이야. 젊은 사자들을 이끌 수 있는 에이스만 있다면, 월드시리즈도 꿈은 아니겠어.’
자신 만큼은 아니라도 요한 산타나 정도……
아니, 그보다 아래인 무시나 정도의 에이스만 있어도 이 팀은 더 강해질 수 있다.
김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록튼이 김민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킴, 뭘 그렇게 생각해?”
김민이 다저스 더그아웃을 보며 대답했다.
“다음 시즌? 아니면 그다음 시즌 정도면 다저스를 월드시리즈에서 만나게 될 것 같아.”
“킴, 그거 알아?”
“어떤 거?”
“방금 그 말은 우리가 계속 월드시리즈에 나가야 비로써 성립되는 말이라고.”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우린 당연히 월드시리즈에 나가게 될 거야.”
그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한 번 우승으로 멈출 생각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어.’
* * *
“여, 다들 잘 돌아왔군.”
김민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단장도 아니고 구단주가 직접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구단주라고 해도 별것 아닌 사람 아닌가?”
그렉스도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반 감독은 그렉스와 김민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선수들에게 해산을 알렸다.
홈으로 돌아온 만큼 자유롭게 귀가하도록 한 것이다.
그렉스가 김민에게 말했다.
“킴, 자네의 퍼팩트 게임으로 시청률이 엄청나게 올랐어. 이건 이번 재계약에 도움이 되었지.”
탬파베이 레이스는 구단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지역 케이블 방송사와 5년 연장 계약을 채결했다.
“요즘 그렉스는 팀 성적보다 돈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전 재산을 다 쏟아부었으니까. 탬파베이가 잘못되면 큰일이라고.”
김민과 그렉스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요즘 메이저리그 구단주들 사이에 소문이 돌고 있어.”
“어떤 소문 말입니까?”
“곧 스켄들이 터질 것 같다고.”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이 다루는 스켄들이라면 연애나 뇌물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겁니까?”
김민이 넌지시 언급한 그것.
그것은 바로 스테로이드였다.
“구단주들 사이에 리스트가 오가고 있어.”
약물로 기록을 쌓은 선수들에 관한 리스트.
“어쩌면 텍사스가 에이로드를 양키스로 보낸 것도 이 리스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에이로드가 약물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민의 물음에 그렉스가 대답했다.
“유격수로 50홈런. 믿기지 않는 기록이지. 스테로이드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거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스스로의 힘으로 50홈런을 때렸다면, 절대 양키스로 트레이드하지 않았을 거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억될 테니까.”
김민은 생각했다.
‘약물 스켄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빨라.’
그가 알고 있는 미첼 리포트의 발표는 2007년.
지금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보다 이른 2005년쯤 리포트가 발표될 수도 있었다.
김민이 물었다.
“우리 팀에는 관련된 선수가 없습니까?”
“없다고 말은 못 할 거야.”
그렉스가 그랬던 것처럼 호텔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있을 수 있었다.
“그렉스, 일단 우리도 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미 코너가 작성에 들어갔어. 물론 우리 팀 선수들을 포함해서.”
“앞으로 트레이드가 조심스럽겠군요.”
“스켄들이 터지면 FA시장이 얼어붙게 될 거야.”
FA 시장이 얼어붙는다는 것은 구단주들의 주머니에서 나갈 돈이 줄어든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그 여파로 티켓 판매와 시청률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반년 정도는 그렇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털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
그렉스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나도 그것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어.”
“은퇴 뒤 재평가를 받겠죠?”
“아마도. 그때가 되면 구단주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몰라.”
김민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사양입니다. 그렉스가 없으면 제가 그 업무를 다 처리해야 하잖아요.”
그렉스가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자네는 약물의 유혹을 받은 적이 없나?”
“없습니다.”
그렉스는 미소를 지은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자네가 약물을 했다면 정말 대단했을 거야. 수많은 구종을 던지면서 9회까지 전혀 체력이 줄어들지 않는 선발 투수.”
김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100마일(161km)은 던지지 못했을 겁니다.”
“100마일이 힘들어도 98마일(158km)은 던졌을 테지. 안 그런가?”
“글쎄요.”
그렉스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를 의심하는 쪽도 많아.”
“어쩔 수 없겠죠. 믿기지 않는 성적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자네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을 받고 있어.”
“스테로이드로 인한 성기능 장애 말씀입니까?”
발기 부전은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였다.
그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동을 켰다.
부르르릉……
8기통 엔진이 우렁찬 소리를 냈다.
그가 타고 있는 차량은 캐딜락 스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라도 만나는 게 어때?”
김민은 여자에 대한 생각이 크지 않았다.
‘20대 청춘도 아니고, 40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나 모델을 만나라고 하는 게 아니야.”
“그렉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렉스가 차를 몰며 말했다.
“고집이 세군.”
“투수들은 원래 고집이 셉니다.”
“좋은 아가씨가 있는데…….”
누군가 생각해 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민은 완강했다.
“10년 뒤에 만나도록 하죠.”
그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자네는 정말 야구와 결혼한 건가?”
“결혼은 아니라도 약혼쯤은 한 것 같습니다.”
그렉스의 차가 공항을 빠져나가면서 속도를 높였다.
“자네는 참 아까운 친구야.”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젊음을 즐길 줄 모르잖아.”
김민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전 젊음을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말이죠.”
코치 시절 그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던 선수를 여럿 보았다.
‘최고의 자리에서 안주하면 그 순간 내리막을 타기 시작한다. 정말로 최고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일부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 * *
탬파베이 레이스의 1위 질주는 5월 말에도 계속되었다.
그들은 시애틀과 볼티모어를 스윕하고 양키스의 승차를 3경기로 벌렸다.
“화끈한 트레이드에도 불구하고 탬파베이를 따라가지 못하는군.”
“탬파베이는 끈끈한 팀이야. 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팀이라고.”
“하긴 돈으로 승리를 살 수 있었다면, 진즉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반지를 자치했어야 해.”
양키스 구단주는 탬파베이에 뒤처진 순위표나 기사를 볼 때마다 신문을 찢어 버리곤 했다.
“빌어먹을! 대체 왜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거야! 탬파베이 따위 근본도 없는 팀이 아닌가?”
그는 앞으로 일주일 안에 탬파베이와 순위를 역전하지 못하면, 맥코비 감독을 해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새로운 단장 콘리가 말했다.
“잊으신 겁니까? 우리가 맥코비 감독을 데려온 것은 정규 시즌이 아니라 플레이오프에서 이기기 위함입니다. 그의 결단력과 추진력은 분명 플레이오프에서 빛을 발할 겁니다. 지금 그를 해임한다면 누가 플레이오프에서 탬파베이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린 지난 정규 시즌 탬파베이를 꺾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패했습니다. 부디 그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콘리의 설득은 먹혔다.
구단주는 주먹을 불끈 쥐는 것으로 자신의 화를 삭였다.
“맥코비가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양키 스타디움으로 가져오면 모든 것을 용서하지.”
콘리 단장은 맥코비 감독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승률을 높게 보지 않았다.
‘랜디 존슨과 조지 왈트가 합류한 투수진은 메이저리그 최강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는 모든 투수가 등판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3명의 선발 투수만이 마운드에 오른다.’
양키스의 세 에이스를 꼽는다면 다음과 같았다.
- 랜디 존슨, 조지 왈트, 라몬스.
무시나와 아이작 또한 언제든 15승 이상을 할 수 있는 투수였지만, 구위와 임팩트를 보면 위에 세 명이 양키스의 1, 2, 3선발이었다.
‘탬파베이의 에이스는 김민, 클락, 렉터겠지. 김민을 제외한 2, 3선발에서는 우리가 압도한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는 세 선수가 나란히 나와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 아니다.’
1선발과 2선발은 최대 2번 마운드에 등판할 수 있었다.
‘랜디가 킴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조지 왈트와 라몬스가 남은 3경기를 모두 잡아야 한다.’
조지 왈트나 라몬스가 1경기라도 패한다면 양키스는 어두운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돼.’
콘리는 입이 바싹 말랐다. 그가 냉장고로 향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수화기 뒤에서 수석 스카우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소식입니다.”
“무슨 소식이기에 이렇게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가?”
“렉터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탬파베이 3선발 렉터.
그가 부상을 당했다면 탬파베이는 지금의 페이스를 지킬 수 없었다.
‘하늘이 양키스를 도왔군.’
“얼마나 큰 부상인가?”
“경기 도중 타구를 맞고 응급차에 올랐습니다.”
“그 정도라면…….”
“시즌 아웃 가능성도 있습니다.”
콘리 단장은 맥코비 감독의 운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버거운 시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
그는 전화를 끊은 뒤 미소를 지었다.
“아직 하늘은 양키스를 버리지 않았어.”
* * *
“검사 결과는?”
이반 감독의 물음에 바이슨 수석 코치가 미간을 좁혔다.
“3개월입니다.”
“으음…… 지금이 5월이니, 8월 말은 돼야 한다는 건가?”
“재활 기간까지 생각하면, 복귀 시기를 플레이오프로 잡아야 합니다.”
우울한 소식이었다.
“9월 말에 복귀한다고 해도 제대로 컨디션이 올라올지 모르겠군.”
이반 감독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부상이라고 생각했다.
‘시즌을 치르면서 부상 선수가 나오지 않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부상 선수를 어떻게 대체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바이슨 수석 코치에게 블렛소 투수 코치를 불러 달라고 말했다.
잠시 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감독실로 향했다.
“블렛소.”
블렛소 투수 코치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킴?”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렛소 투수 코치는 바이슨 수석 코치로부터 렉터의 부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3개월이라고 하더군.”
“그럼 전반기는 못 나오겠군요.”
“사실상 9월 복귀라고 봐야겠지.”
김민이 물었다.
“혹시 감독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까?”
“맞아. 렉터를 대체할 자원이 필요하거든.”
김민은 지난겨울 탬파베이 영건들을 조련시킨 바 있었다.
“자네도 함께 가겠나?”
“그래도 되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할 때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쪽이 좋아.”
김민은 블렛소 투수 코치와 함께 이반 감독을 찾았다.
“음, 블렛소 투수 코치는 내가 불렀는데. 킴은…… 무슨 이유로 날 찾아왔지? 혹시 구단주 자격으로…….”
“그건 아닙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김민을 대신해 말했다.
“킴은 지난겨울 젊은 투수들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을지 몰라 이렇게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 소식은 들었네.”
세 사람은 빠르게 회의에 들어갔다.
“새로 콜업하는 투수는 선발 투수였으면 좋겠군.”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존 롱릴리프에게 선발 기회를 주는 게 아닙니까?”
“일단은 그럴 걸세. 하지만 그 롱릴리프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다음을 대비해야지.”
이반 감독의 시선이 김민에게 닿았다.
“킴, 추천할 선수가 있는가?”
김민이 대답했다.
“카이번이 어떨까 합니다.”
카이번은 지난날 김민과 함께 메이저리그 생존 경쟁을 펼쳤던 선수였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선발과 셋업 그리고 릴리프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25인 로스터 합류에 실패해 트리플A에서 뛰고 있었다.
이반 감독은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게 낫지 않을까? 조나단 같은 선수 말일세.”
김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조나단의 공은 분명 빠릅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기에는 아직 어립니다. 그보다는 카이번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반 감독은 고개를 블렛소 투수 코치에게 돌렸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블렛소 투수 코치가 대답했다.
“전 둘 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투수 코치가 의견이 그것뿐인가?”
이반 감독은 블렛소 투수 코치가 구단주인 김민의 눈치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블렛소 투수 코치는 누구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반 감독의 힐문에 블렛소 코치가 목소리를 낮췄다.
“조나단은 풍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 잠재력이 폭발한다면 좋은 투수가 될 겁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아직 완성되었다고 하기에는 이르죠. 반면 카이번은 기술적 완성도가 높습니다. 메이저리그를 이미 2시즌이나 경험하기도 했고…….”
이반 감독은 블렛소 투수 코치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즉시 전력으로는 카이번이 더 낫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이반 감독은 그래도 카이번이 내키지 않았다.
“이미 나이도 적지 않은 선수인데…….”
카이번의 나이는 라이트보다 1살이 더 많았다.
메이저리그 프런트는 기본적으로 어린 선수를 선호했다.
물론 이반 감독은 프런트가 아닌 현장 코칭 스텝이었다.
현장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더 나은 선수를 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민이 말했다.
“카이번은 이번 시즌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트리플A 성적이 메이저리그 성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트리플A에 익숙해져서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더 크니까요. 하지만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콜업 기회를 준다면 다른 트리플A 선수들이 분발하게 될 겁니다.”
그는 트리플A 선수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라도 카이번을 콜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리플A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말이군.”
“카이번은 겨울 훈련도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이반 감독은 내심 조나단을 생각했지만, 블렛소 투수 코치와 김민이 카이번을 지지하고 나서자 자신에 뜻을 꺾었다.
“알겠네. 카이번을 콜업 선수로 결정하지.”
R. 카이번은 이렇게 해서 3번째로 메이저리그 부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