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다저스의 영건들 05
“라이징 패스트볼이군.”
쇼트가 물었다.
“칠 수 있겠어?”
배트 스피드라면 메이저리그에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발리안이었다.
“다시 붙는다면…….”
“칠 수 있다는 말이군. 난 다시 저 공이 들어온다고 해도 칠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발리안은 자신이 있었다.
‘떠오르기 직전…… 아니 떠오르는 공을 배트 스피드로 낚아챈다. 그러면 공은 앞으로 나갈 것이다.’
쇼트는 전부터 자신과 발리안의 재능 차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발리안과 자신의 클래스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올스타 레벨이라면 발리안은 슈퍼스타 레벨이다. 아니, 어쩌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될지도 모르지.’
김민은 발리안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 슈퍼스타를 넘어, 은퇴 전 명예의 전당을 예약한 선수.
현재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스타들로 비교하면 제레미를 넘어 에이로드급.
물론 발리안은 에이로드와 같은 파괴력을 보여 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김민은 발리안을 에이로드 아래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발리안은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섰으니까.’
그는 발리안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면 본즈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대타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습니다.”
“최고의 컨디션이군.”
“기록을 다시 깨는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메이저리그 연속 타자 삼진 기록은 김민이 양키스를 상대로 기록한 14연속 타자 삼진이었다.
이반 감독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바이슨, 긴장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 컨디션이 좋은 날 의외로 맞아 나가는 수가 있어.”
자신감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이반 감독은 물론 바이슨 수석 코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킴은 감정을 다루는 데도 능숙합니다. 오버 페이스로 무너지진 않을 겁니다.”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하인케.
쇼트가 그에게 다가갔다.
“어땠어?”
하인케는 삼진을 먹었기 때문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빠르더군.”
“그뿐이야?”
하인케가 말끝을 올렸다.
“뭘 바라는 건데?”
“녀석의 공 말이야. 배터 박스에 들어가서 확인하겠다고 했잖아.”
하인케가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마지막 공은 조금 어려웠어.”
라이징 패스트볼은 하인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이었다.
“다시 상대한다면?”
발리안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
“글쎄.”
하인케는 확답을 하지 못했다.
쇼트는 하인케의 클래스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치고 싶을 거야. 하지만 머릿속으로 공을 공략하는 장면을 그리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테지.’
그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다음 타자는 5번 타자 브라이언트.
그는 데뷔 4년 차로 다저스 신인들과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브라이언트가 해낼 수 있을까?”
카울 감독의 물음에 케이시 수석 코치가 대답했다.
“글쎄요.”
“어려운 모양이군.”
“솔직히 말씀드리면 힘들 겁니다.”
김민은 브라이언트의 타격 자세를 살폈다.
‘상위 타선에 비해 정확도는 뛰어나지 않지만, 한 방이 있는 타자. 브라이언트는 전형적인 5번이야.’
그는 이런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브라이언트는 카운트가 몰리기 전 승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킴, 스트라이크를 던지라고, 길게 끌어 봐야 서로 좋을 게 없잖아.’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바깥쪽 빠른 공.
브라이언트가 미소를 지었다.
‘독심술사라고 하더니, 내 마음을 읽은 모양이군.’
브라이언트는 바깥쪽 빠른 공에 망설임 없이 배트를 냈다.
‘승부를 받아주지!’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홈플레이트 위에 떠올랐다.
‘제길! 스트라이크가 아니잖아!’
브라이언트는 김민이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파울 타구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록튼은 마지막 순간 공이 미세하게 떠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공은 킴이 마음먹고 던진 라이징 패스트볼이 아니다. 그런데도 공이 떠올랐다는 건…… 오늘 킴의 컨디션이 최고라는 뜻이다.’
사실 록튼은 이런 생각을 길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높이 떠오른 공이 그의 머리 위에서 서서 내려왔다.
‘집중하자! 오른쪽으로…….’
미트를 움직이자 공이 볼집에 들어왔다.
팡!
“아웃! 킴! 단 하나의 공으로 5번 브라이언트를 잡아냅니다.”
연속 타자 삼진 기록은 네 타자에서 끝났다.
하지만 김민은 미소를 지었다.
‘삼진은 멋지긴 하지만…… 맞춰 잡을 때보다 체력 소모가 크지. 난 이쪽이 더 취향이라고.’
삼진을 잡기 위해서는 무조건 3개 이상 공을 던져야 했다.
하지만 맞춰 잡는 피칭은 공 1개로도 아웃 카운트를 잡아낼 수 있었다.
‘다음 타자도 이렇게 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고개를 돌리니, 배터 박스로 향하는 건장한 타자가 보였다.
6번 타자 크라우저.
그는 다저스에서 파워가 가장 뛰어났다.
‘뛰어난 파워. 하지만 정확도가 부족해서 클린업은 무리.’
이런 타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유인구 위주의 승부.
뻔히 공략법이 나와 있는 타자였지만 김민은 신중했다.
‘유인구에 약점이 있는 타자가 다저스에서 6번을 치고 있다. 이건 약점을 커버할 만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야.’
이반 감독이 크라우저를 바라보며 바이슨 수석 코치에게 물었다.
“저 친구 휴스턴에서 뛰던 친구 아닌가?”
“맞습니다. 휴스턴에서 외야 백업이었죠.”
“워낙 힘이 좋아서 기억이 나는군. 그런데 다저스에서 6번이라니, 내가 못 본 사이에 각성이라도 한 건가?”
바이슨 수석 코치가 대답했다.
“각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이너리그에서 약점을 보완한 것 같습니다.”
“흠, 약점을 보완했다. 정확도가 향상되었다는 뜻인가?”
“그보다는 게스 히터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습니다.”
“게스 히터라고?”
게스 히터.
투수가 던질 공을 예상해서 타격하는 타자.
예측이 잘 맞으면 홈런.
빗나가면 삼진.
“겜블러가 되었군.”
김민은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게스 히터에게 특히 강했다.
“상대가 킴이라면 쉽지 않을 겁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크라우저의 승산을 10% 이하로 보았다.
‘킴을 상대로는 게스 히팅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좋을 거야.’
쇼트도 크라우저의 승산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상대가 킴이라면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크라우저는 대기 타석에서 이미 예측을 마쳤다.
‘초구는 패스트볼 코스는 바깥쪽.’
이는 김민이 가장 많이 던지는 코스였다.
‘날 상대로 킴이 머리싸움을 벌이진 않을 거야.’
그는 김민이 무난한 피칭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크라우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예상대로군.’
그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배트가 친 것은 공이 아니라 허공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클라우저는 헛스윙을 한 뒤 크게 화를 냈다.
“젠장! 패스트볼이 아니라 스플리터군!”
그러나 김민은 화를 내는 크라우저를 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게스 히터를 상대로 정직한 패스트볼을 던질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고 정확도나 컨텍 능력은 정말 안 좋군.’
그는 헛스윙을 예상하고 스플리터를 던진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공 위쪽 부분은 컨텍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김민이 원했던 것은 2루 쪽으로 흘러가는 땅볼이었다.
하지만 크라우저의 배트는 공이 아닌 허공을 치고 말았다.
“킴, 카운트 0-1에서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크라우저는 바짝 배트를 당겼다.
‘안쪽 로케이션 투구를 노린다. 노리는 공은 안쪽 패스트볼.’
그는 두 번째 공으로 안쪽 패스트볼을 예측했다.
휙!
이번에는 코스와 구종, 모두 틀렸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은 바깥쪽 체인지업이었다.
“스트라이크!”
‘큭…… 킴의 투구를 예측한다는 건 무리인가?’
쇼트는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다.
“체인지업에 꼼짝 못 하는군. 킴이 저렇게까지 나오면 이길 수가 없지.”
포수인 코우저가 니가드를 든 채 말했다.
“쇼트, 오늘 너무 냉소적인데? 삼진을 하나 당했다고 기가 꺾인 건가?”
평소 쇼트라면 발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쇼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우저, 배터 박스에 들어가 보면 알게 될 거야.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말이야.”
“마구라도 본 모양이군.”
“킴은 그 비슷한 것을 던져.”
팡!
공이 미트에 들어왔다는 것은 크라우저가 공을 맞히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여섯 명의 타자를 상대로 다섯 개의 삼진.
다저스 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무시무시한 투구야.”
“듣던 대로 삼진 머신이군.”
“명예의 전당은 이미 예약했고, 남은 건 뭐가 있지?”
“300승이나 역대 최고의 투수 타이틀에 도전하는 것 정도겠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투수.
김민은 기록만 보면 그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고대 괴수들은 지금과 다른 룰에서 공을 던졌으니까.’
사이영이 활동하던 시대 투수들은 지금 투수들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기록은 보고도 믿기 힘든 것이 많았다.
예를 들면 잭 테일러가 세운 연속 경기 완투 기록.
21세기 투수들의 완투는 많아야 한 시즌에 5, 6번이었다.
그러나 젝 테일러는 1901년부터 1906년까지 무려 187경기 연속 완투 기록을 세웠다.
단순히 187경기 완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연속 완투.
이는 등판하면 완투를 했다는 소리였다.
현대 야구에서는 절대 있을 수도 있어도 안 되는 기록.
김민은 그런 기록은 깰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팩트 승부라면 가능하다.’
그는 시대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완벽하게 군림한다면 고대의 괴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시대 투수들이 깰 수 없는 기록을 세운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오늘은 기록을 노리고 등판한 것이 아니었다.
3회 초.
탬파베이 공격.
어제 부진했던 타선이 다시 불을 뿜었다.
브라이튼이 출루하고, 산체스가 불을 지피고, 윌리엄이 폭발했다.
“윌리엄의 2타점 적시 2루타! 멋진 타격입니다. 캔자스시티가 왜 이 선수를 탬파베이에 보냈을까요?”
“윌리엄 트레이드는 탬파베이 입장에서 최고의 트레이드였습니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4-0까지 벌어졌다.
“한계인 모양이군.”
“탬파베이가 너무 강한 겁니다. 90마일 중반 패스트볼을 저렇게 쉽게 때려내는 타선은 흔치 않습니다.”
카울 감독은 에이스를 보호하기 위해 불펜을 가동했다.
“커즌이 내려가고 라이저가 올라옵니다.”
라이저의 이번 시즌 평균자책점은 5.10.
다저 스타디움이 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좋지 않은 것이었다.
“라이저라고? 카울 감독이 벌써 수건을 던진 건가?”
“3회 초잖아. 수건을 던지기에는 너무 이른데?”
기자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사이 아울의 타구가 3루수 발리안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잘 맞은 타구! 그러나 발리안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갑니다.”
발리안은 빠르게 글러브에서 공을 빼냈다. 그리곤 2루에 강하게 공을 던졌다.
파앙!
“2루수 젠슨의 글러브가 빨랐습니다! 윌리엄 2루에서 아웃입니다!”
호수비에 이은 멋진 판단.
발리안은 타격에서만 빛을 발하는 타자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투 아웃이군.”
“발리안이 수비로 라이저를 구했습니다.”
라이저는 5번 타자 라이트마저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카울 감독은 4-0으로 벌어진 스코어를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늘 경기는 힘들 것 같군.”
3회 말.
다저스 공격.
카울 감독은 하위 타선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점수는 바라지도 않는다. 투구수를 늘려 주면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민은 단 5개의 공으로 3회 말을 끝내 버렸다.
“킴이 외야 플라이 3개로 이닝을 끝냅니다.”
삼진 행진은 멈췄지만, 투구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젠슨이 대기 타석에서 돌아오며 말했다.
“발리안, 킴이 우리를 완전히 얕보고 있어. 한가운데로 공을 집어넣더라.”
발리안은 젠슨의 말을 받지 않고 쇼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쇼트, 어떻게 생각해?”
“하위 타선에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공을 던진 것 같은데…….”
젠슨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장타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한가운데는 좀 심한 것 아닌가?”
그의 뒤를 이어 방금 플라이를 때린 코우저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단순한 한가운데 공이 아니야.”
젠슨이 멈칫했다.
“혹시 떠오르는 공인가?”
“아니, 무거웠어. 손에 묵직한 것이 감기더라고.”
쇼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거운 공이라고?”
“그냥 느낌이 그래. 실제로 무거운 공은 존재하지 않겠지.”
코우저는 대답을 마친 뒤 쇼트에게 사과했다.
“아까는 미안했어. 배터 박스에 들어가니, 네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 것 같아. 녀석은 괴물이야.”
김민은 4회와 5회 그리고 6회에도 단 한 명의 타자도 내보내지 않았다.
“발리안조차 쳐 내지 못하고 있으니…….”
발리안의 두 번째 타석은 유격수 땅볼이었다.
“구종이 너무 다양합니다.”
“그래도 중심에는 패스트볼이 있어.”
패스트볼을 노리면 된다.
하지만 김민이 던지는 패스트볼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오른쪽 타자 안쪽에서 떨어지는 투심.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커터.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어디 그뿐인가?
포심 패스트볼조차 위로 떠올랐다.
김민에게 평범한 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탁!
젠슨의 배트에 맞은 공이 2루수 칼튼에게 굴러갔다.
“칼튼,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 2루에 송구합니다.”
“오늘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했지만, 수비는 정말 안정적입니다.”
팡!
젠슨은 땅볼을 치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정말 칠 수 있는 공이 없다니까.’
다음 타자인 쇼트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투수는 처음 봤어. 내가 생각한 어떠한 방법으로도 공략이 불가능해.’
김민이 강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퍼팩트 게임을 당한 팀이 어디였더라? 텍사스였나?’
텍사스 레인저스는 현재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쇼트! 어떻게든 나가라고!”
관중들이 쇼트를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쇼트는 배트를 가볍게 두드린 뒤 타격 자세를 취했다.
‘킴을 상대로 특정한 공을 노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방법을 바꿔야 해.’
그는 코스를 정한 뒤, 날아오는 공을 보고 타이밍을 맞추기로 했다.
‘보고 친다는 것은 예측하고 치는 것에 비해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패스트볼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동물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조금 더 빨리 판단하고 빨리 휘두른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리스크가 크다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녀석의 공을 때려내는 게 불가능해.’
초구가 날아왔고, 쇼트는 한발 빨리 판단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패스트볼이라 판단한 공은 스플리터였다.
‘큭…… 공과 배트의 차이가 더 커졌다.’
대기 타석에 선 발리안이 미간을 좁혔다.
‘쇼트, 뭘 그렇게 초조해 하고 있는 거냐! 그건 네 야구가 아니야.’
그는 무리해서는 김민을 쓰러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쇼트는 자신의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
‘킴은 무리를 하지 않고는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다.’
그는 열 번 헛스윙을 하더라도 한 번의 정확한 타격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다시 한번 헛스윙.
카운트는 0-2까지 밀렸다.
참다못한 발리안이 목소리를 높였다.
“쇼트! 그게 네 야구냐!”
쇼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받았다.
“거기서 보고 있어!”
그답지 않은 강한 한마디에 발리안이 움찔했다.
‘쇼트, 네게 생각이 있단 말이냐? 좋아, 그렇다면 지켜봐 주마!’
김민은 쇼트와 발리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아. 헛스윙이 되고 있지만, 배트가 자신 있게 나오고 있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젊은 피.
김민은 공을 강하게 잡았다.
‘아직은 나도 젊다.’
그는 육체적으로 쇼트와 발리안보다 한 살 더 많을 뿐이었다.
슈욱!
빠른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하이 패스트볼!’
하이 패스트볼은 김민이 던질 수 있는 공 중 가장 빨랐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
쇼트는 바로 배트를 냈다.
다음 순간 그의 두 눈에 공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놓치지 않는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투수 머리 위에 떠올랐다.
“1루!”
록튼이 아울에게 콜을 한 순간 김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잡겠어!”
타구의 높이가 낮았기 때문에 아울이 달려올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수하지 말고 침착하게!’
김민은 마운드를 주의하면서 글러브를 앞으로 내밀었다.
팡!
글러브에 들어온 공이 짧은 소리를 냈다.
“킴! 플라이를 처리합니다!”
“킴은 이번 시즌 골드글러브를 노리고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7회 말 주자 없이 2사.
발리안은 배터 박스로 향하는 대신 쇼트에게 다가갔다.
“쇼트, 좋은 스윙이었다.”
쇼트가 멈칫했다.
“투수 플라이였어.”
“아니, 특별한 스윙이었다.”
“그게 무슨…….”
“오늘 그 공을 앞으로 보낸 건 네가 처음이다.”
그 공.
그것은 바로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발리안이 배터 박스로 걸어가며 말했다.
“쇼트, 오늘 게임의 마지막을 보여 주겠다.”
스코어는 6-0으로 크게 뒤져 있었다.
그러나 발리안은 점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깨끗한 홈런 한 방. 오늘 경기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는 기어코 김민을 이겨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