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전설의 자격 04
이반 감독은 시프트 싸움으로 가면 탬파베이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린 지난 2년 동안 그 어느 팀보다 많은 시프트를 펼쳐왔다. 텍사스가 오프 시즌 동안 어떤 훈련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시프트에서 우리 상대가 될 수는 없다.”
레이먼드 수비 코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시프트란 잘 될 때는 그 어떤 수비 작전보다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잘되지 않을 때는 이보다 더 허무한 작전이 없지요. 텍사스는 아마 잘 되지 않을 때를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탬파베이와 텍사스의 수비 차이를 경험에서 찾았다.
‘시프트가 역으로 다가오는 순간 텍사스 수비수들은 움츠러들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때가 아니었다.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알렉스입니다.”
“알렉스는 지난가을 트레이드로 텍사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전 라인업의 절반이 트레이드로 합류한 선수들이군요.”
“그렇습니다. 텍사스 라인업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전혀 다른 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텍사스 프런트는 바뀐 선수들을 이끌 감독으로 케빈 감독을 낙점했다.
당시 텍사스 단장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케빈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리빌딩 감독입니다. 그는 망가진 팀을 정상 궤도에 올리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탁!
강한 타격음과 함께 빠른 바운드가 일어났다.
정상적인 수비 위치였다면 내야를 빠져나갔을 타구.
하지만 탬파베이 시프트가 타구를 막아섰다.
“유격수 브라이튼이 달려듭니다.”
브라이튼의 수비는 데뷔 전과 비교해 한결 간결해져 있었다.
“어려운 타구를 잡아 그대로 1루에 송구! 아웃! 아웃입니다!”
“텍사스! 또 초구를 공략했군요. 킴을 상대로 너무 성급한 공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공을 봤어야 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케빈 감독은 1, 2번 타자가 잇달아 초구에 아웃되자 혀를 찼다.
“이것 참…… 또 함정에 빠졌군.”
그는 김민이 어떠한 투구를 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에이브.”
그의 물음에 에이브 타격 코치가 움직였다.
“말씀하십시오.”
“타자들에게 초구를 거르라고 해.”
케빈 감독은 김민이 타자들을 꿰기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코스에 살짝 어긋난 공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타자들이 치기 좋은 공을 던지지만…… 타구는 내야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시프트가 타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에이브 타격 코치의 사인이 3번 타자 더글라스에게 전달되었다.
‘초구를 치지 말라고?’
더글라스가 미간을 좁혔다.
‘코칭 스텝이 킴에게 겁을 먹은 모양이군.’
그는 텍사스에서 3번을 치고 있었지만, 양키스에 있을 때는 데릭 지터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에이로드 트레이드가 일어난 것도 결국에는 탬파베이 때문이다.’
더글라스는 자신을 텍사스로 쫓아낸 원흉이 바로 김민과 탬파베이라고 생각했다.
‘벤치에서 사인이 났으니, 초구는 걸러주지. 하지만 그다음 공은 어림도 없다!’
그는 힘을 빼고 배트를 세웠다.
슉!
안쪽 높은 코스로 빠른 공이 날아왔다.
‘치기 적당한 코스…….’
기다리라는 사인이 없었다면 바로 배트를 냈을 것이다.
‘거른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왔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볼이라는 뜻.
‘스트라이크에서 빠진 볼이군. 코칭 스텝은 이것을 읽고 기다리란 사인을 냈군.’
김민은 더글라스가 배트를 내지 않는 것을 보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들켰나? 케빈 감독은 확실히 대처가 빠르군. 메이저리그 삼대 지장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군.’
그는 록튼에게 공을 넘겨받은 뒤 글러브에서 그것을 빙글 돌렸다.
이것은 다음 공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초구 미끼는 간파당했고, 다음 공은 어떻게 할까? 그래, 그게 좋겠군.’
김민은 구종을 결정한 뒤, 왼쪽 어깨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 안쪽 높은 코스.
록튼이 마른침을 삼켰다.
‘킴, 같은 코스에 두 번이면 맞는다고. 게다가 이 코스는 더글라스가 좋아하는 코스잖아.’
물론 록튼은 걱정하긴 했지만, 김민의 사인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위험한 코스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김민을 믿었다.
그라면…….
어떤 위험한 코스도 이겨낼 수 있다.
록튼은 그렇게 생각했다.
슉!
빠른 공이 안쪽 높은 코스를 향했다.
‘두 번 연속 같은 코스군. 모르는 모양인데 이 코스는 하나 정도 빠진다고 해도 안타로 만들 수 있다고!.’
더글라스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총알처럼 날아갔다.
‘그대로 넘어가라!’
그러나 타구는 더글라스의 외침과 달리 내야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나이스 캐칭! 멋진 수비입니다!”
캐스터의 고성을 끌어낸 것은 아울의 멋진 점핑 캐치였다.
“점프 타이밍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아울의 위치 선정이었습니다. 타구 길목을 정확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김민은 호수비를 펼친 아울을 향해 글러브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스 플레이!”
아울은 공을 텍사스 1루 코치에게 넘긴 뒤 김민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케빈 감독은 아울의 호수비를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비 시프트와 투수의 정확한 제구가 호수비를 만들어냈다.’
그는 호수비를 펼친 아울의 수비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호수비를 할 수 있게 판을 깔아 준 것은 김민과 록튼 배터리의 볼 배합과 시프트라고 판단했다.
“그러고 보니, 공 4개로 1회를 끝냈군.”
에이브 타격 코치가 케빈 감독의 말에 멈칫했다.
“킴은 1회를 거의 던지지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군요.”
“철저하게 시프트를 이용하고 있어. 방금 타구도 결과적으로는 시프트에 걸린 거야.”
“아울의 호수비였는데도 그렇습니까?”
케빈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1루 쪽으로 시프트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킴은 그 코스에 공을 넣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승부였습니다. 자칫 빠졌으면 2루타가 되었을 겁니다.”
“투구수를 줄이기 위해 그 정도 모험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킴은 위대한 승부사야.”
그는 김민이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민은 이런 상황에서 모험할 투수가 아니었다.
이번 타구는 더글라스가 예상 이상으로 잘 때려낸 것이었다.
‘위험한 타구였어.’
김민은 더글라스가 자신의 예상 이상으로 위험한 타자라고 생각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양키스에서 2번을 칠 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군.’
실제로 더글라스의 이번 시즌 성적은 양키스에 있을 때보다 좋았다.
몇몇 텍사스 팬들은 더글라스의 맹활약 덕분에 에이로드의 빈자리를 잊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회 초.
텍사스 선발 투수 모타는 탬파베이의 하위 타순을 손쉽게 막아 냈다.
“탬파베이 1회와 달리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6, 7, 8번 타자가 나란히 범타.
록튼은 1루 파울 플라이를 때린 뒤 크게 배트를 내리치기도 했다.
그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아울이 한마디 했다.
“록튼, 그 배트 부러졌을걸?”
록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좁혔다.
“맞아, 결이 나갔어.”
“수비 나가기 전에 새 배트를 꼽아 두라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마이너리그에서 막 올라온 경우가 아니면 배트 가격에 부담이 없었다.
다만 록튼처럼 특별한 무게의 배트를 쓰는 선수들은 다음 공격전까지 새로운 배트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아울, 좀 부탁해.”
록튼은 포수 장비를 착용해야 했기 때문에 배트를 교체할 여유가 없었다.
아울은 자신이 직접 배트를 교체하지 않고 라이트를 불렀다.
“라이트, 이 친구 배트 알지?”
“노란색 줄이 들어간 것 말이야?”
“맞아. 그거.”
라이트가 록튼의 배트를 들었다.
“어, 생각보다 무겁잖아?”
“저 친구 무거운 걸 좋아하더라고.”
라이트가 미간을 좁히며 록튼에게 말했다.
“록튼, 이 정도 무게면 배트 스피드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
록튼이 장비를 손에 든 채 그의 말을 받았다.
“난 안타보다 홈런이거든.”
무거운 배트는 록튼이 장타력을 보완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였다.
그러나 실제로 장타가 늘어나진 않았다.
라이트는 록튼의 무거운 배트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킴은 뭐라고 해?”
“킴?”
“킴은 야구 박사잖아.”
“야구 박사라니, 진부한 표현이군.”
“닥터K도 있는걸.”
록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킴에게는 이미 물어봤어.”
“뭐라고 해?”
록튼이 빠른 손놀림으로 니가드를 착용했다.
“배트 무게는 상관없다고 하더군. 자신에게 맞는 배트가 가장 좋다고 했어.”
“흠…….”
라이트가 짧게 한숨을 내쉰 순간 록튼이 그라운드로 걸음을 옮겼다.
“라이트, 걱정할 필요 없어. 배트를 바꿨지만 타율은 떨어지지 않았어.”
“…….”
라이트는 다음 말을 삼켰다.
‘킴은 록튼의 공격력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있는 거야.’
“라이트, 표정이 좋지 않은데?”
라이트가 뒤를 돌아보니 김민이었다.
“킴! 연습 투구 안 하는 거야?”
“해야지.”
“늦었잖아.”
“이러면 더 늦겠군. 라이트에게 물어볼 말이 있거든.”
라이트가 멈칫했다.
“내게?”
“아까 록튼하고 뭔가 언쟁을 벌이던데? 무엇 때문이야? 라커룸 리더로서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라이트가 쓴 약을 마신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언쟁은 아니야. 단지 록튼의 배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게 걱정될 뿐이야.”
“흠, 이번 시즌부터 록튼의 배트 무게가 무거워졌지. 나도 알고 있어.”
라이트가 미간을 좁혔다.
“어째서 그렇게 하도록 놔둔 거야. 이렇게 무거운 배트는 스윙 스피드가 준다고.”
김민이 그라운드로 향하며 짧게 말했다.
“플라시보 효과.”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록튼은 오르지 않는 타율 때문에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김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록튼의 배트 무게가 아니라 텍사스 타선이다.’
2회 말 텍사스 선두 타자는 더글라스와 마찬가지로 뉴욕 양키스에서 트레이드된 홀랜드였다.
양키스에 있을 당시 홀랜드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 타자였다.
‘위협이 되지 않는 것뿐이지. 무시할 만한 타자는 아니야. 메이저리그, 특히 양키스 주전은 강하니까.’
캐스터가 홀랜드의 기록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홀랜드는 4월 한 달 동안 6개의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이 페이스라면 30홈런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텍사스로 팀을 옮긴 뒤 배트를 단풍나무로 바꾼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단풍나무 배트는 배리 본즈 때문에 유행을 타고 있었다.
김민은 배리 본즈의 홈런이 단풍나무와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풍나무 배트는 스테로이드를 가리는 연막에 불과해.’
그는 단풍나무 배트로 홈런이 증가했다면 그것이 바로 플라시보 효과라고 생각했다.
‘플라시보 효과라고 해도 홈런 수가 늘었다면 조심해야 해.’
김민은 초구를 바깥쪽 낮은 코스에 넣었다.
팡!
홀랜드는 이 공을 그냥 지켜보았다.
“스트라이크!”
에이브 타격 코치는 김민이 스트라이크에 공을 꽂아 넣자 미간을 좁혔다.
“킴이 볼 배합을 바꾼 게 아닐까요?”
케빈 감독이 마운드를 주시하며 대답했다.
“킴은 거의 매 이닝 볼 배합을 바꾸지. 1회 사용했던 패턴이 그대로 갈 리 없어.”
“그렇다면 어째서 초구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패턴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봐야 할 것 아닌가?”
케빈 감독은 김민이 조금 더 공격적으로 볼 배합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스트라이크존이라. 우리 타선 정도는 정면 대결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건가?’
그는 김민이 힘으로 텍사스 타선을 내리누르려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음 공은 정면 승부와 거리가 먼 공이었다.
팡!
포수 미트에 들어온 공이 짧은소리를 남겼다.
“스트라이크!”
느린 커브.
홀랜드는 패스트볼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커브를 그대로 흘려보냈다.
“카운트 0-2입니다. 홀랜드, 코너에 몰렸습니다!”
“이건 텍사스 벤치에서 기다리라는 사인이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1회 너무 적었던 김민의 투구수.
기다리라는 주문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민이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은 것은 상대의 작전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패스트볼과 커브, 양쪽 모두 배트가 안 나오는군. 특별히 노리고 있는 코스가 있나?’
배터 박스 위치나 타격 자세를 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하나 더 던져 보면 알 수 있겠지.’
이번에는 홀랜드가 좋아하는 코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향했다.
‘이것은!’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유인구가 들어와도 배트가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좋아하는 높이로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홀랜드의 배트가 힘차게 움직였다.
휙!
거친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 배트가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홀랜드가 배터 박스에서 벗어나며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그러면 그렇지. 저 녀석이 치기 좋은 공을 던져 줄 리가 없지.”
김민이 던진 공은 바깥쪽 패스트볼이 아니라 고속 슬라이더였다.
“홀랜드가 당했군요.”
케빈 감독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시프트가 아니라 삼진을 잡아냈어. 이유가 뭘까?”
“삼진 기록을 신경 쓰는 게 아닐까요? 이번 시즌 킴은 트리플 크라운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삼진 기록.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케빈 감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뭔가 있어.’
그가 생각한 뭔가는 의외로 간단했다.
- 상대가 틈을 보이면 그곳을 공략한다.
김민은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홀랜드를 상대로 치기 좋은 유인구를 던졌을 뿐이었다.
5번 타자 버니와 6번 타자 크라운.
두 사람은 홀랜드와 마찬가지로 삼진으로 물러났다.
“세 타자 연속 삼진입니다! 킴! 오늘도 삼진 퍼레이드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번 시즌 킴의 삼진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김민은 마운드를 내려오며 생각했다.
‘쉽게 미끼를 물지 않는군. 덕분에 투구수만 늘었어.’
그는 삼진을 잡기 위한 투구를 한 것이 아니라 삼진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삼진을 잡은 것이었다.
3회 초.
탬파베이 공격.
9번 타자 칼튼으로 시작한 공격은 2번 타자 산체스에서 끝났다.
“9, 1, 2번이 나란히 외야 플라이.”
“다들 너무 띄우려고 하는군.”
홈런을 노린 타격이 이번 회만큼은 먹히지 않았다.
아울이 미트를 들며 말했다.
“상대에게 전술이 읽힌 거야.”
윌리엄은 고개를 갸웃했다.
“흠, 그렇다고 해도 모타의 투구는 그리 바뀐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투구는 바뀌지 않아도 시프트는 바뀔 수 있지.”
윌리엄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아, 녀석들이 우리가 시프트를 읽고 공을 예상하는 걸 읽은 건가?”
“아마도.”
이반 감독이 마운드를 내려가는 모타를 보며 말했다.
“저 친구 말이야. 킴을 닮은 것 같지 않아?”
“모타가 말입니까?”
블렛소 투수 코치는 전혀 닮은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타는 투구수가 많고 시프트에 크게 의존하는 타입이다. 킴과는 전혀 달라.’
이반 감독이 말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막 올라왔을 때 킴을 기억하고 있나?”
“예?”
김민의 데뷔 시즌.
블렛소 투수 코치는 구질이 많고, 제구력이 좋았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스플리터가 좋긴 했지만, 결정구가 살짝 부족했어.”
이반 감독의 말에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떠오르는 공이 나타났지. 그건 부족한 결정구를 채워 주는 공이었어. 지금의 모타는 떠오르는 공이 없는 킴과 같아.”
블렛소 투수 코치는 생각했다.
‘결정구의 존재. 그것은 메이저리그에서 생존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다. 모타는 결정구가 없음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았다. 그 말은 나머지가 킴과 맞먹을 정도로 좋다는 뜻인가?’
그의 눈에 역투하는 김민이 들어왔다.
파앙!
타자의 코너를 깊이 찌르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훌륭한 제구력이다. 모타가 이런 제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순 없다.’
그는 모타가 김민의 흉내를 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타의 투구는 단순한 흉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5회까지 탬파베이가 모타로부터 뽑아낸 점수는 1회 뽑은 2점이 전부였다.
“볼끝이 좋은 것도 아닌데 좀처럼 정타가 나오지 않는군.”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의 말을 받았다.
“타자들의 배팅 포인트와 타이밍을 교묘하게 흘리고 있습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 타자들의 스윙이 너무 크지 않아?”
“그건…….”
바이슨 수석 코치가 말끝을 흐렸다.
“킴 때문이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아침부터 소문이 돌더군. 뭐, 킴에게는 2점이면 충분할지도 모르지.”
블렛소 투수 코치는 타자를 어렵게 만드는 점에 있어서는 모타와 김민이 같다고 생각했다.
‘투구란 타자의 배트가 정확한 타구를 만들지 못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근본적인 목표를 놓고 본다면 두 사람의 투구가 같을지도 모른다.’
5회 말.
김민은 다시 한번 중심 타선을 맞이했다.
“홀랜드가 배터 박스에 들어섭니다.”
“텍사스, 이번 이닝만큼은 반드시 출루해야 합니다.”
해설자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출루를 강조한 이유는 하나였다.
텍사스는 아직 1루에 주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4이닝 퍼팩트.
김민은 오늘 단 한 명의 주자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