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다저스의 영건들 01
“오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김민이 마이크를 앞으로 당겼다.
“스나이더가 느린 땅볼을 잡기 위해 앞으로 달려든 순간이었을 겁니다.”
“번트 타구 처리였던가요? 스나이더가 그 공을 놓칠 것 같아 보였다는 말씀이시군요?”
“놓칠 것이다. 아니다.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맨손 캐치는 언제든 실책이 나올 가능성이 큰 플레이입니다. 투수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내야수가 맨손 캐치에 들어가면 심장이 오그라든다.’ 물론 스나이더는 확실히 해냈습니다. 그는 좋은 수비수니까요.”
퍼펙트게임 인터뷰.
김민의 퍼펙트게임은 2004 시즌 처음이자 그의 첫 번째 퍼펙트게임이었다.
“킴, 이번 시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아메리칸 스포츠 명찰을 단 기자의 물음에 김민이 대답했다.
“제 목표는 언제나 우승입니다. 하지만 기자님이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 아니겠죠. 가능하다면 0점대 평균자책점을 해 보고 싶습니다. 300K도 물론 하고 싶죠. 하지만 이건 전자보다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300K보다는 0점대 평균자책점에 무게를 두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김민의 인터뷰 스킬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다른 질문 없습니까?”
구단 스텝의 물음에 뒤쪽에 앉은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텍사스 타임즈의 헨리 벨이었다.
“킴, 오늘 경기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선수를 한 명만 뽑는다면 누가 될까요?”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두가 다 제게 큰 도움을 주었죠. 사실 퍼펙트게임이란 투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수비수들과 코칭 스텝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킴, 질문을 바꿔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포수인 록튼에게 시계를 선물할 예정입니까?”
퍼펙트게임을 완성한 투수는 공을 받아준 포수에게 롤렉스시계를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입니다. 좋은 것으로 선물해야죠. 록튼은 제가 데뷔했을 때부터 제 공을 받아 준 친구입니다.”
김민이 시계를 약속한 것은 록튼만이 아니었다. 그는 경기 시작 전 타자들에게 자신을 도와주는 대가로 시계를 내걸었다.
‘퍼펙트게임의 달콤함과 상관없이 출혈이 크겠군.’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고액 연봉자였지만, 주머니가 항상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김민은 지난 시즌까지 모은 돈을 모두 구단 매입에 쏟아부었다.
‘그래도 시계 살 돈 정도는 남아 있겠지.’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VIP룸으로 향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렉스가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킴, 최고의 피칭이었어.”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이런 격식은…….”
“그렉스, 구단주에게 한 번쯤 이런 축하 인사를 받고 싶었습니다.”
“…….”
김민이 그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농담입니다. 그렉스, 텍사스행은 예정에 없던 일 아닙니까? 무엇 때문에 시즌 중에 이 먼 텍사스까지 온 거죠?”
그렉스가 대답했다.
“뭐긴, 자네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지.”
김민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 것 치곤 샴페인도 보이지 않는군요.”
날카로운 물음.
그렉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농담을 좀 해 봤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우리 팀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서였어.”
“저지와 관련 상품 판매 증가 때문인가요?”
“구장 광고 판매도 제법 잘 되었어. 모두 자네 덕분이지.”
김민은 그렉스가 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렉스, 정말 이럴 겁니까?”
“…….”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말을 빙빙 돌리는 건 그렉스답지 않습니다.”
그가 텍사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면 분명 중요한 내용일 것이다.
그렉스는 김민의 한마디에 미소를 지웠다.
“킴, 구장 건설 자금이 모자라.”
“역시…….”
“알고 있었나?”
“구글이 건 계약금이 그리 크지 않더군요.”
그렉스가 말했다.
“트로피카나 필드 입장권 가격을 올리고 싶어.”
“시즌 중에 말입니까?”
“킴의 경기는 그 누구라도 보고 싶어 하니까.”
“다른 쪽으로 돈을 모으는 게 좋을 겁니다. 입장권 가격을 올려도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요.”
김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입장권 가격 상승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즌 시작 전도 아니고, 시즌 중에 입장권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상도에 어긋난 행동이다.’
그렉스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킴, 다른 쪽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야.”
“중계권 계약은 어떻습니까?”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네.”
“조금 깎아 주고 연장 계약을 하죠. 최근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렉스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흠…… 그렇게 하면 확실히 구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 하지만 미래의 수익을 당겨쓰는 게 아닌가?”
“미래의 수익을 당겨쓰는 것이 교통 체증을 뚫고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아온 팬들의 지갑을 가볍게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김민의 한마디는 묵직했다.
“킴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전혀 20대 선수 같지가 않아. 은퇴한 레전드하고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시간을 거스르기 전.
김민은 40대 코치였다.
‘은퇴한 레전드라. 어쩔 수 없지.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니까.’
“차분한 성격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죠.”
“아니야. 난 자네보다 더 차분한 선수들도 많이 봤어. 내가 그렇게 느낀 건 킴이 리빙 레전드이기 때문인 것 같아.”
“레전드라고 하기에는 아직 많이 어립니다.”
그렉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자네는 이미 레전드 자격이 있어.”
“과대평가군요.”
“킴, 레전드가 올스타 레벨과 무엇이 다른지 알고 있나?”
“누적 기록입니까?”
그렉스가 오른손 식지를 들었다.
“아니.”
“오늘따라 말을 많이 돌리시는군요.”
“뭐, 의도적으로 돌린 건 아니야. 들어보게. ‘올스타는 홈팬들의 사랑을 받지만, 레전드는 모든 팬의 사랑을 받는다.’ 어떤가? 오늘 자네가 보여 준 퍼포먼스에 텍사스 팬들이 기립 박수를 보냈어. 이건 자네가 레전드라는 증거야.”
“기립 박수는 위대한 기록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기록을 만드는 이가 바로 레전드야.”
그렉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킴, 나는 그 위대한 기록을 만들 수 없었다.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렉스라는 선수는 잊힐 거야. 하지만 자네는 아니야. 자네는 메이저리그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항상 남아 있을 거야. 지금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말이지.’
김민이 말했다.
“그렉스, 중계권을 연장합시다.”
“후회하지 않겠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펜들을 위한 행동이니까요.”
“좋아. 그렇게 하지.”
그렉스는 중요한 일은 김민과 반드시 상의한 뒤 진행했다.
이틀 뒤, 탬파베이는 새로운 중계권 협상에 돌입했다.
* * *
김민의 호투 다음 날.
탬파베이는 다시 한번 텍사스를 잡아냈다.
“탬파베이가 6-4로 승리를 가져갑니다!”
“텍사스가 7회부터 맹추격을 개시했지만, 탬파베이 불펜진이 잘 버텨 주었습니다.”
케빈 감독은 루징 시리즈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뜻대로 안 되는 게 야구지.”
그는 치고 달리는 전술로 탬파베이에 도전했으나 첫 경기를 제외하곤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오클랜드가 추격해 올 겁니다.”
케빈 감독이 조셉 수석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시리즈도 진다면 정말 그렇겠지.”
텍사스의 다음 상대는 뉴욕 양키스였다.
전문가들은 텍사스가 5연패에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았다.
“텍사스는 이번 시즌 젊은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젊은 팀은 한 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을 정도로 그 기세가 무섭죠. 반대로 기세가 식으면 그것을 되살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탬파베이에게 당한 2연패가 텍사스 분위기를 차갑게 식힐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서 위닝 시리즈를 거두긴 했지만, 양키스는 탬파베이 이상의 상대입니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텍사스에게는 벅찬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5개 스포츠 매체 중 텍사스의 승리를 점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케빈 감독이 혀를 찼다.
“다섯 곳 중 세 곳이 스윕을 예상한 모양이군.”
“이름값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양키스는 정말 화려하거든요.”
“그래도 우리가 얼마 전 이긴 상대가 아닌가?”
“사람들은 그것을 이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변은 두 번 일어나지 않죠.”
선두에 서서 공격을 이끄는 지터, 중심 타선에서 상대 마운드를 맹폭하는 제레미와 에이로드, 하위 타선에서 투수들을 위협하는 포사다와 머레이.
이번 시즌 양키스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둔 투수는 단 2명에 불과했다.
“조셉, 모두에게 이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도록 하세.”
“그럴 작정이었습니다.”
시리즈 1차전.
텍사스는 양키스에게 완패했다.
스코어는 무려 13-2.
그러나 케빈 감독은 낙심하지 않았다.
“11점 차이로 이기든 1점 차이로 이기든 어차피 같은 1승이다. 내일 우리가 이기면 이번 시리즈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텍사스는 조금 더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양키스도 만만치 않았다.
두 팀은 7회까지 팽팽하게 맞섰다.
“타선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군요.”
맥코미 감독이 혀를 찼다.
“어제 너무 터졌어.”
감독들은 한 번에 왕창 쏟아붓기보다는 매 경기 6, 7점을 뽑아 주는 타선을 선호했다.
이날 양키스 선발 아이작은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승패를 기록하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아이작은 이번 시즌도 승운이 따르지 않는군.”
“이번 시즌만 아닙니까?”
“그런가?”
경기 승자는 9회에 갈렸다.
딱!
잘 맞은 타구가 3루수 에이로드의 머리 위를 넘어갔다.
“2루에 있던 주자가 홈으로 내달립니다!”
좌익수가 있는 힘을 다해 홈으로 던졌지만, 2루 주자 알렉스의 빠른 발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이프!”
지난 시즌까지 양키스 소속이었던 더글라스의 결승타.
지터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더글라스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였는데 케이먼이 팔아 버리고 말았어.’
그는 더글라스를 지키면서 에이로드 트레이드를 추진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텍사스가 하지 않았을 거야.’
더글라스의 텍사스 합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운명의 3차전.
선취점을 뽑은 것은 양키스였다.
에이로드는 지난 시즌까지 함께 뛰었던 동료들을 상대로 2점 홈런을 때려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텍사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5회 상대 실책과 안타를 묶어 역전에 성공했다.
“텍사스가 역전에 성공합니다!”
“한 베이스를 더 가는 케빈 감독의 야구가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텍사스의 리드는 오래 가지 않았다.
지터와 나이젤의 백투백 홈런이 터지면서 스코어는 다시 4-3으로 역전.
“양키스! 강합니다! 텍사스에게 위닝 시리즈를 두 번이나 내줄 생각이 없습니다.”
“양키스에게는 오늘 1승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패하게 되면 탬파베이와 동률입니다.”
아메리칸 리그 1위, 아니, 동부지구 1위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오늘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텍사스 따위를 상대로 두 번이나 루징 시리즈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양키스는 징검다리로 텍사스를 만났는데 이번 시리즈가 끝나면 당분간 텍사스와 대결은 없었다.
경기는 치열했다.
텍사스가 특유의 기동력을 보여 주며 7회 다시 동점을 만들어 내자 양키스가 다시 홈런포를 가동하며 따라붙었다.
양키스 벤치는 선택을 해야 했다.
필승조를 투입할지. 아니면 조금 더 선발 투수를 지켜볼지.
맥코비 감독은 선발 투수를 빨리 내리는 감독이 아니었다.
“7회까지는 던지게 하지.”
케빈 감독은 이 점을 공략했다. 그는 대타를 연속해서 내며 양키스 마운드를 두들겼다.
“호머가 시즌 첫 2루타를 뽑아내며 텍사스에게 리드를 안깁니다.”
김민을 상대로 중견수 플라이에 그쳤던 호머.
그러나 그는 양키스 전에서 결정적인 2루타를 때려냈다.
맥코비 감독과 양키스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역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종 스코어 6-5 텍사스 승리.
텍사스 레인저스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두 번째 위닝 시리즈를 거두며 반전에 성공했다.
“뉴욕 양키스는 오늘 패배로 탬파베이 레이스와 동률이 되었습니다.”
“내일 경기 결과에 따라서 1위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탬파베이 선수들은 1위 탈환이 아니라 말했다.
“1위 탈환이라니, 이건 왕의 귀환이야! 다들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어느 팀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칼튼의 한마디는 2003년 개봉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틀 뒤.
탬파베이 레이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었고, 뉴욕 양키스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패하고 말았다.
“탬파베이가 다시 리그 1위에 복귀합니다.”
“킴이 완벽한 피칭으로 탬파베이를 1위에 복귀시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왕의 귀환이군요.”
이날 김민은 8이닝 동안 단 하나의 안타만을 내주며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선보였다.
“그러고 보니, 킴이 점수를 내주지 않은 것이 꽤 되었지?”
“양키스전에서 지터에게 맞은 홈런이 내가 본 마지막 점수였어.”
“그 뒤로 퍼펙트게임이 있었으니까 대충 30이닝쯤 되겠군.”
김민의 무실점 이닝은 현재 32와 2/3 이닝이었다.
메이저리그 기록인 59이닝과 연속 시즌 기록인 60이닝에는 아직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민의 기록에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60이닝은 몰라도 5월 무실점은 가능할지도 몰라.”
“총 5경기에 등판하게 될 테니까. 40이닝 정도인가?”
“40이닝만 해도 대단한 기록이지.”
“탬파베이 구단 신기록은 어때?”
“벌써 갈아 치웠지. 사실 이전 기록도 킴의 기록이었어.”
긴 모자를 쓴 기자가 담배를 끄며 말했다.
“앞으로 데뷔할 탬파베이 투수들은 괴롭겠군. 킴과 비교될 테니까.”
김민은 탬파베이 투수 부문 모든 기록을 알아 치우고 있었다.
* * *
양키스의 케이먼 단장은 오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최고의 팀을 만들라고 했지. 최고의 연봉을 받는 팀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어!”
양키스가 2위로 밀리던 날 오너의 화가 폭발했다.
“우리 팀의 페이롤은 탬파베이의 3배다! 그런데 성적은 뒤지고 있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케이먼 단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년이라고?”
“그렇습니다.”
탕!
노인이 던진 명판이 바닥을 굴렀다.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어! 나만이 아니야. 팬들은 무적 양키스의 부활을 원하고 있어!”
- 소리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케이먼 단장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가 침묵을 지키자 오너가 입을 열었다.
“트레이드를 추진해.”
“또 말입니까?”
“최고의 에이스를 데려와.”
“라몬스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노인이 미간을 좁혔다.
“라몬스로 킴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어떤 투수도 김민을 누를 수는 없었다.
케이먼은 김민과 맞대결하기보다는 다른 쪽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은 김민을 힘으로 내리누르길 원하고 있었다.
“랜디를 데려와.”
랜디 존슨.
3년 전 그들에게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빼앗은 레전드.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원이…….”
“애리조나 구단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어. 랜디와 함께 먹튀를 2, 3명 정도 받아주면 괜찮을 거야.”
애리조나에는 우승 직후 연봉 대박을 터트린 뒤 부진에 빠진 선수들이 많았다.
애리조나 팬들은 그들을 묶어서 월드시리즈 먹튀라 부르곤 했다.
“그들을 다 받아준다면 팀 페이롤이 지나치게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케이먼 단장은 사치세(팀 연봉이 일정선을 넘으면 지출하는 벌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치세를 걱정하는 건가?”
“먹튀 선수들을 받아 주면 적어도 3, 4년은 더 사치세를 부담해야 합니다.”
양키스는 지난 2003 시즌부터 사치세를 내고 있었다.
“상관없어.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뉴욕은 오클랜드가 아니야. 사치세가 두려워서 선수 보강을 못 하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사치세는 매년 같은 금액이 부과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치세는 그것을 물게 된 기간이 길수록 금액이 올라갔다.
‘미쳤어.’
그러나 오너는 돈을 잃는 것이 경기에서 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랜디가 아니라면 외계인을 데려와.”
케시먼 단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턴에서 페드로를 데려오는 건 탬파베이에서 킴을 데려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는 페드로 대신 랜디 존슨을 데려오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 명 더 있어.”
한 명 더?
커트 실링이나 마스터(그렉 매덕스)를 데려오라고 하는 걸까?
“그 친구도 잡아 와.”
“누구 말입니까?”
“왈트!”
휴스턴의 신성 조지 왈트.
그는 지난 3년 동안 39승을 거두었으며, 2003 시즌에는 2점대 평균 자책점, 2002 시즌에는 19승을 거두며, 내셔널 리그 에이스 반열에 올라섰다.
“조지 왈트는 무립니다.”
“휴스턴은 리빌딩 중이라고 들었네.”
“설마 유망주 삼총사를…….”
“모두 줘.”
케이먼 단장은 숨이 막혔다.
‘먹튀를 데려오고, 유망주를 모두 넘기면, 양키스는 미래가 없는 팀이 된다.’
오늘만 바라보는 운영.
케이먼 단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 됩니다.”
소신 있는 발언.
노인의 목소리가 폭발했다.
“그만두고 싶은가!”
케이먼 단장의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다.
“그만두겠습니다.”
그는 미련 없이 양키스 단장직을 내려놓았다.
“고얀!”
노인은 고성을 계속 내질렀지만, 케이먼은 들리지 않는 듯 걸음을 옮겼다.
‘나와 양키스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그는 양키스의 폭주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보름 뒤.
양키스는 하루에 트레이드 두 건을 성사시켰다.
“양키스로 조지 왈트가 간다고?”
“믿기지 않는군. 그래, 왈트의 대가가 누구야?”
“양키스의 유망주 삼총사가 모두 휴스턴으로 간다는군.”
“한 명도 안 남기고?”
“그래, 모두 간다고 하더군.”
미래를 보지 않는 운영.
양키스는 2004 시즌에 모든 것을 걸었다.
“랜디 존슨도 양키스로 간다는군.”
“뭣! 랜디까지?”
“기어코 탬파베이를 내리누르겠다는 거지.”
“양키스가 돈으로 우승 트로피를 사려는 모양이군. 그런데 애리조나에는 누가 간 거야? 나이젤이라도 보낸 건가?”
“그쪽은 누굴 보냈다기보다 먹튀를 함께 받았어.”
애리조나에서 양키스로 향한 두 선수는 본과 슬레오였다.
본은 2년 2천만 달러(248억 원) 계약이 남아 있었고, 슬레오는 3년 동안 3천2백만 달러(396억 원)의 계약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들로 발생하는 팀의 사치세는 이들 연봉의 절반이 넘었다.
즉, 양키스는 랜디를 데려오기 위해서 1억 달러(1,24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한 셈이었다.
“본과 슬레오라니, 양키스는 무슨 생각인 걸까?”
“2004 시즌에 우승하고 파산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지.”
뉴욕 타임즈는 두 건의 트레이드가 끝난 뒤,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 뉴욕에 미증유의 팀이 탄생하다.
랜디 존슨과 조지 왈트의 양키스 합류는 리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