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33화 (233/296)

233화 다저스의 영건들 04

김민은 삼진을 잡은 뒤, 표정이 없는 얼굴로 공을 받았다.

‘무리라고 해도 할 수 없어. 지금 기세를 꺾지 않으면 후반에 힘들어질 거야.’

발리안은 대기 타석에서 쇼트의 삼진을 확인했다.

입가의 미소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떠오르는 공이라. 쉽지 않은 상대군.’

그는 굳은 얼굴로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내게도 그 공을 던질까? 아니, 던질 수밖에 없을 거야.’

“다음 타자는 3번 발리안입니다.”

“에이스 킬러와 마술사의 대결인가요?”

발리안은 데뷔 전에서 뉴욕 메츠의 에이스 체스터의 공을 펜스 밖으로 넘겼다.

이때만 해도 신인의 패기가 에이스의 방심을 노렸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발리안은 다음 시리즈에서 마스터(그렉 매덕스), 그다음 시리즈에서 커트 실링의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 버렸다.

그래서 얻게 된 별명이 에이스 킬러.

에이스에게 더욱 강한 타자.

다저스 팬들은 그가 배터 박스에 들어설 때마다 에이스 킬러란 별명을 외쳤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에이스 킬러!”

“부탁한다! 에이스 킬러!”

탬파베이 선수들도 발리안의 별명을 알고 있었다.

“에이스에게 강하다는 것은 결국 배트 스피드가 빠르다는 뜻인가?”

부르스의 말을 렉터가 받았다.

“배트 스피드가 빠르면 단순히 에이스에게만 강한 게 아니잖아.”

“렉터, 발리안은 에이스에게만 강한 게 아니라 에이스에게 강한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

부르스가 말했다.

“둘은 다르지. 발리안은 에이스가 아닌 투수들에게 0.299, 에이스인 투수들에게 0.261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어. 이건 그가 에이스에게만 강한 게 아니라. 다른 타자들에 비해 에이스의 공을 잘 때려내고 있다는 뜻이야.”

렉터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흠, 부르스 그런 자료는 언제 조사했어?”

“난 어제 선발 투수였잖아. 전력분석팀에서 자료를 받았지. 그러고 보니 렉터는 이번 시리즈에 등판하지 않겠군.”

“그렇지. 난 3선발이니까?”

조정 기간인 4월을 거쳐 2선발 자리를 차지한 것은 클락이었다.

“아까 말하던 걸 계속 말하면…… 발리안은 윌리엄과 반대편에 위치한 타자라고 할 수 있어.”

“윌리엄과? 이상하군. 윌리엄은 배트 스피드가 그렇게 느리지 않은데.”

“배트 스피드보다는 선구안을 말하는 거야.”

“선구안이라고?”

부르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초구가 바깥쪽을 향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3루 파울 라인을 넘어갔다.

“극단적으로 당기는군. 바깥쪽 공을 저렇게 당기는 친구는 처음이야.”

“발리안의 스윙은 배트 스피드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기술적으로 보면 발리안은 윌리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렉터가 물었다.

“부르스, 아까 그랬지? 선구안이라고.”

“그래, 발리안은 배트 스피드가 좋지만 선구안이 그리 좋지 않은 친구야. 선구안이 최고인 윌리엄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친구라고. 그래서 저 공에 스윙이 나오는 거야.”

김민은 바깥쪽 공을 당겨내는 배트 스피드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대로 억지스러운 스윙이군. 배트 스피드만 따지면 본즈와 같거나 그 이상이야.’

평범한 타자였다면 1루 쪽으로 향하는 파울이나 헛스윙이 나왔을 것이다.

김민은 발리안의 선구안이 소문과 달리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구안이 나쁘다면 애초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했을 거야. 발리안의 선구안은 빅 리그 평균 정도…… 그럼에도 선구안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의 배트 스피드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발리안은 다른 선수들이 그냥 지나칠 공에도 배트가 나왔다.

왜?

다른 선수들이 칠 수 없다고 생각한 그 공도 발리안은 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슉!

빠른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발리안은 이 공을 기억하고 있었다.

‘쇼트를 잡았던 바로 그 공이다.’

눈앞에서 공이 떠올랐다.

‘칠 수 있다.’

배트가 맹렬히 공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오산이었다.

배트가 허공을 친 사이, 공이 미트를 파고들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렉터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에 휘파람을 불었다.

“휴우! 멋진 공이야. 저런 공을 나도 던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부르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저 공을 던질 수 있었다면 연간 2천만 달러(248억 원)를 받을 수 있었을 거야.”

쇼트는 발리안의 배트가 허공을 친 것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역시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킴이 최고의 투수가 된 건 단순히 제구력이 좋거나 머리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야. 그는 다른 투수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최고의 무기를 지니고 있어.’

그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경험한 뒤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킴은 뛰어난 두뇌를 가진 투수가 아니다.”

젠슨이 고개를 쇼트에게 돌렸다.

“뭐라고? 그건 날 놀리는 건가?”

그는 앞서 김민에게 룩킹 삼진을 당한 바 있었다.

이것은 두뇌 싸움에서 완전히 패했다는 뜻이었다.

쇼트가 힘을 주어 말했다.

“킴은 그냥 괴물이야.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투수가 아니라고.”

다음 순간 발리안의 무릎이 무너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그것도 초구 파울을 제외하면 연속 헛스윙.

쇼트와 이야기하던 젠슨이 멈칫했다.

“발리안이 삼구삼진이라고? 마지막 공은 대체 뭐였지?”

쇼트가 글러브를 들며 대답했다.

“마지막 공은 스플리터였다.”

젠슨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스플리터가 저렇게 떨어질 수 있는 건가? 저건 마치…….”

한쪽에 서 있던 중년 선수가 그의 말을 잘랐다.

“포크볼 같지. 잘 봐 둬. 저게 바로 킴의 스플리터다.”

그는 지난 시즌 FA로 팀에 합류한 5번 타자 단테였다.

젠슨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단테는 킴을 알고 있는 건가?”

“물론.”

쇼트가 말했다.

“단테는 지난 시즌까지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었지. 로얄스였던가?”

“맞아. 킴의 공을 지긋지긋하게 경험했지.”

젠슨이 글러브를 챙기며 말했다.

“킴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면 미리 말해 줬으면 좋았잖아.”

“미리 말해줬다면 겁을 먹었겠지.”

젠슨이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겁을 먹는다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쇼트가 젠슨의 어깨를 잡았다.

“젠슨, 단테의 말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야.”

“뭐라고?”

“킴은 우리가 알고 있는 투수들과 전혀 달라. 느끼지 못한 건가?”

젠슨이 혀를 차며 말했다.

“머리를 잘 쓴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투수들과 다르다는 말은 인정하지 못하겠어. 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방금 삼진을 당한 발리안이 세 사람 앞에 섰다. 그는 젠슨과 쇼트를 지나쳤다.

그가 원하는 이는 바로 단테였다.

“단테, 킴을 상대한 적이 있나?”

“물론이지.”

“어땠지?”

“지금과 같았어.”

발리안이 배트를 꽂으며 말했다.

“평소와 같은 컨디션이라는 뜻이군.”

“킴은 항상 그 정도야.”

발리안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다음에는 당하지 않아.”

젠슨은 발리안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닫곤 말을 줄였다.

‘발리안의 저런 얼굴은 처음이야. 그건 그렇고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군.’

그는 뒤늦게 더그아웃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회 초.

4번 타자 아울이 선두 타자로 등장했다.

“아울, 이번 주 타격감이 아주 좋습니다. 어제도 홈런이 있습니다.”

캐스터의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타격음이 들렸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펜스까지 굴러갑니다.”

우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꿰뚫은 타구.

아울은 3루까지 내달렸다.

“3루에서 세이프! 빠릅니다!”

“아울, 외야수들의 타구 판단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3루로 직행했습니다. 훌륭한 주루 플레이입니다.”

선발 투수인 커즌은 외야수들의 실책성 플레이에 미간을 좁혔다.

‘한 베이스를 더 허용한 건 쇼트의 판단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야.’

쇼트도 자신이 실수한 것을 인정했다. 그는 글러브를 들어 커즌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킴에 대한 생각이 지나쳤다. 2루타가 3루타가 된 것은 내 탓이다.’

다저스의 카울 감독은 번뜩이는 작전보다는 선수단 관리에 강점이 있는 감독이었다.

때문에 작전은 케이시 수석 코치가 맡고 있었다.

“쇼트가 실책을 저지르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문제가 없다고 하기에는…… 무사 주자 3루입니다.”

“다음 타자는 누구지?”

“라이트입니다. 이 친구 신인입니다.”

카울 감독이 물었다.

“디펜딩 챔피언 탬파베이에서 5번을 치고 있는 신인이라. 발리안과 비교하면 어떻지?”

다저스의 발리안은 유력한 내셔널 리그 신인왕 후보였다.

“성적만 보면 발리안과 비슷합니다.”

카울 감독이 가볍게 놀라 물었다.

“그 정도인가?”

케이시 수석 코치가 카울 감독의 물음에 답하려는 순간 강한 타구가 유격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니엘이 놓친 타구가 외야로 빠져나갑니다.”

3루 주자 아울이 여유 있게 홈을 밟았다.

“탬파베이가 앞서 나가는군요. 킴이 등판했을 때 탬파베이 승률은 무려 87%에 달합니다.”

카울 감독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라이트라, 잘하는군.”

탬파베이 공격은 라이트의 적시타에서 끝나지 않았다.

스나이더가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을 골랐고, 칼튼이 희생타를 때려 상황은 1사 2, 3루로 바뀌었다.

“1사 2, 3루라. 다행인 것은 다음 타자가 포수라는 건가?”

“불펜을 가동할까요?”

“아직 괜찮아.”

카울 감독은 커즌이 록튼을 충분히 잡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판단 근거는 록튼의 이번 시즌 성적이었다.

타율 0.242, 3홈런, 13타점.

록튼은 이번 시즌 공격에서 지난 시즌보다 퇴보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록튼도 벌써 4년 차입니다. 이번 시즌은 좀 치고 나갔으면 하는데 아쉽군요.”

“노력은 꾸준한데 결과가 아쉬운 친구야.”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백네트를 넘어갔다.

“히팅 포인트를 조금만 앞에 두었으면 좋겠는데…….”

코스타 타격 코치가 이반 감독의 말에 동의했다.

“포수이기 때문일까요? 공을 끝까지 보고 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합니다. 가끔은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둘 필요가 있는데 말입니다.”

“끝까지 공을 보고 싶다는 건…… 자신의 예측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는 말이군.”

패스트볼의 경우 공을 끝까지 보면 타이밍이 늦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커즌처럼 빠른 공을 가진 투수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순식간에 0-2로 나빠졌다.

“1사 2, 3루에서 점수를 뽑지 못한다면 후폭풍이 있겠는걸?”

점수는 뽑을 수 있을 때 뽑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반 감독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파울!”

록튼은 헬멧을 벗은 뒤 이마의 땀을 닦았다.

“후…… 빨라.”

커즌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3마일(150km).

이는 싱커의 구속을 합한 것이었기에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이보다 훨씬 더 높았다.

‘어떻게든 3루 주자를 홈에 불러들여야 해.’

록튼은 배트를 짧게 잡았다.

슉!

이번에도 빠른 공 록튼의 배트가 공을 밀어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인 1루 더그아웃 쪽에 떨어졌다.

“파울!”

커즌은 3루 주자를 확인하곤 속으로 혀를 찼다.

‘주자가 3루에 있어서 브레이킹볼을 마음대로 쓸 수 없어.’

낙차 큰 커브를 원 바운드로 던질 수 있다면……

록튼 정도는 쉽게 삼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원 바운드 공이 뒤로 빠진다면 록튼을 삼진으로 잡는다고 해도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왔다.

‘패스트볼에 약한 것 같으니까. 하나 더 던져 보자.’

그는 안쪽으로 패스트볼을 깊게 찔러 넣었다.

파앙!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이 96마일(154km)을 기록했으나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록튼이 공을 골라냅니다. 이제 카운트는 1-2입니다.”

“스나이더에 이어 록튼입니다. 탬파베이 끈질기게 커즌을 물고 늘어집니다.”

커즌은 로진백을 만지며 이마를 찌푸렸다.

‘제길…… 제구가 너무 안쪽으로 쏠렸어.’

그가 원한 공은 안쪽 스트라이크존에 꽉 차는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2개나 빠졌고, 록튼의 배트도 움직이지 않았다.

렉터가 부르스에게 물었다.

“부르스, 승부구를 던질 타이밍인데. 어떤 걸 던질 것 같아?”

“나라면 원 바운드 커브지.”

“원 바운드? 뒤로 빠지면?”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겠지. 하지만 그게 두려워서 패스트볼만 던지다가는 홈런을 맞게 될걸?”

예언자가 된 것일까?

부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이 높이 떠올랐다.

따악!

“큽니다!”

록튼은 배트를 잡은 채 타구를 주시했다.

‘홈런인가?’

이반 감독은 큰 타구지만 펜스를 넘어가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저 스타디움의 바람은 타자에게 불리하다. 그래도 록튼에게 이 정도 타구면 훌륭한 결과군.’

그의 예상대로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지 못한 채 중견수 쇼트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쇼트가 공을 내야로 전달합니다!”

타구가 깊었기 때문에 3루 주자 라이트가 여유 있게 홈에 들어왔다.

“라이트 홈을 밟습니다. 탬파베이! 록튼의 희생타로 2-0으로 앞서 나갑니다.”

라이트가 배트를 들고 서 있는 록튼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나이스 배팅!”

록튼이 그와 주먹을 마주치며 말을 받았다.

“나이스 러닝.”

두 선수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동료들의 손이 쏟아졌다.

“나이스 플레이!”

“나이스 배팅!”

“록튼, 멋졌어!”

록튼은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마친 뒤 헬멧을 벗었다.

“후…….”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록튼, 조금 전 타구 말이야. 아까웠어.”

코스타 타격 코치였다.

“코치…….”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까. 이럴 때는 조금 더 확신을 가지라고. 그럼 펜스를 넘길 수 있을 거야.”

확신.

록튼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코스타 코치의 말이 옳아. 주자가 3루에 있음에도 난 확신을 가지지 못했어.’

커브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확신.

그것이 있었다면 더 힘차게 배트를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킴과 너무 오래 배터리를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킴이라면 주자가 3루에 있어도 커브를 던졌을 테니까.’

탬파베이는 계속해서 공격 기회를 노렸지만, 커즌은 더 이상 실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커즌, 킴을 2루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윌리엄은 김민에게 공격에서의 룰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투수가 배터 박스에 들어서지 않는 아메리칸 리그. 킴의 스윙이 어색한 건 너무나 당연해.’

그는 김민이 내셔널 리그에서 뛰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9번 타자는 무조건 투수니까……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기록을 올렸을 거야.’

2회 말.

다저스 공격은 4번 타자 하인케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오늘 경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 배터 박스에 서 보면 알게 되겠지.

어떤 상대에게도 위축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최대 무기였다.

‘쇼트와 발리안은 킴이란 녀석에게 겁을 먹은 것 같군. 하지만 난 달라. 아무리 빠른 공도 배트에 맞으면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그는 김민의 패스트볼을 정조준했다.

‘카운트 잡는 공을 노린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예상대로군.’

하인케가 강하게 배트를 돌렸다.

그러나 공을 때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파앙!

다음 순간 미트에 공이 들어왔고, 주심은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발리안은 하인케의 헛스윙을 보곤 혀를 찼다.

“내가 당한 바로 그 공이군.”

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플리터의 떨어지는 각이 예상보다 훨씬 커. 공략이 쉽지 않아.”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공을 던지는지 모르겠군.”

일반인들 기준에서 김민은 건장한 체격을 가진 청년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선수가 기준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카운트는 이제 0-1입니다.”

“다음 공은 아마 안쪽을 향할 겁니다.”

하인케는 스플리터에 헛스윙한 뒤 미간을 좁혔다.

‘쳇, 방심했을 뿐이다.’

그는 너무 쉽게 가려고 했던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볼 배합이 복잡해도 생각을 깊이 하면 칠 수 있다.’

전력분석팀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김민은 바깥쪽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안쪽으로 로케이션을 가져갔다.

‘안쪽…… 아니야. 메뉴얼에 나와 있는 것처럼 던질 리가 없어.’

하인케는 바깥쪽에 하나 더 공이 날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김민의 두 번째 공은 안쪽을 깊게 찔렀다.

파앙!

“스트라이크!”

하인케는 배트를 쥔 채 멈칫했을 뿐이었다.

‘허를 찔렸다.’

“킴이 하인케의 안쪽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멋진 컨트롤입니다. 안쪽 공을 이렇게까지 제구할 수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 다섯 명도 채 안 될 겁니다.”

김민은 하인케의 반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쪽 패스트볼을 계속 노리고 있군.’

그는 하인케가 전력분석팀에서 배포한 자료를 읽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공은 이게 좋겠어.’

김민의 손가락이 왼쪽 어깨 위에서 움직였다.

- 바깥쪽 패스트볼.

하인케가 노리고 있던 바로 그 공이었다.

슈욱!

‘바깥쪽이다!’

하인케는 즉시 반응했다.

그러나 그의 배트는 공을 밀어내는 대신 다시 한번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6마일(154km).

떨어지는 스플리터는 분명 아니었다.

발리안은 더그아웃에 있었음에도 어떤 공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라이징 패스트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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