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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228화 (228/296)

228화 전설의 자격 05

김민은 오늘 단 한 명의 주자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4번 타자 홀랜드는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95마일(153km)의 빠른 공!”

“공 끝이 좋습니다. 벌써 삼진이 7개입니다.”

24개의 삼진 기록을 세웠던 날만큼은 아니었지만, 삼진 페이스가 상당히 좋았다.

김민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홀랜드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삼진보다는 내야 땅볼이 더 좋은데 말이야.’

다음 타자는 5번 타자 버니.

‘까다로운 타자는 아니다. 하지만 가운데로 몰리는 순간 장타가 터진다.’

버니는 실투에 유독 강한 타자였다.

에이브 타격 코치가 미간을 좁혔다.

“버니에게 킴은 상극입니다.”

케빈 감독도 그렇게 생각했다.

“실투를 노려 치는 타자에게 실투를 던지지 않는 투수라. 이길 방법이 없군.”

“버니가 실투만 치는 건 아닙니다. 실투를 공략할 때 장타가 잘 나오는 것뿐이죠. 그건 그렇고…… 킴은 참 어려운 투수군요.”

버니는 바깥쪽으로 잘 제구된 공을 결대로 밀어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탬파베이 시프트는 버니의 타구 방향을 예측한 듯 밀어 친 타구가 지나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시프트가 완벽하게 타구 방향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펜스를 넘기지 않고는 점수를 뽑지 못할 겁니다.”

케빈 감독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에이브, 홈플레이트보다 1루 베이스를 먼저 생각하게. 우린 아직 한 번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했어.”

케빈 감독은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에이브 타격 코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킴의 성향으로 볼 때 이런 무결점 피칭은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곧 주자가 1루에 나갈 겁니다.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김민은 완벽하게 타자를 제압하기보다는 투구수를 아끼며, 빠르게 승부하는 타입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1, 2점을 내주더라도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투수였다.

‘킴은 데뷔와 동시에 에이스 칭호를 받았다. 어드 그뿐인가? 2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과 아메리칸 리그 MVP. 하지만 지난번에 세운 삼진기록을 빼고는 유독 기록과 인연이 적다. 이것은 효율을 강조하는 그의 피칭 스타일 때문이다.’

슉!

타자 안쪽에서 떨어지는 공.

‘안쪽 공…… 그래도 이 공이 스트라이크에 가장 가까운 공이다.’

평소라면 버리는 공이었지만, 카운트가 0-2로 몰린 이상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3루를 향했다.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버니는 밀어 치는 것에 능한 타자였다.

안쪽 공을 당기면 좀처럼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았다.

“타구가 3루로 흐릅니다!”

3루수 스나이더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공을 잡은 뒤 강하게 1루에 뿌렸다.

“1루에서 아웃! 투 아웃입니다!”

에이브 타격 코치는 해바라기 씨를 입에 털어 넣었다.

‘밀어치는 걸 좋아하는 버니에게 안쪽 공이라. 볼 카운트에 여유가 있었다면 배트가 나오지 않았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군.’

김민은 5번 타자 버니를 잡아낸 뒤 로진백을 만졌다.

‘5월의 텍사스는 더워.’

텍사스의 무더운 5월.

개방형 구장인 알링턴 필드는 후끈 달아올랐다.

“6번 타자 크라운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크라운은 앞선 버니와 전혀 다른 유형의 타자였다.

이반 감독이 크라운을 주시하며 말했다.

“킴, 여기서는 정직하게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크라운은 배드볼 히터로 유명했다.

그에게 스트라이크존에서 1개 정도 빠지는 공은 스트라이크나 다름이 없었다.

김민은 크라운을 보곤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런 친구는 구위로 잡아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그는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은 뒤 호흡을 조절했다.

“후…….”

길게 숨을 내쉰 뒤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힘을 오른손에 모아 던진다!’

슈욱!

빠른 공이 한가운데를 향했다.

크라운은 공의 코스를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실투인가?’

실투가 아니라고 해도 이 정도면 실투나 다름이 없는 공이었다.

‘찬스다!’

그러나 이 공은 찬스볼과는 거리가 멀었다.

배트가 앞으로 나간 순간 공이 떠올랐다.

김민의 시그니처 무브인 라이징 패스트볼.

‘떠오르는 공!’

크라운이 속으로 신음을 내뱉은 순간 배트가 공의 아래를 때렸다.

탁!

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올랐다.

“1루!”

록튼의 콜 사인과 동시에 아울이 스타트를 끊었다.

“맡겨 줘!”

김민은 마운드에서 살짝 비켜섰다.

‘안정감에 있어서는 아울을 따를 사람이 없지.’

아울이 미트를 들자 공이 그 안에 내려앉았다.

팡!

“아울이 플라이볼을 클리어합니다! 텍사스 5회에도 주자를 내는 데 실패합니다!”

“원정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킴의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이는군요.”

데뷔 초기.

김민은 원정보다 홈에서 좋은 기록을 내는 투수였다.

3년이 지난 지금 김민은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홈과 원정, 딱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역시 홈이었다.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잘 던지는군.”

케빈 감독의 예상대로라면 이미 1, 2점은 뽑았어야 했다.

하지만 김민은 그의 예상 이상으로 던지고 있었다.

“다음 이닝에는 주자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에이브 타격 코치는 앞으로 4번이나 공격 기회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대가 김민이라면 4번의 기회는 그리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

6회 말.

선두 타자 버나드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오늘 경기 8번째 삼진입니다!”

“오늘도 10K 이상 나오겠군요.”

탬파베이 원정 팬들이 외야에 K 판넬을 걸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K! K! K!”

케빈 감독은 그 목소리를 듣곤 고개를 에이브 타격 코치에게 돌렸다.

“작전을 쓸 때가 된 것 같군.”

“벌써 말입니까?”

“벌써라니? 6회 말까지 주자가 한 명도 나가지 못했어.”

케빈 감독은 모타가 막고 있을 때 한 점이라도 더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전이라면 대타를 내시겠습니까?”

다음 타자는 8번 포수 샘슨이었다.

“포수를 교체하는 건 조금 그렇고…… 여기서는 페이크 번트가 좋겠군.”

페이크 번트 슬래시.

거짓 번트 동작으로 수비수를 앞으로 유인한 다음 강공으로 전환하는 공격 방법.

“주자가 없는데 페이크 번트란 말씀입니까?”

케빈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대가 킴이라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 될 거야.”

샘슨은 벤치 사인을 받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는 기술이 뛰어난 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페이크 번트 슬래시에 부담을 느꼈다.

‘페이크 번트 슬래시라고? 차라리 그냥 치게 해 주지. 주자도 없잖아.’

몇몇 타자들을 빼고 타자들은 대부분 벤치에서 작전이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벤치는 끊임없이 작전을 냈다.

그 이유는 타자가 어려워하는 만큼 대응하는 수비 쪽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샘슨, 번트 자세를 취합니다.”

“이건 뭘까요?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번트 자세가 나왔습니다.”

페이크 번트 슬래시는 보통 주자를 1루에 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정직한 번트는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루수 칼튼이 속으로 혀를 찼다.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번트 자세라고? 뻔히 보이는 페이크군.’

3루수 스나이더도 수비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저건 십중팔구 페이크야. 전진 수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습 번트도 아니고, 평범한 번트.

타자 주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은 5% 이하였다.

그러나 김민은 반응이 수비수들과 좀 달랐다. 그는 샘슨의 번트 자세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

‘곤란하군.’

페이크 번트 슬래시라고 하면 바깥쪽에 공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슬래시까지 가지 않고 페이크 번트로 끝나면 공을 하나 낭비한 꼴이 되었다.

‘그냥 가운데로? 아니야. 그건 좋지 않아.’

번트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샘슨 같은 타자라면 구위로 찍어 누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인데……’

긴 고민 끝에 김민이 내린 결론은 바깥쪽으로 크게 빠지는 공이었다.

휙!

힘없이 날아간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팡!

워낙 많이 빠진 공이었기에 샘슨은 바로 배트를 뺐다.

“킴이 바깥쪽에 이상한 공을 던졌습니다.”

“구속을 보면 손에서 공이 빠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80마일(129km) 패스트볼.

카운트는 1-0으로 바뀌었다.

케빈 감독이 그답지 않게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그럴 줄 알았어. 킴처럼 머리를 쓰는 투수는 타자가 뜻밖의 행동을 할 때 고민에 빠지곤 하지. 예상대로야.”

“이렇게 유리한 카운트라면 샘슨도…….”

케빈 감독이 힘을 주어 말했다.

“카운트 잡는 공을 노린다.”

‘킴은 공을 낭비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투수다. 그런 그가 바깥쪽으로 크게 빠지는 실투를 던졌다. 다음 공은 반드시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온다.’

샘슨은 적극적으로 공격하라는 사인을 받곤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크 번트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지.’

그는 배트를 세우곤 김민을 노려보았다.

‘바깥쪽이냐? 아니면 안쪽이냐?’

김민의 두 번째 공은 바깥쪽이었다.

슉!

‘바깥쪽 코너에 꽉 차는 패스트볼이군.’

샘슨의 배트가 움직였다.

한 타격 코치가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수준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 코스를 알면 어떤 공이든 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코스를 안다고 해서 어떤 공이든 쳐 낼 수는 없었다.

탁!

샘슨의 배트에 맞은 공이 큰 바운드를 일으켰다.

‘제길…… 카운트를 잡는 공이 아니었어!’

바운드 된 공이 마운드 쪽으로 향했다.

아울은 1루로 들어가면서 김민을 주시했다.

‘킴은 골드글러브를 노릴 만큼 수비가 좋은 투수다. 이런 간단한 타구를 놓칠 리가 없지.’

예상대로 김민은 타구를 간단히 잡아냈다.

“킴! 1루에 송구합니다!”

팡!

아울의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아웃!”

케빈 감독은 샘슨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마자 김민의 구종을 물었다.

“마지막은 어떤 공이었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떨어지는 공이었습니다.”

“떠오르지 않고 떨어졌다고?”

“그렇습니다.”

케빈 감독은 속으로 혀를 찼다.

‘허! 카운트를 잡아야 하는 순간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던졌다. 우리를 가지고 노는군.’

샘슨이 배트를 내지 않았다면 카운트는 2-0로 나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김민은 그것을 감수하고 스플리터를 던져 샘슨를 잡아냈다.

‘킴은 샘슨이 배트를 낼 것이라고 확신한 거야.’

케빈 감독이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췄다.

“에이브, 킴이 우리의 작전을 간파한 것 같네.”

“예?”

“녀석은 샘슨이 배트를 낼 것을 알았어.”

에이브 타격 코치는 케빈 감독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 볼에서 유인구. 유인구를 좋아하는 투수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킴은 유인구를 좋아하는 투수가 아니야. 그러니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에이브 타격 코치가 멈칫했다.

“설마 사인이 읽힌 겁니까?”

“사인이 아니라면 내 마음이 읽힌 것이겠지.”

케빈 감독은 후자의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김민이 한동안 독심술사로 불리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머리싸움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구다.’

9번 타자 슐츠는 배트에 공을 맞히지 못한 채 김민에게 9번째 삼진을 선물했다.

“슐츠의 삼진으로 텍사스의 6회 말 공격이 끝납니다.”

“킴, 18명의 타자를 모두 막아 냈습니다.”

6이닝 퍼팩트.

그러나 아직 이것을 의식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7회 초.

모타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모타 1회 2점을 내줬지만, 이후 탬파베이 타선을 확실히 막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모타는 지난 시즌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탬파베이 선두 타자는 3번 윌리엄.

포수 샘슨은 바깥쪽 공을 요구했지만, 두 개 정도 안쪽으로 쏠리고 말았다.

‘실투인가?’

윌리엄은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따악!

“멀리 갑니다!”

타구는 그대로 우측 펜스를 넘어갔다.

“윌리엄! 홈런입니다!”

데빈 투수 코치가 케빈 감독에게 투수 교체를 건의했다.

“모타를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홈런 하나 맞았다고 교체인가?”

“투구수가 이미 94개입니다.”

케빈 감독은 모타가 이번 이닝을 막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데빈 투수 코치의 눈을 본 순간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펜은 준비되었나?”

데빈 투수 코치가 대답했다.

“트로키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흠…… 한 타자 더 보지.”

지금 트로키를 올린다면 2이닝을 그에게 맡겨야 했다.

‘트로키는 체력이 좋은 투수가 아니다. 그에게 2이닝은 무리야.’

잘하면 2명, 최소한 1명.

케빈 감독은 모타가 그 정도는 막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득점 지원을 해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내려가는 건 아니야.’

모타의 다음 상대는 4번 타자 아울.

샘슨은 이번에도 바깥쪽 공을 요구했다.

“후…….”

모타는 숨을 고른 뒤, 정확히 바깥쪽 코너로 공을 제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은 포수 미트에 들어오지 않았다.

따악!

윌리엄이 때린 홈런보다 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데빈 투수 코치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홈런입니다.”

탁!

공이 떨어진 곳은 외야 관중석 2층이었다.

“아울! 초대형 홈런입니다!”

“멋진 백투백 홈런이군요. 탬파베이! 그들은 강합니다!”

이반 감독은 아울의 백투백 홈런에 크게 박수를 쳤다.

“나이스 배팅! 잘했어!”

탬파베이 4:0 텍사스

모타의 투구는 여기까지였다.

케빈 감독은 마운드에 오른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방금 홈런은 내 책임이다.”

“감독님…….”

“데빈 투수 코치가 널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듣지 않았지.”

케빈 감독은 모타의 어깨를 두드린 뒤, 공을 트로키에게 넘겼다.

“트로키, 집중해라. 탬파베이 타선은 강하다.”

“알고 있습니다.”

트로키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공을 넘겨받았다.

“탬파베이의 다음 타자는 라이트입니다.”

라이트는 오늘 안타를 때리지 못했기 때문에 잔뜩 벼르고 있었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린다.’

그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트로키 와인드업!”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향했다.

‘그대로 넘긴다!’

라이트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다.

딱!

이번에도 배트에서 좋은 소리가 났다.

“또 큽니다!”

케빈 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백투백투백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그의 시선이 공을 향해 움직였다.

공이 펜스로 향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녹색 글러브에 들어갔다.

“나카무라! 워닝 트랙 앞에서 타구를 잡아냅니다!”

나카무라의 파인 플레이.

라이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안 되는 날이군.”

트로키는 라이트를 시작으로 세 타자를 연속해서 막아 냈다.

“트로키가 스나이더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합니다.”

“텍사스의 시프트는 아직 살아 있군요. 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점수를 뽑아야 합니다.”

7회 말.

텍사스 공격.

선두 타자는 1번 타자 나카무라.

“이번 회는 반드시 출루한다.”

텍사스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가장 기동력이 뛰어난 팀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기동력을 발휘할 기회를 한 번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카무라가 출루해야 점수를 낼 수 있습니다.”

케빈 감독이 조셉 수석 코치의 말을 받았다.

“나카무라는 기교가 좋은 친구야. 세 번 연속 아웃은 당하지 않아.”

툭!

배트에 맞은 공이 3루수 쪽으로 향했다.

‘전력으로 뛰면 1루에서 살 수 있다!’

3루로 굴리고 1루로 뛴다.

좌타자가 내야 안타를 만드는 교과서적인 플레이.

그러나 3루수 스나이더의 반응이 한발 빨랐다.

“스나이더, 1루에 송구!”

나카무라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지만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시도는 좋았습니다만…….”

“그대로 아웃이군.”

케빈 감독이 방금 아웃된 나카무라를 불렀다.

“타격 전 3루수 위치를 확인했나?”

통역의 말을 들은 나카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3루수가 베이스 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공을 굴렸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1루에서 아웃 되고 말았습니다.”

나카무라는 타구를 확인하지 않고 전력 질주했기 때문에 스나이더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케빈 감독이 그에게 말했다.

“킴의 와인드업과 동시에 3루수가 전진 수비를 펼쳤어. 그쪽으로 공을 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정정하지. 그쪽으로 굴리기에 좋은 공을 던지고 3루수가 달려든 거야.”

나카무라는 통역에게 케빈 감독의 말을 전해 듣곤 이마를 찌푸렸다.

“제가 함정에 빠졌군요.”

“다음 타석에서는 조심하게.”

케빈 감독은 다음 타석이라고 말했지만, 왠지 다음 타석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번 타자인 나카무라의 다음 타석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렇군. 이 게임은 퍼팩트 게임이 되겠군.’

그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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